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0
그런 요병 1만 명이 내뿜는 살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허나 1만 쌍의 눈동자와 그들이 내뿜는 살기를 홀로 오롯이 받아내면서도 한제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오히려 그의 눈에서 뿜어지는 서늘함이 1만 명을 압도하는 듯했다.
관사참군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한 뒤 소리쳤다.
“사마 부총령, 어디 있나?”
곧 멀리서 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뿔이 달린 거대한 마수가 달려왔다. 온통 시커먼 녀석이 달려오자 뿌연 모래 먼지가 파도처럼 일었다.
마수 위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검은 갑옷에는 보라색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투구 아래의 구멍으로 보이는 눈에서는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한제를 본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더욱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사방의 요병들은 즉각 길을 터주었고 부총령은 금방 한제로부터 3백 척 거리에 이르렀다. 그를 태운 마수가 네 다리로 땅을 딛고 멈추자 뿌옇게 일어난 모래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거참 요란하게도 등장하는군.”
관사참군은 투덜대며 소매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고 그러자 모래 먼지가 흩어졌다.
“사마 부총령, 인사드리게. 이분은 신임 총령이시다.”
그는 일부러 ‘부총령’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부총령은 싸늘하게 한제를 바라보더니 눈빛만큼이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염, 총령님을 뵙습니다.”
한제는 사마염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시 보게 돼서 반갑군.”
사마염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투구를 벗었다. 그는 술집에서 만났던 그 어두운 표정의 사내였다.
둘 사이의 묘한 기류에 관사참군은 헛기침을 하더니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다.
“총령님, 제 역할은 끝났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요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니까요.”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생하시게.”
관사참군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진 안으로 들어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떠난 뒤, 군영 안은 적막에 감싸였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소리뿐이었다.
사마염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총령님, 흑갑군(黑鉀軍)의 1만 요병 중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나오지 못한 여섯을 제외하면 모두 출석한 상태입니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요병들을 훑었다. 그들의 눈에서 한제는 살기와 적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다들 물러나라!”
한제가 짧게 명했으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1만 요병의 눈빛은 모두 사마염에게 닿아 있었다. 산전수전 겪어온 병사들이 아직 자신의 힘을 증명하지도 못한 신임 총령의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걸었고 이내 열 개 대열을 지나쳐 군영을 빠져나왔다. 곁에 선 십삼와 후포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사라지자 열 개 대열의 요병들은 왁자지껄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에는 짙은 멸시가 섞여 있었다.
허나 사마염은 웃지 않았다. 그가 신임 총령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만약 자신이었다면 이와같은 상황에서 절대 저렇게 평정심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들 물러가서 훈련이나 해!”
사마염은 미간을 찌푸린 채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사방의 요병들은 그의 말에 따라 정연하게 움직였다.
★ ★ ★
군영에는 줄줄이 늘어선 병영 외에 단출한 집이 하나 있었다. 보호진으로 둘러진 집 옆에는 금색 실로 두 글자가 수놓인 검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사마
사마염이 머무는 집인 듯했다.
그 옆에 몇몇 건물의 잔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있던 집이 이것 하나만은 아닌 듯했다.
후포는 뒤에서 들려오는 요병들의 웃음소리에 이를 갈았다.
“선조 어르신, 저자들의 행태가 너무 방만합니다.”
허나 한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신경 쓰지 마라. 저 안에는 우리 자리가 없으니 여기서 좌선을 해야겠구나.”
말을 마친 그는 공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하기 시작했다.
후포는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려 흩어지고 있는 요병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한제의 왼쪽에 털퍼덕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반면 십삼의 눈은 수면처럼 덤덤했다. 그는 요병들의 괄시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제의 명령 한 마디만 떨어진다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한제의 오른쪽에 가부좌를 튼 십삼은 두 눈을 감고 거마족의 신체 단련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눈 깜짝할 사이 밤이 되었다.
군영의 요병들은 끊임없이 고함을 치며 훈련을 계속했다. 그들의 훈련은 실전 위주였고 진법과의 협동을 중시했다.
때때로 한제의 곁을 지나쳐가는 요병들은 경멸하듯 쳐다보거나 아예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허나 잔잔한 호수처럼 한제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십삼은 줄곧 한제를 따라 눈을 감고 좌선을 했다. 마음은 몇 번이나 요동쳤지만 결국 의지로 억제했다.
오직 후포만이 종일 좌선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쳐가는 요병들을 노려보았다.
반면 한제는 평온한 마음으로 온종일 그 자리에서 좌선하던 그는 신식을 통해 1만 명의 요병을 하나하나 훑었다.
사마염의 심복이기도 한 열 명의 대열장이 각각 1천 명의 대열을 관리했다. 그날 술집에 있던 여섯 명의 요병은 비록 수준은 부족할지언정 이 요병들 사이에서 위엄과 명망이 있는 이들이었다.
한제가 이들을 장악하는 데 조급해하지 않는 이유는 나운의 기억을 통해 이 요령의 땅에 있는 아홉 개 군의 요병과 규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홉 개의 군은 군법을 중히 여겼다. 수련계와는 명확히 다른 특징이었다. 이곳에서는 요제에 대적할 정도의 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이들의 힘을 빌려야 했고 그러려면 군법을 잘 따라야만 했다.
요령의 땅에 들어온 외부자들은 일단 아홉 개의 군에서 병권을 장악해야 했다. 그래야만 이곳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만의 요병을 이끄는 적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요병 개개인은 수준이 높지 않았으나 이들은 진법에 뛰어났고 개중에는 진정한 고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칫하면 도총과 요장급 강자들에게 쫓길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다른 군으로 도망쳐 숨어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전공을 세워 고요령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령의 땅에 들어온 수련자들이 각 군의 직위를 얻으려 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 군법을 잘 따라야 했다.
한제는 이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힘으로 요병들을 제압하려 했다가는 그들 전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군법을 어기고 도망자가 된다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다른 군으로 도망친다 해도 그쪽에서는 한낱 외부인인 자신을 감싸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아홉 군은 외부자가 직위를 가질 경우 ‘한 사람이 명에 따르지 않으면 그자의 잘못이지만 열 사람이 명에 따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린 상관의 잘못’이라는 조항을 두어 관리했다.
그렇기에 한제는 사냥꾼처럼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 올 한 번의 기회를.
★ ★ ★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십삼은 이틀 전에 한제가 준 옥패 안의 내용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면 후포는 갈수록 화가 차올랐고 이제 폭발 직전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요병들은 점점 더 한제와 자신들을 무시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마염의 경계심은 오히려 점점 높아졌다.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임 총령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요 며칠 동안 군영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종일 죽은 듯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했다.
만약 총령이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거나 군영의 일에 사사건간 간섭하려 든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신임 총령이 분노를 못 이겨 공격을 하거나 군영에 간섭하려 든다면 꼬투리를 잡아 그를 군영에서 몰아낼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알 수 없는 침묵이 불길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사흘은 그에게 1년 같았다.
“그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집에 앉아 중얼거리던 사마염의 아래로는 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열장이었다.
“총령님, 서유와 주개는 평소 저희와 왕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총령님의 소집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찌할까요?”
위엄이 흘러넘치는 건장한 대머리 사내가 불만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머리에는 뱀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기이한 뱀 모양의 문신은 꼭 살아 있는 듯해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마염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오늘 너희를 부른 것은 신임 총령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다.”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저자는 등신입니다. 신경 쓸 것도 없죠!”
어느 중년 사내가 경멸어린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사실 그는 엄밀히 따지자면 모든 외부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손 대열장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신임 총령은 분명 뭔가 속셈이 있을 겁니다. 지난 며칠간 그런 수모를 겪고도 성 한 번 내지 않는 것을 보면 결코 보통 사람은 아니지요!”
사마염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 그에게서는 나이를 뛰어넘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손 대열장이 코웃음을 쳤다.
“허! 작은 문제를 공연히 크게 보시는군요!”
이어서 각자가 한제에 대한 생각을 고했지만 의견은 모두 갈렸다.
사마염은 미간을 문지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앞으로 며칠 동안은 먼저 나서서 저자를 건드리지 말도록. 그가 먼저 나서서 우릴 공격해야만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저자도 언제까지고 평정심을 유지하지는 못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