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26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이 맹렬하게 번득였다.
“확실히 회색 옷이었나?”
두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네. 회색 옷이었어!”
“회색 옷의 천운자라, 흥미롭군!“
한제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신식을 두건에게 고정시켜둔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스승님, 비밀이 정말 많으시군요.”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천운자 당신에게 그리 많은 비밀이 있는 이상 나는 더 이상 천운성에 남지 않겠다. 더 머물렀다가는 나 역시 당신에게 삼켜져버릴지도 모르니까!’
한제는 마침내 천운성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요령의 땅에서 나간 뒤에는 본체와 합체한 뒤 떠나야겠어. 이 천운성은 너무나도 깊은 곳이다.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러려면 우선 여기에서 나갈 방법부터 찾아야겠지만.’
두건은 마음속 깊이 묻어둔 큰 비밀을 털어놓은 뒤 조심스럽게 한제를 살폈다. 다행히 한제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하는 것으로 미루어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는 듯했기에 두건은 한시름 놓았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믿지 않는다 해도 도리가 없었다.
두건은 틈의 입구를 힐끔 거리며 이제야 여기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좀 전의 경험에 간담이 서늘했기 때문이다. 원신이 그대로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다니, 그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리다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일곱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한제의 원신의 기운이 반짝이면서 일곱 자루의 검 사이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곳은 이한제의 비밀 별채로구나. 이자는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하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수준은 충분치 않아. 만약⋯⋯ 만약 문정기에만 이르렀어도!’
두건의 수준은 문정기에 반 발짝 정도 들어온 상태였지만 본인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설 엄두를 내지 못한 바람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영변기 후기 절정에서 조금 더 나아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에 두건은 이를 악물었다. 체내의 원신은 한제에게 봉인되어 있지만 문정기의 원기를 이용한다면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문정기에 이르면 살 가능성이 있지만 이르지 못한다면 죽음이야. 이곳에 앉아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시도해보는 게 낫지!’
두건의 눈에 결연한 의지의 빛이 스쳐갔다.
허나 단숨에 일을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막 움직이려 한 순간, 한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냉랭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두건의 의지는 와르르 무너졌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떠 있는 일곱 자루의 검은 하나하나 검광이 되어 저물대로 들어갔다.
“사⋯⋯ 사제⋯⋯.”
두건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기회를 주지. 문정기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면 선물을 하나 주겠다.”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두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선물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쨌든 한제가 절대 자신을 풀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에 좌절했다.
한참 동안 한제를 똑바로 바라보던 두건이 말했다.
“사내로서 두말하지는 않겠지?”
한제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건은 두 눈을 감았다. 상대의 의도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해보지!”
두건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심신을 움직여 이미 충만한 경지를 느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세상의 원기가 두건의 몸에서 점점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짙어지기 시작하더니 한제가 원신에 걸어둔 봉인을 손쉽게 제거했다.
한제는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건을 주시했다. 그가 두건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선위를 제작하는 데 있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한제는 그 옥패의 내용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는 두건을 봉인하여 저물대에 넣을 때부터 언젠가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을 한 상태였다. 성공률은 매우 낮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음양이의의 경지에 반 발짝 정도 발을 들인 고수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게다가 옥패에는 선위가 발휘할 수 있는 몇 가지 신통력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효과도 놀라웠다. 그러니 한제로서도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두건이 먼저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한제는 그를 잡아다 선위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두건은 자신을 죽이려 했다. 한제의 성격상 그런 상대를 가만둘 수는 없었다.
‘문정기에 이르는 데 실패해 도중에 죽게 되더라도 그건 네 운명이지. 만약 문정기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면 내가 엄청난 선물을 하나 줄 생각이다. 그러니 네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두건의 문정은 한제처럼 하늘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두건의 몸에 쌓이는 원기는 점점 짙어져갔다. 그의 원신은 몸 밖으로 떠올라 그 원기와 결합되고 있었다.
시간은 착실히 흘러 한 시진이 지났지만 두건의 원신에 불안정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던 한제의 눈도 밝아졌다.
선위(仙衛)를 제련하다
두건의 원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융합은 사흘 동안 이루어졌고 결국 원기를 전부 원신에 융합시킨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원신이 아주 미약하게 진동하더니 원기의 불을 일으켰다. 이 불은 원신을 집어삼키면서 온 원신을 전부 불태우려는 듯 타들어갔다.
두건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갔다. 이를 보던 한제는 두건의 원신이 원기의 불에 재로 변할 듯하자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한 손을 두건의 원신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원기의 불은 마치 빠져나갈 틈을 찾은 듯 한제의 손을 따라 미친 듯이 그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한제의 원신은 순식간에 원기의 불에 휩싸였지만 제련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그의 원신이 움직이자 대량의 전광이 그 안에서 폭발할 듯 튀어나와 원기의 불을 뚫고 불과 번개가 융합된 막이 되었다.
이어서 한제의 원신은 번개와 불을 모두 흡수해버렸다. 심지어 두건의 체내에서 타오르고 있던 원기의 불까지 대량으로 빨아들였다.
두건의 원신이 위기에서 벗어나자 한제는 곧장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두건의 원신은 약간 남아 있는 원기를 이용해 마지막 융합을 진행했다. 그의 원기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많이 사라진 상태라 결합하여 문정기 수준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영원히 문정기 초기에 머물 가능성이 높았다.
또 다시 열흘이 넘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두건의 원신과 원기가 완전하게 합일되어 문정의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건의 원신은 점점 육신으로 되돌아갔고 어느 순간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은 다소 복잡했다. 문정기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당시의 상황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때 한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실패했을 터였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두건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문정기에 이르렀지만 현재 한제에게 대항하기란 불가능했다.
“내게 주겠다는 선물은 뭐지?”
한제를 쳐다보는 두건의 눈빛은 복잡했다.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감격스럽기도 했다. 허나 무엇보다 가장 큰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육신을 제련하고 원신을 변화시킨 후 음양이의의 경지에 반 발짝 이를 수 있는 비법.”
한제는 덤덤하고 느릿하게 말했다.
두건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술법이라면 성공률이 낮을 터. 좋아, 그렇다면 내 지능은 남겨둘 수 있나?”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1천 년 후까지 살아 있다면 자유를 주지!”
선위를 제련하는 중요한 조건은 제련 대상이 저항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볼 것도 없이 실패였다.
당시의 선제 청림에게는 매우 많은 선위가 있었는데 그 제련 대상자들은 모두 충심이 대단했다. 또한 그에 대한 대가로 강력한 수준을 약속받았으니 애초에 반항심이 없었다.
한제는 당시 선제가 사용했던 수단을 쓸 생각이었다.
두건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반항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곧장 죽게 될 터였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도박을 거는 편이 나았다.
한제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체내의 선력을 이용해 결인을 하나 그려낸 후 앞으로 훅 밀쳤다. 이 결인은 두건의 미간에 찍혔다.
“크으으…”
두건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두 눈을 감았다.
한제의 표정 또한 신중해졌다. 선위 제작 방법은 무척 복잡했는데 한 번이라도 실수할 경우 곧장 실패하게 된다.
사실 실수하지 않는다 해도 선위 제작의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 이렇게 선위 제작에 열성을 다하는 것은 선위의 신통력을 통해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실패한다면 요석설로 다시 시도해보는 수밖에…’
한제는 원신의 기운을 뿜어내 허공에 수많은 문양을 만들어냈다. 그 문양들은 하나하나 두건의 몸에 떨어졌다.
선위 제작의 첫 단계는 일반적인 법보로는 해를 끼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육신을 제련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살폈을 때, 한제는 고대 신을 떠올렸다.
다음은 원신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원신을 열고 빻고 특수한 수단으로 부풀어 오르게 만든 뒤 그것을 육신에 넣어 의식에 정신을 스미게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체내의 오장육부를 제련하여 그 기관들을 전부 말라 오그라들게 만든 뒤 선기의 자양을 받지 않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를 통해 전신의 감각을 없애 어떤 통증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신식을 소멸시키되 지능은 갖게 하고 감정을 없애되 영혼은 남겨두어야 했다. 극강의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감정도 어떤 감각도 없어 머리가 베어지든 몸이 갈래갈래 찢어지든 눈썹 하나 움찔거리지 않는 꼭두각시.
이것이 바로 선위였다.
말하자면 선제 청림은 고대 신을 모방한 인체 법보를 제작한 셈이었다.
★ ★ ★
제련은 계속됐다.
몇 달 뒤, 한제는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의 앞에 짙게 퍼져 있는 원신의 기운을 전부 흡수했다.
마치 구름을 들이마시고 안개를 내뿜듯 원신의 기운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흡수하자 비쩍 마른 인영이 나타났다. 피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듯 피부가 창백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피는 이미 전부 뼛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와 사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바라보던 한제는 가라앉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실패로군!”
첫 번째 단계인 육체 제련에만 몇 달을 매달렸으나, 벌써 수차례 실패를 맛본 상태였다. 다행히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실패하더라도 제련 대상이 소멸되지 않았다.
사실 옥패에 따르면 이 제련 과정에는 각종 재료를 제련 대상에게 넣어야만 첫 번째 단계가 완성된다고 했다.
“금, 은, 동, 철, 네 개의 강도로 나뉘어져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철(鐵)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대량의 저급 법보를 꺼냈다. 모두 그가 쓰지 못하는 것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쉬운 법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