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1
오적은 사방을 향해 포권을 취한 뒤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지금 패배를 인정한다면 목숨은 살려주지. 운이 좋아 내게 이긴다 해도 내게는 대체자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그 말에 요장들 대부분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몇몇의 표정은 심각했다. 묵비도 웃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는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한제는 오적을 힐끗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넌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포기하도록 해.”
한제의 오만한 목소리에 오적은 흠칫하더니 이내 미친 듯이 웃으며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이 방자한 녀석.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더니…”
말을 마친 그는 앞으로 몸을 날려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한제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발을 한 번 크게 굴렀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대지가 진동했다. 거센 파동이 그의 발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선기가 예리한 검처럼 땅에서 튀어나왔다. 동시에 한제가 밟고 선 땅 아래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더니 땅의 균열들을 통해 흘러나와 하늘로 솟아올랐다.
50척 정도 떨어진 곳의 땅에서 튀어나온 오적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 천요문 광장 곳곳에는 금제가 깔려 있다. 오적이 시야에서 사라졌던 것은 토둔술을 이용한 것인데 그는 미리 경로를 봐두었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을 정도로 금제는 강력했다.
한데 한제는 그 금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지면을 붕괴시켜 토둔술도 그가 마수를 불러내려던 것도 막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적은 굴하지 않고 책략을 바꾸어 곡선을 그리며 진격했다.
“이제 시작이다!”
그에게는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허공에 떠오른 그에게 한제의 눈빛이 예리한 칼날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오적은 머리가 저릿해졌고 설명 불가능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속도를 높이면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제가 다시 한 번 발을 굴렀다.
쾅!
한제는 단번에 수십 척을 솟아올라 오적 앞에 이르더니 회색 낙인으로 뒤덮인 손으로 오적의 손을 잡아챘다.
“으…”
오적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상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낮게 신음하던 오적은 혀끝을 깨물어 한제에게 피의 화살을 쏘아보냈다. 화살은 짙은 요기를 발산하면서 용의 허상으로 변해 길게 포효하며 한제를 삼키려 들었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덤덤했다. 화살은 그에게 닿기 전에 층층의 형태 없는 생의 낙인에 충돌하더니 금세 소멸됐다.
한제는 오적을 붙든 손을 옆으로 휘두르면서 선력을 상대의 체내에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오적의 경맥은 순식간에 마디마디 망가졌다.
“멈춰라!”
금색 갑옷의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에는 음산한 한기가 배어 있었다.
허나 한제는 멈추기는커녕 한 줄기 선력을 더 불어넣어 이미 망가져버린 오적의 경맥을 한 번 더 훼손시킨 후에야 손을 풀었다.
오적은 힘없이 뒤로 나가떨어졌고 대량의 피 안개를 발산했다.
“끄으으…”
오적은 선력의 침투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그 결과 지옥에 떨어진 듯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현부수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갑자기 한제와 맞닥뜨렸던 당시가 떠올랐다. 자신이 오적처럼 피 안개를 내뿜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방자하구나!”
금색 갑옷의 사내가 근엄하게 외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짙은 금색 빛이 태양에서부터 그의 손으로 응집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한 자루 금색 창이 만들어졌다. 사내는 대기마저 얼어 붙일 듯 엄청난 힘이 담긴 그 창을 곧장 한제에게 내던졌다.
콰오오!
금색 창이 맹렬히 날아들었으나 한제는 보지 못한 것처럼 다시 오적에게 돌진해 다시 그 손을 움켜쥐고는 미친 듯이 흔들었다.
“크아악!”
오적은 온몸이 성난 파도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대한 힘이 그의 손을 타고 체내로 들어왔다.
그 순간, 오적의 모든 뼈는 살과 분리되어 마디마디 부서졌다. 경맥이 끊어지고 파괴되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한제가 손을 놓자 오적은 그대로 바닥에 쿵 떨어지며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허나 그에게는 아직 실낱같은 생기가 느껴졌다.
이어서 한제는 맹렬히 몸을 돌리고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 생의 낙인이 줄기줄기 응집되었다. 그 무렵 하늘을 가를 듯한 기세를 품은 창이 달려들었고 한제는 속박된 듯 숨이 막혀왔다.
창이 코앞에 이른 순간, 한제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돌연 창을 내리쳤다.
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창이 멈칫했고 한제는 곧장 다시 한 번 내리쳤다.
두 번의 공격을 마친 한제는 옆으로 몸을 피했고 금빛 창은 그의 곁을 스쳐다. 손을 거둔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금색 갑옷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규칙을 어기시려는 겁니까?”
한제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경계심은 무척 높아진 상태였다. 금색 창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편, 금색 갑옷의 사내는 한제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한제의 곁을 스쳐간 금색 창은 순간 움찔하더니 이내 햇빛으로 부서져 사라졌다.
적막이 흘렀다. 구경꾼들조차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당당한 요장이 이토록 처참히 당하는 모습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오적은 온몸의 경맥이 끊어지고 뼈가 산산조각 났으니 불구가 될 것이다.
요제가 진귀한 천요단(天妖丹)을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천요단은 셀 수 없이 많은 전공을 세운 요수조차 한 알을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것이었다.
너무도 일방적이고 순식간에 끝난 전투에 요령의 땅 원주민으로서의 자부심은 바닥에 떨어졌다. 역대 요장 전투에서도 요장이 이렇게 심각하게 부상을 입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외부자에 의해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순간, 모든 시선은 한제에게 집중되었다. 그를 바라보는 요장들의 눈빛도 좀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강한 자로군!”
요장들 사이에서 음산한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사내 하나가 한제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는 다름 아닌 살육의 도를 수련한 우삼이었다.
“흥미로워. 운려해가 저렇게 강력한 대체자를 데려왔을 줄이야. 내가 칠요술(七妖術)을 발휘한다면 저자가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군.”
어느 검은 머리의 사내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끔찍해!”
현부수는 의자 손잡이를 움켜쥔 채 눈을 홉떴다. 마음속에서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남쪽과 북쪽 관람대에 앉아 있는 여덟 명의 요수들도 한제를 주시했다. 그중 푸른 옷을 입은 우아한 사내의 눈빛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깔끔하고 단호한 수법이군. 훌륭해!”
한편, 석소 곁에 앉아 있던 진도는 믿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한제는 예전에 비해 무서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오적을 불구로 만든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도를 진정으로 놀라게 한 것은 금빛 창을 공격한 수법이었다. 그 금색 창이 무엇인지 진도는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천운자는 태양의 빛을 뽑아 유형화하고 그 힘을 액체로 만드는 신통력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적이 있다.
금색 갑옷을 입은 사내의 수준은 빛을 액체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금 그가 만들어낸 창은 분명 태양의 빛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진도는 자신이라면 한제처럼 연속으로 두 번이나 공격하여 그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수준이나 선력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과 책략의 문제였다.
‘만약 이한제가 지금의 실력으로 나와 천운칠자의 봉호를 놓고 싸운다면⋯⋯ 나는 이기더라도 백 년 동안의 폐관수련을 해야 회복할 수 있는 중상을 입을 거야. 심지어는 수준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진도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한제를 보는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한편 운려해는 기쁨의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심 한제를 대체자로 결정한 자신이 대견했다.
‘앞으로도 절대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될 자다. 이한제가 강할수록 내가 이길 가능성은 높아져! 한데 저 총관은 외부자라고 너무 편파적으로 구는군. 나중에 정수(요수)가 되면 분명 내게 굽실거릴 테지!’
운려해는 금색 갑옷의 사내를 힐끗 흘겨보았다.
그때, 누군가의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마치 천둥 같은 그 웃음소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리가 흘러나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총관은 오른손으로 한제를 가리키며 외쳤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요장을 죽이면 참형에 처한다. 허나 오적이 죽지는 않았으니 한 번은 봐주겠다. 오적의 대체자 앞으로!”
허나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고 잠시 후 요장들 틈에서 나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포기하겠습니다!”
총관은 음산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번 전투는 네 승리다. 물러나!”
한제는 말없이 운려해의 곁으로 돌아갔다. 한제가 다가오자 몇몇 요장은 무의식적으로 물러나 길을 터주었다.
운려해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이 형, 걱정 마십시오. 저 총관은 환관일 뿐입니다. 요제님께서 이 형에게 상을 하사한다면 저자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한제는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제도의 궁전 깊은 곳, 검각 안의 진에 꽂혀 있던 제검이 한제의 존재를 감지하고는 웅웅 우는 소리를 냈다.
허나 곧장 뛰쳐나가려던 제검은 멈칫했다. 며칠 동안은 얌전히 굴라던 요제의 말 때문이었다. 요장 전투가 있는 동안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그러지 않으면 용담에 보내겠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검은 불만스러운 듯 우는 소리를 몇 번 내며 날선 칼끝을 천요문이 있는 쪽으로 겨누었다.
허이국
한참 동안 갈등하던 제검은 결국 몸을 훌쩍 날리더니 스물 남짓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온몸이 수정처럼 반짝이는 소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두 발을 마구 구를 때마다 검광이 번쩍였다.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검각 곳곳이 무너졌다. 욕과 악담까지 한참이나 뱉어내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은 소녀는 눈알을 굴렸다.
“폐하께서는 제검에게 나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검령(劍靈)이잖아. 나가도 문제없겠지. 괜찮을 거야. 음, 공격은 하지 않고 그냥 그 망할 자식을 봐두기만 하면 되잖아. 그래, 그 정도는 괜찮을 거야.”
소녀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몸을 훌쩍 날려 검각에서 튀어나가더니 곧장 천요문 쪽으로 향했다.
이내 소녀는 허상이 되어 광장 전방의 궁전 지붕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