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
한제의 말을 들은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 시체 인형은 살아 있는 사람과 달리, 실력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황음의 품질을 가진 음한기를 흡수해야만 하네. 그래서 내가 저 녀석을 데리고 이곳에 온 거야.”
바로 그때, 크게 한 차례 흔들린 조각에 금이 갔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균열은 갈수록 많아졌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조각의 상황에 오태우는 더욱 조바심을 냈다.
“젊은이, 만약 시음종에서 수련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자네는 내 제자가 되는 셈이니, 난 자네에게 각종 비법들을 알려줄 수 있네. 그러면 시음종에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을 게야. 시간이 많지 않네, 잘 생각해보게.”
그가 말을 마친 순간, 조각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금은 곧 조각 전체로 퍼져갔고 심지어 어느 부분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이미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저 시체 인형이 쳐들어왔을 때 큰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체 인형은 자신을 보자마자 죽일 듯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그는 오태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태우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오각형 모양의 고리가 천천히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일곱 빛깔로 반짝이던 빛 고리는 약한 흡인력을 내뿜었다.
그때 조각이 쿵 소리와 함께 깨지더니 시체 인형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이번에는 어디로 도망치는지 똑똑히 볼 겁니다.”
오태우는 겁에 질린 얼굴로 진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 소리쳤다.
“젊은이, 빨리 가게! 이 늙은이의 목숨은 오로지 자네에게 달렸어.”
말을 한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사람 형상의 돌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몸을 날려 진으로 돌진했다. 진은 곧 사라질 듯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괴물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한제를 따라 그 진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조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던 시체 인형의 표정은 진을 발견하고 급격히 굳어버렸다.
한제는 진으로 뛰어든 뒤 마치 원형의 통로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뒤에서는 수십 갈래의 끝없는 빛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괴물은 놀란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오면서도 계속해서 좌우를 살폈다.
그러다가 한제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경계심이 어려 있지 않았다.
한참을 걷자 통로의 끄트머리에서 밝은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 온 통로를 채웠다. 이어서 일어난 거대한 흡인력에 한제와 괴물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시음종(尸陰宗) (3)
시음종은 초나라 국경 내의 마도(魔道) 종파로 실력은 마도 종파 중 첫 번째로 손꼽히는 천도문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비밀스러웠다.
말하자면 시음종은 조나라 내 제일의 비밀 종파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시음종 안에 속한 제자가 몇 명인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원영기 고수가 몇 명이나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소문에 의하면 시음종은 몇 년 전 소멸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시음종은 그들만의 수련 공법으로도 유명했다. 시음종 제자들은 평생 한 번, 하나의 시체를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일단 정복하는 데 성공하면 그 시체는 평생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이는 실로 기적과도 같은 공법이었다.
이 공법을 기적과도 같다고 하는 이유는 5백 년 전, 한 축기 후기에 이른 시음종 제자의 곁에 원영기에 이른 시체 인형이 따랐기 때문이다. 비록 이 제자는 후에 행방불명되었지만 그의 출현은 조나라 신선계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특히 수준이 낮은 수련생들이 거의 대부분 시음종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음종이 위치한 곳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조나라 서쪽 끝에는 거대한 평원이 있었는데 이곳은 항상 음한기로 뒤덮여 있어서 원영기 고수들도 좀처럼 접근하기 싫어했다. 그 이하의 수준을 가진 자들은 이곳의 음한기에 닿는 순간 몸이 상하고 말았다.
이렇게 강력한 결계가 자리한 곳이니만큼 중요한 보물 정도는 숨겨져 있을 법도 했으니, 마도의 고수들은 목숨을 걸고 결계를 깨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계를 깨고 들어간 평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신기한 구석도 전혀 없었다. 이들은 지하까지 수색 범위를 넓혀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단 하나의 수확도 얻지 못했다. 이 헛걸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철저한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다.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는 데다 안에 숨겨진 보물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곳은 점차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이 평원 중앙에는 안개로 뒤덮인 곳이 있고 그 속에는 아주 넓은 늪지대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늪지대 아래에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안은 사방으로 트여 있고 무수히 많은 통로가 뚫려 있으며, 그 통로는 또 다시 여러 갈래의 작은 동굴들로 나뉘어 있었다.
바로 이곳이 비밀스러운 시음종이 있는 곳이었다.
정중앙에 있는 가장 큰 동굴의 크기는 대산파의 대전 몇 개에 달할 정도였고 그 안에는 여덟 개의 보라색 거목이 광활한 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영력의 파문을 느낄 수 있었다.
여덟 개의 거목에는 소박한 부호와 도안들이 그려져 있어 굉장히 엄숙해보였다. 이 거목들은 여러 갈래의 빛줄기로 이어져 있었는데 위에서 보면 그 빛줄기들이 서로 교차되며 49개의 빛의 고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 거목 위에는 여덟 명의 청년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각 청년들의 뒤쪽에는 관이 하나씩 떠 있었다.
여덟 개의 거목 안쪽에 있는 다섯 개의 고리 중 하나에 빛이 들어오더니 푸른색 적삼을 입은 소년과 관 하나가 그 위에 나타났다. 거목 위의 청년 중 한 명이 눈을 번쩍 뜨고 냉담한 시선으로 그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푸른 적삼의 소년은 얼른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2성 수련국 노나라 시음종의 분파에서 온 임혁이라 합니다. 승급 시험을 위해 왔습니다.”
청년은 소년을 훑어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오른쪽 18번째 동굴. 가봐라.”
소년은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고 진에서 벗어났다. 그는 묵묵히 동굴의 순서를 센 뒤 몸을 훌쩍 날려 무수히 많은 동굴 중 하나로 들어갔다.
청년은 살짝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어진 몇 시진 동안 여러 사람이 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람이 나타났을 때에는 13개의 빛의 고리가 빛났다. 그러자 여덟 명의 청년 중 두 사람이 눈을 떴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또 한 번 진 안쪽의 빛의 고리가 반짝였다. 빛을 발하는 고리는 6개였다.
거목 위에 앉은 한 청년이 눈을 뜨고 진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진 안쪽에서 빛이 다시 반짝이더니 7개의 빛의 고리에 불이 더 들어왔다.
“음?”
다른 청년 한 명도 눈을 떴다. 두 청년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잠자코 진을 응시했다. 이어서 진이 다시 반짝이더니 빛을 발하던 빛의 고리는 13개에서 28개로 늘어났다.
“선배님이 오시는 모양이군.”
또 다른 두 명의 청년이 눈을 뜨더니 존경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막 끝났을 무렵, 진 밖의 영기가 갑자기 수축하더니 우르릉 소리를 내며 진 안쪽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빛을 발하는 빛의 고리는 28개에서 다시 미친 듯이 늘어났다. 남아 있던 빛의 고리 하나 하나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태 눈을 감고 있던 네 명의 청년이 모두 놀라며 눈을 떴다. 빛이 들어온 빛의 고리의 수가 40개를 돌파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여덟 명의 청년들은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두 손으로 기이한 형상을 만든 뒤 높은 소리로 외쳤다.
“선배님을 뵈옵니다!”
★ ★ ★
‘선배’라는 두 글자를 내뱉은 순간, 진 안의 빛의 고리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금세 43개까지 밝아지고 난 뒤에야 빛의 고리는 더 이상 밝아지지 않았다.
거목 위에 있던 여덟 청년의 표정이 또 한 번 변했다. 그들의 태도는 더욱 겸손해졌으며 눈빛에 깃든 공손함도 더욱 깊어졌다. 두 무릎을 모두 꿇고 엎드린 그들은 고개를 든 채 진 안쪽을 바라보았다. 진 안에 있는 빛의 고리를 40개 밝혔다는 것은 시음종에서 지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는 뜻이자 원영기에 이른 시조(始祖)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존경심과 공손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곧이어 천천히 두 개의 인영이 진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약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은 냉철하면서도 침착한 모습이었는데 검은색 홑저고리를 입은 그는 굉장히 굳세고 힘이 있어 보였다.
그의 뒤로는 온몸이 이상한 부호들로 뒤덮인 파란 피부의 괴물이 서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그의 몸에 붙어있는 아홉 장의 부적이었다. 두 사람이 나타난 순간, 음한기가 스멀스멀 풍겨왔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덟 명의 청년 중 한 사람이 엇 하는 소리를 냈다. 나머지도 모두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는 바로 한제였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순간 초록색 검을 토해냈고 그 초록색 검은 번쩍이며 그의 몸을 맴돌았다. 한기를 내뿜고 있는 비검의 예리한 날은 사방에 자리한 거목을 향해 있었다.
신식으로 사방을 한 번 훑어본 한제의 마음이 편해졌다. 거목 위에 있는 여덟 명의 청년들은 모두 응기 15단계의 수준을 갖춘 이들이었다.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여덟 명을 한 순간에 처리해버릴 수도 있었다.
괴물도 주위를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얌전히 한제 뒤에 섰다. 거목에 그려진 부호들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목 위에 있던 여덟 명의 청년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한 청년이 포권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한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미리 구실을 생각해둔 상태였기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냉랭하게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한제라고 한다. 양유재 사숙께 긴히 전할 말씀이 있다.”
청년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다른 청년들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그 일은 저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신 총무 장로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 밖으로 나서자 괴물도 그 뒤를 따랐다.
청년은 몸을 훌쩍 날려 거목 위에서 내려왔다. 그의 뒤에 있던 관도 그를 따라 내려왔다.
“선배님, 이쪽입니다.”
그는 앞장서서 사방 가득한 동굴 중 하나로 한제를 안내했다. 한제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동하는 내내 몰래 한제를 곁눈질 하던 청년의 태도는 갈수록 공손해졌다. 신선계에서의 실력으로 보자면 한제는 축기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졌으니 청년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사실 한제보다도 그 뒤의 괴물이 더 신경 쓰였다.
한제는 청년의 뒤에 있는 관을 유심히 살폈다. 관에서는 스산한 한기가 풍겨 나오며 안개로 뒤덮인 듯 신식을 가로 막았다. 허나 이미 축기 중기에 이른 한제의 신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시체였다. 미라처럼 빼빼 마른 그 시체는 잠들어 있는 듯했다. 한데 한제가 쳐다본 순간, 시체는 그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눈빛은 혼탁했지만 살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청년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관을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시체가 곧장 다시 눈을 감았다. 청년은 한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시체는 저희 스승님께서 주신 겁니다. 국외의 전장에서 찾아낸 것으로 오감이 굉장히 예민할 뿐만 아니라 살기도 충만하죠. 저도 아주 오랜 힘과 시간을 들인 끝에야 이 녀석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시체는 축기 초기의 수준이군. 훌륭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청년의 시선이 이전과 또 달라졌다. 시체가 담겨 있는 이 관은 신식을 막는 효력이 있는데도 한제는 그것을 꿰뚫어본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상대의 수준이 일반적인 축기가 아니라, 이미 축기 후기에 가깝다는 뜻이다.
한층 공손해진 태도로 청년이 물었다.
“선배님, 한데 선배님의 뒤쪽에 있는 그, 선배님의 시체입니까?”
한제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괴물을 한참 바라보다가 감탄하듯 말했다.
“선배님, 이 시체는 생기가 넘치는데 어떻게 정복하신 겁니까? 이 정도의 생기는 양 시조님의 시체인 비천나찰(飛天羅刹) 정도는 되어야 가질 수 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