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05
그 옥패를 신식으로 살피던 한제의 눈빛은 밝아졌고 마음은 떨려왔다.
세 가지 선보의 사용 방식과 하나의 진정한 선술이 기록된 옥패였다.
“청상, 너는 이제 막 우(雨)의 선계의 선군이 되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네게 주는 물건이다. 이 세 개의 선보는 너를 위해 만든 것이며, 선술은 높은 단계의 선술은 아니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니 너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쇄신필, 이 법보는 태양의 힘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채집한 12성신이 태초의 힘을 포함한 12개의 문양이 되었으니 이 붓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은 가히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곤선망과 또 다른 법보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 법보인 곤선망은 그 위력은 평범하나 그 안에 깃든 기혼(器魂)은 제 나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 퍽 재미가 있다. 너도 꽤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법보는 네가 가진 우(雨)의 선검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이 법보의 이름은 사령(祀靈) 검집으로 선검을 이 안에 넣으면 검령이 커진다. 또한 이 법보는 세선지(洗仙池)에서 찾은 삭선금(朔仙金)으로 만들어졌다.”
한제는 흠칫 놀랐으나, 일단 마저 살피기로 했다.
“선술로 말할 것 같으면 하급 선술이라 위력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재미있는 신통력을 보인단다. 이 선술의 이름은 정신술(定身術)로 아버지가 어느 기이한 원고 시대의 별에서 무의식중에 얻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정리를 통해 복원해냈다. 아마도 이 선술은 어느 거대한 조합을 이루는 신통력의 한 부분인 듯하구나. 허나 안타깝게도 온전하지는 않단다.”
한제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 옥패 안에 담긴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세 개의 법보와 선술의 소개와 상세한 사용 방법이었다. 이 부분에는 어떤 금제도 걸려 있지 않아 신식으로 살피기만 하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허나 나머지 두 부분에 대해서는 몇몇 단어만 살필 수 있을 뿐 내용을 말끔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부분에는 선위의 제작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왜소한 노인은 드문드문 볼 수 있는 단어를 통해 선위를 만드는 방법을 추측한 모양이었다.
“이 옥패에는 아버지가 혈맥으로 만든 금제가 배치되어 있으니 네 피가 없다면 이 금제를 풀 수는 없단다.”
옥패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이 옥패가 방치된 지는 너무나 오래되었고 그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옥패를 만든 자의 강력한 신통력도 견뎌내지는 못했다. 첫 번째 부분의 봉인은 이미 완전히 풀린 상태였고 두 번째 부분도 반 정도는 풀려 있었다. 허나 세 번째 부분만큼은 봉인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세 개의 선보 중 내가 본 것은 두 개뿐이고 사령 검집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 물건들은 청상이라는 여인에게 보내진 것들이었어. 여인의 이름이 청상이라면 그 아버지는⋯⋯?”
한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선제 청림!”
한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 옥패에 기록된 말에 따르면 청상은 우의 선계의 선군이었어. 그리고 그 여인에는 우의 선검이라는 이름의 법보가 있었지.”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 다시 한 번 밝은 빛이 번득였다.
“우의 선계와 우의 선검⋯⋯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주일 선배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 여인의 시체⋯⋯ 설마 그녀가 선제 청림의 딸이란 말인가?”
한제는 곧장 주일에게서 받은 보탑을 소환해 그 안에서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시체를 꺼냈다.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던 한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펼친 채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불어와 여인의 오른팔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피가 흘러나오기도 전에 붉은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를 본 한제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능천후의 검기를 두 손가락에 응집시킨 뒤 손을 다시 휘둘렀다. 순간, 하얀 옷을 입은 시체 여인의 오른팔에 붉은 흔적이 다시 나타났고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다소 느리게 아물어 갔다.
한제는 능천후의 검기를 거두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여인의 팔에 난 상처에서 피 한 방울이 솟아올랐다. 한제는 곧장 여인의 시체를 보탑의 제자리에 넣은 뒤 보탑을 저물대에 챙겼다.
“당신이 과연 청상이 맞는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
한제는 여인의 핏방울을 쥔 채 옥패를 내리눌렀다.
그 순간, 붉은 안개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더니 옥패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옥패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며 한 층의 푸른 가루가 떨어져 나왔다. 이어서 수정처럼 반짝이는 붉은색 선 한 가닥을 품은 푸른색 옥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제는 그 옥패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틈도 없이 얼른 그것을 신식으로 살폈다. 그러더니 보기 드물게도 그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저 여인이⋯⋯ 정말 청상이었군.”
옥패에 남아 있던 두 부분의 봉인이 모두 풀려 있었다.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신식으로 옥패의 나머지 두 부분의 내용도 살폈다. 그는 옥패의 내용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왜소한 노인은 한제가 옥패의 내용에 푹 빠져 있던 이튿날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바로 앞에 삼재검진이 바짝 붙어 서늘한 검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노인의 수준으로는 삼재검진의 신묘함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검 자체가 아니라 검이 품은 기이한 힘이었다.
한편 허이국도 한쪽에 서서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허이국은 노인의 사방을 맴돌면서 때때로 음산한 미소를 드러냈고 굽은 칼을 몇 차례 휘두르기도 했다.
며칠 뒤, 한제는 옥패에서 신식을 거두고 두 눈을 번쩍 뜬 뒤 긴 한숨을 뱉어냈다.
‘선인은 수련자보다도 더 냉혹하군. 그들에게 선위는 사람이 아니라 법보일 뿐. 심지어 상중하의 등급으로 나누기까지 했지. 하급 선위는 현재 문정기 후기 절정 혹은 도의 첫 번째 단계를 달성한 자의 수준에 상당한다. 중급 선위와 상급 선위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파악조차 불가능하지. 한데 세 번째 부분에 있던 지도는 분명 어느 별채의 지형도인 것 같은데…’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옥패를 집어넣더니 왜소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가져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왜소한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내 저물대는 다 네가 가지고 갔잖아. 뭘 더 가져오라는 거냐?”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저놈은 이전의 그 부부보다도 악랄해. 그들은 내게서 하나의 저물대를 빼앗아 갔을 뿐이었지만 저 녀석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가려 하는군!’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저물대에서 열 개의 옥 조각을 꺼냈다. 이 옥 조각들은 노인 휘하에 있던 선위들의 체내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 옥 조각들을 본 노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한제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옥 조각들은 하나로 뭉쳐졌다. 이어서 한제가 다시 손을 움켜쥐자 이번에는 노인이 한제 쪽으로 끌려왔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노인의 정수리를 누르더니 그의 원신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노인의 원신이 그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었고 그 순간, 한제는 입을 벌려 원신의 정기를 뿜어내 노인의 원신을 감싸 제련시켰다. 노인의 원신 안에서는 선기가 응집되어 손가락만 한 옥 조각이 되었다.
옥 조각을 손에 넣은 뒤 한제는 노인의 원신을 탑 밖으로 내팽개쳤다. 그러자 하늘을 채운 검은 안개는 노인의 원신을 그대로 흡수하여 또 하나의 혼백을 추가했다.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노인의 몸뚱이를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노인이 발견했다는 별채에 흥미를 느꼈으나, 지금은 그곳에 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남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수준과 법보를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고요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우선 새로 손에 넣은 두 개의 법보와 하급 선술을 연구할 생각이었다.
선술에 생각이 미친 한제는 가슴이 벅찼다.
이것은 진정한 선술이었다. 지금껏 그가 익혔던 것 중 살육 선결을 제외하면 모두 하급 선술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선술은 진정한 법술로 일체의 신통술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요령의 땅에 이렇게 계속해서 들어오려 하는 것도 고요와의 융합을 통해 선술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천운종에서 선술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천운칠자의 봉호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천운자로부터 얻는 선술은 보통의 선술일 뿐이었다.
“정신술!”
한제는 옥패에서 봤던 그 선술의 이름과 주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감은 그는 그 선술에 완전히 집중했다.
★ ★ ★
어느덧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천요군과 화요군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또한 나머지 군에서도 더는 기다리지 않고 출격을 준비했다.
천요군의 고요는 화요군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미리 이를 고려하여 나머지 군이 달려들려 할 때 자신의 힘으로 천요성 전역을 봉인할 생각이었다. 천요군의 다른 도시들은 포기하고 수도와 용담만을 보호하면서 한제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리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는 한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한제가 그렇게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제가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곧장 신통력을 발휘하여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연혼 부락은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확장하고 또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화요군의 전장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검은 옷을 입은 기이한 행적의 사람들이 교전 중인 양측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이들은 전장에 나타날 때마다 대량의 혼백을 흡수함과 동시에 대량의 생기를 앗아가곤 했다.
또한 그들은 요병들을 훨씬 능가하는 실력으로 하나하나의 전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적들을 죽였는데 이에 양측의 대군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요장으로 승급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화요군에서의 전쟁은 한제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완전히 선술에 빠져 있었다. 선술은 보통 신통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히기가 어려웠다.
20년은 한제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선술에 대한 연구와 선보에 대한 통제를 하느라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부지불식간에 또 50여 년이 더 흘렀다.
고요와의 약속을 지킬 시간은 이제 10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근 1백 년 동안 한제는 선술과 선보를 연구하면서도 산마에 낙인을 찍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에 산마의 심신에 찍힌 한제의 낙인은 갈수록 깊어져 갔다.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한제는 정신술(定身術)에 대해 겉핥기 정도의 이해밖에 하지 못했다. 이 선술은 마치 굉장히 심오한 학문처럼 끊임없이 파고 들고 끊임없이 깨달아야만 시연해낼 수 있었다. 이 술법이 신기한 것은 체내 선력의 양이 아니라 천도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이 선술에 푹 빠진 한제는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었다. 그가 폐관수련을 한 수십 년 동안 연혼 부족은 화요군으로 나아가 혼백을 수집해오곤 했다.
허나 각지의 다른 군에서 천요군으로 병사들을 파병한 뒤는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세력 범위 안에서 방어에 힘썼다. 또한 파병을 나갔던 부족원들도 돌아왔다. 허나 이들의 세력은 작았기에 존혼번의 검은 안개 아래에서 방어만 할 수 있을 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폐관수련을 끝내다
철통같이 보호되고 있는 천요군의 수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게 되자 다른 군의 요병들은 연혼 부락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작은 부락은 이상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특히 상공에 떠 있는 검은 안개는 천연적인 방어 기능을 해 벌써 여러 차례 요병들의 진격을 저지했다.
물론 모든 군이 연혼 부락을 묙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두 군의 지도자만이 그렇게 명했으며, 나머지 다섯 개의 군에서는 화요군을 공격했다.
일곱 개의 군에서 파병한 요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천요군처럼 병력을 총동원하겠다는 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수요군(水妖郡)과 뇌요군(雷妖郡)은 각각 한 명의 부수를 내세워 10만 명의 요병들을 이끌고 남북으로 나뉘어 연혼 부락을 포위했다.
수요군의 부수는 여자였는데 외모는 평범했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한편 뇌요군의 부수는 중년 사내로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의 몸에는 번개 빛이 흐르고 있었고 발아래의 지면은 시커멓게 타 있었다.
“이 조그만 황야의 부락에 이런 보물이 있다니, 흥미롭군!”
이 중년 사내의 목소리는 종소리와 같아서 혼잣말을 하는데도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천요군에서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지만 저 부락에 있는 기이한 보물을 가져다가 요제 폐하께 바치는 것도 괜찮겠지!”
사내는 번개처럼 눈빛을 번득이며 발을 굴렀다. 그의 발이 닿은 곳에서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