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
옥패가 부서진 뒤, 축기 후기의 두 수련자는 한제를 보지도 않고 흩어지고 있는 거대한 문 안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문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재빨리 뒤로 물러난 한제는 묵묵히 시음종 제자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갑자기 관 뚜껑 하나가 터지면서 새까맣고 빳빳한 한 쌍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묵직한 숨소리도 들려왔다.
온몸에 까만 곰팡이가 핀 미라가 관에서 서서히 일어나 앉았다. 두 눈에서는 녹색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피에 굶주린 듯 서늘한 빛이 두 눈에 맴돌았다. 벌떡 일어난 그는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한손으로 잡아챈 자신의 주인에 코를 박고 깊게 냄새를 들이마셨다. 순간 온몸을 바르르 떨던 축기 초기인 주인의 피부가 쪼그려들면서 하얀색 기체가 피어올라 미라에게 흡수됐다. 그와 동시에 미라의 말라붙은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인은 뼈와 가죽만 남았고 미라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다. 곧 주인의 시체에서 노란색 기체가 피어올랐고 미라는 손으로 그 노란 기체를 움켜쥐더니 곧장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미라의 몸에 빠른 변화가 생겨났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났고 몸을 뒤덮은 검은색 곰팡이도 차차 떨어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그는 자신의 주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어 다른 관의 뚜껑들도 차례대로 터졌고 그 안에 있던 미라들은 각자의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시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3분의 1 정도의 미라는 관에서 나온 뒤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기만 할 뿐,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인의 영혼과 기를 흡수한 미라는 모두 축기 후기에 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열 마리가 넘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등장에 한제는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주인의 몸을 빼앗은 미라들이 남아 있는 시음종 제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달려든 것이었다.
피와 살이 튀고 피비린내가 풍겼다. 한제는 조용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한참 멀리 도망쳐 온 뒤 한제는 그늘진 얼굴로 계곡 안의 한 숲속에 멈춰 섰다. 시음종의 악랄함에 치가 떨렸다. 만약 자신이 옥패를 부수려 한 자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저 괴물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을 것이었다.
복수심에 이를 갈던 한제는 이 결명곡 곳곳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나라의 정도와 마도 문파는 거의 모두 이곳에 모여들 것이었다. 따라서 역외 전장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한제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으려 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가 순간 뒤로 몇 걸음 물러나자마자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빛이 그가 방금 서 있던 곳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껄껄 웃는 소리가 빽빽한 나무 사이에서 들려왔다.
“꽤 빠르구나.”
화려한 복장의 청년 하나가 나무 사이에서 걸어 나오더니, 웃으며 한제를 훑어보았다.
“어느 문파 소속이지?”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
“시음종.”
화려한 복장의 청년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음종? 시음종 제자들은 곁에 관 하나를 두고 다닌다던데 네 관은?”
한제는 상대를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청년은 냉정하게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오른손을 흔들었다. 검은색 빛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번득였다.
“네가 시음종 소속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저물대를 내놔.”
한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쳐갔다. 신식을 펼친 한제는 숲속에 사람 세 명이 더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청년은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었고 그러자 번쩍이는 검은색 빛이 한제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왔다.
한제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소매를 휘둘렀다. 곧 인력술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색 빛은 그 손에 부딪혀 사라져버렸다.
숲속의 세 사람이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던 한제가 재빨리 후퇴하자 청년은 화가 난 듯했다. 같은 축기 초기 수준인 그 청년이 문제가 아니라, 다가오고 있는 세 사람이 문제였다. 청년의 사형들로 보이는 그들 중 하나는 축기 중기 수준이었다.
천도문 소속인 이 넷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문파 제자들과의 경쟁을 틈타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을 계획이었다. 이번 쟁탈 경쟁을 위해 각 문파에서는 제자들에게 대량의 법보를 배급한 상황이었다.
청년은 살의가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1척에 조금 못 미치는 막대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 비취색의 막대에서는 짙은 향이 풍겼다. 청년은 그 막대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막대는 순간 움찔하더니 웅웅 소리를 냈고 뒤이어 거대한 검은색 버섯이 그 막대에서 피어나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청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저물대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내어 내던졌다. 붉은색으로 번쩍이는 그것은 금세 핏빛 말벌로 변해 재빨리 그 검은색 버섯을 먹어버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몸집이 몇 배로 불어나, 주먹만 해져서는 붕붕 소리를 내며 한제에게로 향했다.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한제가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그의 앞으로 날아오고 있는 말벌을 향해 초록색 비검을 날렸다.
말벌은 손쉽게 비검을 피해냈다. 허나 비검이 노린 것은 말벌이 아니었다. 갑자기 사라진 비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청년 앞에서 다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청년은 비명도 지를 틈 없이 피를 흘리며 즉사했다.
청년이 죽자 허공에 떠 있던 비취색 막대 역시 곧장 빛을 잃고 뚝 떨어졌다. 한제는 인력술로 그 막대와 청년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저물대를 챙긴 뒤 빠르게 달아났다.
말벌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다가 한제가 움직인 방향으로 따라갔다. 그와 동시에 두 남자와 여자 한 명이 빽빽한 숲에서 달려 나왔다. 그중 한 남자가 그늘진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쫓아라!”
★ ★ ★
한제가 쫓기고 있던 그때, 멀리 떨어진 조나라 북쪽의 변방 마을에 두 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중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의 눈에는 음험한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곁에는 신선 같은 노인이 서 있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듯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허나 그의 몸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왔고 이는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의 어두운 그늘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 밖에 서 있던 그는 손에 든 오래된 거울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손꼽아 헤아렸다.
“계명 도우, 뭘 그리 생각하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냉랭하게 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노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등화원, 자네는 그자의 이름도 모르고 생긴 것도 모르면서 겨우 저주 하나 걸어놓고 내게 어찌 그자를 찾으라는 겐가?”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바로 등화원이었다.
“계명 도우, 난 무봉골에 못할 짓을 저지르면서 역외 전장에 참여할 자격을 의미하는 영패를 가져왔네. 자네의 천산술(天算術)을 위해서 말이지. 자네가 만약 날 도와서 그자의 가족들을 찾아준다면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등화원의 말에 노인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내가 가진 힘을 다 써봄세. 하지만 도우,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근원이 있는 법이네. 자네의 증손자가 죽은 데에도.”
등화원은 계명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력아, 이 할아비가 네 복수를 하러 왔다.’
그는 등력을 떠올리자 슬픔이 차올랐다. 장차 등가성의 4대 가주로 각광받았고 타고난 자질도 뛰어났던 등력이 비참하게 살해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강도 (2)
등화원은 등력의 죽음을 상세히 조사해, 그 일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파악했다.
그때 계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우, 그자는 지금 결명곡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왜 그 자의 가족들을 찾으려는 겐가? 그만두게. 문제가 있다면 당사자를 찾아야지. 일반인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가는 결코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할 걸세.”
등화원은 그늘진 얼굴로 그 노인을 바라보기만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 노인은 손에 쥔 오래된 거울을 쓰다듬고 오른손으로 결인을 한 뒤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오래된 거울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둥둥 떠오르더니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거울은 왼쪽으로 돌았다가 오른쪽으로 돌기를 반복 하면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공된 단서가 너무 적어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소매를 한 번 휘두르자 거울은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노인은 손가락 끝을 깨물어 피가 스르르 흘러나오게 한 후, 그 피로 거울에 부호 하나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거울이 점점 자라더니 이전보다 몇 배나 커졌다. 수정처럼 맑은 거울에서는 파문과도 같은 빛이 연이어 반짝이며 살짝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등화원을 비추었다.
“놀라지 말게. 내 거울이 자네와 그자 사이의 저주의 기운을 흡수해야 하네.”
노인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등화원의 이마에서 피어오른 검은색 연기가 거울로 빨려 들어가면서 거울면의 파문이 점점 많아졌다. 잔잔한 파문 아래, 큰 집 하나가 거울에 나타났다.
등화원은 살기로 가득한 눈을 번득이며 거울에 나타난 그 집을 보았다가 말없이 계명을 주시했다. 계명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거울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사람만 해졌다. 노인은 쓰게 웃으며 거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고 등화원이 잔혹한 미소를 띤 채 뒤따랐다.
두 사람이 들어간 뒤 거울은 빠르게 줄어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 ★ ★
한 남자가 문간에 기대, 부채를 흔들며 더위를 쫓고 있었다. 그가 기대 선 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호화로운 집으로 무려 세 명이나 한꺼번에 문파에 들어가면서 유명해진 이 씨 가문이었다.
남자는 푸른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등과 가슴팍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이 망할 놈의 날씨, 사람을 쪄 죽일 작정인가보군.”
그는 앞섶까지 풀어헤치고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어린 소녀가 푸른색 사기대접을 들고 나왔다. 소녀는 집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얼른 대문으로 나와 문을 지키고 있던 남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오라버니, 오매탕(烏梅湯) 마시고 더위 좀 쫓아.”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남자는 소녀를 보고 씩 웃더니 사기대접을 받아들고 단숨에 그것을 비웠다. 그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주인마님이 좋아하시는 탕답네. 정말 맛있다. 나올 때 현 도련님한테 안 들켰어?”
소녀는 부채를 뺏어들어 남자를 부쳐주며 해맑게 웃었다.
“걱정 마. 도련님은 날 못 봤으니까. 신경 안 쓰시는 틈을 타서 달려 나온 거거든. 그리고 현 도련님은 좋은 분이시라, 봤어도 뭐라 하시지 않았을 걸.”
남자는 동생의 부채질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현 도련님이 신선이시니까 그렇지. 우리랑 생각하시는 게 분명 다를 거야. 너 현 도련님한테 잘 보여야 된다. 만약 네가 도련님의 첩이라도 된다면 이 오라버니도 이런 고생은 그만둘 수 있을 테니까. 집사 역할만 할 수 있어도 난 만족이야.”
“근데 오라버니는 나보다 이 집에서 더 오래 지냈잖아. 듣기로는 총 세 명의 도련님이 신선으로 뽑혔다는데 내가 여기서 3년간 본 사람은 현 도련님과 딱 한 번 집에 오셨던 산 도련님 밖에 없어.”
그러자 남자는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잘 알고 있지. 세 번째 도련님은 한제라는 분이신데 현 도련님과는 비교가 안 되지. 들리는 말로는.”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줄기의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눈 깜짝할 사이에 착지하더니, 그 안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옥처럼 흰 피부에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청년의 외모는 매우 준수했다. 그는 등에 검 한 자루를 메고 있었는데 검에 달린 술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에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겼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눈가에 가늘게 잡힌 주름도 볼 수 있었다. 일전의 고고하고 거만했던 기색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노련하고 침착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 산 도련님.”
문을 지키던 남자가 더듬거리며 얼른 허리를 굽혔다. 소녀는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의 모습에 깜짝 놀란 듯 얼른 오라버니의 뒤에 붙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