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63
이때 이 뱀 모양의 검에서 웅웅 소리가 울리더니, 뒤이어 검이 지면에서 뽑혀 나와 한 줄기 은색 빛이 되어 검각의 천장을 뚫고 올랐다. 온 천요성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검기를 품은 그것은 순간 솟구쳐 올라 상공에서 급속도로 한 바퀴 돌더니 곧장 홍성을 향해 내달렸다.
순간, 천요성 안의 모든 요수와 요장들은 이 검기를 느끼고 뛰쳐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수(地帥)의 저택 안에서도 하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와 뒷짐을 진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가 제검(帝劍)을 진의 눈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만큼 분노하게 했을꼬?”
요장 석소 역시 자신의 처소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곁에 선 진도는 밤하늘을 휙 스쳐가는 은색 빛을 바라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제검이 스스로 날아가다니, 기이한 일이로군.”
석소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기이한 눈빛을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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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성(宇宙城) 안 어느 별채에서는 검은 머리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스쳐가는 은색 빛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제검이⋯⋯ 극도로 분노했구나! 너희 두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이느냐?”
도포를 입고 등에 커다란 검을 멘 채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은 기이한 표정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린 은색 빛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의 검 못지않은 듯 보입니다.”
둘 중 한 사람이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그래?”
검은 머리의 사내가 몸을 돌렸다. 그의 준수한 얼굴에는 절대 꺾이지 않을 듯한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요장 중 제일로 손꼽히는 자로 화요군 변방에 주재하는 묵비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의 용모는 홍뢰 깊은 곳에 있던 검은 머리의 청년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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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려해는 저택에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밤하늘을 스쳐간 은색 빛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분명 홍뢰로 향하고 있었기에 운려해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제… 설마 제검의 분노를 산 것은 아니겠지?”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아닐 거야. 한제의 수준으로 어떻게 제검을 건드렸겠어?”
말을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의 불길한 예감은 자꾸 짙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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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귀비루(貴妃樓) 안, 황포(黃袍)를 입은 사내가 작게 웃었다.
“제검이 저리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는군. 재미있어! 크하하!”
“폐하, 무슨 일로 그리 웃으십니까?”
그의 뒤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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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질주했다. 홍뢰 속에서 내달리는 동안 체내의 혈기는 점점 안정되어 갔다. 방금 그 검기는 생의 낙인들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체내의 혈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계단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꼽추 사내가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은데⋯⋯.”
한제가 그의 앞에 나타나자 꼽추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안 돼. 나를 따라와라!”
말을 마친 그는 옆으로 몸을 날려 처음 보는 길을 따라 빠르게 나아갔다.
한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홍뢰 바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검기가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달려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검기는 다름 아닌 그 은색 용이었다.
제검(帝劍)의 누명
한제는 온몸의 기운이 드러나지 않도록 숨긴 채 꼽추 사내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며 홍뢰 안을 일고여덟 바퀴 정도 돌다가 이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검이 홍뢰에 이르렀다. 검은 곧장 홍뢰의 문을 부순 뒤 땅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을 마구 헤집으며 방금 그에게 치욕을 안긴 그 먹잇감을 찾았다.
이때, 홍성 안의 어느 민가 뒤쪽 벽이 조용히 벌어졌다.
한제는 그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지만 꼽추 사내는 그 안에 서서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말했다.
“나와의 약속을 잊어서는 안 돼!”
말을 마친 순간 벽은 다시 맞물렸고 꼽추 사내는 얼른 그곳을 떠났다.
“야단났군.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이야⋯⋯.”
한제는 온몸의 기운을 숨기고 밖으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한 뒤 고개를 숙였다. 선력을 이용해 비행을 할 수도 없었기에 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떨어진 홍뢰 안에서 무언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들 사이에 간간이 분노로 가득한 검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운려해의 저택까지는 멀지 않았기에 1각 정도면 갈 수 있었다.
황급히 저택 안으로 들어간 한제는 정원 안에 서서 조마조마해 하고 있는 운려해를 볼 수 있었다.
운려해는 한제가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단박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쓰게 웃으며 한제를 데리고 후원의 석가산으로 향했다.
운려해가 석가산을 두드리자 지면에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
“내가 폐관수련을 하는 곳이라네. 일단 여기에 숨게.”
신식으로 안쪽을 훑어본 한제는 두 말 않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운려해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곧장 석가산을 닫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했다.
그날 밤, 운려해는 잠들 수 없었다. 천요성의 거주민들도 그랬다.
하룻밤 내내 천요성 전역은 은빛으로 번득였다. 홍뢰 안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긴 먹이를 찾지 못한 제검은 더욱 분노하여 홍뢰를 부순 뒤 튀어나왔다. 그리고 천요성 상공에서 뱅뱅 돌며 미친 듯이 한제를 찾았다.
운려해로서는 더없이 곤욕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는 제검을 속이기 위해 끊임없이 요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요력으로 한제의 기운을 덮어 숨겼다. 이때 한제는 온몸의 기운을 전부 회수한 채 석주 안으로 들어가 모완의 원영 앞에 앉아 있었다.
천요성 상공을 지나던 제검은 강력한 요력에 다가왔지만 한제가 아님을 알고는 이내 지나쳐갔다.
하룻밤 내내 천요성 전역을 살폈지만 한제의 기운은 조금도 찾지 못하자 제검의 노기는 더욱 짙어졌다. 이것은 또 한 번의 치욕이었다.
이른 아침, 불쾌한 기색을 잔뜩 풍기며 제검은 다시 홍뢰로 들어갔다. 그리고 엄청난 검광을 쏘아 보냈다. 홍뢰에는 약 1만 척에 달하는 길이의 거대한 고랑이 생겨났다.
그렇게 화풀이를 한 제검은 분노가 조금은 풀린 듯 검각으로 돌아가 진 중앙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홍뢰는 천요성의 4대 감옥 중 하나로 제검의 분노가 미쳐 곳곳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빠르게 복구되었다. 다만 제검은 여전히 홍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한 달 동안, 홍뢰가 원래 모습을 되찾을 때마다 다시 찾아가 분풀이를 하듯 엉망으로 망가뜨려 놓곤 했다.
쾅!
멀리 떨어진 홍뢰에서 다시 한 번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뭉게뭉게 먼지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검은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은빛을 그리며 하늘 끄트머리로 빠르게 날아가 사라졌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제검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아이 같은 검이로군요. 저를 찾지 못해 홍뢰에 분풀이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죠? 열 번은 넘은 것 같은데…”
운려해는 한제의 맞은편에 앉아 쓰게 웃었다. 한편으로는 한제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만약 이렇게 직접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요력만으로는 그를 감지해내지 못했을 터였다.
지난 며칠 동안 몇 번이나 나타난 제검이 끝내 한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홍뢰에서 나온 이후 한제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특히 한제의 미간에서 번득이는 문양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한제가 홍뢰 안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제검의 분노를 샀음은 분명해 보였다.
“고요성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자네의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운려해는 조심스레 물었다. 요장끼리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요장끼리의 전투에는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요장이 패할 경우 그가 추천한 자가 대신하여 전투에 나설 수 있는데 대체자는 반드시 토착민이 아니라 외부자여야 한다. 이는 운려해가 한제를 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손자국을 사용하지 않고도 요장에게 이길 수 있을 정도지요!”
한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에 운려해는 자존심이 다소 상한 듯했으나,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그 말을 들으니 그간 헛고생을 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동생, 보름 후 요령의 밤이 바로 그날이라네. 요제님께서 친히 참관하실 거야. 자네가 두각을 드러낸다면 요장 자리에 추천하도록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