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66
“너, 운려해의 대체자냐?”
경멸의 빛이 담긴 목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비집고 한제의 귀에 닿았다.
1천 척 떨어진 곳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얇은 검 한 자루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몸을 맴돌고 있었다.
“덤벼라. 죽여주마.”
한제는 술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른손 엄지만 치켜들었다. 그러자 적멸지의 검은 빛이 번득였다.
쉬익!
번득거리던 검은 빛이 쏘아지자 지면에 한 줄기 흔적이 남았다. 그 흔적 양옆의 푸른 풀들은 순간 말라버리더니 적멸지의 검은 빛에 녹아들었다.
“헛!”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적멸지의 빛이 근처에 이른 순간 안색이 변해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의 곁에서 맴돌던 비검이 검은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비검이 검은 빛에 닿은 순간, 비검은 끝에서부터 무너져 내려 순식간에 칼날과 칼자루까지도 완전히 붕괴하더니 무수한 파편으로 갈려렸다.
“이… 이게 무슨…?”
검은 옷의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검은 빛을 따돌리기에는 너무나 느렸다. 검은 빛은 순식간에 그의 가슴팍에 찍혔다.
“크악!”
사내는 비명과 함께 저 멀리 튕겨나갔고 곧이어 피 안개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 안개는 허공에 맺혀 흩어지지 않았다.
“대체… 이…”
사내의 눈에 후회가 들어찼다가 이내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회색 기운이 그의 얼굴 일곱 개 구멍에서 흘러나와 한제의 오른손 안에서 사라졌다.
그자는 외부자가 아니라 요령의 땅 원주민이었다고 수준은 화신기 후기 정도였다. 어떤 요장인가가 탐색을 위해 보낸 듯했다.
한제는 다시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 ★
한제로부터 1만 척 떨어진 곳 강가의 술집 2층 창가에 앉은 두 사내는 저 멀리 한제를 바라보았다. 둘 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한 명은 나이가 좀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젊었다.
“굉장히 강하군!”
중년 사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변기는 되어 보이는군요!”
젊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선조께서 잡아오라 명하신 자이니 절대 놓칠 수 없지! 사람을 보내야겠군. 선조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중년 사내가 말을 이었다.
젊은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러자 술집 1층에 앉아 있던 검은 옷의 사내들 중 한 중년 남자가 일어났다. 그는 한 쌍의 검 같은 눈썹 아래 별처럼 빛나는 눈을 번득이며 술집 밖으로 나갔고 한 줄기 빛을 그리면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무렵, 한제가 앉아있는 강가에 놀잇배가 둥실 떠가고 있었다. 이어지는 슬픈 거문고 가락이 끊임없이 한제의 마음속에 녹아들었다.
그때, 인근에 행인 하나 없건만 먼 곳에서 짙은 살기가 훅 끼쳐왔다.
강 위의 놀잇배는 뭔가 느낀 듯 속도를 높였다.
빛은 1만 척 거리를 훌쩍 날아왔고 한제 사방의 풀들은 강풍에 휩쓸리듯 휘청거렸다. 강렬한 바람 소리가 거문고 소리에 섞여 들자 또 다른 정취가 느껴졌다.
한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달려드는 빛을 향해 엄지만 치켜 올렸다. 그러자 검은 빛이 전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번득였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날아든 검은 빛은 하늘에서 돌진하고 있던 빛과 순간 충돌했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멀리서 날아들던 빛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창백한 얼굴의 사내는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번 더 후퇴했다.
하지만 적멸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를 따라잡더니 가슴팍에 찍혔다.
“크으…”
사내는 낮게 신음하며 바닥에 떨어지더니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고 결국 요력마저 붕괴됐다. 부르르 떨던 그는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낸 뒤 그대로 쓰러졌다.
한 줄기 회색 기운이 사내의 체내에서 흘러나와 한제에게 날아들었다.
한제는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거문고 소리만 듣고 있었다.
1만 척 밖의 술집에서 이를 지켜보던 젊은 사내는 벌떡 일어나 한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허나 그렇게 한참 동안 눈을 번득이던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반면 맞은편의 중년 사내는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운을 숨기고 있어 진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젊은 사내가 말했다.
“영변기 초기 수준인 4호를 죽인 걸 보면 수준은 영변기 중기인 듯하군. 3호를 보내!”
중년 사내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러자 젊은 남자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제를 노려보았다.
“네가?”
중년 사내가 미간을 살짝 구기며 말했다.
“제가 2호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젊은 사내는 술집 아래로 내려갔다.
“2호의 수준은 거의 절정에 이른 영변기 후기 정도이니, 이번에는 걱정할 것 없겠지.”
중년 사내는 술잔을 들며 더는 먼 곳의 강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편, 젊은 사내가 술집 밖으로 나가자 미풍이 불어와 그의 옷소매를 흔들었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씩, 천천히 한제를 향해 나아갔다. 한 걸음 나아갈수록 그의 기세가 점차 높아졌다.
한제로부터 3백 척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요력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더구나 그의 요력에는 한 줄기 선력이 섞여 있었다.
선력과 요력이 섞인 기이한 기운이 청년의 몸 밖으로 짙게 퍼져나갔다.
허나 한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저 먼 곳으로 나아가는 놀잇배를 보며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저 오른손을 들어 심드렁하게 휘둘렀을 뿐이다. 그러자 적멸지가 또 한 번 발휘되었고 검은 빛이 번득이며 그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흐흐. 가소롭군.”
청년은 가볍게 웃더니 물러나기는커녕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전신의 선력과 요력이 그의 손에 응집되었고 결인을 따라 몸 앞에 주먹만 한 빛의 구(球)가 나타났다.
그때 적멸지의 검은 빛은 이미 성큼 다가와 있었다.
검은 빛과 빛의 공이 충돌했다. 검은 빛은 빛의 공에 흡수되듯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크흐흐. 싱겁군.”
청년은 오만하게 웃었다. 허나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하얀 빛을 발하던 구체에서 순간 한 줄기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빛의 공을 뒤덮어 이제 그 빛의 공은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해버렸다. 동시에 줄기줄기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헛!”
붕괴한 빛의 공에서 튀어나온 검은 빛은 곧장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년은 기겁하며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고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1백 개에 달하는 빛의 공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빛은 조금씩 약해져갔지만 빛의 공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그러다가 빛의 공이 여덟 개 남았을 때, 검은 빛은 완전히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시종일관 눈길 한 번 돌리지 않는 한제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게 제법 강한 신통력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4호와 5호가 그리 죽어버린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허나 이제 네놈의 술법은 파괴되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보자!”
그 무렵, 놀잇배가 점점 멀어져 가면서 거문고 소리도 희미해졌다.
한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리더니 청년을 바라보았다. 순간 한제의 눈에서 살육의 기운이 예리한 검처럼 튀어나왔다.
콰르릉!
청년이 머릿속에서 수많은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평온한 강의 상공에서 돌연 줄기줄기 벼락이 나타났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가 한제의 눈에서 튀어나가 청년의 선력과 요력을 폭발시켰다. 동시에 살육의 기운이 청년의 눈을 통해 들어가 그의 심신에 낙인을 찍었다.
“큭!”
청년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이⋯⋯ 이건⋯⋯?”
청년은 마치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 미간을 뚫고 들어와 정수리를 통해 나가는 듯 심신에 강력한 통증을 느꼈다.
쿵쾅, 쿵쾅, 쿵쾅. 청년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갈수록 빨라지는 것을 명확히 느꼈다. 심지어 심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처럼 온몸이 서늘해졌다.
그가 1만 척 밖에서부터 이끌고 온 강력한 기세는 상대의 눈빛 한 번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때, 술집 1층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검은 옷의 사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치 바로 그 앞에 있는 것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그들의 수준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어째서 상대의 눈빛만으로 1만 척 떨어진 자신들까지 이토록 강력한 위기감과 두려움 느끼게 되는 것인가? 저자는 사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술집 2층에 있던 중년 사내는 두 눈으로 예리한 빛을 번득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앞에 놓여 있던 탁자는 곧장 가루로 부서져 흩어졌다.
시종일관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던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그의 체내에서 선력과 요력이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꿈틀거렸다.
이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1만 척 밖에 있는 상대의 눈빛 한 번에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을 맞닥뜨린 듯한 느낌을 받은 그는 상대의 눈빛에 어린 실체화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살육의 도! 살육의 도다! 저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저렇게 실체화된 살기를 가졌단 말인가? 강하다, 정말 강한 상대야!”
그의 눈빛은 전에 없이 신중해졌다.
“두렵다! 저자의 수준은 나와 비슷하지만 나는 저자의 적수가 되지 못해! 빨리 달아나야 해!”
중년 사내는 곧장 순간이동을 하려 했다. 허나 그 순간, 그의 몸은 허무 속에서 억지로 끌려 나왔다.
“헉!”
중년 사내는 헛숨을 삼키며 더는 순간이동을 시도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는 체내의 선력과 요력을 폭발시켜 술집 2층을 붕괴시켰고 뭉게뭉게 먼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틈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