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65
콰드득!
그 갑옷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수많은 살육의 기운에 공격당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밀려난 갑옷이 몸으로부터 3촌 거리에 이르렀을 때, 현부수는 이를 갈았다. 그는 그토록 아끼는 꽃들을 짓밟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2천 갈래에 달하는 살육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요력으로 이루어진 갑옷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큭!”
수많은 살육의 기운은 순간 현부수의 체내로 뚫고 들어가 그의 몸속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더니 한제의 손짓에 따라 현부수의 모공을 통해 하나하나 튀어나와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영변기 후기 절정의 수준에 살육의 기운까지 더하니 문정기 초기 수준의 상대는 그리 어렵지 않군.’
한제는 흡족해하며 생각했다.
반면 현부수는 창백한 얼굴로 허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으로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훌륭하구나, 자격이 있는 녀석이었어! 가봐라!”
현부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후배를 대하는 선배처럼 여유롭게 웃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억지스러워 보였다.
반면 운려해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써 억누르며 얼른 한제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우웩!”
두 사람이 멀리 떠나는 것을 본 현부수는 결국 선혈을 한 움큼 뱉어냈다. 그러더니 호위병을 불러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세 달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폐관수련을 해야겠어!”
그 말만을 남긴 현부수는 곧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현부수부를 떠난 운려해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몇 번이고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택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형, 요장의 전투에서 이 운려해에게 도움이 되어주신다면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운려해의 말투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그에게 있어 한제는 윗사람과 마찬가지였다. 한 번의 신통력으로 부수를 몇 번이나 밀려나게 한 사람 아닌가!
이런 한제의 도움을 받는다면 다른 요장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오는 내내 한제가 보인 신통력의 위력을 떠올린 그는 앞으로 자신이 상대해야 할 요장들을 하나씩 비교해 보았지만 누구도 한제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 형, 이미 약속한 일이니만큼 반드시 도울 겁니다.”
운려해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껄껄댔다.
“하하하! 이 형, 제게 5백 년 묵은 술을 묻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 한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천요성의 중앙, 제도의 검각 안. 황포를 입은 사람이 검각의 진 중앙에 놓인 제검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놀았잖아. 더는 홍뢰에 가지 마라. 며칠 쉬도록 해.”
은색 검은 짜증난다는 듯 웅웅 소리를 냈다.
“더 못되게 군다면 용담으로 보내버릴 거야.”
황포를 입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제검은 우는 소리를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잔뜩 풀이 죽은 채 기력 없이 몇 번 작게 울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굴욕을 준 그 먹이에 대한 분노는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제검이 더는 찾아오지 않은 덕에 홍뢰 밑바닥의 붉은 세계는 차차 회복되었고 수많은 죄수들이 그곳으로 보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붉은 세상 안에서의 살육은 또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끝없는 피 웅덩이 속, 검은 머리의 사내는 묵묵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살념의 줄기들이 피 웅덩이로부터 그의 체내로 끊임없이 흘러들었고 그 살육의 기운은 갈수록 짙어졌다.
그는 때때로 고개를 들었고 피처럼 붉어진 두 눈에는 한 줄기 맑은 빛이 스쳐갔다.
“반드시 그 녀석처럼 이곳에서 나가고 말리라!”
살육이 시작되자 피 웅덩이 속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 떠올라 미친 듯이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의 사내는 마치 사신처럼 짙은 살기를 번득이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끝없는 살육의 하루가 끝나자 이 붉은 세상의 하늘에는 검은 머리의 사내 혼자만 남게 되었고 지면의 피 웅덩이에는 막 되살아난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늘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내의 몸을 두른 피 안개의 두께는 족히 수천 척에 달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눈으로 붉은 빛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눈에서는 보기 드문 맑은 빛이 돌았다. 이내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출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반드시 빠져나간다!”
허나 그가 출구를 불과 수십 척 앞뒀을 때, 하늘에서 돌연 은빛이 번득이더니 제검의 화신인 은색 용이 나타나 거대한 발로 순간 그를 짓눌렀다. 피 안개로 둘러싸인 사내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작게 외쳤다.
“폭발!”
그 순간, 대지가 진동했다.
펑!
폭발음과 함께 사내의 몸을 두르고 있던 수천 척 두께의 피 안개가 순간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은색 용의 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 대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오오!”
은색 용은 분노로 포효하며 뻗었던 발을 회수했다. 발 곳곳에는 상처가 있었는데 이는 일전에 도망친 그 먹잇감 때문에 생긴 치욕의 상처로 용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검은 머리의 사내는 지면의 피 웅덩이에서 다시 살아나서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캬오오!”
은색 용이 흉악한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다가 분노 가득한 포효를 내지르자 한 줄기 빛이 입에서 뿜어져 나와 지면의 피 웅덩이로 향했다.
그 빛에 적중당한 피 웅덩이는 박살이 났고 그 안에 있던 검은 머리의 사내는 또다시 죽었다. 사내는 곧 다시 살아났지만 은색 용은 그가 살아날 때마다 다시 그를 죽였다.
몇 번이고 사내를 죽인 후에야 용은 분이 조금 풀렸는지 그곳을 떠났다.
용은 요제의 경고 때문에 더는 밖으로 나가 그 못된 도망친 먹이감을 찾지도 못했고 홍뢰를 부술 수도 없어 화가 쌓였던 터라 실컷 화풀이를 한 것이다.
★ ★ ★
요장의 전투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천요성 전역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요장들을 맞이했고 요장들은 각자 준비를 해나갔다.
이들 중에는 정정당당한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연줄을 찾거나 암습을 계획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천요성의 왕인 요제는 제한도 격려도 하지 않았다.
요령의 땅에는 분명 질서가 존재했지만 그 질서 안에서는 얼마든지 난잡하고 지저분하게 굴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요장 전투에서는 인맥이나 연줄이 매우 중요했다.
요장들에게는 진급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요장 지위에 발이 묶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요장들은 이 전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그만큼 신경도 많이 썼다.
부수가 되면 나중에 영수가 될 자격을 갖게 되니, 그 자격을 위해 요장들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아무런 제한도 없는 난잡한 요장 전투의 유일한 규칙은 요장들끼리 서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상대를 죽일 경우 자격을 잃게 된다.
허나 대체자를 죽이는 것은 허용이 되기에 암습 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대체자들 이었다. 대체자를 죽이는 것은 요장의 한쪽 팔을 자르는 것과 같았기에 그 요장은 사실상 승리의 기회를 날리는 셈이었다. 즉, 요장의 대체자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정식적인 필승의 수였다.
만약 정식적인 방법을 벗어나 요장을 암살할 경우 요제의 인내심을 벗어나는 일로 암살자는 천요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전투일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높아져만 갔다.
운려해는 외출도 거의 삼간 채 온종일 저택 방에서 폐관수련을 했다. 조금이라도 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암살당할 가능성을 피하려는 것이다. 진을 설치하고 수준이 높은 부하들을 배치해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그의 생활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강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큰 싸움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긴장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도 되는 듯, 그는 그저 그 거문고 소리만 들으면 언제라도 평정심을 느꼈고 매번 심신이 그 가락에 녹아들었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그의 심신은 매일 그 가락에 세례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운려해가 암살될 가능성을 한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운려해는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우 약삭빨랐고 심계가 깊으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강인한 자였다.
그런 재주가 없었다면 여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운려해는 요장들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살육의 도
한제는 강변에 앉은 채 두 눈을 감고 놀잇배를 따라 흐르는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연주를 들으며 술주전자를 들어 올려 입가에 댄 후에야 어느새 술이 바닥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매번 거문고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심신이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때마다 금방이라도 다음 단계를 돌파할 것 같은 징조를 느끼기도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천도의 깨달음은 여전히 연기처럼 묘연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제는 습관처럼 체내의 선력을 감춰두었다. 그 제검이 언제든 자신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한창 거문고 선율을 즐기던 그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