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2
한데 그녀가 궁전 지붕 위에 나타난 순간, 관람석에서 여덟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느낀 소녀는 혀를 쏙 빼물었다. 여덟 쌍의 눈동자는 여덟 요수의 것으로 그들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고 몇몇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편, 다른 요장들의 전투를 보고 있던 한제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허이국이 선검 안에서 마구 날뛰며 한제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님! 꺼내주세요! 이 허이국의 봄날이 왔단 말입니다! 빨리 꺼내주십시오!”
“왜 그러는 거야?”
한제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주인님, 얼마 전에 봤던 그 제검 기억 하십니까? 지금 보니까 그 검의 검령이 아주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소녀란 말입니다!”
한제는 몸을 흠칫 떨며 허이국의 말을 끊었다.
“여기에 있어?”
“저 궁전 위에 있습니다. 주인님은 볼 수 없겠지만 저는 볼 수 있거든요!”
허이국은 득의양양하게 말했지만 말을 마친 순간 그는 덜덜 떨었다. 한제가 얼마나 냉혈한인지 그제야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이건 수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저 소녀를 볼 수 있는 것은 검둥이… 그러니까 굽은 칼에게서 검령 기술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높은 단계의 검령들은 저물대 안에서도 외부에 있는 동료들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검령이 검에서 벗어났을 때만요. 주인님, 빨리요. 저 소녀는 곧 주인님을 볼 거라고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지 못하니까요. 검둥이 녀석에게는 검령의 기운을 숨기는 기술이 있어 저를 숨겨줄 수 있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허이국은 한제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 얼른 말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긴 채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살짝 열었고 허이국은 얼른 그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허이국의 등장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형태 없는 연기처럼 스르륵 빠져나온 허이국은 궁전의 위쪽으로 향했다.
“흐흐, 아름다운 소녀야. 이 할애비가⋯⋯ 아니, 이 오빠가 간다. 이 얼마나 오랜만의 일이냐. 당시 그 음탕한 미녀를 만났을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회포를 푼 적이 없지. 그 미녀는 주인에게 화를 입었지만 저 소녀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지!”
허이국은 음탕하게 웃으며 빠르게 궁전 지붕 위의 검령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한편, 지붕 위에 앉아 분노의 근원인 먹이를 찾던 소녀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저 멀리서 입을 헤 벌린 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허이국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놀란 소녀를 본 허이국은 더욱 기뻐하며 단번에 소녀를 덮쳐들었다.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허이국을 향해 형태 없는 검기를 날렸다.
허이국은 음흉하게 웃었다.
“같은 검령끼리 비싸게 굴기는!”
말을 마친 그는 형태를 흩어 검기를 피한 뒤 곧장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색마처럼 소녀를 덮쳐들었다.
소녀는 허이국을 찢어죽일 듯 노려보다가 더는 목표를 찾지도 못하고 달아났다. 허이국은 음탕하게 웃으며 그녀를 끈덕지게 쫓아갔고 두 검령은 곧 궁전 위에서 사라졌다.
“소녀야, 오빠랑 같이 가자. 이 오빠가 잘 먹고 잘 살게 해줄게.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야. 나한테는 동생도 하나 있는데 이름은 검둥이⋯⋯.”
열심히 떠들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한 줄기 검기였다.
“아이고 성질도 보통이 아니구나. 괜찮아, 이 오빠는 그런 앙탈을 좋아하거든. 우리 주인이 그러는데 거칠고 앙탈을 부리는 여인일수록 허리가 잘록하다고 하더구나!”
그 순간 또 하나의 검기가 휙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검기뿐만 아니라 분노한 소녀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네 주인도 어떤 자인지 알 만하구나. 꺼져라!”
“어허, 감히 우리 주인을 욕하다니. 검둥아, 들었지? 저 소녀가 우리 주인님을 모욕하는구나. 저 소녀를 좀 붙잡아봐라.”
이번에는 연속으로 두 번의 검기가 날아들었으나 허이국은 여전히 음탕하게 웃었다.
사실 허이국은 소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굽은 칼의 도움이 있어 어느 정도 비등하게 대립할 수 있었다. 또한 허이국은 지금 굉장히 흥분한 상태라 평소보다 그 기세가 훨씬 강했다.
“당시 우리 주인에게 잡혀 마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 그야말로 사방을 휩쓸었지. 좋은 날들이었어. 얼마나 오랫동안 가져보지 못한 즐거움이냐. 마침내 그 당시의 달콤함을 되찾게 되었으니, 소녀야, 도망치지 마라!”
한데 그 순간, 허이국의 음탕한 웃음소리는 뚝 끊겼고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검으로 돌아가 버리다니! 허나 이 허이국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한편, 검각 안에서는 뱀 모양의 제검이 잔뜩 분노한 채 주위를 가차 없이 파괴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그 끔찍한 사내를 요절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후안무치한 검령 같으니, 그 망할 놈의 먹이보다도 더 끔찍해!”
★ ★ ★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한제의 뒤를 이어 여섯 차례의 전투가 이어졌고 세 명의 승리자가 생겨났다. 그중 두 번의 전투는 요장들에게 대체자가 없었던 탓에 단판으로 승부가 결정났다.
한편, 허이국은 벌써 한제의 저물대 안에 돌아와 있었다. 검령 소녀는 허이국의 방해 때문인지 검으로 돌아간 뒤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요장 전투의 첫 번째 날이 그렇게 끝이 났다.
밤이 찾아오자 여러 요장들은 천요문을 통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이런 과정은 7일 후까지 반복될 예정이었지만 승리자는 한동안 다시 나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한제는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제는 요장 전투에서 서로를 죽이는 수련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매일같이 그저 강변에 나가 술을 마시며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운려해는 한제와 달리 매일 광장에 나가 전투를 관람했고 한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의 전투는 신통술로 베낀 뒤 밤에 돌아와 알려주었다. 그의 희망은 오직 한제의 어깨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한제는 거문고 소리에 푹 빠져 도를 닦는 데 전념했다. 벌써 몇날며칠을 들었지만 한제는 시종일관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거문고 선율을 즐겼다.
한편 허이국은 요 며칠 매일 한제에게 떠들어댔는데 온통 자신을 밖으로 꺼내 그 검령 소녀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말뿐이었다.
놀잇배가 오기 전, 한제는 강변에 비스듬히 누워 술주전자를 든 채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떠가는 구름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구름을 헛된 것이라 표현하지. 구름도 거문고 소리와 같구나. 절대 헛된 것이 아님에도 이렇게나 묘연하니⋯⋯.”
한제의 눈빛이 아득하게 변했다.
“문정기라… 어떻게 문정기 수준에 이르는 데 필요한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까? 원영으로 경지를 깨달아 화신기에 이르렀고 화신으로 경지를 실체화해 영변기에 이르렀는데 경지를 체내에 녹아들게 했는데도 문정기에 이르기에는 부족하다니… 나의 경지는 벌써 체내에 섞였고 도심도 이미 충만해졌는데… 그런데도 아직 한 발 모자라구나! 이 한 발짝은 대체 어떻게⋯⋯.”
한제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다시 혼잣말을 이어갔다.
“모든 사람이 깨닫는 경지는 각자 달라 각자 다른 도로 나아가는 법이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도를 알게 되면 오히려 굴레로 작용할 뿐이지 스스로 수행하여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구나!”
그때 한제의 마음속으로 돌연 허이국의 애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저를 좀 내보내주십시오. 소녀는 저를 그리워하고 있을 겁니다. 주인님, 이렇게 잔인하게 저와 그 소녀의 연을 갈라놓으려 하십니까? 제발 저를 내보내주세요!”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이국은 온종일 쉬지 않고 앵앵거렸다. 며칠 전에는 연결을 끊어놓기도 했지만 잠잠해진 며칠 뒤 무의식중에 다시 연결하자 허이국은 어김없이 고함을 질러댔다.
“이한제, 나와 그 미인의 사이도 갈라놓더니 이제는 그 소녀까지 내게서 떼어놓으려 하는 게냐! 대체 무슨 속셈이냐? 질투하는 것이냐?”
허이국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꽥꽥댔다.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허이국의 충성심은 깊었지만 그것은 한제의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만약 더 강한 자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주인을 바꿀 것이었다. 만약 천운자나 능천후, 혈조 등의 손에 들어간다면 허이국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제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이국은 여자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호되게 고생을 한 후로 좀 바뀌나 싶었지만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허나 허이국은 태생적으로 담이 작았다. 승산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한제에게 이런 망발을 할 리가 없다. 아마도 허이국에게 적지 않은 비밀이 생긴 모양이었다.
한제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으나, 허이국은 눈치 채지 못한 듯 계속해서 꽥꽥 거렸다.
“이한제! 그때 그 미인도 네가 데려가지 않았느냐! 이 파렴치한⋯⋯.”
“할 말은 그것뿐인가?”
한제가 덤덤하게 물었다.
“아니! 아직 남았다! 어서 날 꺼내줘! 그 소녀를 찾으러 가야 한단 말이다!”
허이국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는 은연중에 두려웠으나, 지난 시간 동안 익힌 신통술이라면 한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막 다시 입을 열려 할 때, 한제의 오른손이 저물대를 두드렸고 그러자 선검이 튀어나왔다.
선검에서부터 짙은 검은 기운이 솟아나 검은 안개를 이루더니 그 안개는 곧 허이국으로 변해갔다. 허이국은 음탕하게 몇 번 웃더니 곧장 밖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제의 서늘한 눈빛이 더욱 짙어지더니 오른손으로 선검을 움켜쥐고는 손으로 가볍게 훑었다. 그러자 선검이 미묘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허이국은 흠칫 놀란 얼굴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냐?”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허이국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허이국은 정수리에서부터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허이국은 한제에게 마혼으로 제련되던 순간에 이어 지난 수백 년의 세월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자는 당시 등 씨 가문을 모두 죽였고 주작성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이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나는⋯⋯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허이국은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그는 쥐어짜듯 겨우 한제를 부르더니 억지로 웃었다.
허나 한제의 눈빛은 냉랭했다. 그럴수록 허이국의 두려움은 커졌다.
“난 마혼이었던 네놈을 검령으로 만들어주었고 이 선검으로 하여금 널 보호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허이국에게는 염라대왕의 부름만큼이나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난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한다!”
한제는 왼손으로 선검을 한 번 훑었다.
“히익!”
허이국은 비명을 내질렀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와 선검 사이의 연결이 뚝 끊겨버렸다.
허이국은 순간 검은 안개가 되었다. 그는 한제가 선검과 자신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린 순간, 지난 1백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살기가 달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젠장! 이건 진짜 살기잖아! 이 녀석이 정말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허이국은 곧장 달아나려 했다. 한제가 거마족 선조와 싸울 때 공을 세운 이후로 이렇게 강한 살기는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허이국의 반란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