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53
노인마저 사라지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붉은 용은 세 번째 문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크악!”
문이 터져나가는 충격에 문 너머에 있던 수만 명의 요병 중 일부가 목숨을 잃었다.
세 번째 관문 안에는 수만의 요병 외에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 다섯이 있었는데 그들은 번개와 같은 안광을 번득이며 곧장 한제를 가로막았다.
‘여기까지란 말인가?’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힘으로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무리를 한 것이었다. 한데 저 다섯 노인은 모두 영변기 후기에 상당하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수만 명의 요병도 있었다.
‘아니, 방법이 있긴 하지.’
두 번째 문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마지막 필살기뿐이었다.
“요령의 땅에서는 병권을 중히 여긴다더니 그럴 만하군. 내가 결단기 수준의 요병 수십만을 가졌다면 문정기 수련자도 무릎 꿇게 할 수 있겠지. 요병 수천만에 총령과 도총까지 있다면 진을 통해 문정기 후기 수련자도 패퇴시킬 수 있을 테지. 요제의 군 하나를 장악해 수억의 요병과 요수, 요장을 두고 있다면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른 수련자라도 두렵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제는 길게 탄식하며 눈앞의 수만 요병과 다섯 노인을 바라보다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원을 그리며 가볍게 외쳤다.
“황천!”
하급 선술에 비견할 만한 강력한 술법이긴 하나 문정기에 이르기 전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사도환이 신신당부했던, 세 번째 필살기인 황천지가 위력을 드러냈다. 그러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하늘 곳곳에서 벼락이 나타났다.
꽈릉!
그와 동시에 하늘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갈라진 듯 중간에서 나뉘더니 그 사이에 거대한 산수화가 그려진 족자가 나타났다. 황천지는 경지를 근간으로 하는 술법이었다.
족자에서부터 회색 기운이 확산되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한데 합쳐져 황천지가 되었다.
바람 한 점 없건만 한제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흩날렸고 그의 눈은 극도로 서늘해졌으며, 온몸을 맴도는 회색 기운은 하늘을 뒤덮은 황천지와 호응하듯 번쩍거렸다.
한제를 포위한 요병들은 순간 우뚝 멈췄고 회색 기운이 그들의 정수리에서 피어올라 황천지로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하늘로 떠올랐다.
일격(一擊)
황천지와 하나가 된 한제는 곧장 두 번째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무렵, 다섯 노인은 황천지에 경악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요력을 발휘하여 한제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들은 황천지의 진정한 위력을 알지 못했다. 한제는 영변기 중기 수준일 때 황천지를 발휘하여 진도에 대적한 바 있다. 비록 패했지만 황천지는 문정기 중기 수준인 진도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하물며 영변기 후기 절정에 이른 한제가 발휘하는 황천지라면 문정기 수련자를 위협하기에도 충분할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한제의 진정한 필살기였다.
“컥!”
“쿨럭!”
다섯 노인은 하나같이 피를 토해내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리고는 더 이상 한제를 저지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은 황천지가 내뿜는 기세에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한데 그 너머에는 요병이 보이지 않았고 그저 한 사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왜소하지만 눈빛만은 밝게 번득이는 그 남자는 두 번째 문이 무너져 내린 순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휘오오!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황천지는 남자의 손에서 3촌가량 떨어진 곳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의 두 손 사이에는 주먹만 한 작은 공이 있었는데 그 하얀 공 안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번개가 끊임없이 번득였다.
남자는 잠시 버티다가 몸을 뒤로 물렸고 땅에는 두 갈래의 깊은 자국이 남았다. 이는 그가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한제의 황천지에 밀려났기에 생겨난 자국이었다. 만약 더 버티려 했다면 그는 황천지의 위력에 온몸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하압!”
1천 척이나 밀려난 사내는 낮은 기합을 지르며 겨우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한제의 황천지는 회오리처럼 그의 생기를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총령! 나는 요장님 휘하의 제 1 도총일세. 대체 어찌 이러는가?”
“요장님을 뵙고자 합니다.”
말을 마치자 한제의 뒤에 선 수만 요병들의 몸에서 다시 한 번 대량의 회색 기운이 발산되더니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 회색 기운들은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하나의 회색 기운은 곧 한 명의 생명이었다.
이제 황천지의 위력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위력을 도총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도총은 안색이 변하더니 다시금 뒤로 밀려났다.
쾅!
“크윽!”
도총의 몸은 한참을 밀려나 첫 번째 문에 부딪혔고 그러자 문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도총은 대량의 피를 토하며 훌훌 날아갔다.
그때, 누군가의 거대한 인영이 첫 번째 문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두 말 않고 황천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한제는 그 주먹 안에 어려 있는 전의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열 번의 주먹질!
하늘을 뒤덮을 듯한 위력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눈 깜짝할 사이 열 번의 주먹질이 일으킨 위력은 성난 파도처럼 요동쳤다. 무궁무진한 위력이 황천지에 떨어진 순간, 회색 기운이 번득였다. 동시에 한제의 눈에 어려 있던 살육의 빛이 하늘을 뒤덮을 듯 진해졌다.
콰광!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와 상대의 주위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빠르게 사방으로 확산되던 위력은 성난 파도처럼 10리 밖까지 퍼져 나갔다.
황천지를 일으켰던 한제의 새끼손가락에서 쩌적 소리가 나더니 엄청난 위력이 곧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크윽!”
엄청난 힘에 한제는 뒤로 밀려났고 땅에는 그의 두 발이 남긴 깊은 흔적이 생겼다. 그는 30척 정도 밀려난 후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 무렵, 두 개의 문 사이에서 황천지에 생명이 흡수된 수많은 요병들의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뿐만 아니라 반경 10리 안의 누각들도 무너져 버렸고 가루가 된 육신과 건물들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이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영변기 수준에 상당하는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그때, 살육 선결로 이루어진 회색 기운들이 사방에서 가루가 되어 흩어진 육신들에서 빠져나와 한제에게로 돌아왔다. 한제는 사마염을 처리할 때 사용한 것까지 총 다섯 갈래의 회색 기운을 사용한 상태였는데 이 다섯 갈래의 회색 기운은 마치 다섯 마리 용처럼 그의 왼손 사이를 맴돌았다.
“훌륭한 신통력이군!”
부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흩어지고 나자 요장의 거대한 인영이 드러났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충돌의 기세를 흘려보낸 뒤 체내의 요력을 이용해 몸을 안정시켰다. 이어 눈을 번득이며 한 발 내딛어 단번에 30척 거리를 넘어오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내리쳤다. 그 가벼운 동작에 사방 10리의 평지는 바다라도 된 듯 구름과 바람을 일으켰다.
“이것으로 네게 나와 대화를 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
한제는 몸을 다시 뒤로 물렸다. 그는 허공에 떠다니는 요력들이 요장의 신통력에 실체를 갖추어 형태 없는 바다가 되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요장의 손짓에 바다는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한제를 향해 미친 듯이 몰아쳤다.
이 파도에는 신통력도 포함되어 있어 힘으로 따지자면 열 번의 주먹질이 만들어낸 위력보다 월등히 강했다.
실체화된 바다의 공격에 한제의 머릿속에는 번개가 번쩍 내리치듯 어떤 생각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당시 주작성의 수마해에는 소문이 있었다. 수만 년 전 어느 수준 높은 수련자가 바다를 안개로 만들면서 수마해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었다.
한제는 그 소문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한데 지금 무형의 요기를 실체화해 바다로 만들어낸 요장을 본 한제는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기로 이루어진 요해(妖海) 속에서 파도는 계속해서 몰아쳤고 눈 깜짝할 사이에 파도는 서른 개로 불어났다. 그리고 그 충격에 한제는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한제는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강구했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줄기줄기 금제들로 파도에 맞섰다.
하지만 이 금제는 요해의 파도에 닿는 순간, 곧장 무너져 내렸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는…’
갈수록 흉맹해지는 파도에 정신없이 밀려나던 한제의 표정이 돌연 변했다. 그러더니 그는 재빨리 저물대에서 붉은 옥패를 꺼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두 번째 석상으로부터 금색 문양을 흡수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그 문양은 급작스레 나타났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었다.
한제는 금빛 문양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 애쓰며 붉은 옥패를 깨뜨렸다. 순간 붉은 빛이 하늘을 뒤덮을 듯 가득 피어오르며 한제의 전신을 뒤덮었고 동시에 서른 개의 파도와 부딪혔다.
콰르릉!
성난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피처럼 붉은 빛은 잠시 버티다가 결국 무너져 내렸고 성난 파도는 다시 용솟음쳤다.
그 무렵,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금색 문양이 점차 또렷해졌다.
그는 눈을 번득였다. 한제의 몸은 이미 선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의식중에 떠오른 것이라 해도 이런 급박한 상황에 이토록 문양이 또렸하게 떠오르는 데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한제는 생각했다.
그때, 금색 문양이 한제의 머릿속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격렬하게 번득였다.
이제 체내의 선력도 머릿속에서 번득이는 금색 문양에 방해를 받고 있을 정도였다.
한제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심신을 열고 오른손을 뻗어 한 줄기 금제와 회색 기운을 발산했다. 그리고 그것을 응집시킨 후 오른손 검지로 빠르게 획을 그렸다.
회색 기운이 하나의 획이 되어 하나의 문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제는 문양을 그려낸 순간 몸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양이 그려지자 요장의 눈빛이 변했다. 문양은 아무런 위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 위기의 순간에 발휘한 신통력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또 하나의 문양을 그렸다. 한 갈래의 회색 기운이 앞서 그려진 문양에 얹히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만들어졌다. 문양에서는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위엄이 뿜어져 나왔고 요장의 표정은 더욱 굳어갔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곧장 세 번째 획을 그렸다. 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 떠오른 금빛 문양이 검지를 따라 세 개의 획으로 그려진 문양에 스며들었다.
“무… 무슨…?”
문양에서는 상상치도 못했던 강렬한 힘이 뿜어져 나왔고 요장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요장은 30개의 파도를 60개로 늘린 뒤 앞으로 내려쳤다. 파도와 문양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콰르릉!
땅을 뒤엎는 듯한 굉음과 함께 먼저 파도의 절반이 무너졌고 이어 나머지도 흐트러진 후에야 금빛 문양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사라졌다.
바로 그때, 금빛이 사라진 허공에서 세 개의 회색 기운이 나타나 곧장 요장에게로 향했다.
이를 본 요장은 싸늘한 표정으로 외쳤다.
“열려라, 갑(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