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1
위엄
한제가 군영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지도 보름이 됐다. 그동안 한제는 꼼짝도 않고 그저 눈을 감은 채 호흡만 하고 있었다. 군영을 수련지로 삼은 모양새였다.
완벽히 평온을 되찾은 십삼은 한제와 함께 호흡했다.
반면 후포는 점점 분노가 쌓여갔다. 한제가 이토록 평온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후포는 진즉 혼번을 꺼냈을 것이다.
침묵할수록 요병들은 점점 경멸을 드러냈으나, 한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 대열장이 이끄는 1천 명의 요병들이 훈련을 하다가 한제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손 대열장은 경멸과 불쾌함을 담은 눈빛을 숨기지 않았고 한제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침을 탁 내뱉으며 방자하게 외쳤다.
“등신!”
왁자지껄한 요병들의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한데 그때, 한제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더니 덤덤하고도 느긋하게 물었다.
“손 대열장, 방금 뭐라고 했지?”
손 대열장은 흠칫 놀랐다. 지난 보름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자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허나 부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그는 냉소하며 대답했다.
“등신이라고 했습⋯⋯.”
손 대열장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한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순간 사방에서 형태 없는 힘이 끓어올랐고 손 대열장은 그 힘에 속박되어 한제에게로 끌려갔다.
안색이 변해 몸부림치고 요력까지 발산해도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손 대열장은 어느새 한제의 손에 목이 틀어쥐어진 채 부르르 떨었다.
“크으⋯⋯.”
한제는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듯 목을 틀어쥔 손에 힘을 주었고 그러자 손 대열장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손 대열장은 비록 한제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믿으면서도 그 놀라운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보여준 힘은 사마 총령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
그때,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얽혔고 그 순간 손 대열장은 몸이 덜덜 떨려왔다.
‘뭐지?’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제가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가는 신음 외에는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손 대열장이 입을 함부로 놀린 것을 후회하던 그때, 한제가 돌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빠득!
작은 소리였다. 허나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손 대열장은 목이 부러졌고 한제가 불어넣은 선력에 수준이 사라졌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제를 보고 있었다.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시체를 손에 쥔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그러자 손 대열장의 얼굴에 있는 일곱 구멍으로부터 요력이 흘러나와 한제에게 흡수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한 호흡 정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 대열장님이…”
“저… 저자가… 대열장님을 죽였다!”
“죽여!”
눈앞에서 자신들의 대열장을 잃은 요병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한제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고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십삼! 천요군의 군법 제 8조를 읊어라!”
며칠 전 한제가 건넨 옥패는 바로 천요군의 군법을 담은 것이었다.
“천요군 군법 제 8조, 상관을 해한 부하는 사형에 처한다!”
십삼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고 그러자 사방에서 몰려들던 요병들은 일제히 멈추어 섰다. 몇몇은 여전히 분노가 가득한 눈빛이었으나, 눈치가 빠른 이들은 재빨리 눈에서 살기를 지웠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손 대열장의 시체를 휙 내던졌다. 시체는 요병들의 발 앞에 떨어졌다. 직속상관의 시체를 가까이서 본 요병들은 다시 분노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형제들이여, 대열장의 복수를 하자!”
그 순간, 1천 명의 요병 중 절반 정도가 요기를 발산하며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가볍게 미소까지 지은 채 툭 내뱉었다.
“방금 말했건만 네놈들은 상관을 해할 셈이냐?”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선검을 꺼내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달려드는 요병들 사이로 한 줄기 검광이 튀어나왔고 굽은 칼이 그 뒤를 따랐다.
“크아악!”
참담한 비명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선검의 검광은 결단기 수준 정도에 불과한 요병들을 간단히 썰어버렸고 굽은 칼이 지나간 자리마다 병사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 무렵, 군영의 다른 아홉 대열장과 요병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대열장 중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그들은 부연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미친 듯이 돌진했다.
한제는 두 팔을 뻗어 체내의 선력과 요력으로 회오리를 만들어내고는 맹렬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선검과 굽은 칼에 목숨을 잃은 요병들의 체내에 있던 요력이 한제에게로 흡수됐다.
아홉 명의 대열장이 도착했을 때, 한제는 모든 요력을 흡수한 뒤였다.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고 그러자 선검과 굽은 칼이 돌아와 머리 위에서 웅웅거리며 맴돌았다.
손 대열장의 대열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눈에 남은 것은 이제 두려움뿐이었다.
아홉 명의 대열장 뒤로 9천 명의 요병이 한제를 포위한 채 넓게 흩어져 진을 이루더니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십삼은 한제의 뒤에 섰고 후포는 모든 혼번을 꺼내 들고는 요병들을 둘러보았다.
한편, 여유롭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9천 명의 요병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긴장한 기색 없이 덤덤하게 내뱉었다.
“너희도 상관을 해할 셈이냐?”
그 짧은 질문에 아홉 명의 대열장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지면에 흩뿌려진 요병들의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고 잘린 팔과 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한제를 우습게 볼 수 없었고 서로를 돌아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강렬한 기운이 마치 폭풍처럼 다가와 순식간에 내려섰다. 그 기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마염은 핏발이 선 눈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시체들과 핏자국을 살폈다.
사실 그는 이 소란을 더 일찍 눈치챘지만 즉시 나서는 대신 비술(秘術)을 통해 관사참군에게 통지한 후 요병들이 한제를 포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선 것이다.
“총령님, 이유가 무엇이건 대열장을 죽이고 휘하 요병들까지 이토록 참혹하게 죽이다니,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사마염이 분노를 억누르며 따졌으나, 한제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십삼! 천요군 군법 제 13조가 무엇이냐?”
십삼이 얼른 말을 받았다.
“천요군 군법 제 13조, 합당한 이유 없이 상관을 포위하고 위협할 경우 사형에 처한다!”
“천요군 군법 제 2조!”
“천요군 군법 제 2조, 허락 없이 대내적으로 주선 급의 진을 사용할 경우 엄벌에 처한다!”
여전히 덤덤한 한제의 표정과 달리 사마염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제야 그는 지난 보름간 한제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은 모두를 단번에 제압할 단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대열장 중 셋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공연히 총령과 부총령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 마음은 없었다.
“십삼, 열을 세라. 그때까지 진을 해체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
말을 마친 한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눈을 감았다.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십삼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해산!”
사마염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외쳤다. 그리고 요병들에게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9천 명이 넘는 요병들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진도 흩어졌다.
그때, 군영의 중앙에 한 줄기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비쩍 마른 관사참군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로는 백발을 휘날리는 삼베옷 차림의 노인이 서서 사방을 휘 둘러보고 있었다.
노인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맹렬히 두 눈을 번쩍 떴다.
한제와 노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지난 수백 년의 삶에서 다져진 평정심 덕분이었다.
한제는 노인의 체내에서 네 개의 봉인을 볼 수 있었다.
한편, 노인 역시 눈빛이 얽힌 순간 몸을 살짝 휘청거렸다. 사실 그는 한제의 눈빛에 체내의 봉인이 무너져 내릴 뻔해 무척 놀란 상태였다.
순간이동으로 한제의 수백 척 앞에 이른 관사참군과 노인은 낭자한 피와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참군님, 총령님이 연고도 없이 손 대열장과 5백여 명의 요병을 죽였습니다. 모든 요병이 목격한 일입니다.”
사마염이 얼른 고했다.
한편, 한제는 말없이 옥패를 하나 던졌다. 관사참군은 옥패를 받아 들더니 그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사건의 전말들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관사참군은 유심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를 업신여기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오히려 그와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찼다. 한제는 저 거칠고 오만한 1만 요병과 대열장들의 기선을 완벽히 제압한 것이다.
관사참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총령님, 죄송합니다. 이 정도라면 상관을 해하려 한 부하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로군요.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요장님께 잘 보고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한제에게 포권을 한 뒤 물러났다. 곁에 있던 노인도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 총령의 수준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군. 감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