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20
저물대에서 나온 뒤 이 안개 속을 배회하던 녀석은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에 망설이던 차였다. 마치 오랜 시간 방랑하다 고향에 가까워진 듯한, 그래서 더욱 그리우면서도 그만큼 두렵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때, 가장자리에 있던 녀석들이 한제의 흡혈 마수를 보고 흠칫 놀랐다. 한데 이들의 흉악한 눈빛은 차차 의아함으로 바뀌어갔다.
개중 몇몇은 앞으로 다가와 한제의 흡혈 마수 주위를 맴돌며 거대한 주둥이로 녀석을 툭툭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이내 무리로 돌아가 한제의 흡혈 마수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한제의 흡혈 마수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앞으로 나섰고 결국 그 무리들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앞으로 나아가던 탐랑은 안개 가장자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개가 꿈틀거렸고 탐랑은 맹렬히 몸을 돌려 안개 속을 바라보았다.
이런 꿈틀거림은 한곳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보라색 안개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안에서는 천둥이 울려 퍼지듯 거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개끼리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다.
대나검종 제자들과 한제의 시선 또한 그쪽으로 집중됐고 이 순간 탐랑의 눈에는 은근한 기쁨의 빛이 스쳐갔다. 그가 진룡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이미 안개에서 이상한 기류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탐랑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에서 작은 솥을 하나 꺼냈다. 솥에서는 보라색 기운이 분출됐고 탐랑은 그 기운에 감싸인 채 보라색 안개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 순간, 안개 밖에 있던 흡혈 마수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따라 모든 흡혈 마수들도 소리를 쳤다.
“끼아아아!”
혼을 빼는 듯한 이 소리가 보라색 안개속으로 퍼져나가자 모든 사람들은 초조해졌다.
한편, 안개의 꿈틀거림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 꿈틀거림은 사방 가장자리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심연의 길을 막고 있는 보라색 안개가 빠른 속도로 수축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진룡 등은 급변한 얼굴로 곧장 안개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그 순간 탐랑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1백 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보라색 안개가 합체하는 날을 맞았구나! 너희들은 제물로 내게 큰 쓰임이 될 것이다.”
탐랑의 목소리가 안개 안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는 소매를 휘둘러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고 이에 대나검종 제자들의 발걸음은 묶여 버렸다.
이때, 한제에게 주일의 목소리가 신식을 통해 들려왔다.
“한제야, 이 보라색 안개가 꿈틀거리는 가장자리에 선력이 느껴진다. 모든 수련자들을 옭아맬 수 있는 선력이야. 선근을 가진 자가 아닌 이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소용이 없지. 내가 널 데리고 나갈 것이다.”
한제는 전방에 있는 대나검종의 제자들을 바라보다 내심 뭔가를 결심한 듯 눈빛을 번득이더니 주일을 따라 나가지 않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보라색 안개는 미친 듯이 수축했고 그 가장자리에는 한 줄기 보라색 기운이 생겨났다. 허나 대나검종 제자들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그 보라색 기운 밖으로 뚫고 나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보라색 기운 안에서 침식되면서 정기를 잃은 듯 갈수록 힘을 잃었고 심적으로도 점점 초조해져갔다.
“탐랑, 이 망할 늙은이! 죽어라!”
대나검종 제자 중 하나는 이를 악물며 능천후의 검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허나 그 검기 역시 어떤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고 곧장 보라색 기운에 흡수됐다.
진룡은 몸을 뒤로 물리는 한제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이 형, 이 위급한 순간에 자네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나?”
한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탐랑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이한제! 네놈을 이렇게 일찍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나 네가 자초한 일이니 누가 네놈을 구하겠느냐?”
한제는 말없이 뒤로 더 물러났다. 보라색 안개가 빠르게 수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러나는 속도가 좀만 늦더라도 보라색 기운에 침식될 위험이 있었다.
“이 도우!”
대나검종 제자들이 빠른 속도로 물러나는 와중에 진룡이 다급하게 외쳤다.
“진룡 도우, 내게는 나를 구할 힘조차 없다네!”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보라색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주일이 깃든 선검이 그의 곁에서 맴돌았다.
이를 본 진룡은 어두워진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천운종과 대나검종의 사이를 생각해본다면 상대가 자신을 도와주는 게 어쩌면 이상한 일이었다.
“탓하려면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해야지. 만약 일찍이 탐랑에게 반기를 들고 스승님이 주신 검기로 대항했다면 결과가 이리 되지는 않았을 테니.”
진룡의 눈에 후회의 빛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스승이 준 검기로 맞선다 해도 탐랑에게 대항할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탐랑처럼 교활한 자라면 그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세워두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사제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였다. 1백 년간 망설이기만 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결단력
이 무렵, 보라색 안개는 빠른 속도로 수축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10분의 1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가장자리의 보라색 기운은 갈수록 짙어졌고 대나검종 제자들은 끊임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한제야, 이만 가지 않으면 나의 힘으로도 이곳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주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한제의 신식 안에 울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멀리 떨어진 대나검종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 능천후의 검기 네 개와 다섯 자루의 검⋯⋯.”
한제가 고민에 빠진 사이, 진룡은 슬픈 눈으로 사제들을 살피다가 두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번쩍 눈을 떴다.
“사제들, 미안하네! 정말 어쩔 수가 없어.”
진룡은 이를 악물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의 미간에서 한 줄기 붉은 검기가 발산되었다. 바로 능천후가 준 검기였다.
하지만 이는 자서 등이 가지고 있던 검기보다 몇 배는 더 진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검기였다.
이는 능천후가 네 개의 작은 세계를 제련하여 만들어낸 원신의 검을 자신의 목숨과 연결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니 나머지 열한 명의 검초들에게 준, 대충 만들어낸 검기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진룡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그렇게 후회하고 안타까워했던 것도 이런 검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기가 나타나자 끊임없이 수축하던 보라색 안개가 주춤했다. 반면 안개 밖에 있던 탐랑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했다. 일찍이 진룡에게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자신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룡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검기에 몸을 싣고 보라색 기운을 꿰뚫으려는 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와 보라색 기운이 닿으려는 순간, 격렬한 마찰이 느껴졌다. 심지어 진룡의 전신에서는 불꽃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콰과광!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결국 보라색 기운이 요동치며 미세한 틈이 생겼고 진룡은 검기에 몸을 실은 채 그 틈으로 빠져나갔다.
사제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을 데리고 나갈수록 탈출에 성공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진룡이 보라색 기운 밖으로 뚫고 나간 그 순간, 보라색 안개는 완전히 짙어져 미친 듯이 수축했다. 이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파악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소리마저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안에 남은 네 명의 대나검종 제자들은 절망했고 또 좌절했다. 그 와중에 오마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나는 이한제를 죽여 한이라도 풀어야겠네. 그자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테니 말이야.”
그 말에 다른 세 명의 검초십이자에게서도 살기가 솟아올랐다. 현재 상황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한제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만약 한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뭘 기다리고 있는 게냐?”
주일이 더욱 다급히 물었다.
“선배님의 신식을 저 네 사람에게 고정시켜 주십시오!”
말을 마친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짙은 보라색 안개 속에서 신식으로도 살필 수 없는 그의 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한제야, 열을 센 후에는 네가 반항한다 해도 널 끌어낼 것이다.”
주일은 신식을 펼쳐 끊임없이 수축하고 있는 보라색 안개 속에 남은 대나검종 제자들에게 고정시켰다.
한제는 번개처럼 곧장 그중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자는 영변기 중기 수준으로 넷 중 수준이 가장 낮은 자였다. 그의 신식은 이 공간 안에서 펼쳐도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해 귀 먹고 눈 먼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제가 달려든 순간에도 그는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곧 음산한 바람이 되어 그의 머리를 앗아갔다.
한제는 그자의 머리를 쥔 채 그 안에 담긴 상대의 원신을 봉인하고 그의 보검까지 거둔 뒤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사는 눈을 부릅 떠보았지만 시야는 7척도 채 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보라색 안개뿐이었다. 그는 이 와중에도 살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뭔가가 눈앞을 휙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냐!”
사사는 심장이 덜컥 하는 느낌에 검을 안개 속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검이 손을 떠난 순간, 서늘한 무언가가 그의 뒷목을 눌렀다. 사사는 원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낀 순간 체내의 생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끄아아아!”
참혹한 비명과 함께 그는 바짝 오그라든 시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 체내에 남겨뒀던 능천후의 검기를 폭발시켰다. 이에 그의 몸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오마는 분노로 물든 두 눈을 번득였다. 검을 빼앗긴 뒤 한제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박혀, 이제 살길을 찾기보다 한제를 죽이는 게 더 중요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에 그는 가벼운 바람에 풀이 흔들리는 기척이라도 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능천후의 검기를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그때, 전방의 안개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올 듯 꿈틀거렸다.
“이한제, 죽어라!”
누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순간, 오마는 미리 준비해둔 능천후의 검기를 전방으로 쏘아 보내려 했다. 허나 안개 속에서 들려온 것은 사제 술구의 목소리였다.
“사형, 접니다.”
오마는 흠칫하며 내보내려 했던 검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술구에게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옆의 안개에서 팔 하나가 쑥 빠져나오더니 검지로 그의 미간을 눌렀다.
“크으!”
오마는 두 눈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그는 방금 거두었던 검기를 쏘아 보내려 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그때, 공언한 시간이 다 지났는지 주일이 억지로 한제를 데리고 검광이 되어 보라색 안개 밖으로 돌진했다.
‘한 명을 마저 처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구나!’
한제는 속으로 한탄했다.
대나검종의 제자 네 명을 처리하면서 이전에 미리 손에 넣었던 오마의 검까지 더하면 총 세 자루의 검과 두 개의 검기를 획득한 상태였다.
사실 제아무리 한제라 해도 대나검종의 검초십이자를 상대로 이토록 손쉽게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허나 이미 1백 년의 기다림으로 초조해진 그들은 보라색 안개가 수축하면서 더더욱 조급해졌고 그 와중에 대사형인 진룡이 자신들을 버린 채 탈출하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한 명은 성공적으로 검기를 폭파시켰다. 만약 한제가 사전에 대비를 해두지 않았다면 그 폭발에 부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 능천후의 검기를 가진 대나검종의 제자들을 맞닥뜨렸다면 한제는 일단 물러나야만 했을 터였다. 그들 네 명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검기가 끔찍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광경을 본 주일은 한제에 대해 다시금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떤 이득이 있든 최대한 일찍 벗어나려 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 무렵, 안개는 미친 듯이 수축하여 이미 1천 척도 안 될 정도였다.
보라색 안개 밖으로 나온 진룡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의 손에는 능천후의 검기가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고 주위에서는 수많은 흡혈 마수가 끊임없이 붕붕 소리를 내고 있었다.
“탐랑, 앞으로 스승님을 어떤 낯으로 보려고 이러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