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5
그곳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었다. 하늘과 땅의 구분 없이 곳곳에서 반짝이는 별빛뿐이었다. 그 별빛 덕분에 한제는 사방을 명확히 살필 수 있었다.
굵기가 1백 척에 달하는 작은 길이 구불구불 먼 곳으로 나 있었다. 이곳에는 대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에 길은 허공에 떠 있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고정되어 있지도 않아 이리저리 흔들리기까지 했다.
한제가 서 있는 곳은 1천 척 정도 되는 평평한 대(臺) 위였다. 전송진은 대(臺) 위에 어렴풋이 새겨져 있었다.
요석설은 익숙한 듯 대(臺)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말했다.
“집중해서 좌선해. 경지를 느껴서 자격의 낙인을 얻어야만 이 존수(尊獸)의 길에 오를 수 있어.”
말을 마친 요석설은 두 눈을 감고 좌선한 채 호흡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한제는 앞으로 걸어갔다. 구불구불하게 멀리까지 이어진 허공의 작은 길 앞에 멈춰 선 그는 조용히 앞을 살폈다.
어느 순간, 한제의 두 눈이 커졌다. 이것은 좁은 길이 아니라 길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교룡과도 같은 거대한 마수의 몸이었다. 요석설이 말한 존수가 바로 이 마수를 가리키는 듯했다.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속에도 기록되지 않은 마수야. 서사가 죽은 뒤 나타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 이곳은 대체 어디기에 저렇게 거대한 마수가⋯⋯? 이곳은 분명 누군가가 신통력으로 만들어낸 곳이다. 한데 이토록 엄청난 신통력을 가진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 요령의 땅은 어느 선제(仙帝)가 만들어놓은 별채라는 소문이 있었지. 그렇다면 이곳의 모든 것은 어쩌면 그 선제가 배치해 놓은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요석설을 돌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여인을 통해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지.’
그는 평평한 대(臺)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경지에 집중하자 순간 머릿속에 번개처럼 어떤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생사윤회의 경지는 요령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체내에 들이는 단계까지 달성한 상태였다.
이제 한제의 심신은 이 경지에 푹 침잠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왼손은 삶이고 오른손은 죽음이며, 그 사이에서 흐르는 것은 영원히 변함없는 세월의 강인 셈이었다.
경지에 침잠되었다고는 해도 한제의 경계심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심신의 일부를 분리해 신체의 주위를 맴돌게 했다. 만약 요석설이 뭔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알아차리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가 심신을 분리해 경계를 늦추지 않으리라는 점은 요석설도 예측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조용히 때를 노렸다.
생사윤회의 축이 천천히 한제의 체내로부터 나타났다.
그러는 사이 한제는 신비로운 힘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평평한 대(臺)에 응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응집되기 시작한 힘은 요석설의 사방을 감싸며 그녀의 몸 바깥쪽에서 회전했다.
한제는 온정신을 그 힘에 집중시켰다. 그 신비로운 힘은 회전하면서 빠르게 요석설의 미간으로 몰려들었다.
그 순간, 한 줄기 금색 빛이 요석설의 미간에서 나타나 3초 정도 유지되다가 흩어져 사라졌고 요석설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 금색 문양이 나타났다. 세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복잡했지만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었다.
금빛 문양을 품은 요석설의 눈길이 닿은 순간, 한제의 마음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청천벽력이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한제는 탁삼을 마주했던 당시처럼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천운자도 그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든 적은 없었다. 이 순간 요석설은 더 이상 영변기 후기 수련자가 아니라 대적할 수 없는 선존(仙尊)이 되어 있었다.
허나 한제는 심신이 격렬하게 떨리는 와중에도 도심만큼은 견고하여 실마리를 찾아냈다. 이 엄청난 위엄을 발산하고 있는 것은 요석설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 떠오른 금빛 문양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떨리는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더 이상 상대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묵묵히 천도를 느꼈다.
요석설은 다시 두 눈을 감고 묵묵히 좌선한 채 호흡했다.
한제는 생사윤회의 천도 안에 침잠되었다. 이전의 장면들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평평한 대(臺) 위에 아까와 같은 신비로운 힘이 다시 나타났다.
요석설이 두 눈을 번쩍 떴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번쩍거렸다. 그녀는 덤덤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했다.
신비로운 힘은 나타나자마자 한제의 사방을 맴돌며 끊임없이 회전했다.
이때 한제의 심신도 기이한 상태에 접어들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 신비로운 세상을 느끼고 있었으며, 사방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제는 어떤 것도 또렷하게 볼 수가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순된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귓가에서는 남녀가 불분명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에게 뭔가를 알리는 듯했지만 한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알 수 없는 감각은 한참동안 유지되었고 한제는 이제 시간 개념조차 잊고 있었다.
귓가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눈앞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천천히 또렷해졌다. 그러다가 주위의 모든 것이 현실처럼 또렷해지는 순간, 귓가에 들리던 소리가 흩어져 사라지려 했다.
한제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간에 있던 생의 낙인을 두 귀에 응집했다. 보기를 포기하고 듣기를 택한 것이다.
“나는 청림이다.”
그 순간, 귓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눈앞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만약 이전부터 계속해서 생의 낙인을 사용했다면 이 목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또렷해지다가 막 흩어져버릴 것 같은 그 순간에 생의 낙인을 사용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한제가 보는 것 대신 듣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소리가 보이는 것보다 더욱 진실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것에는 주관적인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순간, 한제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에서 금색 빛이 격렬하게 번득였다.
금색 빛은 두 호흡 정도 이어졌다가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는 금색 문양이 나타났다. 이 문양은 여섯 개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어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이를 본 요석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제가 이 깨달음 속에서 여섯 개의 문양이나 획득할 줄은 예상치 못한 탓이다.
요석설을 돌아본 한제는 좀 전가지 그녀의 눈에서 번득이던 금색 문양에 억눌리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상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이제 반대로 한제의 눈빛에 요석설이 불편함을 느끼고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금색 문양을 얻었으니 저 길에 올라도 되겠어. 가지.”
말을 마친 그녀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용의 몸 위에 올라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요석설의 눈에 담긴 금색 문양이 밝은 달 앞의 반딧불처럼 약간 어두워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담긴 문양도 밝았지만 한제의 그것과 비하면 상대적으로 밝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한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있던 금빛 문양이 거울처럼 비춰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이 금색 문양은 대체 뭐지?’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요석설의 뒤를 따랐다.
여섯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
길 아래쪽은 끝없는 우주였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죽을지 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우 끔찍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작은 길은 좌우로 흔들렸지만 수련자들에게 이 정도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길을 따라 나아갔다. 허나 사흘을 쉬지 않고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 익숙한 요석설은 아직 3분의 1정도밖에 오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며칠이 지난 뒤에야 길 저쪽 앞에 거대하고 평평한 대(臺)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대(臺) 위에는 뭔가가 우뚝 세워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길이가 약 30척에 달하는 석상이었다. 외형은 사람 같았으나 귀와 팔이 유달리 컸다.
길 위에서 우뚝 멈춘 요석설은 한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이 첫 번째 봉인이야. 우리 둘이 번갈아가면서 하나씩 봉인을 파괴하도록 하지. 내가 먼저 할 테니 도우는 다음 봉인을 파괴하도록 해.”
“그러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석설은 말없이 대(臺)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순간 금색 문양을 품은 빛이 그녀의 눈에서 쏘아져 나와 석상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석상은 우르르 진동하더니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고 뒤이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무정한 눈빛으로 한 발 내딛었다.
쿠르릉!
석상의 한 걸음에 대(臺)가 무너질 듯 진동했고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몇 번이나 석상을 상대해봤기에 그 동작 하나하나가 익숙했던 요석설은 허공에 떠오른 채 저물대를 두드려 붉은 옥패를 하나 꺼냈다.
“봉인!”
그녀가 짧게 외치며 내던진 옥패는 허공에서 깨져나가더니 짙은 붉은 빛이 되어 석상을 뒤덮었다. 석상은 마치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고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발버둥을 쳤다. 허나 그 붉은 빛의 봉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요석설은 가볍게 땅에 내려서더니 한제를 힐끗 돌아보고는 곧장 평평한 대(臺)의 반대편 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좀 전에 그들이 지나온 것과 같은, 한 마리의 용으로 이루어진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놀라운 일이군.’
요석설이 너무도 쉽게 석상을 제압하는 모습에 한제는 긴장감이 오히려 더 커졌다.
석상의 수준은 영변기 초기 수련자에 비견될 만했다. 민첩하지는 않았으나 한 걸음의 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만약 석상이 신통력을 발휘했거나 손발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웠을 것이다.
‘저 옥패도 혈조가 만들어준 것이겠지. 저토록 강력한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다니…’
허나 겉으로는 어떤 티도 내지 않은 채, 한제는 훌쩍 뛰어올라 봉인된 석상의 곁을 그대로 지나쳤다. 순간 곁눈으로 슬쩍 살핀 석상 안에서 금색 빛이 번쩍 하고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평평한 대(臺) 반대쪽 끝의 길 앞에 선 후에야 한제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미간에 찍혀 있던 생의 낙인이 눈에 응집되었고 한제는 붉은 빛에 봉인된 석상에서 문양이 번득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어 파악하기도 굉장히 쉬운 문양이었다.
문양을 확인한 한제가 고개를 돌렸을 때 생의 낙인은 이미 흩어져 사라졌고 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아져 있었다.
그는 이미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요석설을 느긋하게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방금 석상에게서 본 그 문양을 생각했다.
그 문양은 요석설의 눈에 있는 세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이나 자신의 눈에 있는 금색 문양과 꼭 같았다.
한제는 다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손바닥에 여섯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문양이로군. 하나의 획이 하나의 기초인 모양이야. 요석설의 문양이든 내 문양이든 다 그 기초적인 획을 포함하고 있어!’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허공에 문양 하나를 그려냈다. 그의 손가락에는 선력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문양이 체내의 선력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그 문양을 마음에 새기고 더는 그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저 여인에게는 혈혼단이 있어. 내가 기습을 한다 해도 다시 살아날 테니 죽이기는 쉽지 않을 거야.’
★ ★ ★
며칠 후, 또 하나의 평평한 대(臺)가 나타났다. 이전에 보았던 두 개와 크기가 완전히 똑같고 중앙에 석상 하나가 놓여 있는 대(臺)였다. 심지어 그 석상의 생김새 또한 이전에 보았던 석상과 거의 같았으나, 이번 석상의 미간에는 반쯤 감긴 눈이 하나 더 있었다.
요석설은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앞으로 한 발 나섰고 요석설을 뛰어넘어 대(臺) 위에 이르렀다. 그 순간,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생의 낙인을 응집해 두 눈에 봉인했다. 이어 대(臺)를 밟고 서서 생의 낙인이 봉인된 두 눈을 떴다. 생의 낙인을 봉인함으로써 그 금색 문양만으로 상대를 꿰뚫어볼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