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38
죽청루의 문에는 발이 두 개나 걸려 있었고 한 쌍의 대련(對聯)도 붙어 있었다.
푸른 소나무와 난초로 맞이한 손님
매화와 국화 향으로 배웅하는 신선되어 떠나네
한제는 그 대련에 적힌 문구에 흥미를 느낀 듯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문간에 서 있던 호객꾼이 얼른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손님, 저희 집의 죽청주(竹靑酒)는 아홉 개 군에서 가장 이름난 천 년의 미주(美酒)입지요. 들어오셔서 맛 좀 보세요. 오늘 새 술동이를 연 기념으로 우리 사장님께서 열 단지의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니까요! 흔한 기회가 아니니 꼭 한 번 맛보고 가세요!”
눈썰미가 꽤 좋은 호객꾼이었다. 한제의 비범함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따르는 십삼과 후포는 뭔가 심상치 않았고 그런 두 사람이 호위를 할 정도라면 분명 높은 지위의 사람이겠거니 짐작한 것이다.
한제는 호객꾼의 말에 흥미를 느낀 듯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그럼 어디 그 죽청주라는 술이 얼마나 훌륭한지 맛이나 볼까?”
말을 마친 그는 느긋하게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십삼과 후포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술집 안은 상당히 고아했고 적지 않은 손님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음을 터뜨렸다.
한제 일행이 들어가자 호객꾼이 얼른 들어오더니 목청 높여 소리쳤다.
“손님 세 분 들어가십니다!”
그러자 곧장 술집 안에서 잔심부름꾼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안쪽으로 드시지요. 창문가에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따라오세요!”
잔심부름꾼은 앞장서서 안내하더니 어깨에 걸쳐둔 마른 수건으로 탁자를 한 번 훔쳐냈다.
한제가 자리에 앉자 십삼과 후포 두 사람은 뒤에 섰다. 허나 한제가 가볍게 고갯짓을 하자 그제야 맞은편에 앉았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잔심부름꾼은 한제를 향해 말했다.
“그 유명하다는 죽청주, 세 단지!”
한제가 부드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심부름꾼은 수건을 다시 어깨에 척 얹더니 자리를 떠났고 잠시 후, 세 개의 작은 단지와 술잔 몇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십삼은 얼른 한제의 잔을 가득 채웠으나 자신의 잔은 채우지 않았다. 이에 술을 한 모금 마시던 후포는 머쓱해하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속으로는 그런 십삼에게 투덜댔으나, 겉으로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았다.
한제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좋은 향에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태어나 마셔본 술은 단 한 가지, 주작성에서 화범하여 일반인처럼 살았을 때 대우의 선조들이 남겨준 술뿐이었다.
일반인으로 살았던 수십 년 동안 대우는 매일 그 술을 가져다주었고 한제는 알게 모르게 그 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르도록 주작성에 있는 그들이 잘 살고 있는지 살피지도 못했구나. 수련자가 아니니 대우 녀석은 벌써 한 줌 흙이 되고도 남았겠지. 녀석의 후손들은 잘 살고 있을지…”
술잔을 든 한제의 눈이 추억에 젖어들었다.
★ ★ ★
화범(化凡)하여 일반인으로 살던 수십 년은 한제의 일생 중 가장 안정적인 때이자 수준이 가장 크게 상승한 시기이기도 했다.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생생했다.
대우를 떠올린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다 손에 들린 술잔을 비웠다.
술은 맛이 상당히 좋았다. 처음에는 약간 아릿했지만 곧 풍부한 향이 가득 퍼졌다. 당시 대우에게서 받았던 술과도 비슷했다.
십삼은 말없이 생각에 잠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술잔이 비면 채워주는 것뿐이었다.
후포는 한참이나 침을 삼켜대며 참았지만 결국은 한제를 힐끔거리며 조심스레 잔을 채워 들이키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색이 돈 후포는 다시 잔을 채우려다가 십삼의 냉랭한 눈길에 풀이 죽었다. 정작 한제는 신경 쓰지 않는데 왜 십삼이 저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는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잔을 내려두었다.
기울이는 술잔이 늘어갈수록 한제는 점점 과거로 빠져들었고 주작성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돌연 그는 이 요령의 땅을 그리고 천운성을 떠나 주작성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한 그 충동은 갈수록 거세져 결국 그의 마음을 잠식했다.
팍!
한제의 손에 들린 술잔에 금이 가더니 바스라졌다. 허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과거로 빠져들어갔다.
수련자에게는 도심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과거에 대해 이토록 강한 충동을 느끼는 것은 결코 좋다 할 수 없었다.
십삼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초조한 눈으로 한제를 살폈다. 심지어 후포도 초조한 기색이었으나, 십삼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때, 밖에서 쇠가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이어 거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이내 검은 갑옷을 입은 여덟 명의 요병이 술집으로 들어섰다.
“어… 어서 오십시오!”
잔심부름꾼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안내했으나, 그들은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그를 밀치며 소리쳤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술과 가장 맛있는 안주를 대령해라!”
바닥에 나뒹군 잔심부름꾼은 얼른 일어나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물러났고 한제 일행을 제외한 모든 손님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하나둘 계산을 하고 나갔다.
요병(妖兵)
요병들은 몇 개의 탁자를 점령하고 앉아 떠들어대기 시작했는데 서른이 조금 넘은 듯한 상석의 사내는 어두운 얼굴에 어떤 위엄이 있었다.
술과 안주가 차려지자 사내는 잔에 따르지도 않고 술병 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비운 병을 집어던졌는데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빈 병은 한제 일행이 앉은 탁자 옆에 떨어져 팍 하고 깨져버렸다.
십삼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말없이 요병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후포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제의 상태가 이상한 상황이라 공연히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로 울화를 참아냈다.
“총령님, 안심하십시오. 이틀 뒤에 그자가 오면 초장부터 아주 호된 맛을 보여주겠습니다. 누가 진정한 총령인지 알려줘야지요!”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가슴팍을 탕탕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에 대한 조사는 했나?”
총령이라 불린 어두운 얼굴의 사내가 입가의 술을 닦아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외부자랍니다. 요장님이 직접 시험하셨는데 조건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총령직을 하사하셨다는군요!”
또 다른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허!”
총령은 다시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총령님, 모레 제가 그자에게 도전해보겠습니다. 그자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요장님이 임명하셨다 하더라도 총령을 맡는 것은 어림도 없지요!”
“그렇지! 도대체 뭘 믿고 총령이 된 거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그만!”
총령이 또 한 번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봐야겠다. 외부자라⋯⋯. 외부자 중에도 약한 녀석이 있어. 내 손으로 죽인 적도 있으니까. 만약 그자가 횡포를 부린다면 주선진(誅仙陳)을 써서 본때를 보여줄 테다.”
그 순간, 주위의 요병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들 무서운 것이냐? 그렇다면 당장 꺼져라!”
총령의 싸늘한 목소리에 곁에 있던 요병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총령님, 주선진을 사용하면 요장님께서 아실 테고 그렇게 되면⋯⋯.”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주선진을 사용하면 그자는 죽을 것이다. 그럼 나는 내 자리를 되찾을 터이니 요장님께서도 크게 벌하시지는 못하실 것이다. 그 정도는 견뎌낼 수 있지. 너희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총령은 이번에도 단숨에 술 한 병을 비우고는 또다시 옆으로 내던졌고 한제 일행이 앉은 탁자에 떨어졌다.
팍!
그 순간, 십삼은 더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 술병 조각을 집어 들었다. 허나 그 순간, 안색이 변하며 옆으로 밀려났고 그가 앉아 있던 의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십삼은 몇 걸음이나 더 뒤로 물러난 뒤에야 목구멍을 넘어온 피를 억지로 삼키며 자리에 멈췄다.
“오늘 이 몸의 기분이 별로구나. 그러니 네놈들도 꺼져라!”
총령이 차갑게 내뱉었다.
후포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요병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요력은 제법 강력해, 둘 이상이 동시에 달려들 경우 승리를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그는 총령과 시선이 부딪힌 순간, 심신이 무언가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껴 얼른 눈길을 피했다.
십삼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술병을 내려놓고 한제에게로 다가갔다.
“선조 어르신!”
한제는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그의 눈빛은 더욱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있었고 몸에서는 선력이 발산되고 있었으며, 체내에 억눌러 놓았던 마념도 천천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사실 총령은 술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한제를 신경 쓰고 있었다. 특히 상대의 체내에서 두 개의 힘이 서로 싸우는 것이 느껴져 이상했다. 이에 시험 삼아 첫 번째 술병을 던져보았고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던져본 것이다.
한제와 두 사람이 술집을 떠나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났던 요병 중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앙칼지게 외쳤다.
“너희 셋, 죽고 싶은 것이냐?”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한제를 밀치려 했다. 그 순간, 십삼이 분노하며 주먹을 날렸다. 요병은 곧장 요력을 끌어올렸고 그러자 그의 손에서 어스름한 빛이 피어나 호랑이가 되더니 십삼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크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