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22
이윽고 보라색 안개가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보라색 빛을 발산하는 오래된 영패가 나타나 조용히 허공에 떠 있었다. 그 보라색 빛 사이에는 금빛도 섞여 있었다.
진룡은 그 영패를 향해 돌진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출구에 가까운 이곳에서 순간이동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출구의 추진력이 강하여 순간이동을 했다가는 몸이 허공에 끼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 또한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몸을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정신술(定身術)을 발휘했다.
진룡은 몸을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능천후의 검기를 응결시켰다.
콰오오!
진룡의 손짓에 따라 검기는 그의 손가락을 맴돌며 엄청난 힘을 발산했다.
한제는 경계심을 잔뜩 곤두세웠다. 그는 일찍이 진룡이 가진 능천후의 검기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건 능천후의 목숨과 연결된 검기다. 위력이 상당하지.”
주일의 목소리가 한제의 신식을 통해 들려왔다.
한제는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심지어 선술도 발휘하지 않고 모든 동작은 멈춘 채 그저 냉랭한 눈으로 진룡을 바라볼 뿐이었다.
진룡은 눈 깜짝할 사이 영패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이 영패가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했지만 탐랑이 이토록 귀히 여기는 것이라면 매우 희귀한 보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한데 그가 영패를 움켜쥐려던 바로 그 순간, 흡혈 마수 무리 사이에서 탐랑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진룡 이놈! 죽고 싶은 게냐? 서사삼식(噬死三式)!”
탐랑의 목소리는 마치 실체화된 천둥소리처럼 파문이 되어 흡혈 마수 무리를 뚫고 곧장 진룡에게로 달려들었다.
한제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무렵, 탐랑의 포효는 허공에서 실체화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온몸이 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 작은 사람에게 탐랑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었지만 눈에서는 탐랑의 기운이 짙게 발산됐다.
“두 번째 원신!”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탐랑으로서는 엄청난 분노와 탐욕을 이기지 못해 두 번째 원신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본체는 여전히 흡혈 마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일곱 개의 은빛 침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으로 버틸 수 있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흡혈 마수는 몸이 매우 단단하고 견고했다. 특히 그 주둥이는 무쇠로 만들어진 듯했다. 뿐만 아니라 한 마리를 죽인다 해도 붉은 구름이 되어 물러났다가 그 붉은 구름이 응결되면서 다시금 흡혈 마수가 되었다. 이전에 비해 약간은 기세가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눈에 담긴 사나운 빛만은 전보다 더욱 짙어졌다.
한편, 작은 사람은 나타나자마자 빠르게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줄기줄기 검은 신뢰(神雷)를 만들어냈다. 이 신뢰는 마치 유성처럼 진룡에게 달려들었다.
“헛!”
진룡은 안색이 크게 변해 영패를 잡으려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수많은 우레에 적중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허나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간의 모든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덤벼라!”
진룡은 이를 악물며 능천후의 검기를 소환해 휘둘렀다. 검기는 사방에 자리한 심연의 벽을 마구 휩쓸었다. 심연의 벽들은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려 수많은 돌 조각과 먼지 안개가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꽝! 콰릉!
능천후의 검기가 탐랑의 두 번째 원신이 방출한 신뢰과 충돌한 순간, 검기와 우레는 모두 무너져 내렸고 엄청난 충격이 사방으로 확산됐다.
한제는 미간에 생의 낙인을 중첩시키면서 몸을 뒤로 물렸지만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그 틈을 타 진룡은 곧장 영패를 잡아채더니 그대로 달아나려 했다.
“게 섯거라!”
탐랑의 두 번째 원신은 잔뜩 분노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허나 능천후의 검기가 너무나 강력한 데다가 진룡이 자신의 신식으로 검기를 조종하여 교묘하게 방해를 해온 탓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능천후의 검기와 접촉했다가는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하니 함부로 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흡혈 마수 무리에 둘러싸인 탐랑은 고민에 빠졌다. 이내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그의 눈이 번득였는데 그 안에는 아쉬움도 짙게 묻어났다.
탐랑은 저물대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길이의 단향(檀香)이었다.
이 단향이 나타나자 향이 사방으로 퍼졌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향이었지만 탐랑은 굉장히 아까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선계에서나 쓸 법한 미향(迷香)을 쓰게 만들다니… 네놈의 시체를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버릴 것이다.”
탐랑은 이를 악물고 왼손으로 향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향에서는 푸른 연기가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기이한 그 연기는 빠르게 확산됐다. 아주 옅어 잘 보이지도 않는 연기는 순식간에 탐랑을 둘러싸고 있던 흡혈 마수들을 감쌌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흡혈 마수들이 일제히 연기를 따라 진룡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탐랑 선배, 이 도우. 이 영패는 내가 가져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하!”
진룡은 크게 웃었다. 그의 시야에 저 멀리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솥
한제는 멀어져 가는 진룡의 뒷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돌연 입을 열어 짧게 내뱉었다.
“정(定)!”
순간, 하급 선술의 위력이 하늘과 땅을 고정시켰고 심연 안은 한 줄기 기이한 힘에 에워싸였다. 만약 수준 높은 수련자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허공에 얇은 실이 줄기줄기 나타났음을 눈치챌 수 있을 터였다.
이 실들은 순식간에 달아나고 있는 진룡의 전신을 맴돌았다.
진룡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는 것뿐이었다. 허나 그 순간, 그의 원신도 그대로 고정됐을 뿐만 아니라 체내의 선력도 굳어져 더 이상 운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진룡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렸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영패가 뚝 떨어져 내렸다.
“옳지! 그건 내 거다.”
탐랑의 기쁨에 겨운 목소리에 이어 향에서 퍼져 나간 연기가 곧장 진룡을 포위했다. 이어서 탐랑 자신은 영패를 잡아채려 달려들었다.
그가 손을 뻗어 영패를 쥐려는 순간,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가볍게 외쳤다.
“정(定)!”
그러자 탐랑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비록 금세 원래대로 회복되며 허공에서 그를 둘둘 에워싸던 얇은 실들을 무너뜨렸지만 그가 살짝 멈칫한 그 찰나에 한제를 태운 주일의 선검이 움직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탐랑조차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이한제! 감히 나의 것을 훔치다니!”
탐랑은 영패를 잡아채 그대로 달아나는 한제의 뒷모습을 새빨갛게 물든 눈으로 노려보며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 무렵, 진룡도 원래의 움직임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연기 속에 휩싸인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허나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탐랑이 만들어낸 연기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한제는 선검의 속도 덕분에 빠르게 출구에 이르렀고 이제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햇빛까지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탐랑이 이를 갈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커다란 솥 하나가 튀어나왔다.
새카만 그 솥은 한 사람이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대했고 그 위에는 수많은 문양과 마수가 새겨져 있어 까마득히 오래된 느낌이었다.
“건곤의 역전, 천지의 해방!”
탐랑이 분노를 담아 외쳤다. 그러자 솥이 부르르 떨리더니 한 줄기 새카만 빛을 내뿜었다. 그 검은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뒤집힌 듯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됐다.
한제와 진룡, 그리고 탐랑 세 사람의 모습도 그 순간 역전됐다. 원래는 한제가 가장 앞에 있었지만 이제 그는 진룡이 있던 연기 속에 들어가 있었고 반대로 진룡은 한제가 있던 출구 앞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진룡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워하며 출구로 향했다. 그는 탐랑이 이런 들어본 적도 없는 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저 솥은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법보였다. 방금 그와 한제의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진룡은 문정기 수준으로도 감히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을 느꼈다.
‘탐랑, 과연 스승님과 동급이라 할 만한 자로구나. 수준은 스승님에 비해 한참 떨어질지 몰라도 까다로운 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는 탐랑이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발견한 보물을 합치면 어느 신선의 별채에 있는 보물들에 비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만 그 법보의 대부분은 탐랑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일 뿐이었다.
탐랑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에 갇힌 한제에게로 다가갔다.
한편,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탐랑의 솥을 바라보았다. 저것은 분명 그가 알고 있는 솥이었다.
한제는 일단 영패를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강한 법보다. 조심해야 한다.”
주일이 신식을 통해 목소리를 전하고는 곧장 날아올랐다.
쒜에엑!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검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검기의 폭풍을 형성해 한제를 가둔 연기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열려라!”
주일의 목소리와 함께 연기 가장자리에 틈이 하나 나타났다. 주일의 선검과 한제는 그 틈을 통해 재빨리 빠져나왔다.
“저자의 법보들은 하나같이 대단하구나! 대체 어디서 저런 보물들을 얻었는지.”
주일은 감탄하면서도 곧장 탐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탐랑은 음산한 얼굴로 몸을 뒤로 물림과 동시에 저물대를 다시 두드렸다. 그 동작에 선검이 우뚝 멈춰 섰고 한제 또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도환에게 감사해야겠구나. 그가 아니었다면 어찌 그 폐허와 같은 주작성에서 1만 년이나 머물렀겠느냐? 그 1만 년이 아니었다면 나는 수많은 법보들을 여전히 사용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탐랑은 비릿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는 병풍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어 탐랑이 손을 휘두르자 병풍은 곧장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눈 깜짝할 사이에 1백 척 크기로 변했다. 그 위에는 먹으로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산과 물이 구름에 휩싸여 있는 그림에서는 신선의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당시 선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찾지 못했지만 이 병풍에 산수화의 탁본이 붙어 있었지. 어서 영패를 내놔라!”
탐랑이 크게 외치자 병풍에서 엄청난 흡인력이 발산됐다.
선검에서 허상의 모습을 드러낸 주일은 엄숙한 표정으로 손을 앞으로 뻗더니 체내에 남아 있는 두 갈래의 검기 중 하나를 방출했다.
한제 또한 어두운 얼굴로 능천후의 검기를 발휘하며 몸을 훌쩍 날렸다. 능천후의 검기는 흡인력에 저항하며 길을 내주었고 한제는 그 길을 따라 심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검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와중에 한제는 전속력으로 마치 유성처럼 하강했다. 탐랑에게 법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주일을 손쉽게 제압할 수는 없을 테니 우선은 최대한 거리를 벌려 시간을 벌고 주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저자의 저물대에는 얼마나 신기한 것들이 더 들어 있을까? 주일 선배라 하더라도 저자를 제압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
한제는 미간을 구기며 검기가 열어준 길을 따라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아래로 질주했다.
그의 뒤에서는 온몸이 반짝거려 마치 수정으로 만들어진 작은 사람 같은 탐랑의 두 번째 원신이 검은 번개 구체들에 둘러싸인 채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을 따라오던 탐랑의 두 번째 원신은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허공을 때렸다. 그러자 그의 주위를 맴돌던 검은 구체가 곧장 아홉 개로 나뉘면서 나란히 서더니 마치 화살처럼 공기를 가르며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