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81
번개는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짙은 살기가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늘의 살기였다.
봄의 정취로 가득했던 천요성에 순간 눈발이 날렸다. 하늘하늘 날리는 눈송이에도 하늘의 살기가 어려 있었다.
온 세상에는 순간 하늘의 분노를 담은 천둥 소리와 피처럼 붉은 한 줄기 번개만이 남게 되었다.
온 세상에는 순간 하나의 살기만이,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짙은 살기만이 가득했다.
하늘은 지금 한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한제는 번개를 바라보았다. 3천 7백 개가 넘는 생의 낙인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동시에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대량의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수많은 금제들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하늘의 위엄
“하늘이 아무리 분노한다고 해도 나의 존재를 제거할 수는 없다! 하하하!”
한제는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을 들어 붉은 번개를 가리켰다.
순간 한제는 태양과 달처럼 번쩍거렸다. 그의 머리카락과 옷은 거센 바람에 휘날렸지만 두 눈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손짓 한 번에 그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검은 안개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고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수많은 금제들이 거대한 회오리가 되어 천벌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르릉!
붉은 번개와 회오리가 충돌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요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더러는 그대로 혼절하기도 했다.
광장의 구경꾼들 역시 그랬다. 요장들조차 전신의 요력이 통제를 벗어났다.
오직 요수들만이 변함없는 표정으로 천벌을 바라보았다.
순간, 금번의 금제로 이루어진 회오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손에 짓눌린 듯 무너져 내렸다. 붉은 번개는 예리한 검처럼 회오리를 가운데서부터 가르며 금제들을 흩어 버렸다.
“하늘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나도 하늘을 죽일 것이다!”
천벌의 붉은 번개가 금제를 붕괴시키던 그때, 한제는 놀라운 기세를 뿜어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적멸지를 일으켰다. 그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열 갈래, 백 갈래의 적멸지였다.
이어서 그는 왼손으로 저물대에서 대량의 선옥을 꺼냈다. 엄청난 양의 선옥은 바닥에 작은 언덕을 이루며 쌓였다. 그 위에 선 한제의 뒤로는 천요고가 있었다. 한제의 두 발을 타고 대량의 선력이 체내로 흘러들었다.
수많은 적멸지는 하나로 합쳐져 30척 정도의 두께를 가진 검은 빛이 되더니 곧장 튀어나와 붉은 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벌로 나의 몸을 부술 수 있을지언정 나의 도심만큼은 절대 어쩌지 못할 것이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였다. 그의 시선은 붉은 번개 너머의 붉은 구름으로 향했다. 그 순간…
콰릉!
한제에게 답하듯 하늘에서 돌연 거대한 천둥 소리가 울려 퍼졌다.
1백 갈래의 적멸지는 적멸의 빛이 되어 붉은 번개와 충돌했다.
콰과광!
하늘이 진동했다.
일체의 생기를 흡수하여 적멸의 힘으로 바꾸는 공법인 적멸지는 붉은 번개와 충돌했을 때 그 안에 깃든 엄청난 생기를 흡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벌의 위력에는 한참 부족했다.
붉은 번개와의 충돌로 적멸지의 검은 빛은 빠르게 흩어져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붉은 번개 역시 약간 어두워진 상태였다.
붉은 번개를 바라보는 한제의 두 눈에는 여전히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온몸을 두른 생의 낙인을 흩어 3천 7백 여 개의 낙인을 살육의 기운으로 만들어낸 뒤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회색 기운이 줄기줄기 그의 손에서 튀어나왔다.
3천 7백 여 개의 살육의 기운은 격렬한 살육의 폭풍을 일으켰다. 한제는 그 폭풍 한가운데서 짙은 살기를 번득였다.
“죽인다!”
짧은 외침과 동시에 3천 7백여 개의 기운이 뭉쳐 한 마리 창룡이 되었다.
한제의 두 눈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살의(殺意)뿐만 아니라 살심(殺心)까지 가지고 있는 그였다. 살육과 관련된 공법을 다루는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한제는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 자였다. 상대가 천도라 해도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그 역시 상대를 죽이려 드는 것이다.
살심과 살의를 가진 한제가 살육의 기운으로 만든 살육의 용은 영혼과 생기를 가진 듯했다. 이 창룡은 하늘을 거스르고자 하는 한제의 의식이었다.
“죽인다!”
창룡이 포효하며 붉은 번개를 삼킬 듯 달려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붉은 번개는 순간 어두워진다 싶더니 창룡에 의해 단숨에 집어삼켜졌다.
하지만 천벌은 하늘의 징벌이었으며 하늘의 살기를 품고 있었다. 창룡의 기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늘의 기세에는 역부족이었다.
“캬오오!”
창룡은 포효하며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붉은 번개도 한층 더 어두워졌고 크기 역시 줄어들었다.
붉은 번개가 창룡의 몸을 뚫고 내리친 순간, 한제의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요동쳤고 그의 오른손 검지에서는 기이한 검은 빛이 나타났다.
“화마!”
한제의 두 눈에서는 이제 붉은 빛이 아닌 마광(魔光)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의 모든 선력이 엄청난 기세로 거꾸로 돌면서 마력(魔力)이 되었다.
한제의 발아래에 놓인 선옥 언덕은 원래의 유백색을 잃고 먹물이 뿌려진 것처럼 빠르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그 안의 선력은 모두 마력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순간, 화마지는 전에 없던 위력을 드러냈다. 사도환이 직접 화마지를 발휘한다 해도 지금 한제가 발휘한 것보다 강한 위력을 보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한제는 자신의 선력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선옥의 선력까지 마력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의 검은 빛에는 마력과 함께 한제의 도까지 깃들어 있었다. 한제의 도에는 선도(仙道)도 있고 마도(魔道)도 있다. 말하자면 이 화마지는 하늘에 반항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한제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제가 남겨 놓은 집착, 그가 끝까지 기억하고자 했던 모완의 모습, 하늘과 싸우고자 하는 용기, 일반인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수련의 길에 오르고자 했던 결심과 영원히 굴하지 않을 의지도 함께 섞여 있었다.
검은 빛은 하늘의 붉은 번개를 향해 달려들었고 이 순간 세상은 붉은 하늘과 검은 땅으로 구분되었다.
이 붉은 하늘은 천벌, 검은 땅은 하늘에 대한 거역의 의미였다.
둘의 충돌은 세상을 뒤흔들고 하늘과 땅에 균열을 일으켰다. 온 천요성의 산까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땅속에서는 수많은 번개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진동으로 인한 엄청난 충격에 광장에는 쩍쩍 균열이 일었고 관람대가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미친 듯한 바람에 휘말려 이리저리 쓸려 나갔다.
요장들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요수들도 약간 붉어진 얼굴로 각자 흩어졌다. 오직 천수만이 한제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오른손을 품에 넣어 저물대를 끄집어내더니 그 안에서 옥병 하나를 꺼냈다. 그 옥병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천수는 이내 그것을 한제에게 던져준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한제의 상공에서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동시에 흩어지고 있었다. 붉은 번개는 수많은 금제를 비롯해 살육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창룡, 화마지가 내뿜은 마력 등과 뒤섞여 조금씩 흩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붉은 번개가 사라졌을 때, 한제의 얼굴은 창백한 상태였다.
천수가 던져준 옥병에는 단약 한 알이 들어 있었지만 한제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대신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겨우 번개 한 번으로 공격을 끝내지는 않을 터였다.
한편, 놀잇배 위의 청년은 신중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붉은 구름은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격렬한 반향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내 안정은 형태 없는 압박으로 변해 하늘을 뒤덮었다.
“이⋯⋯ 이건?”
청년의 얼굴이 급변하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제도의 상공이었다. 붉은 구름과 무척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일이 좀 커졌군!”
청년은 쓰게 웃으며 한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한제를 제도 밖으로 옮겨 이곳에 천벌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다. 좀 전까지 그가 생각했던 종류의 천벌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지금 보니 이 천벌에는 뭔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한데 막 손을 뻗던 청년은 우뚝 멈추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씁쓸하게 말했다.
“저자가 천벌에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 이동시킬 수가 없군.”
청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양팔을 뻗으며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여덟 명으로 불어났다.
여덟 명이 된 청년은 빠르게 천요성 외곽의 여덟 개 성으로 날아가 대나이술로 각 성의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켰다. 이는 무척 높은 수준의 신통력으로 청년의 가장 비밀스러운 술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가 막 모든 주민들의 이주를 완료시킨 그 순간, 하늘에 변화가 일었다.
붉은 구름이 사방에서 빠르게 모여들어 천요성 전역을 뒤덮었고 강력한 위엄이 느릿하게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위엄은 거의 순간적으로 천요성을 완벽하게 둘러쌌다.
성 밖의 허공에 다시 나타난 청년은 그 위엄을 본 순간 안색이 급변했다.
“이⋯⋯ 이건 하늘의 위엄!”
그는 곧장 땅으로 내려서며 쓰게 웃었다.
“하늘의 위엄이 강림하다니⋯⋯ 선조들께서 나타나실지⋯⋯.”
한편, 한제는 곳곳이 갈라진 광장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깃든 불굴의 의지에는 미동도 없었다.
천벌 중 두 번째 징벌의 강림이었다.
이번에 천벌이 내보인 것은 하늘의 위엄인 천위(天威)였다.
천위가 나타나자 바람과 구름의 기세가 변화했다. 천위는 어떤 생명의 반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엄청난 압력에 붉은 구름조차 일제히 1촌 정도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1촌의 하강에 한제가 서 있는 갈라진 광장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허나 폭발의 기세는 분출하기도 전에 천위의 압박에 땅속으로 짓눌렸다.
한제는 마치 1만 근에 달하는 압력에 짓눌리듯 몸이 아래로 꺼지는 것만 같았다. 체내에서 뭔가 부서지는 듯 우둑, 우둑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단단히 끼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모든 힘을 잃고 일반인으로 몰락할 듯했다. 연혼종의 영맥에서 수련을 하던 당시 영혼들의 압박에 짓눌릴 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뒤이어 천위가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이에 따라 붉은 구름 또한 1촌 정도 더 내려왔다.
콰드드!
엄청난 압력에 광장의 궁전들은 모조리 가루로 변해버렸다.
이 붕괴는 한제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확산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 제도의 황궁 절반 정도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한제의 두 발은 땅에 박힌 듯 움직일 줄 몰랐고 그의 몸에서는 불굴의 의지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난 굴복하지 않는다!”
붉은 구름은 벼락과 함께 다시 한 번 하강했다. 이번에는 세 차례나 연속으로 내려왔고 이에 따라 하늘의 위엄이 더욱 묵직하게 접근해왔다.
콰르르!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