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08
긴 창이 날아든 순간, 한제는 오른손에 한 줄기 살육의 기운을 응집하여 앞으로 뻗었다.
쾅!
한 번의 충돌로 폭발적인 힘이 퍼져 나가면서 마치 수많은 천둥번개가 한제와 고요 사이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펑펑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여파로 살육의 기운은 빠르게 소모되었으나, 고요의 창 역시 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1백만 개 살육의 기운이 모두 무너져 내리려던 순간,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거두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의 오른손에 응집되었던 살육의 기운은 금세 다시 끓어오르며 회복되었다.
쾅!
한제는 다시 손가락을 펼쳐 날아드는 창을 또 한 번 저지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제는 1천 척 밖으로 밀려났고 창의 위력은 점점 약해져 결국에는 화마지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 무렵,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다. 대량의 피가 빠진 상태에서 무리를 한 탓에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한제는 쉬지 않고 몸을 날려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몸을 날려 향하고 있는 곳은 도성 중앙의 요곡이었다.
화요군의 고요가 몸을 숨긴 곳에 가서 고요의 신식이 담긴 의탁물을 꺼내오는 것이 한제가 배이라와 한 약속의 세 번째 단계였다.
한제는 두 고요의 전투는 쳐다보지도 않고 번개처럼 몸을 날려 한달음에 요곡에 진입했다.
요곡 안은 고요했고 그 깊은 곳에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조각상에서는 요기가 피어올라 고요의 체내로 흘러들고 있었다.
한데 앞으로 나아가려던 한제는 순간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요곡 안의 조각상에서 한 줄기 파문이 일어나더니 조각상에서 피어오르던 요기가 더는 고요에게로 흡수되지 않고 한데 뭉쳐 고요의 분신을 만들어냈다.
한제와 비슷한 크기인 고요의 분신에도 두 개의 뿔이 나 있었는데 그 몸은 허공에 뜬 채 요기를 줄기줄기 피워 올려 조각상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분신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기이한 빛을 번득였다.
한제는 말없이 그 고요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걸음을 뒤로 옮겼다. 눈앞의 고요는 분신일 뿐이었지만 그 수준은 굉장히 높았다. 한제는 능천후의 검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대항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한제! 그 조각상을 부수고 내가 화요군의 고요와 융합할 수 있도록 도와라! 그럼 나머지 일곱 고요와는 싸움 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깨달음도 줄 수 있다. 날 돕는다면 네 신식까지 융합할 것이다. 그럼 너는 두 고요의 유산을 받는 것과 다름없지.”
배이라의 목소리가 신식 안에서 울렸다.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득도 이득이지만 원한과 은혜 모두 철저히 갚는 그의 성격상 벌써 두 번이나 자신을 위기에서 도와준 배이라에게 보답을 해야만 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능천후의 검기 두 개를 하나로 만들어 손가락에 응집시켰다. 그의 눈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요곡 전체로 확산되었다.
고요의 분신은 신중한 표정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기이한 빛을 번득이는 문양들이 응집되었다.
한제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서면서 능천후의 검기를 휘둘렀다. 순간, 온 요곡이 검기로 가득 차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요기가 무너져 내렸다. 능천후의 검기에 포함된 포악함이 폭발하면서 폭풍이 나타나 요곡을 휩쓸었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땅 여기저기애서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그때, 고요의 분신이 그린 문양이 기이한 빛을 번쩍거리면서 하나의 촘촘한 문양의 그물이 되더니 능천후의 검기로 인한 충격을 저지했다.
화요군의 고요는 대부분의 신식을 배이라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머지만으로 만들어진 분신조차 문정기 후기 수준에 달했다. 만약 한제에게 능천후의 검기가 없었다면 대적할수 없었을 것이다.
콰르릉! 쾅! 펑!
문양의 그물은 금빛을 번득이는 검기와 충돌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문양의 그물을 관통한 검기는 곧장 고요의 분신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고요의 분신은 몸을 훌쩍 날려 요기가 되더니 능천후의 검기를 감싸 안았다. 짙은 요기 안에서 검기가 웅웅거리며 울었다.
그 틈을 타 한제는 요곡 안으로 들어서더니 한달음에 조각상 앞에 이르렀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어 조각상을 꾹 눌렀다.
“그만둬!”
천둥번개보다도 더 우렁찬 두 개의 목소리가 하나는 하늘에서, 다른 하나는 검기를 감싸 안은 요기에서 울려 퍼졌다. 이어서 거대한 손 하나가 돌연 하늘에서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골짜기 안에서도 한 줄기의 요기가 빠져나와 고요의 머리 형태가 되더니 한제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거대한 손과 머리가 접근한 순간, 한제는 자신의 선력을 조각상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 돼!”
처절한 목소리와 함께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조각상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대량의 요력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능천후의 검기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요기를 뚫고 나와 훌쩍 날아들더니 한제를 삼키려 들던 고요의 머리를 휩쓸었고 이어서 엄청난 속도로 조각상을 강타했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조각상이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손은 흩어져 사라졌다.
“크아아!”
분노가 가득한 포효가 들려왔으나, 배이라의 공격에 화요군의 고요는 더 이상 한제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한데 대량의 요기를 내뿜으며 무너진 조각상 안에 팔뼈가 하나 걸려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손을 뻗어 그 팔뼈를 쥐었다. 한데 그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체내로 흘러들어오더니 원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큭!”
신식이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제는 기이한 공간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늘도 땅도 없는 허무의 공간 사방을 기이한 힘이 뒤덮고 있었다. 한제의 신식은 마치 진화된 듯 심신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하나하나의 장면들의 허무의 공간에 이른 한제의 눈앞을 스쳐갔다. 수련자의 길에 오른 이래 지금껏 배운 모든 술법을 담은 장면들이었다.
앳된 소년이 두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돌이 느릿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은 잔뜩 흥분한 채 그 커다란 돌을 가지고 끊임없이 수련했다.
이내 그 장면은 진동하더니 무너져 내렸고 그곳에서 앳된 소년이 빠져나와 한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내 한제 옆에 앉은 소년은 아무 말도 않고 두 손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인력술을 발휘했다.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바람에 긴 머리를 날리는 냉혹한 얼굴의 청년이 두 눈을 살짝 감았다가 가늘게 떴다. 청년의 눈에는 한없이 차가운 빛과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가 어려 있었고 그의 앞에서 수많은 결단기 수련자들은 하나하나 금단이 파괴되어 숨을 거두었으며, 그들의 혼백은 흩어져 사라졌다.
잠시 후, 그 장면도 사라졌고 그 냉혹한 얼굴의 청년 역시 그곳에서 나와 한제를 한 번 훑어보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에게서는 극강의 살기가 피어올랐다.
연이어 또 다른 장면들이 나타났다. 적멸지를 발휘하는 한제, 화마지를 발휘하는 한제, 황천을 만들어내는 한제 등 온갖 신통술을 발휘하는 한제가 모두 그 하나씩 나타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까지는 어안이 벙벙했다면 이어진 장면에 한제를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색 옷을 입은 한제 주위에 1백만 개의 살육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고 그가 발을 딛는 곳마다 모든 것이 소멸되는 장면이었다.
한제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마주본 그 장면 속 한제의 두 눈은 회색이었다.
계속해서 나타난 한제들 중 하나는 정신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한제에게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당시 천운자의 신식 안에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천운자가 저마다의 신통술을 발휘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당시의 경험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천운자의 신식 안에 있던 수많은 천운자는 모두 실체라 진위를 구별할 수가 없었던 반면 지금 보이는 여러 명의 한제는 모두 허상도 아니고 실체도 아닌 상태였다.
“허상과 실체⋯⋯ 혹시 이것이 수련의 첫 번째 단계를 모두 달성했을 때 진입하게 되는 음양이의의 단계인가? 난 고요의 기이한 유산을 통해 미리 이 변화를 맞게 된 것인가?”
그저 추측일 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바로 그때, 주위의 수많은 한제들이 하나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그중 가장 빨리 사라져간 것은 유일하게 회색 옷을 입은 채 살육 선결을 발휘하던 한제였다.
그 순간, 한제는 뭔가를 깨달은 듯 몸을 훌쩍 날려 살육 선결을 발휘하던 그 회색 인영과 몸을 하나로 합쳤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화요군에서 벌어지던 전투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고 천요군의 요병들은 천요군으로 되돌아갔다. 근 1백 년간 지속되던 전쟁은 천요군의 고요가 화요군의 고요를 집어삼킴으로써 끝이 났다.
고요 배이라는 첫 번째 흡수를 마치고 화요군의 잔혼을 융합한 후로 한제의 피를 빌리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천요군의 수도 용담 안에는 한제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한제는 그날 팔뼈를 만진 순간 기이한 공간에 빠져들었지만 배이라가 잔혼을 삼킨 뒤 한제의 육신을 되가져와 용담으로 옮겨둔 상태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한제가 두 눈을 떴다. 그 순간 한 줄기 밝은 빛이 그의 눈에서 번득였다.
한제의 기운은 화요군에 가기 전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지금의 그는 마치 일반인 서생과 비슷했으며, 아무리 살펴도 선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맑고 향기로운, 탈속적인 느낌이 풍겨났다.
두 눈을 뜬 한제는 길게 숨을 뱉어냈다.
“우리 고요 일맥은 하늘이 열린 순간부터 신통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신통력을 통해 세상을 깨우치고 자신의 법술을 만들어나갔지. 이 신통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발휘할 수 있지만 우리 고요 일맥이 아닌 다른 생명들은 일생에 단 한 번의 깨달음밖에는 얻지 못해.”
한제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그 기이한 공간에서 회색 옷을 입은 자신과 하나로 합쳐진 그때 갖가지 환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는데 꿈같으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경험이었다.
“너 이전에 난 두 명의 수련자에게 유산을 전수해준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음 경계의 변화를 깨달았고 자신의 법술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지. 특히 두 번째 수련자는 나의 유산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신통력을 창조해냈다. 그자의 천부적인 자질은 우리 고요 일맥에 비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어.”
한제는 눈을 감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누구지?”
“그자의 이름은 허은,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고요의 목소리에는 추억을 더듬는 듯한 느낌이 묻어 있었다.
그 녀석의 동료
“허은이라⋯⋯.”
한제는 잠시 그 이름을 되뇌다가 불쑥 말했다.
“고요, 우리의 약속은 아직 하나 남아 있다.”
그때, 용담 안에서 기이한 바람이 일더니 녹색 회오리가 생겨났다. 사방을 휩쓸며 한제 앞에 이른 회오리가 흩어지자 무척 기이하게 생긴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청년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두 눈이었다. 녹색의 기이한 빛을 띤 두 눈은 청년을 더욱 신비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한제를 힐긋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잊지 않았다. 네가 깨달음을 얻고 있던 지난 몇 달 동안 이미 그 탑에 깃든 신식의 반응이 있는 곳을 찾아냈지.”
말을 마친 청년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반짝이는 빛들이 그의 손에서 나타나더니 이내 허공에 하나의 그림을 띄웠다.
그림에는 심연이 하나 있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꼭 지면에 난 거대한 틈 같았다. 심연에서는 검은 기운이 수시로 분출됐는데 그 격렬한 충격에 그림 자체가 흔들거렸다.
“너희 수련자들은 이곳을 조석의 심연이라고 부른다. 네가 찾는 자의 기운은 바로 이곳에 있지. 이곳의 입구는 총 여섯 개인데 그중 수요군에 있는 입구가 네가 찾는 그자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깝지.”
한제는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 조석의 심연이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이지?”
“이 우주에는 공간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무너져 내린 곳들이 있다. 붕괴가 일어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통로가 만들어지고 그 통로 안은 상상을 초월하는 흡인력으로 가득 차 있지. 조석의 심연이 바로 그런 곳이다.”
배이라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고 한제도 더는 묻지 않았다. 배이라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렇다면 물어도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입구가 여섯 개라면 출구는 몇 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