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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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무료할 지경이었다. 요석설은 한제가 금빛 문양을 얻는 것이 꺼림칙했기에 석상이 나타날 때마다 자신이 나섰던 것이다.
허나 그녀는 두 차례나 석상을 무너뜨렸는데도 금빛 문양을 얻어내지 못하자 한제가 두 번째 석상과 싸웠던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다시 붉은 옥의 봉인을 이용해 석상을 해치웠다.
그렇게 열두 번째 관문에 이르던 날, 요석설은 진지한 목소리로 한제에게 말했다.
“이번 봉인은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아. 둘이 동시에 공격해야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내가 도우를 찾아간 이유이기도 하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앞에있는 평평한 대(臺)가 이전에 보았던 것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던 참이었다. 이번 대(臺)는 이전 것들의 절반에 불과했고 석상도 없었다. 그저 거대한 돌문 하나만 있었고 반대편에도 길이 없었다.
대(臺) 위의 돌문에는 흐릿하게 뭔가가 새겨져 있었는데 사람의 얼굴 같았다.
쿠르릉!
두 사람이 대(臺) 위에 오르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돌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얼음장처럼 찬바람이 불어닥쳤고 그러자 요석설의 전신이 붉은 빛으로 뒤덮였다. 그녀의 몸은 얼음으로 뒤덮였으나, 그 안에서는 오로지 붉은 빛만 보일 뿐이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휘둘러 금제로 온몸을 뒤덮었다. 찬바람이 닿자 쩌적 소리와 함께 층층의 얼음이 생겨나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몸은 두꺼운 얼음에 갇혀버렸다.
이어 하얀 연기가 돌문 안에서 흘러나와 응결되더니 이내 한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서른 무렵의 그는 차디찬 얼굴에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신선다운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가 한제와 요석설을 둘러싼 얼음을 훑은 순간, 입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패가 없는 자를 주인님의 처소에 들여보낼 수는 없다.”
요석설을 둘러싼 얼음 안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더욱 짙어졌다. 이어 그 안에서부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은 완전히 녹아버렸고 그 안에서 요석설이 걸어 나왔다.
“넌 벌써 몇 차례나 찾아와 혈군(血君)의 공법을 부렸지. 네가 그의 후계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나는 세 차례나 널 봐주었고 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용인해주었다. 한데도 너는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구나. 썩 물러가라. 이번에는 봐주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엄이 배어있었다.
그때, 한제를 둘러싼 얼음도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제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걸어 나와 덤덤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허나 남자의 시선은 오로지 요석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요석설은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저를 봐주신 것 잘 압니다. 이곳이 오랫동안 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우시겠지만 저를 좀 도와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자는 시선을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세 번의 공격을 막아낸다면 그렇게 해주마. 둘이 함께해도 좋다.”
요석설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한 사람이 한 번씩, 그리고 마지막 공격은 함께 막아내겠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한 줄기 금색 빛이 그의 손가락 끝에 응집되었다.
“누가 먼저 나서겠느냐?”
남자의 물음에 요석설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허나 한제는 피식 웃으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고개를 저었다.
“요 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요석설은 한제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믿을 수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이곳은 열여덟 개의 봉인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야. 실제로는 열두 개뿐이군. 저 문 안이 목적지 아닌가!”
요석설은 냉소했다. 그녀는 한제가 언제든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미안하군. 내가 깜빡 잊고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 이곳에 들어와 금색 문양의 낙인을 깨우치면 저 문 안으로 들어갈수있는 자격이 생기게 돼. 허나 그 자격을 얻으려면 반드시 끝까지 성공해야 하지. 그러지 않으면 죽음뿐이야. 자 이제 알려줬으니 믿을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해.”
한제는 미묘하게 웃으며 잠시 요석설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요 도우에게는 혈혼단이 있으니 당연히 두려울 것이 없겠지. 훌륭해!”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남자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날 도와서 저 안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전에 약속했던 것은 모두 지킬 테니까.”
요석설의 말에 한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야 문제될 게 없지. 허나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아야겠어.”
요석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어느 선인이 남겨둔 별채 같은 곳이야. 우리 아버지가 어느 요제를 통해 알게 되었지. 이곳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기에 수많은 신통력은 사라진 상태고 이제 하나의 영혼만이 남아 지키고 있지. 세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오직 문정기 수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이야. 자 이제 알려줘야 할 것은 모두 알려줬으니 도우의 역할을 해!”
“문정기 수준은 되어야 막아낼 수 있다고? 나는 아직 영변기 중기에 불과해. 요 도우도 아직 문정기에는 이르지 못하지 않았나?”
한제가 따지고 들자 요석설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이한제, 나야 혈혼단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저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넌 죽는다.”
그 순간, 그때까지 냉랭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렇다, 저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너희 둘은 죽는다. 살고 싶다면 저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한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선뜻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공격하시지요.”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체내에 억눌려 있던 마념이 용솟음쳤고 검은 안개가 체내에서 확산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 그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요석설은 이 검은 안개가 마기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좋아, 계획대로군.’
사실 요석설은 이미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아무리 자신이 충분한 양의 선옥을 줬다 해도 영변기 중기 수준이었던 한제가 사흘도 안 되는 시간에 영변기 후기로 진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고 그럼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여기에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방법을 통해 두 번의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이곳에 여러 차례 와본 그녀는 실제로 매번 두 차례의 공격까지는 막아냈었다.
그 무렵, 남자의 영혼은 검은 안개에 뒤덮인 한제를 힐끗 보더니 두 말 않고 손을 튕겼다. 그러자 금색 빛이 번개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압!”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그의 온몸을 뒤덮은 마기가 용솟음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오른손 검지 끝에 응집되었다.
“갑니다!”
한제는 짧게 외치며 검지를 휘둘렀고 그러자 검은 마기와 금빛이 충돌했다. 그 순간, 금빛은 마치 송곳처럼 마기를 뚫었고 마기는 끊임없이 금빛을 녹여버렸다.
허나 금빛은 마기를 헤치고 한제의 손가락을 따라 그의 체내로 뚫고 들어왔다.
“크윽!”
한제는 한 움큼 선혈을 토해내면서 뒤로 밀려났다.
펑!
한제의 체내에서 뭔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그의 몸은 평평한 대(臺)의 저 아래 끝없는 우주로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첫 번째 공격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제 두 번째 공격이다.”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다시 들어 올렸고 또 하나의 금빛이 그의 손가락 끝에 응집되었다.
비틀린 건곤 (2)
신식으로 사방을 훑은 요석설은 어디에서도 한제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는 싸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한제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문 너머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이한제와 악연을 맺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는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사실 그녀는 내심 한제 정도의 수준으로는 자신과 어울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공격을 맞닥뜨린 요석설은 곧장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문질러 커다란 붉은 옥패를 꺼내들었다. 순간 중년 남자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튀어나와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파삭!
요석설이 손에 힘을 주자 옥패가 으스러지면서 대량의 붉은 빛이 튀어나와 금빛을 완전히 감쌌다. 하지만 금빛은 약간 어두워지긴 했어도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어 요석설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큭!”
얼굴이 붉어진 요석설은 뿜어져 나오려는 선혈을 애써 삼키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붉은 옥패의 위력은 한 번밖에 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도 붉은 옥패로 이전의 열한 개 관문을 파죽지세로 통과했지만 여기서는 번번이 세 번째 공격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었다.
“두 번째 공격도 막아냈구나. 이제 세 번째 공격이다.”
남자의 손가락에서 다시 금빛이 나타났다.
허나 요석설은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한제가 첫 번째 공격을 막아낸 덕분에 그녀는 체내에 남은 선력도 충분했고 약간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신통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남자가 세 번째 금빛을 날리는 순간, 요석설은 두 손을 들어 가슴 앞에서 수많은 결인을 그렸다. 그러더니 금빛이 달려드는 순간 그 위에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고 뒤로 몸을 물리며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선혈은 끓어오르듯 붉은 문양이 되어 금빛에 딱 달라붙었다. 허나 금빛은 다소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요석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요석설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결인을 그리던 두 손을 멈추었다. 그때, 핏빛의 둥그런 진 하나가 그녀의 손에서 나타났다.
펑!
금빛이 핏빛 진(陣) 위에 떨어지자 거대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핏빛 진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금빛 역시 마찬가지로 무너져 내렸으나, 그 순간 요석설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크흑!”
요석설은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내며 휘청거렸다. 체내의 선력이 미친 듯이 솟아오르면서 체내로 들어온 금색 빛에 맞서 싸웠다.
금빛은 그녀의 경맥과 육신에 엄청난 위해를 끼쳤으나, 선력을 통해 저항하자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마주보다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