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6
한데 한제가 대(臺)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조각상이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걸어 나왔다.
한제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생의 낙인이 두 눈에서부터 흩어져 마치 유영하는 용처럼 한제 주위를 맴돌았다.
“크오오!”
석상은 포효하면서 한제를 쫓았다.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간단한 금제로 이루어진 잔영의 원이 하나 나타났다.
한제는 거리를 벌리며 잔영의 원을 던졌다. 금제는 곧장 커지면서 수십 척의 푸른 빛이 되어 석상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석상은 멈추지 않고 다가와 금제와 충돌했다. 금제는 깨진 거울처럼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쪼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번득였다.
‘저 석상, 온몸이 금제로 뒤덮여 있는 모양이군. 힘으로 공격하여 제거하는 건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없겠어!’
좀 전의 금제는 그저 시험 삼아 던진 것이었다. 금제란 본래 형태 없는 존재라 같은 금제와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저렇게 거울처럼 산산조각 낼 수는 없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여러 갈래의 푸른빛이 나타나 순식간에 튀어나가더니 석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오오!”
석상은 포효하며 주먹을 뻗었다. 그 한 번의 주먹질에 수많은 금제가 파괴되었고 동시에 엄청난 힘이 허공을 뚫고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덩이 주제에 어딜 감히!”
한제는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문질러 금번을 꺼내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금제를 뚫고 한제에게로 달려들던 힘이 곧장 금번 안으로 들어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이 금번은 모두 공격 속성을 가진 999개 조의 금제로 만들어진 것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999개 조의 금제를 다 걸었는데도 천벌이 아직 강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제는 9999개 조의 금제를 건 금번을 만들고 싶었으나, 그렇게 많은 금제들을 알지도 못했기에 불가능했다.
한제의 눈에서 대량의 금제가 번득였다. 이 금제는 한제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분열되었다.
석상이 가까워지려고 할 때마다 한제는 금번을 휘둘러 대량의 금제를 쏘아 보냈고 금제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었다.
석상은 약이 올랐는지 크게 포효했는데 그 소리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였다.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석상은 결국 멈춰 섰다. 그러더니 발을 굴렀다.
콰르릉!
지진이라도 난 듯한 소리와 함께 대(臺)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예리한 돌 가시들이 대(臺) 밑에서 뚫고 나와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상대의 신통력에 대비를 하고 있던 한제는 몸을 날려 피했다. 허나 그 가시들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눈 깜짝할 사이에 평평한 대(臺)는 가운데만 비워진 채 모두 그 가시들로 뒤덮였다.
한제는 허공에 뜬 채 두 눈의 금제를 끌어냈다. 두 눈은 더욱 빠르게 번득였고 시종일관 석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 그랬군.”
이제 한제의 눈에는 석상의 형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더 이상 석상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금제로 중첩되어 만들어진 존재로 보인 것이다.
쾅!
한제가 살피는 사이 석상은 다시 한 번 발을 굴렀고 그러자 대(臺) 위의 날카로운 가시들은 곧장 뽑혀 나오더니 비처럼 한제를 향해 쏟아졌다.
사실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석상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억지로 파괴하기보다는 석상을 좀 더 연구하고 싶었다.
눈앞에 들이닥치는 가시들은 한제의 눈에 각각이 하나의 금제로 보였다. 그리고 금제라면 그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결단기 수준일 때부터 금제에 대해 연구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1만 년 이상 수련한 사람이 아니라면 금제에 대해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손에 쥔 금번을 휘둘렀다. 순간 수많은 금제가 튀어나오더니 기이한 조합에 따라 배열되고 자신을 덮쳐오는 가시들을 남김없이 분해해버렸다. 그리고 그 금제들을 흡수하면서 금번의 힘은 더욱 증가했다.
“더 놀아주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구나.”
한제는 땅에 내려서며 씨익 웃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금번 안의 금제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석상을 에워쌌다. 동시에 한제의 몸은 한 줄기 푸른 연기가 되어 금제의 회오리의 반대 방향으로 석상을 맴돌았다. 그리고 두 손을 끊임없이 휘둘러 새로운 금제들을 하나하나 그 안에 섞어 넣었다.
이제 석상은 수많은 금제로 포위된 상황으로 발버둥을 쳐도 금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석상을 맴도는 금제들은 끊임없이 석상에 충돌했다.
“파괴!”
한제는 멈춰 서더니 크게 외쳤다.
그의 외침에 석상 주위를 맴돌던 수많은 금제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석상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면서 점차 작아졌다.
“크오오!”
석상은 격렬하게 포효했고 미간의 세 번째 눈이 번쩍 뜨이더니 한 줄기 금색 빛을 발사해 한제가 배치한 금제들을 밀어냈다.
그 순간, 석상의 세 번째 눈에서 두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금색 문양이 번득이는 것을 한제는 놓치지 않았다.
“금(禁)!”
한제가 낮게 외치며 금제들에 한 움큼의 정혈을 토해냈다. 피를 흡수한 금제는 다시 앞으로 밀고 나갔다. 그러자 석상의 세 번째 눈에서 뿜어진 금색 빛이 흩어져 사라졌고 석상은 수많은 금제에 뒤덮여 진동했다.
“크아아!”
짧은 포효와 함께 석상의 눈에서 번득이던 빛이 사라졌다.
콰르르!
뒤이어 석상의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여러 줄기의 금제가 석상의 몸을 뚫고 나와 검은 기운으로 변하더니 미친 듯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머지않아 평평한 대(臺)는 검은 기운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 검은 기운 속에서 하나의 금빛 문양이 번득이며 나타나 허공으로 사라지려 했다.
“어딜!”
한제는 검지로 허공에 하나의 문양을 그려냈다. 요석설이 봉인한 첫 번째 석상의 눈에서 보았던 문양이었다.
한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위에 또 하나의 획을 그렸다. 그러자 두 문양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석상의 세 번째 눈에서 보았던 금색 문양이 형성되었다.
그 순간, 석상에서 튀어나와 도망치려 했던 문양은 묶인 듯이 제자리에 멈추었고 이내 한제가 그려낸 문양 쪽으로 조금씩 끌려오기 시작했다.
“하압!”
한제가 재빨리 결인을 그리며 가볍게 기합을 내뱉자 도망치려던 문양과 그가 그려낸 문양은 하나로 합쳐졌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손을 들어 그 위에 또 하나의 획을 그렸다. 그러자 문양은 요석설의 눈에서 번득이던 세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것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가 되었다.
비틀린 건곤(乾坤) (1)
문양이 완성된 순간, 한제 체내의 선력이 손가락을 따라 그 문양에 녹아들었다. 그러자 문양에서 번쩍이는 금빛이 튀어나가 사방을 밝게 비추었다. 대(臺) 위를 맴돌던 검은 기운은 그 빛 아래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요석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전에 몇 번이나 이곳에 와봤고 한제처럼 금색 문양을 허공에 그려본 적도 있지만 저렇게 석상 안의 문양을 흡수한 적은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석상을 부수기보다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붉은 옥으로 봉인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었다.
선력을 문양에 섞어 넣은 한제는 돌연 우뚝 멈추었다. 그는 네 번째 획을 그려넣지 못한다면 이 문양은 곧 무너져 내릴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제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의 문양은 곧장 요석설에게로 튕겨져 나갔다.
“네놈이 감히!”
요석설은 분노에 찬 일갈을 내뱉으며 재빨리 뒤로 피하면서 저물대에서 여러 개의 붉은 옥패를 꺼내 차례로 깨트렸다.
쿠르릉!
대지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붉은 빛들이 요동치면서 하나씩 문양을 뒤덮어갔다. 이 빛들은 문양에 떨어지자마자 곧장 흩어졌지만 문양의 금빛 또한 약간 어두워졌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요석설은 계속해서 몸을 뒤로 물리면서 붉은 옥들을 끊임없이 꺼내서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문양에서 번득이던 금빛은 붉은 빛에 뒤덮여 완전히 어두워지더니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요석설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금색 문양이 달려들던 순간 아버지에게서나 느껴봤던 압박감이 느껴졌고 저물대에 든 붉은 옥의 10분의 1이나 사용해야 했다.
“이한제!”
문양이 완전히 흩어진 것을 확인한 요석설은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허나 분노에 눈이 뒤집힌 그녀와 달리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앞을 겨누며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그 문양이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바람에 통제할 수 없었을 뿐이다. 허나 굳이 나와 싸우겠다면 피하지는 않겠다.”
한제의 말에 요석설은 멈춰 섰다. 그녀의 눈에 싸늘한 살기가 스쳐갔다.
‘흥! 그깟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고? 허나 여기까지 온 이상 모든 봉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살아나갈 방도는 없어. 지금 저자와 싸워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녀는 분노로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싸늘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주겠다. 허나 두 번의 용서는 없다.”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휙 돌려 한제를 그대로 스쳐지나 대(臺)의 반대쪽 길로 나아갔다. 그런 요석설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비릿하게 웃던 한제는 이내 덤덤한 얼굴로 돌아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사실 한제의 마음도 복잡했다.
‘요석설의 말대로라면 이곳에는 총 18개의 관문이 있다. 각 관문마다 하나의 문양이 있다면 총 18개의 문양이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18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하다는 것인가? 이 문양은 혹시… 선술인가?’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으로 허공에 세 개의 문양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의 선력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문양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을 뿐 이전과 같은 위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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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세 번째 대(臺)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요석설의 차례였으므로 그녀는 곧장 대(臺)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臺) 위에는 역시나 석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미간에 세 번째 눈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손에는 긴 검까지 하나 들고 있었다.
요석설은 이전처럼 봉인을 하지 않고 신통력을 발휘하여 싸웠다.
한제는 멀리서 서늘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요석설의 신통술은 대부분 혈공(血功) 위주였는데 손을 휘두르면 붉은 빛이 튀어나왔다.
단 1각 만에 결판이 났으나 요석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석상을 무너뜨렸음에도 금색 문양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에 짜증이 난 그녀는 발을 크게 굴렀고 그러자 석상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요석설은 말없이 곧장 대(臺)를 뛰어넘어 앞으로 향했다.
한제 또한 뒤를 따라 이동하며 생각했다.
‘석상에 걸린 금제를 풀어내야만 문양이 분리되어 나오는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