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
좀 전의 회오리가 끝도 없이 사방의 음한기를 흡수했다면 지금 단전에 나타난 시커먼 구멍은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삼켜대고 있었다.
그 순간, 반경 1백 장 내의 음한기가 순식간에 삼켜지면서 진공 상태를 이루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더욱 넓은 범위의 변이를 일으켰고 삼켜지는 범위도 갈수록 넓어졌다.
그는 체내에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음한기를 통제해 곧장 세 번째 충규에 돌입했다.
이 거대한 음한기는 곧장 충규를 시작했고 단전은 순간 붕괴되어 점점이 푸른빛으로 흩어졌다. 이 푸른빛 가운데에서 천천히 진한 남색의 결정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결정체는 엄청난 기세의 음한기로 인해 점점 색이 짙어지더니, 결국에는 푸른색으로 변했다. 세 번째 충규는 이처럼 가볍게 완성되었다.
한단 한 알이 한제의 단전에서 나타났다. 이 한단에 나 있는 무수한 촉수가 한제의 몸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그의 체내에 있는 변이된 영력은 한단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면서 빠르게 전환되었다.
사방의 음한기는 여전히 진한 상태였다. 한제는 이를 삼키면 자신의 몸이 음한기로 가득 채워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는 점점 사실로 바뀌었다. 충만한 감각이 몸을 통해 느껴졌던 것이다.
사도환은 황천승규결의 1단계, 4단계, 7단계 진입이 굉장히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었다. 이 세 단계는 각각 처음으로 단전, 기해, 조규의 혈을 뚫는 단계이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황천승규결의 조건에 따르면 3단계를 공고히 하여 한단을 단전에서 촉촉하게 만든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충규를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한제 체내의 영력은 이미 음한력과 하나로 융합이 된 상태였기에 여기에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에 그는 곧장 황천승규결의 4단계 충규, 즉 가슴의 기해혈을 여는 데 돌입했다.
음한기 기단이 단전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천천히 상승하더니, 한참 뒤에는 기해혈이 있는 곳에서 미친듯한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이 빠른 속도로 회오리 속의 음한기를 흡수했으나, 충규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반경 1천 장 이내의 음한기 기운이 천천히 흩어지다가 이내 자취를 감췄으나 기해혈은 그대로였다. 황천승규결에서 충규의 성공률이 낮은 이유를 한제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벌써 1백 번이 넘게 충규를 실패했고 그때마다 음한기가 소모되어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
거기다 날이 밝아오며 음한기도 사라져 버려서 더는 보충을 할 수도 없었다. 한제의 몸에 남아 있는 음한기는 천천히 한단에 흡수되었다.
다음날 밤, 한제가 흡수한 엄청난 양의 음한기는 그가 가지고 있던 영력과 융합해 전혀 다른 음한력을 이루었다.
한제는 몸 안의 음한력이 마치 큰 물결처럼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채우면 축기 초기의 절정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 눈을 뜨고 지난밤의 일을 떠올린 한제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거주지를 옮겨야겠군. 어젯밤 이곳의 음한기를 적잖게 흡수하긴 했지만 질이 낮아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한제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황천승규결의 기록에 따르면 질이 높은 음의 땅일수록 충규 성공률도 올라간다고 했다.
한제는 몇 개월 전, 음의 땅의 품질을 시험했을 때 치유 능력이 있는 빛줄기의 근원이 있는 곳이 품질이 가장 높았던 것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숲 밖의 하늘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파괴적인 기운을 가득 풍기는 노인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그늘진 얼굴로 숲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강렬한 살기가 번득였다.
“력아, 이 할아비가 네 복수를 하러 왔다.”
그 노인은 바로 등가성의 시조 등화원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줄곧 자신이 건 저주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안개에 휩싸인 듯 구체적인 방향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등화원은 다만 그가 지금 이 숲에 있다는 사실만 겨우 알아냈을 뿐이었다.
이 숲은 사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숲에 감히 건드리기 싫을 정도의 강력한 존재가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등력의 죽음에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숲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건드리지 않고 복수의 상대만을 찾아낸다면 그래서 숲속의 강력한 존재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만 않으면 될 터였다.
등화원은 이를 악물고 숲으로 들어섰다.
★ ★ ★
숲속 폐허 깊은 곳, 관 하나가 소리 없이 열리더니 비쩍 마른 보라색 손이 그 안에서 천천히 뻗어 나왔다. 그 손은 힘껏 주먹을 쥐었고 그 순간 보라색의 번개 덩어리가 그의 손에서 부풀어 올랐다.
“백 년의 기한이 끝났습니다, 주인님. 저번에는 육신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절대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 ★ ★
등화원은 조심스레 숲 안으로 들어갔다. 원영기에 이른 그의 강력한 신식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한제의 위치를 파악한 그가 막 순간이동을 하려던 그때, 갑자기 기이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져라!”
등화원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검은색 안개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그 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일더니 비쩍 마른 손 하나가 뻗어 나와, 기척도 없이 등화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쩍 마른 손은 가볍게 번쩍이는가 싶더니, 커다란 손이 되어 등화원을 움켜쥐려 휘적거렸다.
신식으로 상대의 수준이 원영기 중기라는 것을 파악한 등화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려 달아났다. 원영기 중기라니, 그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강력한 존재가 숲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등화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검은 안개 속에서는 콧방귀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그 거대한 손 역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 ★ ★
숲 밖의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등화원은 곧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거대한 손이 어느새 뒤에서 나타나 그를 꽉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등화원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 짐승 가죽 한 장을 꺼내더니 오른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 짐승 가죽이 노란색 빛을 번쩍이며 그의 몸을 감싸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커다란 손이 일으킨 바람에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등화원은 창백해진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허공에 나타났던 검은색 안개가 중앙으로 모여들며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것은 바짝 말라 가죽과 뼈만 남아있는 미라 같은 남자였다. 그는 등화원이 달아난 방향을 바라보기만 할 뿐, 뒤를 쫓지는 않고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그는 침착하고 여유 있게 숲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오래지 않아 한 공터에 멈춰 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에 의해 찢긴 것처럼 땅에 긴 균열이 생겼고 곧 땅은 둘로 나뉘었다.
균열이 일어난 순간, 땅속에서부터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검은색 그림자가 그 안에서 튀어나와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미라 같은 남자는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넓은 범위에 우리를 만들어 버렸다. 땅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그림자는 겁에 질린 듯 비명을 내지르다가 우리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고 바닥에 꿇어앉아 바닥에 머리를 쾅쾅 부딪쳤다.
미라 같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 년 만이구나. 주인의 몸뚱이가 시체가 되었을 줄이야. 네게 정신이 있다는 점과 이전의 정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넌 네 주인과의 감응을 통해 내가 그의 원영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시체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겁에 질린 눈빛으로 미라 같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손을 한 번 휘젓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시체를 바라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나와 함께 찾자. 만약 네가 주인의 원영을 찾는다면 내가 원영을 삼킨 후 자유를 얻었을 때 널 시마(尸魔)로 진화시켜줄 것이다.”
살아 있는 시체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몸을 일으킨 그것은 숲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극음영력(極陰靈力)
그 무렵, 폐허 안의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파란 피부의 괴물이 한제가 있는 쪽을 망설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제는 어제 대량의 음한기를 삼킨 상태였지만 그 음한기의 품질은 일반 6, 7품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정도 품질은 아무리 많이 흡수해도 영력과 결합한 형태로 변한 뒤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정도 품질의 음한기는 충규 수련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한제는 더 깊은 곳을 찾아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높은 급의 음한기가 존재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날 깊은 밤, 한제는 음한기를 측정하는 빛의 공을 소환해낸 뒤 폐허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참 동안 걷던 그 때, 허공에 떠있던 빛의 공에서 나는 붉은 빛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여러 차례 깜빡이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의 공이 둘로 분화되었다.
두 개의 붉은 빛의 공이 나타난 순간, 한제의 얼굴이 밝아졌다. 음한기 품질이 일반에서 우수로 올라갔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두 개의 붉은 빛의 공은 더욱 밝게 빛났고 품질은 점점 더 높아졌다.
한참을 걷던 한제는 그 자리에 멈췄다. 그의 앞에는 넓은 길이 하나 나 있었고 그 양옆으로는 폐허가 된 도시가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 전 이곳이 굉장히 번성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음한기의 품질은 계속해서 조금씩 높아졌다. 우수 6품, 7품, 8품까지…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한 넷째 날, 한제는 이 폐허 도시의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도시의 중심이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줄곧 방향 한번 틀지 않고 곧게 걸어왔으니 말이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땅 곳곳에 수십 척 깊이의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그 구덩이 안에 가득 찬 빗물은 혼탁했고 심지어 몇몇 구덩이에서는 기괴한 벌레 같은 생물체가 독이 든 이빨을 드러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붕괴도 이상하리만치 심각했다. 잡초들이 무성했고 군데군데 진흙 늪도 있었다. 이 진흙 늪에도 이상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한 번 그들로부터 기습을 받은 후로 한제는 더욱 경계심을 높였다.
이미 꽤나 멀리 와 있었지만 음한기의 품질이 그다지 많이 오르지는 않아, 아직 천음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다섯 번째 날 깊은 밤, 늪을 벗어난 한제의 눈앞에 거대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중앙의 구덩이였다. 직경과 높이가 모두 3백 장 정도 되어 보이는 구덩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구덩이에서는 어떤 물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제는 그 가까이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밤이라 사방이 어두웠지만 가득한 음한기가 시각에 영향을 준 덕분에 그는 대충이나마 그 구덩이 바닥에 벌집처럼 무수히 많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제가 구덩이 쪽으로 고개를 쭉 빼 안쪽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던 두 개의 붉은 빛의 공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빠르게 하나로 모여들었다가 셋으로 늘어났다. 이곳의 음한기가 천음의 품질이라는 뜻이었다.
허나 한제는 급히 그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그 가장자리를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빛의 공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까 머물렀던 곳의 맞은편에 이르자 세 개의 붉은 빛의 공은 다시 하나로 모여들었다가 둘로 나뉘었다.
한제는 음한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건이 이 구덩이임을 확신했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일단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저 끄트머리에서부터 희끄무레하게 밝아와 음한기가 점차 흩어져갔다. 한제는 구덩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빽빽하게 벌집과 같은 구멍들이 들어차 있었다. 이 밀집된 구멍이 얼마나 깊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빗물이 모두 그곳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사방을 자세히 관찰한 그는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어둠이 하늘을 뒤덮자 음한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짐승들은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는 싫다는 듯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빛의 공이 발하는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나뉘었다. 점차 음한기 품질이 오르더니, 자정이 되기도 전에 천음 1품에 이르렀다.
한제는 기쁜 마음으로 신식을 펼쳐 구덩이 안을 관찰한 한제는 점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곳의 음한기 품질이 상승하는 것과 벌집처럼 무수히 많이 자리한 구멍이 적지 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음한기가 그 구멍들로부터 피어올라 사방을 채운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이곳의 음한기 품질은 천음 5품까지 치솟았다.
한제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특정한 호흡법에 따라 음한기를 들이마셨다. 음한기가 기해혈에 모여들면서 한제는 음한기의 품질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가슴속에 차오른 음한기는 이전에 비해 수십 배나 더 깨끗했다.
품질은 양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수십 시진을 들여 호흡한 것이 여기서 단 몇 시진 들이켠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기해혈에 모인 음한기가 회오리를 이루더니 점점 더 빨리 회전했다. 며칠 전 단전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변화가 다시 나타났다.
주위의 음한기가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며 한제 쪽으로 몰려들었다. 기해혈의 회오리가 커질수록 그가 흡수하는 속도와 범위 역시 미친 듯이 증폭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번 충규를 시도했을 때 한계에 봉착했던 1천 장의 거리에 이르렀다. 허나 그에 그치지 않고 계속 확대되더니, 이윽고 반경 10리 안의 음한기는 세찬 물결처럼 한제에게로 모여들었다.
점점 회오리를 통제하기 힘들어지자 한제는 곧장 온 힘을 다해 기해혈에 충격을 가하며 충규를 시작했다. 음한기 회오리는 마치 회전하는 원뿔처럼 기해혈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