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92
검은 탑이 무너진 뒤, 상공에는 한쪽 팔을 잃은 갑옷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안에서 번득이는 어스름한 빛을 통해 분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나의 마탑(魔塔)을 부수다니! 세상에 네놈의 영혼 한 조각조차 남기지 않겠다.”
마탑은 이 갑옷의 주인이 신식을 확산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마탑이 없으면 그의 신식은 요령의 땅 절반까지도 확산시킬 수가 없었다.
마탑이 있던 땅에 검은 진이 하나 드러났다. 이 진 가운데에는 누군가가 긴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는 자금색의 문신이 번득였다.
허공에 떠 있던 갑옷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여러 개의 검은 선이 되어 남자의 몸을 감쌌다. 갑옷이 순식간에 남자의 몸에 딱 맞게 변한 순간,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검은 탑이 있던 곳으로부터 1천 리 떨어진 곳의 허공에 한 방울의 남색 피가 나타났다. 이 피는 곧장 먼 곳으로 질주했는데 그러면서 서서히 그 모양과 크기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한제의 모습이 되었다.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자 저물대가 나타났고 동시에 남색 옷이 그의 몸을 덮었다. 한제는 발을 구르며 몇 차례의 나이법을 사용하여 멀리 사라졌다.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난 한제는 천요정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혈혼단은 약간의 원신과 혈액을 흡수한 뒤 곧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죽음에 이른 순간, 원신과 관련된 것들은 허무 속에 녹아들었고 다시 살아난 뒤에는 혈혼의 힘에 이끌려 새롭게 태어난 한제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천운자는 일찍이 한제에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물건을 주었으나, 문정기 후기 수준의 상대에게나 저항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몸이 30척으로 불어난 노인의 수준은 문정기 후기 수준 정도였으나 탑 안에있는 존재의 힘은 그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어떻게든 노인에게서 살아난다 해도 검은 탑 안의 그 이상한 존재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한제는 마지막 수단으로 혈혼단을 사용한 것이다.
승선과의 효능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 뒤로 그간의 기억을 더듬어본 한제는 등골이 오싹했다. 검은 탑 안의 존재는 너무도 강했다. 그 존재가 신식을 통해 펼친 수차례의 공격은 만약 승선과로 인한 자극 효과가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한제를 죽이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그 검은 탑의 존재가 남아 있는 한, 한제가 이 요령의 땅에서 남은 4백여 년을 살아가려면 매일 승선과를 먹으며 원신을 자극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허나 그러다가는 결국 이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 존재를 죽이거나 최소한 중상이라도 입혀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신이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몇 차례나 나이법을 이용하여 달아난다 해도 절대 그자의 신식을 통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탑 안의 존재는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에 아마도 탑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한제는 폭발 직전에 탑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한제는 곧장 고요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10년 전의 약속은 문정기를 돌파하느라 지키지 못했지. 약속한 기한을 한참이나 어겼지만 그에게 중요한 약속인 만큼 번복하려 하지는 않을 거야.”
한제는 중얼거리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원신에는 승선과의 효력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한제는 이를 제거하지 않았다. 검은 탑 안의 존재가 혹시라도 다시 공격해올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검은 탑이 무너졌다고 그 강력한 존재가 죽거나 사라졌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멀리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술은 상당한 선력을 잡아먹는 술법으로 이전까지 한제는 이를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선력이 다시 보충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나 지금은 연달아 몇 차례의 나이술을 발휘해도 무리가 없었다.
“자폭하면서 그 네 방울의 선액이 체내에 섞인 모양이군. 부활한 뒤에도 그 선액이 여전히 내 체내에 있는 모양이야!”
한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그에게는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할 시간도 부족했다.
한제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순식간에 천요군의 수도에 가까워졌다.
“당초 승선과의 자극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이 안타깝군. 그러지 않았다면 자서의 검기를 이렇게 써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다행히 시체가 어디 있는지 기억하고 있으니 가봐야겠어. 검기가 아직 그의 체내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허나 지금은 화요군에 갈 때가 아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나이술을 사용하면 천요군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던 한제는 곧장 나이술을 사용하려 했으나, 돌연 뒤에서 들려오는 분노에 찬 고함소리에 흠칫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어디로 도망칠 수 있는지 보자!”
1만 척 떨어진 곳에서 갑옷은 입은 사내 한 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위엄이 넘쳤고 두 눈이 있는 곳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으며, 하늘을 뒤덮을 듯 강한 마기가 온몸에서 피어올랐다.
한제는 안색이 변해 곧장 나이술을 발휘했다. 허나 그 자리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본 한제의 얼굴은 충격으로 얼룩졌다.
“능천후!”
사내의 모습은 분명 검존 능천후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 ★ ★
한제의 모습은 고요성으로부터 1백 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는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눈을 번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능천후는 아니다. 많이 닮긴 했지만 훨씬 어려. 게다가 그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것은 능천후의 기운이 아니었고… 그저 비슷할 뿐인가 아니면⋯⋯.’
바로 그때, 허공 한쪽이 무너지는 듯하더니 그 검은 갑옷의 사내가 나타나 한제를 노려보며 툭 내뱉었다.
“도망가지 않고 뭐하느냐?”
사내가 손을 앞으로 뻗자 다섯 갈래의 마기가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왔다.
“능천후와 무슨 관계냐!”
한제가 몸을 뒤로 물리며 묻자 사내의 오른손이 우뚝 멈추었다. 마기로 충만한 그의 두 눈이 잠시 아득해졌다.
“능천후라⋯⋯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대나검종의 검존 능천후 말이다.”
“대나검종, 검존⋯⋯.”
사내의 눈빛이 더욱 아득해졌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미간에서 돌연 한 줄기 마혼의 그림자가 튀어나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키야아아!”
그림자의 괴성과 함께 사내의 눈에 담겼던 아득한 빛이 곧장 사라지더니 그 대신 마염이 두 눈을 뒤덮었다.
“고요!”
한제는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크게 외쳤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천요성 쪽에서 튀어나와 한제의 앞에 이르렀다.
“10년이나 늦었군!”
꾸짖는 듯한 고요의 목소리가 한제의 귀에 들려왔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나를 좀 도와주시오!”
“피를 빌려다오!”
그 순간, 한제 온몸의 모공에서 대량의 피가 분출되었다. 그 피는 한데 응결되어 인간의 모습을 이루었는데 그 형상은 고요의 것이었다.
온몸의 피 중 절반 정도를 잃은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휘청거리더니 얼른 단약을 꺼내 복용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했다.
한편, 갑옷을 입은 사내의 미간에서 튀어나온 마혼은 고요의 인영을 보더니 기이한 목소리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배이라, 감히 나를 막아서려 하느냐!”
고요의 인영이 꿈틀거리더니 뿔 달린 무언가로 변했고 기이한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그 마혼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고마(古魔) 좌하의 아홉 산마(散魔) 중 하나일 뿐인 너를 어찌 내가 막아서지 못하겠느냐!”
“고대신의 언어!”
한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혼은 고요의 형상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파문이 되어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더니 마혼은 사내의 미간으로 스며들었고 사내의 두 눈에서 번득이던 마염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이글거렸다.
사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그의 뒤로 거대한 마혼의 허상이 떠올랐다.
한제의 피로 이루어진 고요는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요력이 깃든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사내의 전신을 뒤덮은 채 짙은 안개 형태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요력의 막이 하늘에서 내려와 천요성을 뒤덮었다. 그 막 밖의 하늘 가장자리 짙은 안개 속에서는 고요와 산마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고 때때로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마염이 이글거리기도 했다.
한제는 형형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짙은 안개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고요의 신통력과 산마의 마공은 천지를 개벽시킬 위력을 보였다. 고대 신 서사의 기억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고대 신의 각종 기술들을 보는 듯했다.
한제의 두 눈은 갈수록 밝아지더니 이내 호흡도 포기한 채 두 손을 무의식적으로 들어 올려 서사의 기억에 따라 기이한 결인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갔다.
이 결인들은 겉껍질만 가지고 있을 뿐, 어떤 공격력도 가지지는 못했다. 허나 이 결인들은 원신의 기이한 견인 작용을 통해 요령의 땅 밖, 동해에 있는 문으로부터도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의 반쯤 폐허가 된 어느 작은 별에 힘을 미쳤다.
한제의 본체가 그 별의 땅속에서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빛은 마치 우주처럼 한없이 깊었다. 본체는 두 손을 들더니 하나하나의 결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체의 붉은 머리가 나부꼈고 미간에서는 별 모양 반점이 번득였다. 두 손이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킴에 따라 별 모양 반점이 빠르게 반짝거렸다. 뒤이어 본체는 두 손을 좌우로 펼친 뒤 가볍게 외쳤다.
“회수!”
그 한 마디에 본체가 있는 작은 별이 곧장 진동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영력이 지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듯 흘러나와 일제히 본체의 체내로 흡수됐다.
그 순간, 요령의 땅 안에 있는 한제 역시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짙은 안개에 고정되어 있었고 입가에서는 조용히 미소가 피어났다.
“고요와 산마의 전투로 고대 신의 술법들을 깨닫고 본체의 힘을 키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군.”
큰 성공을 거두다
전투는 사흘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한제의 잃었던 피는 선력을 통해 완전히 보충되었다. 체내의 선력도 최고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였다.
한제는 하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가 앉아 있던 대지에 돌연 황천이 나타났고 잘린 팔과 다리가 가득한 그 안에서는 애통한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산마⋯⋯ 이 이한제는 약하지만 네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서 황천 쪽으로 내던졌다.
존혼번이 황천에 빠지자 1억 개가 넘는 혼백들이 튀어나왔다.
이어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들었다. 금번은 천벌에 대항할 때 손상을 입어 금제 대부분이 부서지고 소멸된 상태였다. 한제는 그 금번도 황천에 던져 넣었다.
뒤이어 그가 꺼내 든 것은 선검이었다. 허이국은 내키지 않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됐다. 어쨌든 천요성에 돌아왔으니까. 그 예쁜 소녀가 나를 10년 동안 기다리면서 얼마나 슬퍼했을까?’
허이국은 한제가 내던진 선검과 함께 황천에 빠져들었다. 언제나 그의 곁을 따르는 굽은 칼과 함께…
잠시 후, 한제는 곤극 채찍과 검집, 말양의 검도 황천에 던졌다. 사신차와 신비의 그림 족자를 제외한 모든 법보가 황천으로 쏟아지듯 들어갔다.
무수히 많은 법보들이 한데 혼합되어 황천 안에서 뒤섞였고 극도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