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8
한제는 상대를 힐끔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은 끊임없이 괴물을 흘끔거렸다. 이에 괴물은 짜증이 난 듯, 청년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놀라며 물었다.
“선배님, 이 시체는 벌써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건가요?”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 말이 너무 많군.’
그러나 청년은 한제가 미간을 찌푸린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 계속해서 각종 질문들을 해댔다.
한제가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다는 듯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지경이었다.
15분 정도 이동하는 동안 청년은 시체에서부터 그들의 동문, 동문에서부터 그들의 사부, 사부로부터 그들의 선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제는 짜증이 나면서도 덕분에 시음종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 조나라의 시음종은 정말 대단한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위로는 4, 5성 수련국, 아래로는 1, 2성 수련국까지 모든 시음종 사람들이 저희를 중개소로 삼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1, 2성 수련국의 시음종 제자들의 승급 시험도 이곳에서 진행을.”
통로의 끄트머리에 닿을 때까지 청년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이를 견디기 힘들었던 한제는 출구가 보이자마자 속도를 높여 빠져나갔다. 그러자 좀 전의 통로보다 조금 작은 동굴이 들어왔다.
동굴에는 다섯 개의 거대한 석주가 있었고 각 석주 위에는 거대한 남색 불덩어리가 떠 있었다. 그 불덩어리로부터 미미한 열기가 끼쳐왔다.
정중앙의 석주 위에는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하얀 머리가 성성하면서도 혈색이 좋은 노인의 머리카락은 바람 한 점도 없는데 느릿하게 흔들렸다.
그의 호흡에 따라 사방의 석주 위에 있는 불덩어리에서 녹색 기체가 흘러나와 노인 얼굴의 일곱 구멍으로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와 그가 앉은 석주로 녹아들었다. 아주 기이한 순환이었다.
제물
한제가 동굴 안으로 진입한 그 순간, 노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번득이는 눈으로 한제를 자세히 살폈다. 그때쯤 한제는 신식을 통해 눈앞의 노인이 축기 중기의 실력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안내하던 청년도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노인에게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장로님, 이 선배는 방금 전송진(傳送陳) 안에서 나오셨습니다. 총 43개의 빛의 고리를 밝히셨죠. 양 시조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인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냉랭하고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우여, 누가 자네에게 우리 시음종으로 들어오는 진을 열어주었는가?”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태우!”
그 이름을 들은 노인이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몇 백 년 전 실종되었던 오태우 시조님? 그 분은? 자네는 그 분과 무슨 사이지?”
한제는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자다.”
노인이 찬숨을 들이마셨다. 오태우는 조나라 시음종에서의 지위가 상당한 자였다. 만약 한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례하게 굴어도 자신은 할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숙이셨군요. 저는 목용이라고 합니다. 사숙의 존함은 어찌되시는지요?”
한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이한제다. 사숙 따위의 호칭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 목용은 청년을 향해 말했다.
“넌 이제 돌아가거라. 한제 사숙은 내가 양 시조님께 모셔갈 것이다.”
황망히 대답을 한 청년은 몸을 돌리며 소리 없이 뭐라 중얼거리더니 얼른 자리를 떴다.
청년이 떠난 뒤 목용은 열정적인 태도로 한제를 석주 위로 데려오며 물었다.
“오태우 시조님께서는 같이 돌아오시지 않으신 겁니까?”
한제는 깊은 뜻이 담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의 시체에 문제가 생겨서 급히 처리해야 하네.”
목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태우 시조님의 시체는 양 시조님의 시체인 비천나찰에 버금갈 정도죠. 높은 수준의 시체일수록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법이긴 하지만 오태우 시조님이라면 그런 문제 따위야 손쉽게 해결하실 수 있을 텐데…”
그러는 동안에도 목용은 끊임없이 한제를 살폈다. 뭔가 미심쩍어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한제는 시종일관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어떠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목용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양 시조님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를 두드려 옥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쥔 채 잠시 정신을 집중하다가 앞쪽으로 던졌다. 옥패는 몇 번 반짝이다가 어느 통로 안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일을 마친 목용은 한제의 뒤에 있는 괴물을 힐끔거렸다. 그가 막 뭔가 말을 하려던 그때, 한제가 입을 열었다.
“이 불덩어리에서 내뿜는 기운은 음(陰)한 가운데 양(陽)하니, 예사롭지 않군.”
그러자 목용이 살며시 웃으며 답했다.
“이 남색 화염은 수백 년 전 정도연맹의 몇몇 결단기 고수께서 금단(金丹)으로 만들어내신 것으로 후에 양유재 시조께서 정복하여 우리 시음종의 보물이 되었지요. 저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수련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시체들이 받는 도움 역시 굉장히 큽니다.”
한제가 남색 불덩어리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흔들자 순간 푸른 연기가 불덩어리 안에서 피어올라 한제의 손바닥에 모여들었다. 그는 그 연기를 한참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극음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푸른 연기에서 쉭 하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축소되기 시작해, 결국에는 파란색의 작은 공이 되어 공중에 둥둥 떠올랐다.
목용은 약간 변한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연기를 실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음한기로는 안 될 텐데 보아하니 오태우 시조께서 사숙을 굉장히 아끼는 모양입니다.”
목용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한 줄기 의심도 한제의 음한력을 확인한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시음종이 수련하는 음한기와 한제의 체내에 깃든 음한력은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사방의 석주 위에 있던 남색 불덩어리가 꺼지면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 연기는 한 곳으로 모여들어 사람의 모습을 이루었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위압감을 가진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제의 동공이 커지며, 상대의 위압감에 그의 심장이 전에 없이 빠르게 뛰었다. 목용은 이미 공손한 표정으로 바닥에 납죽 엎드린 채였다.
“네가 오태우 사제의 제자냐?”
음산한 목소리가 그 위압감을 가진 이로부터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목소리에 담긴 엄청난 힘으로 인하여 석주 위의 불덩어리들이 순식간에 꺼졌다. 동시에 동굴에 메아리가 울리면서 위압감은 배가 됐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포권을 취했다.
“양유재 선배를 뵈옵니다.”
그러자 그림자가 점점 실체화되더니, 이내 마흔 정도의 중년 남자의 모습을 갖추었다. 옥처럼 흰 얼굴과 별처럼 반짝이는 눈, 짙푸른 눈썹까지. 누가 봐도 준수하다고 느낄 만한 외모였다.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목용, 넌 물러가거라.”
바닥에 엎드려 있던 목용은 얼른 일어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동굴 중 하나로 향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양유재가 오른손을 한 번 흔들자 얇은 빛의 장막이 사방에 펼쳐졌다. 이후 그는 약간 실망스럽다는 듯 가볍게 한탄했다.
“한제, 자네는 우리 시음종의 제자가 아니니,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다. 내 사제 오태우가 큰 곤란을 겪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제 다른 사람은 없으니 편하게 말해보아라.”
한제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어차피 원영기에 이른 고수인 양유재를 속일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숲속의 폐허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털어놓았다.
말없이 줄곧 조용히 듣기만 하던 양유재는 한제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제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일 것이다. 오태우는 떠나기 전부터 자신의 시체 인형이 곧 승급할 거라 했었지. 하지만 시체 인형의 배반이라니… 사제여, 그런 일이 그처럼 쉽게 일어나겠는가? 축기 중기에 이른 시체 인형은 나도 당해낼 방법이 없거늘, 저 자를 보내 내게 그 상황을 전하게 한 것은?’
생각을 마친 양유재는 신식으로 한제를 훑었다. 한제 역시 시음종처럼 음한기를 이용해 수련하는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오태우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구조를 요청함과 동시에 제자 하나를 들인 셈이었다. 다시 한 번 신식으로 한제와 그의 뒤에 있는 괴물을 살펴본 양유재는 한참 뒤에야 오태우의 생각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파란 피부의 괴물은 시음종의 공법을 수련하기에 태생적으로 적합했다.
드디어 양유재는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영력을 보아하니 음한기의 속성을 띠는 것이, 우리 시음종과 같은 뿌리라 할 수 있겠군. 이곳에서 수련한다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게야. 어떤가? 우리 시음종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한제는 이런 제안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양유재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태우와 인연이 있었으니, 그의 제자가 되는 편이 좋겠군. 오늘부터 자네는 우리 시음종의 2대 제자일세.”
말을 마친 그는 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는 이름이 정해질 때까지는 백치(白痴)라 불러야겠군. 좋아, 백치는 내가 데려가겠다.”
한제가 약간 망설이자 양유재가 웃으며 말했다.
“사제가 깊은 정을 가진 자를 내가 해하겠는가? 내 제자로 삼을 생각이네.”
말을 마친 그는 한제에게 진한 파란색의 옥패를 내던졌다. 이어 커다란 손이 하나 나타나 백치의 몸을 꽉 붙잡았다.
양유재가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백치를 데리고 동굴 깊은 곳으로 사라지자 한제는 신식을 통해 옥패를 살폈다. 옥패에는 간단한 법술 하나가 담겨 있을 뿐 시음종의 수련과 관련한 공법은 없었다.
그때 양유재가 떠난 것을 확인한 목용이 곧장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막 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던 그는 한제의 손에 들린 옥패를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공손하게 말했다.
“제자 목용이 스승님을 뵈옵니다.”
손에 들린 옥패를 바라보던 한제가 웃었다.
“그리 예를 차릴 필요 없다.”
허나 목용은 부러운 눈빛으로 한제의 옥패를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그보다 옅은 푸른색의 옥패를 하나 꺼냈다.
“옥패를 지니지 않으셨을 때라면 모를까, 이제 제가 어찌 감히 스승님을 편히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 옥패는 시음종의 유일한 신분증으로 시조(始祖)님들의 옥패는 옥색이고 스승님들의 옥패는 짙은 푸른색이며, 장로님들의 옥패는 옅은 푸른색, 나머지 제자들의 옥패는 모두 흰색을 띠옵니다.”
옥패를 챙긴 한제가 막 입을 열려던 그때, 석주 위의 불덩어리들이 몇 번 깜빡이더니 여러 갈래의 가는 연기를 뿜어냈다. 이어 연기가 한데 모여들어 한 줄기의 푸른 연기를 이루었다. 이를 본 목용은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오른손으로 결인하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