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55
허나 영변기 후기 절정에 이른 한제의 신식으로도 고요성 감옥에서는 후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후포가 수련한 연혼술로 다스린 혼백은 한제에게 통제권이 있었으나, 그 혼백들을 통해서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살아있다면 분명 어딘가 신비한 곳에 있을 것이다.’
한제는 우선 후포에 대한 일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본 상태였으니 방법이 없었다.
십삼을 보고 있노라니 후포와 그를 데리고 고요성으로 향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는 일종의 시험이기도 해서, 두 사람이 통과한다면 한제는 그들에게 새로운 신통술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후포에게는 추백술을 알려주려 했다. 이 추백술은 연혼술보다 훨씬 익히기 어려운 것으로 한제가 여러 군데 손을 봐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멋대로 밖에 알릴 수 있는 술법은 아니었다.
십삼에게는 고신결을 전수해줄까 싶기도 했으나, 그 생각은 곧장 접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신결만큼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는 안 될 술법이었다.
어쨌든 십삼은 지난 1년 동안 한제의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했다. 그는 한제에게 최소한 수십 년은 충성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한제가 주작성의 거마족 선조를 죽이고 손에 넣은 저물대에는 고대 신의 피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을 비롯해 몇 개의 옥패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거령구수(巨靈九修)라는 공법이 기록된 것이었다.
한제는 그 옥패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아홉 단계로 나뉜 신체 단련 방법이 담겨 있었다. 한제는 이 아홉 단계의 주문을 모두 암기한 후 그중 세 개를 지우고 십삼에게 건넸다.
“선조 어르신, 십삼은 평생 어르신의 명에만 따를 것입니다.”
옥패를 받아 든 십삼은 감격해 머리를 몇 번이나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연혼 부족을 잘 보호하도록. 가 보거라.”
말을 마친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맑은 바람이 불어와 십삼을 산골짜기 밖으로 안내했다.
산골짜기 안에 홀로 남은 한제는 하늘을 뒤덮은 검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 안개는 존혼번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혼백을 길러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안심하고 존혼번을 이곳에 둘 수 있었지만 세 달 뒤 가게 될 천요군의 도시는 너무 멀어 여기에 두고 갈 수는 없을 터.”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검은 안개를 바라보다가 이내 두 눈을 감고 좌선한 채 호흡했다.
★ ★ ★
산골짜기의 서쪽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모를 곳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요령의 땅에서도 험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주 오래 전 이곳은 전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반경 1백만 리 안팎에는 유해가 즐비했고 땅은 어두운 붉은색이라 언뜻 보기만 해도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 옛 전장은 한 층의 형태 없는 금제로 뒤덮여 있었다. 이 금제 때문에 전장의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 옛 전장 안, 한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사방에는 1백 개가 넘는 검은 깃발이 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이 작은 깃발들은 맹렬히 펄럭였고 수많은 혼백이 그 깃발들로부터 빠져나와 청년 주위를 맴돌았다.
한 줄기 검은 안개가 청년의 몸을 감쌌다. 그 안개가 나타나자 옛 전장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수많은 영웅의 혼백들이 차차 깨어났다.
하나의 혼백이 깨어날 때마다 땅에서는 포악한 기운이 튀어나와 검은 안개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몇 바퀴 배회하다가 작은 깃발 중 하나로 들어갔다.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하나 서 있었다. 그는 냉랭한 얼굴로 청년을 한참이나 가만히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좋아, 그만해라!”
노인의 목소리에 청년은 얼른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각각의 혼번은 검은 빛을 번득이며 청년의 손에 떨어졌고 그는 그제야 두 눈을 번쩍 떴다.
후포, 노인 그리고 갑옷
청년은 노인을 보자마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제자 후포, 은인님을 뵙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이 전장의 모든 혼백을 제련한다면 너는 이 요령의 땅 어디든 마음껏 휘젓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후포는 흥분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은인님 덕분입니다. 제 목숨을 살려주셨고 신통술도 알려주셨으며 또 이곳으로 저를 데려와 혼백을 제련하게 해주셨으니까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노인의 얼굴은 시종일관 냉랭했다.
“네가 익힌 공법이 이상하지 않았다면 또한 내 평생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면 너를 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가 전에 모셨던 주인은 고요성에 나타나 요장과 싸우고 십삼을 구했더구나. 내가 갔을 때에는 한 발 늦은 상태였지!”
후포는 복잡한 심경이 어린 눈으로 말했다.
“이곳의 모든 혼백을 제련한다면 가장 먼저 그 이한제를 찾아가 죽일 겁니다.”
노인은 후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게 혼백을 다루는 신통술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어찌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느냐?”
후포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냉소했다.
“그는 제게 신통술을 전수해주었지만 마음이 음흉하여 본심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자가 아니었다면 제가 어찌 사마염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갇혔겠습니까? 감옥에 있는 동안 그가 저를 구출해줄 거라 믿었지만 저를 구해주신 건 그가 아니라 은인님이었지요. 자신 때문에 내가 고통받는 동안 그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후포는 고문을 당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옥살이와 모진 고문에 그에게 품었던 기대는 원한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다행히도 은인님께서 저를 구해주셨고 그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저는 절대로 다시는 그자의 종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노인의 냉랭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피었다.
“좋아, 그런 결단을 내리다니. 과연 내가 사람을 잘 본 모양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 노인은 한 줄기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후포는 주먹을 바르쥔 채 먼 곳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십삼, 이 단순한 놈. 이한제에게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가다니… 그자는 너와 나를 버렸단 말이다! 이한제, 내가 수천만 개의 혼백을 제련해내면 네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느냐? 게다가 은인님은 내게 멸세압원(滅世壓元)의 공법까지 알려주셨다. 네 번째 단계까지 익힌다면 엄청난 요력을 갖게 되지. 이한제, 사마염, 기다려라!”
후포의 눈에서 등등한 살기가 번득였다.
★ ★ ★
옛 전장의 깊은 곳에는 새카맣고 높은 탑 하나가 있다. 높이는 수백 척에 달했고 짙은 검은색 빛 고리가 사방으로 발산되는 탑이었다. 빛 고리는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해, 멀리서 보면 요사스러운 위압감을 뿜어냈다.
검은 옷의 노인은 그 탑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어 몸을 휙 날려 곧장 탑 안으로 들어가 꼭대기 층에 이르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앞에는 한 벌의 갑옷이 놓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누군가가 갑옷을 입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처럼 전체가 갖춰진 상태였다. 무척 오래된 듯한 갑옷으로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내력이 결코 범상치 않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갑옷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었고 수많은 구름 형태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한데 그 구름마저도 검은색이라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항할 수 없는 위압감도 느껴졌다.
기이한 기운이 갑옷으로부터 발산되어 탑을 가득 채웠다. 투구 안에서는 마수의 눈빛과도 같은 두 갈래 빛이 발산되어 노인에게 떨어졌다. 그 어스름한 빛이 번득인 순간, 탑 밖의 하늘과 땅은 그에 호응하듯 진동했다.
노인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공손하게 말했다.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천요군의 요제 천갈은 1천 년 전 마지막 단계를 끝까지 돌파했다고 합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어스름한 빛이 다시 번득였다. 노인은 간담이 서늘해졌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더니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어스름한 빛을 빤히 바라보았는데 중간에 몇 번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어스름한 빛은 차차 흩어져 사라졌고 갑옷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 위에서 발산되던 기이한 기운도 사라지고 없었다.
노인은 온몸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후 탑의 1층으로 내려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제야 조금 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대량의 혼백을 흡수한다면 후포의 연혼술과 나의 공법, 그리고 단약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그놈의 수준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때가 되면 그 녀석에게 주인님이 가르쳐준 것을 전해 모든 수명과 잠재력을 한 시진 안에 폭발시켜 요위(妖衛)로 만들겠다.”
노인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다.
“그나저나 그 연혼술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지. 다만 뭔가 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지만 주인님께서 깨어나 계실 수 있는 시간이 짧으니 그런 작은 일로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지. 어쨌든 연혼술을 다루는 덕분에 후포 그 녀석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됐군. 만약 성공한다면 그 연혼 부족이 어떤 곳인지 한 번 보러가야겠어.”
★ ★ ★
연혼 부족의 산골짜기.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제로 이루어진 구체를 꺼냈다. 결인을 그리자 그 구체는 곧장 불어나 마치 꽃이 피어나듯 벌어졌다.
그 안에는 창백한 얼굴의 요석설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의 미간에서는 생의 낙인이 수시로 번득거렸는데 한 번 번득일 때마다 한 줄기 생기가 체내로 주입되어 그녀가 죽지 못하게 만들었다.
요석설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악독하게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에 대한 그녀의 원한은 더없이 깊은 상태였다.
허나 한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요 도우, 지난번에 했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요석설은 이를 악물었다. 바깥세상에서는 1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금제 안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난 그렇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줄 수 있는 기회는 세 번뿐이고 도우는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날렸어.”
한제는 요석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두렵지 않느냐?”
요설석이 악에 받쳐 내뱉자 한제는 빙긋 웃었다.
“물론 두렵지. 혈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허나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도우가 내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나도 도우의 뜻에 따를 수 없는 거야. 내가 도우를 풀어주면 여기서 나가는 순간 난 혈조의 손에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겠지. 안 그런가?”
“날 풀어주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다. 약속하겠어.”
요석설이 얼른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