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87
허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제가 손을 꽉 쥐었고 순간 청년의 몸은 피범벅이 된 살덩이로 뭉개져 땅으로 툭 떨어졌다. 이어서 그의 생기 역시 회색 기운이 되어 한제에게 날아왔다.
눈에서 번득이는 붉은 빛이 한층 더 짙어졌고 전의도 왕성해진 한제는 다시 먼 곳을 향해 질주했다.
한제는 화요군을 가로지르듯 날아가고 있었고 그가 지나간 길에 놓인 모든 것은 말라 죽어가면서 그의 자양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자 분노한 화요군에서는 수십 명의 요장이 한곳에 모였다. 더 이상 저 잔악무도한 수련자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 토벌대를 만든 것이다.
토벌 장소는 화요군과 천요군의 가장자리인 만요산(萬妖山)으로 정해졌다.
항상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는 만요산 양쪽에는 두 개의 성이 있는데 하나는 화요군의 천일성(天逸城), 다른 하나는 천요군의 융화성(融火城)이었다.
천일성 안에는 현재 10만 명의 요병이 복장을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고 열 명이 넘는 요장들은 누각에 서서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자의 표정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자를 죽이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부수님이 주재하시니 더욱 쉬워졌지요.”
곁에 있던 요장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공손한 태도였다.
“그렇습니다. 부수님이 계시니 식은 죽 먹기일 겁니다.”
곁에 있던 요장이 키득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속전속결로 끝내게. 그자를 죽인 뒤 나는 곧장 떠날 테니…”
가라앉은 표정과 달리 중년 남자가 덤덤한 목소리에는 약간의 거만함이 묻어났다.
사실 부수인 그가 고작 수련자 한 명 때문에 자신의 성을 떠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적인 일로 천요군에 방문했던 것인데 요장들과 함께 수련자를 죽이고 오라는 화요군 요제의 명령을 받고 남은 것뿐이다.
요제의 명령인 만큼 어쩔 수는 없었으나, 그는 겨우 수련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자가 이곳을 지날 것이라고 확신하나?”
“부수님, 걱정 마십시오.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자는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필히 이곳을 지날 겁니다.”
“한데 열 명의 정찰병 중 세 명만 죽었다는 게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그자는 살인을 일종의 놀이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요장들의 이야기에 중년 남자는 다소 짜증이 난다는 듯 답했다.
“겨우 문정기 수준의 수련자다. 게다가 심한 부상도 입었다고 하더군. 그 상태로 감히 우리 화요군을 어지럽혔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그때, 푸른 갑옷을 입은 요장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하더니 크게 말했다.
“부수님, 이 윤동이 앞으로 나아가 그자를 처단하기를 원합니다!”
중년 남자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은 곧장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윤동의 서늘한 눈빛에 살기가 번득였다.
“부상을 입은 문정기 초기 수련자라… 흥! 내 요력은 이미 30만 갑에 달한다! 중상을 입은 네놈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살기⋯⋯.”
그때, 한제의 눈이 전의와 살기로 번득였다.
“멈춰라!”
윤동이 크게 외쳤다. 그는 이 외침에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요력을 쏟아부었다. 상대를 놀라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우르릉!
그 외침이 마치 번개처럼 하늘을 울렸다. 성 안의 10만 요병들은 그에 힘입어 짙은 살기를 가득 품어 올렸다.
성벽 위에 선 부수는 흡족한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윤동, 훌륭하군. 기선제압을 할 줄 아는 자야.’
하늘과 땅의 기세를 느낀 윤동은 득의양양해졌다. 허나 그는 이 짙은 살기가 지옥으로 통하는 문을 열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10년의 깨달음과 황천
짙은 살기에 순간 전의가 몇 배나 증폭한 한제는 곧장 달려들었다. 이에 냉소하던 윤동이 신통력을 발휘하려던 순간, 한제가 붉은 눈을 번득이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수십 척 두께의 검은 빛이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윤동은 피할 틈도 없이 그 검은 빛에 뒤덮였고 그의 몸은 빠르게 오그라들다가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10만 명의 요병들이 내지르던 고함도 뚝 끊겼다.
기이한 적막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성벽 위의 부수는 진중해진 표정으로 상황을 살폈다.
“죽인다!”
한제가 적막을 깨고 하늘을 향해 포효한 순간, 그의 몸에서 3만 개가 넘는 살육의 기운이 줄기줄기 튀어나와 각각 한 마리의 창룡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3만 마리의 창룡에 감싸인 한제의 모습은 마치 마왕 같았다.
“각 도총은 들으라! 진을 구축하여 적을 섬멸하라!”
한 늙은 요장의 외침에 지면의 10만 요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몸을 맴돌던 3만 개의 살육의 기운이 미친 듯이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고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풍기기 시작했다.
10만 명의 요병이라면 문정기 수련자를 이길 가능성은 충분했다. 특히 10만 명의 요병들이 요력을 합쳐 진을 구축한다면 그 위력으로 문정기 수련자라도 능히 당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상대가 일반적인 문정기 수련자인 경우였다. 지금의 한제는 광기에 어려 있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제의 살육 선결은 살육을 통해 증진되고 또 생기를 얻었으며, 그의 원신은 승선과의 효과로 가득했다. 또한 체내에는 엄청난 양의 선력이 깃들어 있었으니 이런 그를 요병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크아악!”
“사… 살려줘!”
살육의 기운이 달려든 순간, 요병들 사이에서는 참혹한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이 무렵, 10만 요병들의 요력은 한 마리의 거대한 전갈 허상이 되어 있었다. 특히 그 꼬리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성벽 위에 있던 부수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가라! 저자를 죽여!”
그의 곁에 있던 요장들이 곧장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열 개가 넘는 짙은 살기에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황천지였다.
문정기에 이르면서 원신과 경지의 융합을 통해 황천지는 생사의 변화를 품게 된 상태였다. 손가락을 뻗은 순간, 하늘에서 한 줄기의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그 탁한 강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잘린 사지들이 떠 있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천태만상인 사람들의 얼굴도 나타났다.
한제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휘두르자 그 강에서 파도가 일어 하늘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미친 듯이 몰아쳤다. 마치 홍수가 일어난 듯 곧장 솟구쳐 오른 강물이 닿는 곳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은 그 강물 안으로 빠져들었다.
이 황천은 한제가 원신과 경지를 융합시킨 뒤 10년 동안의 깨달음을 통해, 한제 자신의 도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한제가 느낀 세상의 윤회가 10년 동안의 깨달음을 거쳐 이 끝없는 황천이 된 셈이었다.
요장들 또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황천에 녹아들어 버렸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부수는 안색이 크게 변한 채 무의식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저자는 겨우 문정기 수련자에 불과한데 어찌 이런 끔찍한 신통력을⋯⋯ 스스로의 도를 이용해 독자적으로 황천을 만들어낸 것인가! 그건 천도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나 가능할 일일 텐데…”
도로 만들어낸 황천과 스스로 이룩해낸 윤회. 이것이 바로 한제가 지난 10년간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었다.
또한 이는 그의 수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한 걸음에는 그 자신만의 도가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제가 수련할 도는 하늘도 땅도 신선도 신도 아닌 사람의 도가 될 것이다.
황천에 빠진 열 명이 넘는 요장들은 서로 힘을 합쳐 가까스로 황천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황천이 방금 막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제는 붉은 빛을 번득이며 한 줄기 잔영이 되어 황천 위에 올라섰다. 그 순간, 황천은 얌전해졌다.
“나를 죽이고자 하는 자는 나의 황천에 들어가 하늘이 아닌 나의 윤회에 따르게 될 것이다!”
한제의 목소리는 그의 도에 실려 황천에 녹아들어 윤회의 힘이 되었다. 그 순간, 황천은 그대로 되돌아가 이내 사라졌다. 열 명이 넘는 요장은 역시 황천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요력으로 이루어진 전갈 역시 무너져 내렸고 3만 개가 넘는 살육의 기운은 요병들을 하나하나 회색 기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회색 기운들은 한제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부수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뒷걸음질 쳤다. 눈앞의 사내게는 저항이 불가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정기 초기 수준으로서 중상을 입은 저자를 이기는 게 당연하다. 허나⋯⋯ 저자는 이미 스스로의 도를 깨쳤다. 그 황천… 너무나 끔찍해! 요제님께서 나를 이곳에 둔 것은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던 것일까?”
그는 이를 악물며 뒤로 빠르게 물러나 주먹만 한 검은색 뼈를 꺼내 부수었다.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기운이 그 안에서 흘러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감싸 순간이동시켰다. 이 검은 뼈는 곧장 수도로 전송시킬 수 있는 물건으로 부수의 지위쯤 되어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진귀한 것이었다.
그 무렵, 10만 명의 요병이 죽으면서 만들어진 10만 갈래의 살육의 기운과 본래 가지고 있던 3만 개의 기운이 더해져 총 13만 개의 살육의 기운이 한제의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 13만 갈래의 살육의 기운은 중년 사내가 사라진 순간 그를 바짝 뒤쫓았다.
★ ★ ★
화요군의 제도에는 부수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호화로운 전송진이 하나 있다.
그 진 옆에서 묵묵히 좌선을 하고 있던 화요군의 제도 총관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미소를 지으며 전송진을 활성화시켰다. 어느 부수가 이 전송진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분께서 돌아오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데 진을 살피던 그는 순간 안색이 크게 변했다.
진 안에서 밝은 빛이 번득이더니 바짝 오그라든 시체 하나가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마른 시체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요령의 땅에서 부수의 죽음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화요군의 요제가 분노에 차 내지른 포효가 제도 전역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찾아! 그자가 어디 있는지 반드시 찾아서 죽여! 죽이란 말이다!”
한편, 한제는 천요군 경계의 성을 떠난 상태였다. 그의 뒤로 10만 갈래의 살육의 기운이 따르고 있었다.
승선과의 효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어진 살육에도 한제의 전의는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격렬해졌고 살기 역시 점점 짙어졌다.
한제는 번득이는 유성이 되어 곧장 만요산을 뛰어넘고 계속해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