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29
십혼번, 백혼번, 천혼번, 만혼번, 십만혼번⋯⋯.
십삼은 이 연혼술을 마지막 단계까지 익힌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임을 직감하고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눈이 뜨겁게 타올랐다.
반면 노련한 구양화는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한제에게 허리를 숙인 후 공손하게 그 앞에 섰다.
사실 지금 산골짜기 사람들은 점차 구양화가 아닌 한제를 자신들의 진정한 우두머리이자 이곳의 주인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어르신, 부족의 사내 스물일곱은 모두 연혼술을 익히고 있습니다만 십삼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1단계에서 헤매고 있으며, 여섯 명은 여태까지도 수련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연혼술이 비록 입문이 쉬운 술법이라고는 하나 모든 사람이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7명 중 21명이나 1단계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주작성이었다면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한제는 만족한 눈으로 십삼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십삼은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타오르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크게 말했다.
“어르신, 저는 이미 3단계까지 수련을 마쳤습니다. 혼번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밖으로 나가 봉인할 혼백들을 찾을 겁니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옥패가 하나 나타났다.
“이 안에 새로운 혼번 제작 방법이 들어 있다.”
한제가 웃으며 내던진 옥패를 잡아챈 십삼은 기쁜 얼굴로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그것을 미간에 댔다. 그러더니 잠시 후 몸을 살짝 떨고는 감격한 듯 옥패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철푸덕 소리가 나도록 꿇어앉아 한제를 향해 머리를 힘껏 세 번이나 찧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했다.
“이만 물러가라. 전력을 다해 혼번을 만들도록!”
십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옥패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났다.
구양화는 잠시 머뭇거리며 한제를 살피고 또 바닥에 놓인 옥패를 살폈다. 한제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은 이때 감히 나서서 옥패를 살펴봐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망설이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한제는 피식 웃었다.
“보거라. 너 역시 3단계에 이르렀으니 혼번을 만들고 네 요력으로 미끼를 삼아 혼백을 봉인한다면 힘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한제의 조용한 목소리에 구양화는 얼른 옥패를 들어 내용을 확인하더니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공손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이 혼번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 십삼도 혼번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부족원들과 함께 1천 리 밖의 지하 동굴에 사는 부족을 공격하려 합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해라!”
구양화는 고개를 끄덕인 뒤 얼른 물러났다.
★ ★ ★
한 달 뒤에 지하 동굴을 공격하겠다는 소식이 산골짜기 안에 퍼졌다. 이는 산골짜기 부족원들 입장에서는 매우 큰 전투였다. 숫자로 보자면 그쪽이 두 배는 많았지만 연혼술을 익힌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한 달 동안 산골짜기의 성인 남자들은 밤낮없이 연혼술을 익히는 데 전념했고 십삼은 밖으로 나가 충분한 재료를 구해 와 혼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십삼은 세 차례의 실패 이후 마침내 7척짜리 혼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는 산골짜기 부족원들이 직접 만든 첫 번째 혼번이었기에 십삼은 순식간에 부족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구양화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미 며칠 전 혼번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첫 번째 혼번의 주인공이 될 영광을 십삼에게 넘겼다.
그는 한제가 십삼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미래는 자신이 아닌 청년 십삼에게 달려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십삼, 이 혼번은 혼백을 봉인한 뒤에나 효과가 있는 건데 언제 혼백을 잡아오려고?”
시끌벅적한 와중에 누군가가 큰 소리로 물었고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십삼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난 아직 혼백을 봉인하지 않았다고는 한 적 없는데? 잘들 보라고!”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순간 요력이 사방에서 응집되어 한 줄기 푸른 빛이 되더니 그의 손가락 끝에서 번쩍였다. 이어 십삼이 혼번 쪽으로 손을 뻗자 혼번은 미미하게 흔들렸고 동시에 한 줄기 검은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혼번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떠오른 채 두 날개를 펼친 사자 형태의 야수가 됐다.
“캬오오!”
야수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고 이에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구양화는 감격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십삼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그 야수를 가리키더니 소리쳤다.
“공격!”
사자처럼 생긴 그 혼백은 두 눈으로 험악한 빛을 번득이더니 몸을 곧장 날려 옆쪽의 절벽에 달려들었다.
쿠아앙!
쩍, 쩌적-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절벽에는 순간 균열이 일었다. 허나 사자 모습의 혼백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부족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십삼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이것은 그가 숲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것으로 당시 이 하늘을 나는 사자는 큰 부상을 입고 거의 죽음에 이른 상태였다. 십삼은 위험을 무릅쓰고 연혼술을 발휘해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이 야수의 혼백을 거두어 혼번에 봉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십삼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을 휘두른 뒤 외쳤다.
“회수!”
그의 손에서 혼번이 흔들렸다.
한데 이때, 사자가 갑자기 고개를 맹렬히 돌리더니 험악한 눈빛으로 십삼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번개와 같은 속도로 혼번이 아닌 십삼에게 달려들었다. 사자의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십삼은 안색이 변한 얼굴로 혼번을 쥔 채 다시 외쳤다.
“회수!”
허나 사자 혼백은 십삼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는 듯했다.
부족원들은 분분히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이를 보던 구양화는 이를 악물며 얼른 앞으로 나서더니 오른손을 품에 넣어 3촌 정도에 불과한 작은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깃발에서 순간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그 안에서 참새 같은 작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나 사자 혼백에게 달려들었다.
“크오오!”
사자의 혼백은 맹렬히 고개를 돌려 작은 새를 향해 포효했다. 엄청난 기세가 담긴 포효에 돌진하던 작은 새의 기운은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 틈을 타 사자 혼백은 눈 깜짝할 사이 십삼의 코앞에 당도했고 시뻘건 입을 쩍 벌렸다.
창백해진 얼굴의 십삼은 뒤로 달아나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힌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야를 가득 채워가고 있는 사자 혼백의 시뻘건 입을 들여다볼 분이었다.
그때, 냉랭한 코웃음이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흥! 미천한 짐승 주제에 어딜 감히!”
한겨울 서리처럼 서늘한 목소리를 들은 십삼은 온힘을 다해 소리쳤다.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한편 사자의 혼백은 냉랭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 강렬한 기세는 사라졌고 낑낑거리며 두려운 눈빛으로 방향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때, 뭔가 번쩍하더니 한제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느낀 사자의 혼백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러더니 더는 도망치려 하지도 않고 허공에 납죽 엎드렸다. 녀석의 눈은 점점 두려움에 잠식되었다.
이 광경에 모든 부족원은 그야말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십삼의 눈 또한 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타올랐다.
심지어 구양화마저도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이 사자 혼백이 한제에 대해 이렇게 강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혼번과 연혼술에 한제가 남겨둔 결점 때문이었다. 자신이 손을 본 연혼술을 배운 자가 봉인한 혼백을 한제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제는 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사자 혼백은 덜덜 떨며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십삼의 손에 들린 혼번 안으로 사라졌다.
“훌륭한 야수로군. 네 십혼번의 주요 혼백으로 삼아도 되겠어. 허나 연혼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네가 봉인한 마수라도 너를 해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도록!”
한제는 그 말을 남긴 뒤 몸을 돌려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십삼은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혼번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 ★ ★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에 산골짜기의 남자들은 무장을 마친 뒤 분분히 산골짜기 밖으로 나섰다. 구양화와 십삼은 부족원들을 이끌고 곧장 지하 동굴로 향했다.
한제는 그들을 따르지도 신식으로 살피지도 않았다. 이는 일종의 수련이자 시험이었다. 만약 이들이 실패한다면 그들은 한제의 세력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니, 그럴 경우 이곳을 버리고 고요성으로 갈 생각이었다.
★ ★ ★
닷새 뒤,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한제가 조용히 두 눈을 뜨곤 먼 곳을 내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왔고 긴 대열이 작은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산골짜기로 접근해왔다.
그들 중에는 다른 부족원들도 섞여 있었다. 개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는데 모두 장년이었으며, 그들의 손은 끈으로 묶인 채 일곱 명씩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하나의 조는 자신들의 손목이 묶인 물통만 한 두께의 원목 하나를 이고 있었다.
그들 주위를 둘러싼 것은 산골짜기 부족원들이었다.
선두에 선 구양화의 옷 군데군데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얼굴은 초췌했지만 흥분된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십삼은 대열의 가장 뒤에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지금 그에게서는 의기양양한 빛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침착했으며 얼굴도 의연해 보였다. 허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경외심 어린 표정으로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