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99
한데 한제는 그 은빛 뿔을 본 순간 크게 실망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몸을 훌쩍 날리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네 번째 붉은 문양이 그의 손짓에 따라 번개에 휩싸인 뇌수를 향해 돌진했다.
“옥패에서는 두 번째 사신차가 완벽하게 두 번째 봉인을 활성화시켰을 때 금색 뿔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순식간에 뇌수의 곁에 이른 한제는 오른손을 뻗어 뇌수의 미간을 눌렀다. 옥패에서 언급한 대로 혼수가 뇌수로 진화한 후, 첫 번째 뿔이 나타나는 그 순간이었다. 혼수의 생에 유일한 낙인기(烙印期)이기도 했다. 낙인기는 제작자가 일부러 낙인을 찍기 위해 만들어놓은 시기다.
붉은 문양이 미간에 찍힌 순간, 뇌수의 은색 뿔에서는 약간의 금빛이 번쩍였다. 한제는 흠칫 놀랐지만 그 금빛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네 개의 붉은 낙인이 찍힌 후로 한제를 바라보는 뇌수의 눈빛에서 사나움은 사라졌으나, 그렇다고 온순한 눈빛도 아니었다. 그저 한제를 한 번 훑어보더니 사신차 안으로 훌쩍 사라졌다.
한제는 사신차를 저물대에 집어넣은 뒤 눈을 번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금색 빛,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 어쨌든 은색 뿔이라 해도 그 위력은 문정기 중기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야! 이제 특별한 법보나 신통력이 없는 문정기 중기 수련자라면 날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제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의 주작과 검은 옷을 입은 그 노인의 수준은 모두 문정기 후기였다. 그들에게는 뇌수를 동원한다 해도 대적하기 힘들어. 그렇다 해도 능천후의 검기가 있으니 문정기 후기 수준의 상대라 해도 두려울 것은 없지!”
한제는 순간이동을 통해 연혼 부족의 탑으로 돌아왔다.
“문정기 후기가 그렇게 강한 것은 수련 1단계의 막바지라고 할 수 있는 단계인 경계 때문이야. 나와 같은 문정기 초기 수련자라면 능천후의 검기나 당시 존혼번 안에 들어있던 네 번째 주요 혼백처럼 하늘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법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에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혼잣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네 번째 주요 혼백은 주작에게 패배했고 둔천 스승님 역시 숨을 거두셨지. 당시 그 마탑 아래에 있던 노인은 풍우뇌전의 신통력은 그가 가지고 있는 술법 중 가장 약한 것이라고 했어.”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만약 내가 1백만 개 이상의 살육의 기운과 존혼번, 사신차, 그리고 도를 이용한 황천을 가지고 있다면⋯⋯ 문정기 후기 수준의 상대에게 이길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능천후의 검기가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저물대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제 검초십이자의 검들을 제련해볼까? 이것들은 원래의 주인에게는 과분한 존재였지. 이 안에는 또 다른 신통력이 존재하는데 그 신통력은 협공으로만 발휘되는 것 같더군.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한제는 저물대에서 말양과 자서, 해저의 검을 꺼냈다.
세 자루의 검은 서늘한 검기를 내뿜었다. 한제는 원신의 기운을 한 모금 뱉어내 푸른 안개를 만든 뒤 그것으로 세 자루의 검을 감싼 채 제련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연혼 부족에서 10만 리 떨어진 곳의 상공에는 몇 갈래 빛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금색 옷을 입고 있었고 온몸도 금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듯한 그는 매우 냉정하고 고고해 보였다.
그의 곁에는 눈처럼 흰 옷을 입은, 당당하고 늠름한 청년이 있었다. 허나 그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해 보였고 눈빛은 복잡했다.
“허운산,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금색 옷의 남자가 곁눈질로 청년을 바라보며 차게 물었다.
하얀 옷의 청년은 한제와 함께 요령의 땅에 들어왔던 현연파의 소종주, 허운산이었다. 처음 요령의 땅에 들어왔을 때 곁에서 그를 보호해 주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허운산은 흠칫 놀라며 얼른 대답했다.
“존자(尊者)님, 저는⋯⋯.”
금색 옷의 사내는 허운산의 말을 끊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변명할 것 없다. 나의 수련자 연맹에 들어오기로 한 이상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네 여동생이 아니었다면 이한제를 생포해 엄청난 전공을 세울 기회를 가질 수나 있었겠느냐?”
허운산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혼 부락의 이한제가 천운종의 이한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 같은 사람일 리 없어.’
그때, 금색 옷의 사내가 대열의 끝에 있는 검은 옷의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 이한제를 생포하기 위해 선조 어르신께서는 선위까지 파견하셨다. 위험할 것도 없어. 하지만 그 이한제가 도망치지 않도록 주의는 해야겠지!”
남자의 생김새는 평범했고 얼굴에는 어떤 동요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 어떤 일도 그의 표정을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사방에는 미세한 파문이 일어 느릿하게 퍼져 나가면서 허공에 은근하게 섞여 들고 있었다. 그 파문에 사내의 기운은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 일반적인 수련자의 신식으로는 그의 존재조차 발견하거나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신통력을 통해 그가 문정기 초기 수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다만 그의 수준은 어딘가 특이했고 원신에서도 원기의 존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편, 같은 시각,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며 번개와 같은 눈빛을 번득였다.
“십삼, 손님들이 오시는구나. 잘 맞이하도록!”
수련자 연맹 일행은 맑은 바람과 하얀 구름을 따라 연혼 부족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저 멀리 끊임없이 이어진 검은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짙은 안개에 눈은 물론이고 신식을 통해서도 안쪽을 살필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굴지 않았다가는 그 안의 혼백에 의해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쉭쉭 소리가 검은 안개 속에서 흘러나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반경 수백 리를 뒤덮은 검은 안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금색 옷의 사내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고작 저 정도의 방어막뿐이라니… 저것만 해치운다면 그자를 곧바로 생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곁을 따르던 몇몇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검은 안개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한편, 허운산은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선위 한 명을 보내 이한제라는 이름의 수련자를 생포해 오라 명했다는 말에 일행은 이번 일을 그저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그들은 선위만 있으면 이번 일을 처리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운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포함해 약 스무 명 정도로 이들 대부분은 영변기 초기였으며, 단 몇 명만이 영변기 중기에 달했다. 영변기 후기 수준은 단 한 명으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침묵하고 있는 풍 씨 성의 사숙이었다.
선위
허운산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발의 노인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겼다.
그 노인이 바로 풍 사숙으로 허운산 아버지의 사제였다. 이번에 그가 요령의 땅에 들어온 것은 허운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지금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여동생은 선조에 의해 기억이 말소된 채 그의 꼭두각시가 되었고 체내에 선종(仙種)이 심어진 자신 역시 선조의 손에 생사가 달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어떻게 이곳까지 몰래 쫓아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자신과 풍 사숙은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저것은 허장성세일 뿐이다. 10호, 네가 가서 저 검은 안개를 처리해라!”
금색 옷의 사내가 소리쳤다.
그의 곁에 있던 영변기 초기 수련자는 구겨진 얼굴로 잠시 망설였으나, 감히 반항을 할 수도 없었기에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공손하게 말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전방의 검은 안개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검은 안개에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 깃든 힘에 원신이 압박받는 느낌이 들었다. 쉭쉭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도 신통력이 깃든 듯했다.
이 수련자는 검은 안개로부터 1만 척 떨어진 곳에 이른 뒤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더 다가갔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금색 옷의 사내가 벌컥 화를 냈다.
“감히 명령을 거역하는 게냐!”
상사의 재촉에 수련자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이렇게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이대로 끝을 내는 것이 나아. 이곳에서 죽는 것은 어쩌면 해방일지도 모른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억지로 앞으로 몸을 날려 마치 유성처럼 검은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의 몸은 1만 척을 주파했다. 한데 바로 그때, 검은 안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콰르릉!
하늘과 땅을 뒤흔들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에서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입이 나타나더니 달려들던 수련자를 삼켜버렸다. 이어서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안개는 성난 파도처럼 솟아올라 버섯과 같은 형태가 되더니 끊임없이 바깥쪽을 향해 퍼져 나갔다.
일행의 눈에 충격의 빛이 어렸다. 그들은 검은 안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치 검은 안개의 코앞에 있는 것처럼 온몸에서 땀이 솟았다.
대열의 끝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선위도 순간 밝은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검은 안개를 자세히 살폈다.
“대⋯⋯ 대장, 저 검은 안개는⋯⋯.”
누군가가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색 옷을 입은 사내는 어두운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3호, 네가 가라!”
백발이 성성한 그 노인은 바로 풍 사숙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말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허운산은 주먹을 바르쥔 채 멀어져가는 풍 사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한데 풍 사숙이 1천 척 거리로 들어서자 검은 안개가 돌연 솟아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그러더니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텅 빈 통로가 나타났다.
그 통로에서 곧 냉랭한 표정의 청년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노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수련자 연맹 일행들을 살핀 뒤 덤덤하게 말했다.
“선조 어르신께서 여러분들을 안쪽으로 들이라 하셨습니다.”
금색 옷의 사내는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날카롭게 소리쳤다.
“3호, 저자를 죽여! 그 길을 따라가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풍 사숙은 냉랭한 표정의 청년, 십삼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그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검은 안개가 휩쓸었고 이내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이 광경에 수련자 연맹 일행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허운산은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십삼은 오른손을 뻗으며 말했다.
“들어오시죠!”
말을 마친 그는 태연히 몸을 돌려 뒤쪽으로 걸어갔다.
금색 옷의 사내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선위를 힐끗 살피더니 약간 안정을 되찾은 듯 말했다.
“가자. 가서 이한제 그자가 과연 어떤 수작을 부려 놓았는지 보는 거야!”
일행은 검은 안개 사이의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서자 다시금 검은 안개가 맞물리면서 통로가 사라졌다.
그 무렵, 안으로 들어선 금색 옷의 사내와 일행은 화들짝 놀라더니 거의 넋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건 무슨…?”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부락으로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냉랭한 눈으로 허공에 떠 있는 수련자 연맹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