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16
주일의 행동은 과감하면서도 신중했다. 당시 손태를 보내 한제의 종으로 삼은 일에서도 그런 그의 성격이 드러났다.
주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아만 깨어난다면 이 유산이야 내게 무용하다. 한제야, 정아의 아버지를 찾는 것을 좀 도와다오.”
한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일은 빙그레 웃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이전까지 허이국이 몸을 의탁하고 있던 선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그 선검을 바라보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별안간 손으로 선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선검에서는 격렬한 웅웅 소리가 흘러나왔고 기이한 기운이 발산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일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몸도 흐릿해졌지만 잠시 후 원래대로 회복됐다.
“선배님⋯⋯.”
한제는 주일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앞으로 우의 선검은 세 자루뿐이다. 이 검은 네 것이다. 이전의 검령이든 앞으로의 검령이든 이 검을 통제할 권리는 더 이상 없다.”
말을 마친 주일은 그 선검을 한제에게 던져주었다.
선검을 받아든 한제의 눈에 감격의 빛이 어렸다.
이것은 엄청난 선물이었다. 총 네 자루인 우의 선검은 주일이 존재하는 이상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 검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심지어 주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청상이 깨어나 이전처럼 우의 선검의 검령을 만든다면 그리고 원고 시대의 유산을 그 검령에 준다면 마찬가지로 그 검령은 네 자루 우의 선검을 통제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네 자루의 우의 선검은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할 수 있고 모두 검령과 그 흰옷을 입은 여인에게 속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주일은 검령이자 원고 시대의 검기를 전수받은 사람으로서 선검에 걸려 있는 끝없는 윤회의 낙인을 흩어버렸다.
검령은 말하자면 검 사이에서의 황제와 같은 위치였다. 그러니 자기가 차지한 영토를 직접 분할하여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하얀 옷의 여인이 깨어나 새로운 검령을 만들어낸다 해도 이 선검만큼은 통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검령인 주일이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일은 허이국에게 원고 시대의 검기를 전수하기도 했는데 이는 허이국에게 존검령(尊劍靈)으로 통하는 새로운 문을 열어준 것과 같았다.
두 가지의 거대한 선물로 한제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바로 청상처럼 몇 번이고 사용해도 소멸되지 않을 선검을 소유할 기회였다.
앞으로 이 선검은 오직 한제만의 소유였다. 허이국은 이 선검의 1대 검령일 뿐이었다.
이는 선계에서도 선군이나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자격이자 기회였다.
주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흐릿해지더니 다시 선검으로 변했다.
“이 심연의 바닥에서 나는 선대 우의 검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주는 세 번째 선물이다. 가자!”
주일이 녹아든 선검은 번득이면서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한제는 유산을 전수받아 아직도 멍한 상태인 허이국을 선검에 집어넣은 뒤 주일을 따라 심연 아래쪽으로 향했다.
‘선대 우의 검령의 기운? 설마⋯⋯ 설마 금부는 아니겠지?’
한제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일은 검기를 가득 피워 올리며 일체의 장애물을 뚫고 그대로 조석의 심연 바닥에 이르렀다.
그곳은 거대한 복도였다. 중앙에는 캄캄하고 깊은 구멍이 있었는데 어찌나 깊은지 신식으로 살펴도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약한 흡인력이 그 거대한 구멍에서 흘러나왔다. 굉장히 약한 기운이었지만 끊임없이 느껴졌다.
그 깊은 구멍 가장자리와 돌벽에 인접한 작은 길에서는 진흙 알갱이들이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제는 경이로운 심정으로 깊은 구멍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5천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동해의 조석은 이 거대한 깊은 구멍의 폭발로 인해 일어나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제는 마치 이 깊은 구멍이 5천 년에 한 번씩 폭발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 폭발은 상상을 초월하는 흡인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흡인력은 기이한 통로를 따라 요령의 문 너머 저 먼 우주까지 영향을 미쳐 수많은 것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을 터였다.
그 순간, 한제는 자신이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신통력이 이 깊은 구멍으로 하여금 5천 년에 한 번씩 폭발하게 만드는 것인가? 어떤 신통력이 이토록 웅장한 효과를 낸단 말인가?
‘천운자라 해도 이런 일은 할 수 없었겠지. 그가 세 번째 단계에 이른다면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구멍이 어느 쪽으로 통하는지는 알지도 못했고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만약 이 안에 들어간다면 밖으로 나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확신했을 뿐이다.
“정말로 이상한 구멍이군. 너무 오래 살피지는 마라!”
앞에서 주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제는 그 말에 따라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가 시선을 거둔 그 순간, 돌연 그의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미약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내려가⋯⋯.”
그 목소리는 깊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제의 저물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석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한제는 순간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저물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식을 주입하여 저물대 안을 살폈다.
당시 주작성에서 손에 넣었던 신비의 그림 족자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는 한 줄기 보라색 빛이 번득이며 튀어나와 한 여인의 허상을 이루고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 그 여인은 한제에게 등을 보인 채 혼잣말을 하듯 끊임없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려가⋯⋯.”
그 여인의 허상은 낯설지 않았다. 선유족의 삼조(三祖)와 마주쳤을 때 상대가 문양의 마수를 소환해내자 족자 안에서 나타난 여인은 손짓 한 번으로 그것을 그림 안으로 끌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한제는 이 족자에 대해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문정기에 이른 뒤에도 연구해보았지만 진척은 없었다. 족자에 낙인을 남길 수는 있어도 통제하기란 불가능했다.
운선(雲仙) 부부, 이오와 호연
족자에서 여인의 허상이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란 한제가 신식을 통해 목소리를 전했다.
“이 구멍 안으로 내려가라는 건가?”
“내려가⋯⋯.”
여인의 허상이 다시 중얼거렸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다 신식을 거두고는 고개를 숙여 옆에 있는 거대하고 깊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안은 칠흑처럼 검은 어둠으로 차있어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 몸을 훌쩍 날려 먼 곳에 있는 주일을 쫓아갔다.
‘혹시 저 구멍 안에 족자를 이끄는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한제는 주일을 쫓아가면서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구멍 안에는 기이한 힘이 있어 심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라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대로 떨어질 수가 있어.”
앞서 가는 선검에서 주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는 살피지 말고 따라와라!”
주일이 다시 주의를 줬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고 주일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깊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흡인력은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선검이 우뚝 멈추었고 한제도 따라 멈춰 섰다.
이곳은 복도의 동쪽이었는데 전방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덮여 있었다.
“조심해라. 저 깊은 구멍 안, 뭔가 이상하다.”
주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 깊은 구멍 안에서 돌연 짙은 보라색 안개가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기이한 안개는 퍼져 나오자마자 시야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주일의 목소리도 흐릿해져갔고 신식도 제한되었다. 신식으로 살피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30척 정도였고 그나마도 흐릿했다. 흡인력 또한 점점 강해졌지만 안개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안개 속에서 검광이 번쩍이더니 선검이 날아와 한제의 곁을 맴돌았다. 그 안에서 주일이 신식을 통해 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안개는 너무나 기이하여 위험하니 너는 올라가라. 데려다주마.”
한제는 말없이 발을 굴러 선검 위에 섰다. 한 줄기 선력이 검으로부터 전해져 한제의 발을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숨을 멈추고 집중하되 마음을 열고 선기를 토해내지 말아라!”
한제는 신식에 울리는 주일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체내로 주입된 선력이 진동하면서 경맥에 녹아들었고 한제의 몸 바깥으로 금빛이 번득이는 선력의 막이 생성되었다.
이 선막(仙幕) 안에는 선력만이 아니라 검의 위력도 깃들어 있어, 사방의 보라색 안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흩어지듯 양쪽으로 갈라졌다.
주일은 유성처럼 긴 빛을 그리며 돌진했다. 선검이 지나는 곳마다 보라색 안개가 흩어졌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일반인이라면 맞바람만으로 피부가 갈기갈기 찢길 듯했다.
한참 뒤, 선검은 돌연 방향을 틀어 비스듬히 위로 나선 형태를 그리며 올라갔다.
“선대 우의 검령의 기운이 바로 앞에 있다. 속도를 높일 테니 조심하거라!”
주일은 말을 마치고는 서서히 속도를 높이더니, 어느 순간 최대의 속도를 냈다.
선검이 지난 뒤로는 잔영이 남았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한제는 선력을 이용해 선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가까스로 버텼고 10만 개의 커다란 산을 단번에 뛰어넘는 듯한 느낌에 숨도 내쉬지 못했다. 그의 몸에 둘러진 선막도 일그러졌을 정도니 선검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순간이동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를 몸소 겪은 한제는 막 수련계에 발을 들였을 때와 같은 느낌에 새삼 감개무량했다.
‘이것이 바로 선검이다. 나의 선검은 검령이 강하지 못한 탓에 아직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어. 허이국은 반골 기질이 강하지만 마혼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하니 내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
바로 그때, 돌연 사방의 보라색 안개가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듯 요동치더니 깊은 구멍의 흡인력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이 흡인력은 이전과 달리 사방을 가득 채운 안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보라색 안개는 물론이고 사방의 벽에 붙어 있던 돌 조각들도 빠른 속도로 그 깊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먼 곳의 복도 한쪽, 벽에 박혀 있던 한 자루 커다란 검도 경미하게 흔들리면서 조금씩 그 벽으로부터 뽑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완전히 뽑혀 나와 흡인력을 따라 깊은 구멍으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주일의 선검이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고 그 위에 선 한제는 낯익은 금색의 거대한 검이 깊은 구멍 안으로 흘러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기다.”
주일은 망설임 없이 그 깊은 구멍속 거대한 검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깊은 구멍의 흡인력은 안쪽으로 갈수록 더욱 강력해졌고 여기에 선검 본연의 속도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를 내게 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금빛의 커다란 검을 따라잡은 한제는 한 손으로 선검을 단단히 움켜쥔 채, 반대쪽 손으로 그 커다란 검을 잡았다.
하지만 그 검은 이미 깊은 구멍의 흡인력에 완전히 둘러싸인 상태로 한제는 그 강력한 흡인력에 대항한 셈이 됐다. 그 엄청난 힘에 한제의 몸은 순간 안정을 잃었고 하마터면 금빛 검에 이끌려 선검에서 떨어질 뻔했다.
“헛!”
위기의 순간, 한제는 헛숨을 들이켜며 도의 황천을 주위에 맴돌게 했다. 한제의 손짓에 따라 황천이 격렬하게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회오리를 일으켰고 이 강력한 바람은 불안정하게 휘청거리던 한제의 몸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덕분에 금빛의 거대한 검 또한 추락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