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3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수많은 금제가 허이국의 사방에서 나타났다.
“헛!”
허이국은 깜짝 놀라 몸을 훌쩍 날려 검으로 변해 짙은 검기를 내뿜어 한제의 금제를 뚫고 달아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한제는 어이가 없었다.
‘허이국,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구나.’
검 모양으로 변하는 것도 주작성에 있을 때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한제의 저물대 안에서 쾅,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그 안에서 미친 듯이 사방에 몸을 부딪치고 있는 듯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저물대 위에 봉인을 덧댔다.
이어 그는 냉랭한 눈으로 허이국이 도망친 쪽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돌아와라!”
그 순간, 허이국의 체내에 새겨진 금제가 즉각 발동했다. 이어 멀리서 허이국의 애통한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비명 소리는 머지않아 사라졌다.
“역시 예상대로군. 금제에 대적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렇게 멋대로 굴지 않았겠지!”
혼잣말을 마친 한제는 한 달음에 1천 척을 이동했다.
허이국이 어떤 방식으로 금제에 저항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제와의 연결 자체는 끊어내지 못했기에 한제는 쉽게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허이국은 미친 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검령이 되면서 더 강력해진 덕에 전보다 훨씬 빨라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한제, 난 네놈 밑에서 도움을 줬다. 시키는 대로 했지. 난 기회를 살피다 선검과 굽은 칼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다.”
허이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제가 자신을 죽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어울리면서 굽은 칼로부터 적지 않은 검령의 신통력을 배웠다. 그리고 굽은 칼의 도움 아래 두 검령은 자신들의 체내에 있는 금제를 약간 느슨하게 만드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허이국은 담이 작았기에 상당히 조심해가면서 일을 진행했다. 그는 한제가 다른 이와 싸우고 있을 때 금제에 조금씩 손을 댔고 덕분에 한제는 금제에 일어난 작은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휴, 이럴 줄 알았다면⋯⋯.”
허이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더욱 빠르게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요성을 벗어났다.
성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 그는 고개를 돌려 슬픈 눈으로 제도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 귀여운 소녀야. 언젠가 돌아온다면 다시 찾으러 가마!”
여태까지도 허이국은 그 검령 소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굽은 칼 검둥이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였지만⋯⋯.
허나 다시 몸을 돌려 나아가려던 허이국은 돌연 우뚝 멈춰 서더니 얼른 아첨하듯 웃었다.
“주⋯⋯ 주인님, 정말 빠르십니다. 보아하니 최근에 더 빨라지신 것 같네요. 과연 이 허이국의 주인님 다우십니다. 저는⋯⋯.”
1백 척 앞에는 어느새 냉랭한 얼굴의 한제가 서 있었다.
“담도 크구나.”
한제가 느릿하게 말했다.
허이국은 와들와들 떨다가 철퍼덕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에 꿇어앉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엉엉 울면서 애걸했다.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한제의 저물대에 덧대어진 봉인이 무너지더니 한 줄기 검은 빛이 튀어나왔다. 그 빛은 방향을 틀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만약 영변기 중기 때의 한제였다면 이 가까운 거리에서 결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영변기 후기에 이른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제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 이 검은 빛을 뿜고 있는 굽은 칼을 완전히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그의 몸을 두른 생의 낙인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검은 빛과 충돌했다.
챙!
그 순간, 금속이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울러 퍼지면서 굽은 칼이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한제는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굽은 칼은 격렬하게 우는 소리를 내면서 한제의 손가락으로부터 달아났다. 그러더니 곧바로 호를 그리며 빠른 속도로 한제의 미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팅!
이번에도 금속성이 울려 퍼졌고 굽은 칼은 또다시 튕겨나갔다. 굽은 칼은 잔뜩 화가 난 듯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허이국에게로 향했다. 허이국을 데리고 도망치려는 듯했다.
“재미있군!”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굽은 칼과 싸우는 것은 두 번째였지만 생의 낙인 덕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굽은 칼이 허이국을 향해 날아든 그때, 한제는 발을 굴렀다.
쾅!
선력이 그의 발아래에서 발산되어 1천 척 밖까지 확산되었다. 그러자 허이국 체내의 금제가 호응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금제가 줄기줄기 그의 손에서 나타나 허공으로 향하더니 하나의 조를 이루었다. 허나 여기에는 하나의 금제가 모자랐다. 그것은 바로 허이국의 체내에 들어 있는 금제였다.
당시 한제가 허이국의 체내에 심어둔 금제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한제가 새롭게 만들어낸 금제의 조에 호응하면서 허이국의 몸을 끌어당겼다.
이를 막으려던 굽은 칼은 한제가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허이국은 한 조의 금제에 녹아들더니 몸을 바르르 떨었다.
“주… 주인님, 보세요. 아직 제 체내에는 금제가 있지 않습니까? 한 번만 봐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허이국은 열심히 빌었으나 한제는 들은 척도 않고 한 손으로 굽은 칼을 쥐었다. 굽은 칼이 벗어나려 발버둥치자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낮게 외쳤다.
“살육의 기운!”
순간 한제의 미간에서 수많은 회색 기운이 튀어나와 굽은 칼을 포위했다. 굽은 칼은 그 틈을 뚫고 나가려 했지만 한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응결!”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3천 개가 넘는 살육의 기운은 빠른 속도로 수축되어 구체를 이루었다. 그 안에서는 쾅, 쾅 하고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굽은 칼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제의 시선은 다시 허이국에게로 향했다.
허이국은 와들와들 떨면서도 억지로 웃었다.
“주인님, 무엇을 분부하시겠습니까? 저 검둥이 녀석을 혼을 좀 내줄까요? 저 녀석, 제 말이라면 껌뻑 죽지 않습니까?”
“내가 왜 네게 그 검령을 찾게 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겠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한제의 목소리에 허이국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요!”
허나 허이국은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와 그 소녀를 떼어놓기 위해서겠지! 너도 그 소녀가 마음에 들었던 게로구나. 허 참, 그 호방한 허이국이 이리 불쌍한 신세가 되었구나. 소싯적에 남의 부인들을 빼앗고 다닌 대가인가?’
“천요성에는 강자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너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느냐? 만약 발견된다면 네 실력으로는 도망을 칠 수도 붙잡힌 후 탈출을 할 수도 없음을 정말 모른단 말이냐?”
한제의 말은 거대한 종소리처럼 허이국의 마음속에 울렸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건⋯⋯ 발각될 리가… 없을 겁니다.”
허나 이번에도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한제의 말이 옳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만약 그 소녀의 주인에게 붙잡혔다면 좋은 일이었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소녀와 나는 백년해로를⋯⋯.’
허이국은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감히 한제 앞에서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허이국을 바라보았다. 마치 속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눈이었다. 허이국은 괜히 찔렸으나 한제의 눈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빤히 마주보았다.
‘버텨! 버티면 이긴다. 이럴 때에는 켕길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해!’
“저 굽은 칼의 영혼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구나.”
한제가 느릿하게 말했다.
허이국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굽은 칼에게 배운 모든 신통력을 한제에게 말했다. 그가 기운을 숨길 수 있다는 것과 기본적으로 선검 안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력을 다한다면 선검의 위력을 적지 않게 높일 수 있다는 것까지 모두 고했다. 그러면서도 몰래 한제의 안색을 살폈다.
허이국의 말을 다 들은 한제는 살육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구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안에서는 더 이상 충돌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한제의 손이 구체에 닿자 살육의 기운들이 그의 손을 따라 체내로 흘러들었다.
살육의 기운이 수백 갈래 정도만 남았을 때, 날카로운 칼의 기운 한 갈래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살육의 기운에 매여 있어 움직임은 한없이 느렸다.
한제는 가볍게 두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었다. 순간 칼의 기운은 무너져 내렸고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는 격렬하게 발버둥치는 굽은 칼만 남았다.
한제는 입을 벌려 원신의 기운을 한 줄기 토해냈다. 그 기운은 굽은 칼에 내려앉았다. 그것을 제련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강제적인 수단으로 칼의 영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통제할 수 있도록 그 굽은 칼에 자신의 원신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굽은 칼은 다소 불쾌한 듯 우는 소리를 냈다.
이어 한제는 선검을 허이국 쪽으로 집어던졌다. 허이국은 희색을 띄며 얼른 선검 안으로 녹아들었다.
굽은 칼은 허이국이 어떤 위험에도 처해 있지 않은 것을 알고는 허공에 떠오른 채로 잠시 망설였다. 여전히 한제는 달갑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굽은 칼은 결국 허이국처럼 한제의 곁에 남기로 결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굽은 칼이 택한 자리하는 허이국의 곁이었다.
선검에 깃든 허이국은 곁에 있는 굽은 칼을 확인하고 의기양양해졌다.
‘이한제는 이 검둥이 녀석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다. 난 손가락질 한 번으로도 이 녀석을 동생으로 받아들였는데 말이지. 역시 이한제 저놈보다는 내 매력이 훨씬 위라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네놈이 얼마나 강하든 매력에서는 나한테 당해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때를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여자복도 있지. 나이가 많은 미인이든 어린 미인이든 모두 내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너는 나를 이길 수가 없지. 그러고 보면 이한제 저 녀석은 수준이 조금 높다는 것 말고는 나보다 나은 점이 없잖아? 나처럼 우수한 마혼이 저런 놈에게 잡혀 있어야 하다니…’
허이국은 이제 완전히 우쭐해져서 한제를 볼 때에도 선검 안에 깃들어 있는 상황인데도 의기양양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때,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허이국은 얼른 선검을 이끌고 저물대 안으로 들어갔고 굽은 칼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허이국은 저물대에 들어가던 순간 잠시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진 제도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녀야, 이 오빠가 간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천요성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야!’
한편, 제도 검각에서는 뱀 모양의 제검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소녀는 코를 찡그린 채 악에 받쳐 구시렁거렸다.
“다시는 그 염치없는 검령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다시 보게 된다면 폐하의 명이고 뭐고 제검을 끌고 나가서 그 자식을 없애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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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검과 굽은 칼을 회수한 한제가 홍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