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18
조석의 심연으로 통하는 다른 길들은 모두 위에서 내리누르는 압력이 있으나, 유일하게 이곳만은 반대로 위쪽으로 올려주는 힘이 작용했다. 때문에 여기서는 조금의 힘만 보태도 무궁무진한 힘에 이끌리듯 위로 이동할 수 있다.
한데 어느 순간, 돌연 선검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몇 바퀴 회전한 뒤 제자리에 멈추었다. 이어서 주일의 신식이 선검에서 빠져나왔다.
“뭔가 이상하다. 신식으로 전방을 살펴봤는데 보라색 안개가 있어. 그곳에 몇몇 수련자들이 갇혀 있는 것 같은데 내 신식으로는 그 안개 속으로 진입할 수조차 없구나.”
“수련자들이 갇혀 있다고요?”
한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모용탁과 조의훤, 그리고 서희를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세 사람이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제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 무렵, 보라색 안개의 다른 쪽 끝에는 흡혈 마수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있었다. 그들은 짙은 붉은 눈으로 보라색 안개 속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들의 날갯짓으로 퍼덕이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지만 이곳의 기이한 지형 탓에 이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모든 흡혈 마수들은 매우 컸는데 배 부분이 납작한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굶주린 것 같았다. 그들의 긴 주둥이가 예리한 검처럼 서늘한 빛을 번득였다. 그들은 대부분 회색이었고 몸에 난 솜털은 날카로운 가시 같아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보라색 안개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밖을 맴돌기만 했다. 녀석들의 몸에서 피어오른 포악한 기운이 갈수록 짙어졌다.
그 옆에 있는 심연의 벽에는 몇 개의 천 조각과 이미 말라붙은 핏자국이 있었고 그 옆에는 빛을 잃고 어두워진 거대한 검도 하나 있었다.
떼를 지어 있어서인지 이따금씩 그들의 예리한 주둥이끼리 충돌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서로 부딪힌 흡혈 마수들은 상대를 죽일 듯 노려보며 더욱 위협적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또한 그때마다 흡혈 마수 무리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따라 서로 싸우려던 흡혈 마수들은 곧장 화를 억눌렀다.
허나 기다림이 길어진 탓인지 흡혈 마수들의 거친 성미와 포악한 기질은 갈수록 거세어졌다.
또 한 번 두 마수의 주둥이가 충돌했다. 그 순간, 두 흡혈 마수는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 그때…
“키야아아!”
다시 한 번 흡혈 마수의 무리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고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려 들던 두 마수는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곧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키야아!”
그러자 예의 그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동시에 흡혈 마수의 무리가 흩어지면서 통로가 생겼고 그 안에서 몸집이 약 1백 척에 달하는 흡혈 마수가 천천히 나타났다.
녀석의 몸은 무척 옅은 보라색이었고 머리에는 일곱 개의 은색 침이 꽂혀 있었다. 그 침에서는 파동이 발산됐고 이에 따라 녀석의 두 눈이 고통에 잠겼다.
이 보라색 흡혈 마수의 출현에 방금 전까지 싸우려던 두 녀석은 곧장 싸움을 멈추고는 그저 사나운 눈길로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캬아아!”
모습을 드러낸 보라색 흡혈 마수는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는데 이 소리에 모종의 신통력이 깃든 듯 모든 흡혈 마수가 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그 사이 보라색 흡혈 마수는 날개를 움직였고 순식간에 싸움을 일으킨 두 흡혈 마수의 곁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거대한 주둥이를 그 두 마리 마수에게 찔러 넣고는 그대로 빨아들였다. 두 흡혈 마수는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오그라들더니 추락했다.
보라색 흡혈 마수는 몸을 돌려 냉랭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모든 흡혈 마수는 그 위엄에 억눌려 왕에게 굴복하는 신하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보라색 마수는 이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보라색 안개 너머,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뜬 탐랑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저 기이한 마수는 굉장히 강하지만 칠마침(七魔針)으로 통제되는 이상 내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 저 녀석만 통제하면 나머지 녀석들을 다 다룰 수 있어! 이 마수들만 잘 사용한다면 능천후 그 늙은이가 온다고 해도 충분히 그자와 거래를 할 수 있어!’
탐랑은 생각할수록 득의양양해졌다.
그는 조석의 심연에 들어온 이래 줄곧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왔다. 그러던 중 어느 고랑에서 쉬고 있던 흡혈 마수를 발견했을 때 무척 놀라면서도 매우 기뻤다. 그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진으로 진출하는 것을 해결하는 데 이 기이한 마수가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탐랑은 평생 고정된 거처를 가져본 적 없이 우주 곳곳을 유랑하며 귀중한 보물이 있다는 곳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수많은 곳을 돌아다녀본 수련자답게 흡혈 마수를 본 경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어느 황량한 우주를 돌아다니다가 다른 수련자들의 추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도망치던 중 발견한 오래된 전송진에 다다른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맞닥뜨렸다.
그곳은 회색 기운으로 가득 찬 우주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별이라곤 딱 하나뿐이었는데 그 별은 짙은 보라색이었다. 바로 그 별 밖에 저런 흡혈 마수가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녀석들을 발견한 순간, 탐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들어왔던 전송진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녀석들을 상대하느니 자신을 뒤쫓는 수련자들과 맞닥뜨리는 편을 택한 것이다.
이곳에서 또다시 그 흡혈 마수들을 발견한 순간, 탐랑은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이에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목숨과 연결된 법보인 칠마침에 원신을 녹여 넣은 후 흡혈 마수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 우두머리 마수에게 칠마침을 찔러 넣은 후 곧장 고랑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 흡혈 마수들이 갑작스레 진룡 일행들을 둘러쌌다고 느낀 것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라색 안개 역시 탐랑의 계획대로였다.
한제의 예측
탐랑은 대나검종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냉소했다.
‘난 이 조석의 심연에 홀로 세 번이나 들어와 본 후에야 마침내 이 안개 속에 능천후와 천운자 등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하는 영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허나 이 영패에는 이상한 데가 있어. 내가 살펴본 바로는 이 영패는 특정한 시간에만 나타나고 몇몇의 제물이 필요하지.’
탐랑은 잔인한 눈길로 대나검종의 제자 다섯 명을 바라보았다.
‘저놈들 체내에 능천후의 검기가 있지만 않았어도 진즉 통제해 제물로 썼을 텐데. 진룡을 제외하면 모두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니 1백 년간 갇혀 있다고 징징대는 꼴을 볼 필요도 없이 모두 제물로 바쳤을 것이야!’
그 무렵, 선검에 오른 한제가 보라색 안개의 다른 쪽 끝에서부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안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고 제자리에 서서 전방의 보라색 안개를 관찰했다. 안개는 너무나 짙어 거의 실체화되어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이 보라색 안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출구로 갈 수가 없었다.
“이상한 안개로군. 내 신식으로도 저 보라색 안개를 꿰뚫어볼 수가 없다. 허나 걱정하지 마라. 저 안에 갇힌 자도 너를 감지할 수 없을 테니까.”
주일이 신식을 통해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생각에 잠겼다. 출구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힘 때문에 한제는 전신에 선력을 돌려야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보라색 안개를 주시하던 한제가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그의 저물대 안에서 파동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신식 일부를 분리해 저물대를 살폈다. 보아하니 흡혈 마수가 무척 초조해하고 있었다.
흡혈 마수는 한제의 신식을 느끼자마자 곧장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한제는 신식을 거두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흡혈 마수는 언제나 한제의 말을 잘 들었고 이토록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흡혈 마수를 밖으로 꺼냈다.
“키야아아!”
흡혈 마수는 저물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전방의 보라색 안개를 향해 돌진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흡혈 마수를 뒤따랐고 선검 안의 주일도 작게 기합을 넣으며 마수를 얼른 따라갔다.
흡혈 마수는 보라색 안개의 영향도 받지 않고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가 이내 사라졌다.
이를 본 한제는 바짝 긴장했다. 그는 흡혈 마수가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직 녀석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지금은 흡혈 마수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기에 일단 안개 속에서 천천히 위쪽으로 떠올랐다. 선검에 깃든 주일은 그 곁을 맴돌며 신식을 펼쳐 사방을 경계했다.
한편, 탐랑은 한제가 보라색 안개를 뚫고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신식은 어떤 작용도 하지 못했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였기에 한제는 경계심을 극도로 곤두세운 채 안개 속을 느릿하게 날았다. 1백만 개의 생의 낙인이 미간에서 번쩍이면서 온몸을 뒤덮은 상태였기에 혹시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손쓸 기회가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때, 한제의 곁을 맴돌던 선검에서 주일이 불쑥 신식을 통해 말했다.
“10리 전방의 텅 빈 공간에 여섯 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은 꽤나 강하군. 또한 나머지 다섯의 차림은 눈에 꽤 익다.”
“여섯 명이라고요?”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보여주마!”
주일은 말을 마친 뒤 신식을 한제의 체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제의 신식을 이끌고 공터로 다가갔다. 한제는 그를 통해 그 공터에는 있는 여섯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저들은…?”
한제는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 순간, 돌연 그들 중앙에 앉은 노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어떤 도우께서 이 탐랑을 찾아오신 겐가?”
탐랑의 외침에 사방의 대나검종 제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중 진룡만은 기이한 눈빛을 번득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눈빛에 기쁨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제의 신식을 이끌고 다가오던 주일의 신식은 빠르게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탐랑은 굳은 얼굴로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저물대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더니 어떤 법보도 꺼내지 않고 결국 손을 뗐다.
상대의 신식은 기이한 데가 있었다. 문정기 초기 수준으로 보였지만 그 안에 뭔가 다른 신식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고 두려울 정도로 강한 검기도 배어있는 것 같았다.
상대의 진정한 수준을 파악하기 전에 섣불리 화를 살 마음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아직 내상을 다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음양이의의 경계에서 문정기 후기 절정으로 수준이 떨어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완벽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사도환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음양이의 수준의 수련자가 부상으로 수준이 떨어진 경우 이전보다 회복하기가 몇 배는 더 힘들기 때문이었다. 음양이의는 수련자에게 있어 수련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 사이에 놓인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사도환이 수준을 회복한 것은 천부적인 자질에 더해 천역주의 기이한 힘으로 영양을 공급받은 덕이 컸다.
현재 탐랑의 수준은 문정기 절정이었으나 그가 알고 있는 신통술은 문정기 수련자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그에게는 수많은 법보가 있었기 때문에 음양이의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까딱 잘못했다가는 도리어 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주일과 한제의 신식은 선검과 한제의 육신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저들 중 다섯은 대나검종 제자들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탐랑이라는 자입니다.”
한제는 탐랑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대나검종… 그래, 어쩐지 익숙하다 했지. 준비됐느냐?”
주일의 음산한 목소리가 물었을 때,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한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들은 1백 년 전부터 행방이 묘연했지요. 각각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저들은 이곳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선배님도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대나검종 제자들 중 하나는 우리 존재를 반기는 듯했습니다. 문정기 초기로 보이는 자였는데 그런 기색을 그토록 빤히 드러냈다는 것은 분명… 일종의 신호일 겁니다.”
주일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한제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대나검종 제자 재미있는 자로군요! 그자는 그렇게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자신과 탐랑은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도움을 요청한 셈이지요.”
선검에 깃든 주일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에는 다소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사실 주일이 보는 한제는 정도 많고 의리 있는 후배였다. 기특하긴 했지만 자신과 동급으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한제가 보인 날카로운 통찰력에 그를 보는 주일의 마음이 달라졌다.
‘생각이 깊고 관찰력도 뛰어난 녀석이군. 보기 드문 녀석이야. 게다가 이 분석력과 예지력은 두려울 정도다. 또한 행동에는 결단력이 있지. 1천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이 정도 수준에 이른 것은 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난 여태까지 이 녀석을 한참 얕잡아본 거야!’
한제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주일을 향해 포권을 했다.
“선배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주일은 한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아라.”
한제는 주일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