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8
모든 생의 낙인을 소멸시키고 결국 체내로 들어온 천요고의 반동력은 많지 않기에 선력으로 얼른 몸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허나 그 반동력이 체내로 들어온 순간, 한제는 그 힘에서 기이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 안에는 불굴의 의지와 하늘에 거역하는 광포함이 깃들어 있었다.
“거역⋯⋯.”
한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태 잘못하고 있었구나. 생의 낙인으로 이 거역의 뜻에 저항하고 있었으니.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내 마음 속 거역에 저항하고 있었어.”
기이한 눈빛으로 천요고를 묵묵히 바라보는 한제는 한 단계 진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관람대에 앉아 있던 천수가 눈을 살짝 뜨더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그렇게 열 걸음 만에 천요고 앞에 이르더니 손바닥으로 그 새카맣고 거친 가죽을 살짝 쓰다듬었다.
불굴의 의지가 줄기줄기 한제의 손바닥을 따라 체내로 흘러들었다.
한제는 두 눈을 살짝 감았다. 이 순간, 한제는 천요고와 일체가 된 듯한 기운을 천천히 발산하기 시작했다.
총관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차게 웃으며 말했다.
“개수작을 부리고 있군. 천요고를 만진다고 그것을 열다섯 번이나 울릴 수 있을 것 같은가?”
“저자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현부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천요고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는 겐가!”
요수들 중 누군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있는 게지. 나 역시 당시 천요고를 쳤을 때 그 안에 깃든 기운을 느꼈어. 다들 잊으신 겐가?”
유일한 여자 요수인 우수(宇帥)의 조용한 목소리에 요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편, 묵비는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를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저자도 그 기운을 느낀 것인가?”
천고요에서 느껴지던 불굴의 기운은 한제가 감았던 두 눈을 다시 뜬 순간 더욱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한제의 체내에 응집되었고 원신이 천천히 침잠되더니 천요고와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었다.
‘천요고의 거역성에는 저항할 수 없어. 그것과 서로 섞여야 한다. 만약 이 거역성을 깨닫는다면 반동의 힘은 나를 해칠 수 없어!’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살짝 휘둘렀다.
둥-!
열 번째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북에서 엄청난 충격력이 흘러나왔고 한제는 곧장 생의 낙인을 거두고 그 충격력을 체내로 받아들였다. 그 충격력이 체내를 미친 듯이 휘젓고 돌아다니는 사이 시커먼 구슬땀이 한제의 몸에서 배출되었다. 그 순간, 축기기였을 당시에나 느꼈던 상쾌함이 한제의 온몸을 휩쓸었다.
다만 이런 느낌이 유지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체내에 진입한 충격력은 어떤 통제에도 따르지 않았고 한제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갔다.
“세수(洗髓)! 저자는 지금 북소리로 세수하고 있어!”
요수들 중 누군가가 놀라 소리쳤다.
한편, 석소는 더욱 어린 살기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몇 번이고 팔을 들어올렸다가 망설임 끝에 다시 내려놓았다.
총관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냉소했다.
‘세수라⋯⋯ 요제님이 일찍이 북소리로 세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지. 허나 네놈의 부족한 수준으로는 억지로 세수해봐야 중상을 입을 뿐이다!’
그때 천수는 다소 실망스런 눈으로 한제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더 볼 필요도 없군.”
반면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 눈만큼은 맑고 밝았다.
‘천요고의 반동력에는 모종의 의식이 깃들어 있어. 내가 그것과 완전히 융합된다면 거역이라는 단어에 부합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나의 도가 아니라 천요고의 도다. 내가 입은 부상은 수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도가 다르기 때문! 수련자도 생명도 하늘의 뜻에 거슬러 수련을 하다보면 각자의 거역성이 생기는 법! 이 거역은 개인의 깨달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수많은 도로 분화된다! 나 역시 지난 7백 년을 수련하면서 나만의 도를 가지고 있지!’
한제는 폭발할 듯 밝은 눈빛을 번득였다. 잠시 후, 그의 눈에서 번득이던 밝은 빛이 차차 흩어지더니 그 대신 타락과 적막이 드러났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천요고를 살짝 두드렸다.
둥-!
열한 번째 북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슬픔과 애통함이 광장을 채우며 천요성 전역에 널리 퍼져 나갔다. 슬픔이 깃든 북소리는 놀잇배에서 흘러나온 거문고 소리처럼 영혼을 흔들었다.
슬픔이 마음속에 들어가고 마음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북소리가 되고 북소리는 도로 전환되었다.
“북소리에 생각이 담기다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저자가 대체 어떻게… 이건 말도 안 돼!”
총관은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때, 돌연 천수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나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구경꾼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북소리에 담긴 애통함이 그들의 마음을 적셨고 이전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요장들도 침묵에 빠져들었다.
승화된 감정이 마음에 흘러들어 영혼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
한제의 손은 천요고 위에 멈춰져 있었다. 그 한 번의 북소리로 한제의 도는 하늘과 땅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모완과 알고 지냈던 장면 장면들⋯⋯.
7백 년간 수련해오면서 느꼈던 외로움⋯⋯.
천운종 안의 환상 속에서 1백 년 동안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일⋯⋯.
요령의 땅에서 길거리를 전전했던 시간⋯⋯.
이 모든 것들은 돌연 강변에서 놀잇배를 따라 울려 퍼지는 거문고 소리를 들었던 기억에서 멈추었다.
거문고 소리는 세월을 멈추고 영혼을 씻기고 도를 승화시켰다.
한제는 북을 울리던 순간, 당시 거문고 소리를 듣고 느꼈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러자 그 여인의 거문고 소리와 북소리가 섞여들었다. 그것은 한제의 마음속에서 교량이 되어 공명했다. 그의 손을 통해 울린 북소리는 모완이 떠난 뒤 줄곧 한제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비통함을 전해주었다.
이에 운려해를 비롯한 요장들의 눈까지도 비통함에 젖어들었으나 단 한 사람, 묵비만은 예외였다. 북소리에 담긴 비통함이 어떤 공명도 주지 않은 듯, 그의 얼굴은 심지어 냉랭할 정도였다.
북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한참 뒤에야 사람들은 속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수를 비롯해 수준이 높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부수는 멍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의 눈빛은 거의 감탄에 가까웠다.
“북소리로 생각을 전하다니⋯⋯ 어쩌면 저자는 요제 폐하께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 사람인지도⋯⋯ 이 북소리를 듣고 오랫동안 멈춰 있던 내 수준이 약간의 움직임을 보였으니⋯⋯.”
천수를 제외한 나머지 요수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북소리에 생각을 담아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요수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일종의 경지였다.
천수는 어느덧 번개처럼 번득이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한제라고 했던가?”
한편, 한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총관을 바라보았다.
총관의 안색은 이제 창백할 지경이었다. 그는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제가 열 번째로 북을 울렸을 때도 놀라긴 했지만 이번 열한 번째 북소리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모습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으로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지이자 감정과 영혼의 승화였다.
총관은 이제 한제를 경시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절대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한제가 총관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그리 크진 않지만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다섯 번 울리면 팔 하나를 자르겠다 하셨지요?”
총관은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튀어나가 한제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한제는 총관에게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특히 관람대 높은 곳에 앉은 사람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부수들이 앉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그 눈길을 피했다. 오직 한 사람, 현수부만이 맑은 눈빛으로 한제의 눈길을 받아냈고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망설이더니 가볍게 포권을 했다.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이번에는 여덟 요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시선을 피하진 않았지만 눈길에 담긴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한제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천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한제, 네 이름을 기억하겠다!”
한제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했을 때, 대부분의 요장은 눈길을 피했다. 그중 석소는 살기 어린 눈으로 마주보았다. 허나 한제는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다시 천천히 눈길을 돌렸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묵비를 쳐다보았다.
묵비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한제를 마주보았다.
이내 한제는 고개를 돌리더니 두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북을 가볍게 만졌다. 북을 울리는 것은 더 이상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방금 북소리로 도를 전했을 때 한제는 처음으로 문정의 소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정기의 경계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문정을 원한다!”
한제는 눈을 뜨지 않고 있었지만 그에게서는 순간 강력한 자신감이 발산되었다.
그의 오른손이 천요고 위에 얹혔다.
둥, 둥⋯⋯,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북소리가 울리더니 벼락이 되어 대지에 떨어졌다.
문정을 원한다
북소리에 담긴 애통함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연속으로 두 번 울리면서 내리치는 벼락에도 비통함이 담겼다.
“아직 부족해.”
한제가 중얼거린 순간, 천요고에서 다시 한 번 둥 하는 소리가 울렸다.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네 번째 북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 북소리들은 합쳐지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지더니 한제의 손을 따라 체내로 몰아쳤다.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은 한제의 체내에서 울려 퍼지는 펑, 펑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맑고 청아한 그 소리에 사람들은 뼛속부터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