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94
‘멍청한 계집애 같으니. 이자는 뭐 하러 찾는 거야? 주작성에 있을 것이지. 내가 거느리고 있는 암호랑이만 해도 몇 마리인데… 하지만 이 계집애 말대로 주작성 밖에 예쁜 암호랑이가 엄청 많다면야⋯⋯.’
여인은 묵묵히 조각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저씨, 나 벌써 결단기에 이르렀어. 엄청 빠르지? 엄청 노력했거든. 철암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내가 원영기가 되면 아저씨가 나한테 남긴 것을 주신대. 아저씨, 나 꼭 원영기에 이를 거야!”
여인이 조각상에 대고 조잘대고 있으려니 허공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운천종 안에서 체격이 좋은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도포를 입은 그에게서는 독특한 위엄이 풍겨났다.
조용히 걸어온 그는 일단 조각상을 향해 깊이 절을 올린 뒤 곁에 있는 호랑이와 여인을 자애로운 눈으로 살피며 말했다.
“은혜야,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 그저 원영에 이르는 데만 전념하다보면 수련을 그르치게 되느니라!”
여인은 조각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철암 할아버지, 아저씨가 조나라를 떠날 때 수마해에서 어떤 집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원영기에 이르렀겠어요? 수련자는 편하게만 마음먹어서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요!”
노인은 철암이었다. 당시 한제의 덕으로 원영기를 돌파하여 화신기에 이른 그는 한제에 대해 감사와 경외심으로 당시 그가 남겨준 저물대를 여태껏 손도 대지 않고 보존해오고 있었다.
주은혜는 조각상에서 시선을 거두고 철암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환하게 피어난 백합과 같은 웃음이었다.
“할아버지, 여기 오다가 주작 아저씨를 만났는데 저더러 주작산으로 가서 수련하라고 하시던데요? 그럼 수련 속도가 더 빨라질 거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할아버지한테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철암은 은혜의 신분이 주작성에서 얼마나 특수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작성의 공주라 해도 될 정도였다. 당시 한제와 알고 지냈던, 혹은 그를 두려워했거나 공경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상당한 예를 갖추었다.
심지어 선유족 사람들도 그녀에게는 매우 공손했다. 수련자는 선유족의 땅에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은혜는 예외로 인정받은 소수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주작 주무태와 선유족의 운작자를 비롯해 수많은 강자가 선물한 수많은 구명용 법보가 있었다.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이 이 결단기 수준의 여인과 맞붙는다 해도 그녀를 당해내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주작산에서 온 수련자와 거마족 족장 치호가 배치한 고수는 물론이고 운천종 사람들도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주작성에서 그녀가 위험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철암은 큰 걱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애롭게 말했다.
“그래, 주작산에서 수련에 집중하면 머지않아 원영기에 이를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은인님이 맡기신 물건을 꼭 네게 주마.”
주은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조각상을 또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거대한 호랑이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소백! 주작산으로 가자!”
소백은 포효하며 훌쩍 뛰어올라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사실 나도 이한제 그자 덕을 톡톡히 봤지. 이전까지 나를 잡으려 했던 수련자들도 이제 나를 보면 공손하게 구니까. 쳇, 그러고 보면 이 계집애가 주작성을 떠난다고 해도 함께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천요성 밖의 용담은 항상 수많은 요병이 지키고 있었다. 숨겨진 제도의 몇몇 강자들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해왔는데 이들은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용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요력이 흘러넘치는 용담은 10년 전 천벌이 강림했을 때조차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용담의 물에는 짙은 요기가 배어 있었고 그 깊은 곳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요력의 막으로 막혀 있는 그 공간은 거대한 지하 동굴이었다.
이 동굴 안에는 시커먼 조각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모습은 고요와 완전히 똑같았다.
조각상의 두 눈에서 요력의 빛이 번득였다.
조각상 아래로는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는 그리 많지 않은 진득한 액체가 있었는데 검은 갑옷을 입은 한제는 두 눈을 꼭 감고 그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보라색 수정으로 온몸이 싸인, 능천후와 닮은 사내가 있었는데 썩어 들어갔던 몸이 천천히 아물고 있었다.
조각상의 두 눈에서 때때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와 한제의 체내에 섞여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한제의 몸은 작게 경련했다.
한제의 원신에는 그와 고요가 힘으로 억누른 마혼의 그림자가 잠들어 있었다. 한제는 그것을 아예 삼켜 수준을 높이는 데 자양분으로 쓸 생각이었다.
이 강력한 산마를 바로 삼켜버리기는 힘들어, 이 용담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은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완전히 삼키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한제는 수많은 금제를 만들어 산마에 찍었다.
또한 한제는 고요의 도움으로 산마의 미간에 낙인 하나를 찍어두었다. 다만 산마가 너무나 강한 탓에 낙인이 깊게 남지는 않았기때문에 한제는 끊임없이 원신으로 압박해야만 산마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이 날, 두 눈을 번쩍 뜬 한제의 눈에서는 마기 어린 빛이 번득거렸다.
‘이 산마를 삼키는 것은 지금 나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허나 원신의 낙인을 끊임없이 보강하다 보면 언젠가 이 산마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굳이 삼키지 않더라도 내 두 번째 원신으로 삼을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원신은 문정기에 이른 수련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독특한 신통력이지만 모든 수련자가 이 신통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패의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두 번째 원신의 배태(胚胎)였다.
배태가 강할수록 두 번째 원신 제작의 성공확률을 높일수 있으나, 두 번째 원신의 제련에 실패하면 수련자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두 번째 원신은 수련자의 육체에도 꽤나 큰 부담과 손상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련자는 두 번째 원신을 제련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제가 만난 사람 중 문정기 수련자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수준인 수련자 중에도 두 번째 원신을 가진 자는 없었다.
“이 녀석은 고마(古魔) 좌하의 아홉 산마 중 하나다. 세상에 이 녀석을 뛰어넘는 배태는 매우 적지. 이것으로 두 번째 원신을 만들어낸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거야!”
한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 내 원신과 육신은 이미 철저히 융합이 된 상태로 문정기 수준이 공고해졌다. 큰 위험은 넘겼으니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우선 능천후의 남은 검기부터 손에 넣어야 한다.”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용담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갑옷을 매만지던 한제의 눈에 흥분이 어렸다. 이 갑옷은 상당한 법보였다. 다만 이 갑옷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한 마기를 흡수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래도 이것을 입고 마기를 통해 신통력을 발휘하면 이전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내 수준이 충분치 않은 관계로 이 갑옷의 진정한 주인이 되지도 못했고 이 갑옷의 힘을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산마를 두 번째 원신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이 마갑의 위력도 완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되겠지!”
한제는 갑옷을 매만지다가 저물대에서 갑옷의 한쪽 팔 부분을 꺼냈다. 갑옷의 팔 부분은 저물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검은 선이 되어 한제의 팔을 감싸더니 그대로 갑옷 모양이 되었다.
“가려는 모양이군.”
고요의 목소리가 조각상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몸을 돌린 한제는 조각상을 향해 포권을 한 뒤 말했다.
“세 번이나 날 도와준 은혜는 잊지 않겠다. 이번에 나간다면 반드시 이전의 그 약속을 지키도록 하지!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좀 있다.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고요는 잠시 침묵하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당시 주일이 그에게 주었던 보탑이 튀어나왔다.
“찾아야 하는 검령 하나가 있다. 이 탑에 그의 신식이 깃들어 있어.”
고요는 신식으로 사방을 한 번 훑더니 말했다.
“우리 천요군 안에 이 검령의 기운은 없다. 허나 요령의 땅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전역을 다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지. 만약 네가 요를 되찾아 준다면 그것을 흡수하여 더 넓은 범위를 탐색할 수 있겠지. 지금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면 고마의 탑을 이용해 네 스스로 신식을 펼칠 수도 있다.”
한제는 보탑을 다시 챙겨 넣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곁에 놓인 수정으로 봉인된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는 내가 데려가겠다.”
“가져가라. 허나 1백 년 안에 요를 가지고 돌아와 나를 회복시켜야 한다.”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의 유산으로 기이한 경지를 느끼고 그곳에서 내 신통력을 만들어내고 싶군.”
“그야 어렵지 않지. 허나 난 너를 몇 번이나 돕고 너와의 약속도 지켰는데 너는 아직 어떤 보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일은 네가 요를 하나 가져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좋아. 하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좀 벅찰 것 같은데…”
“오늘부터 넌 나의 사자다. 고요의 사자는 요제보다도 높은 신분이지. 우리 천요군은 화요군과 정식으로 전쟁을 시작하여 화요군을 병합할 것이다. 화요군의 제도인 요천(妖泉)에 이를 때까지 내가 일러준 주문을 잊지 마라.”
한제는 포권을 한 뒤 수정에 감싸인 사내를 쥐고는 몸을 훌쩍 날려 용담에서 나갔고 곧바로 순간이동을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실 그가 고요에게 주일을 찾아달라고 한 것과 유산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것은 고요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허나 고요의 말대로 상대는 이미 자신을 여러 차례 도왔으나 자신은 아직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더 강하게 요구했다가는 자신의 진심을 의심할지도 몰랐다. 대신 고요는 한제가 자신에게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조금은 마음을 놓을 것이다.
고요성으로부터 1만 리 떨어진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정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이자와 능천후는 분명 관계가 있어. 분명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야!”
한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이술을 발휘했다.
그가 가려는 곳은 자서가 묻혀 있는 화요군이었다.
몇 차례의 나이술을 통해 한제는 어느덧 화요군에 진입했다.
자서가 묻혀 있는 곳은 어느 숲이었다. 이 숲의 대부분은 메말라 있었고 바닥에는 잘린 팔과 다리가 썩은 상태로 널려 있었다.
하지만 미약한 금색 빛이 번득이는 자서의 시체는 전혀 썩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그 곁에는 수많은 새와 짐승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아마도 자서의 시체를 먹으려고 왔다가 죽은 것이리라.
먼 하늘 끄트머리에서 푸른빛 한 줄기가 나타났다. 이어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신식을 펼쳐 자서의 시체를 발견한 뒤 몸을 훌쩍 날려 1백 척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예상대로 저자의 체내에는 보물이 있는 듯하군.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강력한 검기를 방출할 리 없지.”
중년 남자는 희색 어린 얼굴로 자서의 시체를 주시했다.
자서의 검기
자서의 시체는 상당히 구석진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기조차 힘들었다. 짐승에 관련한 술법을 수련한 중년 사내는 신식은 강하지 않았지만 짐승들을 통해 주위를 감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자서의 시체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서의 시체를 주시하다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 안에서는 한 무리의 검은 풍뎅이들이 붕붕 소리를 내며 튀어나와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이 풍뎅이들이 시체로부터 1백 척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체에서는 금빛이 번쩍였고 그 빛에 모든 풍뎅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나 중년 남자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기뻐했다.
“정말로 보물이 있는 모양이야!”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다른 술법을 부리려 했다. 한데 그때, 돌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한 욕심은 죽음을 부르는 법이다.”
사내는 깜짝 놀라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쌀알만 한 벌레들이 마치 구름처럼 빽빽하게 떼를 지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들었다.
허나 그 틈에 몸을 물러선 사내는 뒤를 돌아보고는 찬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갑옷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렬한 마기가 피어올랐고 중년 사내가 쏘아 보낸 벌레들은 이미 그 마기에 닿아 터져 나간 후였다.
중년 사내는 재빨리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몇 걸음 물러나 포권을 했다.
“이보게, 도우. 어찌 내가 사제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방해하는 겐가?”
“사제?”
검은 갑옷의 사내, 한제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다네. 우리는 합운파(合雲派)의 제자로 내 이름은 등운, 사제의 이름은 주곡일세. 우리는 함께 이 요령의 땅에 들어왔는데 사제가 이토록 허망하게 죽어 있을 줄이야… 합운파의 제자들만이 내뿜는 이 금빛이 아니었다면 나도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을 걸세.”
등운은 슬픔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등운은 약삭빠른 사내였다. 그의 표정이 어찌나 슬퍼 보이는지, 모르고 봤더라면 한제도 깜빡 속아 넘어갔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