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49
그중 하나는 상고 시대의 금제를 이용한 것으로 무척 정교해 봉인을 파괴한 흔적이 매화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누각에 남은 흔적의 반 이상이 그렇게 파괴되어 있었는데 이는 매화십팔금(梅花十八禁)이라는 수법이었다.
매화십팔금은 상고 시대 수련계에서 유명했던 수법이었지만 직계로만 전해질 뿐만 아니라 직계 제자라 해도 최대 구금(九禁)까지만 익힐 수 있었다. 십팔금 전부를 익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장문인 뿐이었다.
“매화십팔금이라니, 기회가 된다면 배워보고 싶은 수법이로군.”
한제는 누각을 조금 더 살피기로 결심했다.
탁자와 의자가 쌓여 있던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쌓인 재나 먼지가 적었다.
누각을 자세히 관찰한 한제는 적지 않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그에 앞서 이 누각에 들어온 사람은 몇 명인지 알 수 없으나, 봉인을 파괴한 사람은 셋이었다. 그중 매화십팔금을 사용한 자가 가장 먼저 이곳에 들어왔을 것이다. 허나 그에게는 어지간한 물건이 아니면 눈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제가 살펴본 바로는 이 누각에서 귀중한 것이 있었을 법한 곳에는 예외 없이 매화십팔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두 사람은 이런 일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듯했다. 탁자와 의자도 그중 한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다.
탁자와 의자가 있었던 곳의 먼지 위에는 미세한 나무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흔적이었다.
한제는 쪼그려 앉아 그 나무 부스러기를 자세히 살폈다.
“억지로 금제를 파괴한 탓에 이곳에 있던 탁자와 의자가 약간 부서진 모양이군.”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누각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누각 뒤로는 긴 회랑 하나가 있었고 사방에는 선옥으로 만든 난간이 있었으며, 그 아래로 이미 말라버린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서도 매화십팔금의 도안이 발견됐다.
회랑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한제는 사방을 훑어보았다. 이곳, 특히 난간에서 한제는 절단된 흔적을 여러 군데 볼 수 있었다. 허나 갈수록 파괴된 흔적은 적어졌다.
10리 정도 걸어가자 회랑의 끝이 나왔는데 그 끝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 교차점에 선 한제는 세 개의 길을 자세히 살폈다. 한제는 당시 매화십팔금을 사용했던 자가 간 곳을 찾고 싶었다. 그자의 금제를 다루는 능력은 상당했으나, 그도 능력에 한계가 있을 테니 가져가지 못한 물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한제는 세 방향으로 각각 수십 척씩 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1천 척 정도 걸어가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으나, 한제는 파괴된 금제의 흔적만을 좇았다. 개중에는 미처 다 파괴되지 않고 반 정도만 남은 채 방치된 금제도 있었다.
그런 금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한제는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폈다. 그는 금제를 파괴하지 않고 그저 관찰한 뒤 다시 나아갔다.
길 양쪽으로 난간이 있긴 했지만 그 난간 너머는 더 이상 연못이 아니라 대나무로 뒤덮인 숲이었다.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한제의 걸음이 돌연 우뚝 멈추었다. 한 발을 들었다가 천천히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은 한제의 두 눈에서 금제의 문양이 번득였다.
1백 척 앞에 정자(亭子)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원탁과 네 개의 돌 의자가 있었고 원탁 위에는 술주전자 하나와 술잔 몇 개도 있었다.
한제는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자로부터 1백 척 안의 금제에서는 파손된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앞사람이 남긴 파괴의 흔적을 따라왔는데 이곳에는 어떤 파괴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니… 그렇다면 그는 여기서 전진을 멈췄다는 건데…”
한제는 한참 고민하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두 눈에서 금제의 문양이 번득였다.
“그렇군. 이 정자 안의 금제는 수만 개의 종류로 변화할 수 있어. 그것을 전부 해결하지 않으면 정자 반경 1백 척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금제가 발동되겠지. 억지로 파괴한다고 해도 수많은 변화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버텨낼 수 없을 거야. 금제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되어 있어. 그러니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여기까지 온 모든 사람이 다 후퇴한 거겠지.”
한제는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강한 금제이긴 하지만 만약 그 매화십팔금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며칠 안에 해결했을 텐데… 그는 여기까지 오지 않은 것인가? 어쨌든 내 선택이 옳았던 모양이군. 이 앞쪽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이곳에 들어온 이래 봤던 모든 것에는 누군가 훑고 지나간 흔적뿐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한데 지금 드디어 남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을 발견한 것이다.
한제는 정신을 집중하여 자세히 주위를 살피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연구를 시작했다.
정자 바깥의 빽빽한 그물처럼 이루어진 금제를 풀려면 첫 단계는 관찰이었다.
★ ★ ★
한제는 장장 사흘 동안 가만히 앉아 금제를 살폈다. 두 눈은 충혈되었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드리웠다.
“3천 개 정도의 변화밖에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 금제를 풀려면 아직 한참 남았군.”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튕겼다. 그러자 한 줄기 선력이 그의 손가락에서 쏘아져 나가 정자로 달려들었다.
이어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한 줄기 선력은 정자로부터 1백 척 안에 진입한 순간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기운이 그 1백 척 반경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콰콰콰!
포악한 힘을 품은 엄청난 기운이 성난 파도처럼 사방으로 몰아쳤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한제 역시 그 기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1천 척 뒤로 밀려난 뒤에야 겨우 멈춘 한제의 두 눈은 여전히 정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일어난 금제의 변화만 해도 1만 개가 넘는 것 같군.”
한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속해서 연구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 또 다시 한 달이 지나갔다.
이 기간 동안 한제는 몇 차례 선력으로 금제를 건드리면서 그 변화를 관찰했고 덕분에 이제 이 정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변화를 간파하게 됐다. 대신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은 탓에 그의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이 작업에 어찌나 몰두했는지, 그는 심지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별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지금 그의 정신은 온통 이 금제로 이루어진 진을 처리하는 것에만 쏠려 있었다. 또한 이번 연구를 통해 삼라만상과 각종 변화들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한제가 배운 금제는 고대 신의 땅 안에 깃들어 있던 것들이었고 그가 배운 것들 역시 상고 시대의 금제였다. 그 후 주작성의 어느 평원 지하 동굴에서 대량의 서적을 발견했고 수백 년간 끊임없이 연구하고 융합한 덕에 금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허나 999개 조의 금제를 봉인한 금번을 완성하기까지 한 그도 어느 순간부터 벽에 가로막힌 듯했다. 이는 금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한 달 동안의 연구를 통해 활로를 연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금제에 대한 그의 수준은 한 단계 올라서게 됐다.
한제는 이제 이 진을 처리하는 데에 4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이는 1만 년 이상 수련을 해온 수련자나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자신감이었으니, 금제에 대한 한제의 이해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매화십팔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7할 이상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겠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다시 연구를 이어나갔다.
★ ★ ★
또 한 달이 지났을 때, 한제는 이 금제의 변화에 대해 적어도 5할 이상을 파악했다고 자신할 정도가 되었다.
그의 두 눈은 더 빨갛게 충혈됐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몸을 훌쩍 날린 그는 정자로부터 1백 척 떨어진 곳에 이르러 두 눈을 번득이며 계산을 하다가 이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전혀 긴장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진도 건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진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변고가 일어날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 세 걸음으로 10척 정도 이동한 그는 단번에 아홉 번째 걸음까지 내딛었다. 여전히 제 집 마당을 거닐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홉 걸음에서 멈춘 한제의 눈에서 금제의 문양이 번득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전방 70척 앞에 있는 정자를 보고는 오른손 손가락을 꼽으며 묵묵히 계산을 하다가 이내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이번에도 아홉 걸음을 더 걸었고 그는 어느덧 60척이나 들어와 있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어느 수련자도 이만큼 걸어 들어온 적이 없었다.
한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가 옆으로 아홉 걸음을 움직였다. 잠시 후 다시 뒤로 세 걸음 물러난 그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향했다.
한제는 작은 원을 그리듯 움직인 끝에 정자로부터 불과 30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걸음 수를 따지면 많지 않았으나, 매 걸음은 수만 번 연구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만약 한 걸음이라도 잘못 옮길 경우 금제 안에서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40척 안에서 실수한다면 한제의 수준으로는 저항이 불가능한 공격이 쏟아질 터였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는 법. 이 금제 안에서도 살길은 있다. 위기의 순간이 닥쳐올 경우 그 길에 올라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선금(仙禁)의 특징이었다.
다만 그 길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제의 변화에 따라 기척 없이 방향을 바꾸었다. 한제가 지난 두 달 동안 열심히 연구한 것은 금제 자체 변화이자 그 삶의 길의 방향이었다.
70척이나 들어온 한제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산을 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번득이며 다시 한 걸음 만에 10척을 움직였다. 그리고 착지하는 순간 곧바로 다시 한 번 10척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표정이 변했고 망설임 없이 곧장 왼쪽으로 반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정자로부터 검은 회오리가 나타났다.
휘오오!
회오리가 나타나자 엄청난 힘이 용솟음쳤고 줄기줄기 검은 번개도 번득였다. 눈 깜짝할 사이 1백 척 안은 파멸될 듯이 회오리에 마구 휩쓸렸다. 한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정기 수준 수련자라 해도 이 회오리 안에서 3초 이상 머물렀다가는 곧바로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한제는 끊임없이 휩쓸리고 번개를 피하는 와중에도 삶의 길에 발을 딛고 있었다. 자칫 번개에 적중당할 경우 원신마저 소멸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방금 그가 잘못된 걸음을 옮긴 것은 계산 실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진이 언제부턴가 뒤바뀌면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잠들다
잠시 후, 회오리와 번개는 나타날 때만큼이나 갑작스레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자 한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려 정자 안에 발을 디뎠다. 이동한 거리는 고작 1백 척이었건만 그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들어왔다!”
그가 희열에 차 감탄하는 순간, 정자를 중심으로 반경 1백 척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동시에 눈부시도록 밝은 빛 아래 사방의 경물이 크게 변했다.
정자 뒤쪽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석가산(石假山)이 나타났고 땅 곳곳에는 푸른 풀이 돋아났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 숲도 나타나 기존의 대나무 숲과 하나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