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3
네 사람은 각각 자신의 성라반에 올라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만약 여인이 수시로 손을 휘둘러 반짝이는 빛을 뒤로 쏘아 보내지 않았다면 벌써 뒤쪽의 안개에게 따라잡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인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안개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안개가 맹렬하게 용솟음치며 따라붙어 네 사람을 완전히 포위했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안개 덩어리만 보일 뿐, 그 안에 갇힌 네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이 네 사람은 나천성역 염운성(冉雲星) 사람으로 여인의 이름은 염월이었고 나머지 세 사내의 이름은 각각 염진, 염풍, 그리고 손설산이었다.
이들은 우연히 적요석을 하나 얻게 됐는데 그로 인해 대량의 명무충을 끌어들여 며칠 동안 쫓기는 중이었다.
명무충이 발산한 안개는 수련자들에게는 엄청난 독성을 가지고 있어 닿기만 해도 원신이 다치거나 신통력이 마모됐다.
안개에 갇힌 네 사람은 만약 여인의 옥팔찌에서 발산되는 미약한 빛이 아니었다면 벌써 안개에 휩싸여 원신이 흩어지고 죽음을 맞았을 것이었다.
세 사내는 각자 법보를 꺼내 안개에 틈을 내려고 시도해보았으나, 아무리 용을 써도 안개를 뚫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네 사람의 선력도 고갈되기 시작했고 가진 단약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명무충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천둥 계열 법술이야. 나는 이미 향 씨 가문에 구조 요청을 해두었지. 이곳에서 향 씨 가문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조금만 더 버텨. 향 씨 가문의 천둥 계열 신통력에 뛰어난 선배님께서 구하러 오실 테니까!”
염월이 예쁜 눈썹을 찡그리며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선력은 빠르게 소모되면서 대부분은 손에 든 옥팔찌로 흡수되었다. 만약 이 옥팔찌가 없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이 안개에 삼켜질 터였다.
네 사람 중 유일하게 성이 다른 사내인 손설산은 쓰게 웃으며 사방을 빽빽하게 두른 명무충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절망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내 욕심을 탓해야지. 그 적요석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이런 위기는 맞닥뜨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손설산만이 아니라 세 명의 염 씨 남녀도 절망에 빠져들고 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회색 안개 밖에서 한 줄기 은빛이 휙 하고 날아들었다.
이 은빛은 용과 같은 형태였고 그 끝에는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의 긴 머리는 뒤쪽으로 대충 묶여 있었고 표정은 무덤덤했다. 깊은 두 눈에서는 때때로 전광이 번득이며 튀어나와 날카로운 빛이 더해졌다.
청년은 물론 한제였다.
그는 회오리 안으로 들어선 뒤, 마치 전송진을 통해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회오리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우주 어느 곳에 이르러 있었다. 허나 주위에는 별빛만 가득할 뿐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낯설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의 고향이 있는 연맹성역이 아니라 뇌의 선계 아래 있는 나천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하던 한제는 성라반을 꺼내 이 낯선 성역 안을 맴돌았다. 그러던 중 저 멀리 회색 안개를 발견하고는 일단 다가와 본 것이다.
은빛 성라반을 타고 근처에 이른 한제는 그 안개의 기이함과 그 안에 갇힌 네 사람의 존재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번득이자 안개 속의 명무충들은 살짝 떨다가 분분히 물러났고 덕분에 안개 사이에는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네 사람은 흠칫 놀랐다. 눈빛만으로 명무충들을 물러나게 하다니, 엄청난 신통력에 심장이 덜컥했다. 염월의 눈길은 은빛을 타고 온 한제에게 향했다.
그 순간, 손설산의 눈에 드리웠던 절망의 빛은 순간 사라졌다. 그는 얼른 포권을 하며 소리 높여 외쳤다.
“선배님, 저는 염운성의 손 씨 가문 사람입니다.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염진과 염풍도 얼른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염월 또한 굳었던 표정을 풀며 조용히 말했다.
“선배님, 저는 염운성의 염 씨 가문 사람입니다. 명무충들에 의해 갇힌 상황이니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염 씨 가문에서 충분한 사례를 할 것입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네 사람을 훑어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자 안개가 곧장 다시 꿈틀거리며 빈틈을 채웠다.
다시 안개에 갇힌 네 사람의 표정이 곧장 구겨졌다.
그때, 손설산이 소리 높여 외쳤다.
“선배님, 저희에게는 적요석이 있습니다. 저희를 구해주신다면 이 적요석을 보답으로 드리겠습니다.”
적요석이 뭔지 한제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적요석을 준다는 말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안개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너무 낯선 곳이다. 최대한 빨리 여기 적응한 후에 그 족자 속 여인이 말한 향 씨 가문을 찾아가야 한다.’
바깥을 내다볼 수 없었던 안개 속의 네 사람 중 세 남자는 좌절하고 있었다. 반면 염월은 예쁜 눈썹을 살짝 구겼을 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남은 단약도 많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구조를 마냥 기다렸다가는 희망이 없었다.
이를 악문 염월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
한데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개 바깥쪽으로부터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염운성은 어디에 있지?”
손설산이 얼른 대답했다.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일주일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저희를 구해주신다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한제는 은빛 위에 앉아 잠시 고민하더니 한 손을 들어 전방의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원신에서 끓어오르던 한 줄기 전광이 그의 오른손을 타고 튕겨 나갔다.
한제는 좀 전에 안개가 자신의 눈빛에 물러난 것을 보았기에 저 명무충이라는 벌레들이 천둥번개 계열의 신통력을 무서워한다고 추측했다.
콰르릉!
그의 손짓에 튀어나간 한 줄기 전광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전광은 마치 한 마리 용처럼 엄청난 위엄을 풍기며 안개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안개 속 명무충들은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안개가 몸에서 피어올라 번개에 맞섰다.
만약 보통의 우레 계열 신통력이라면 명무충의 안개에 어느 정도 약해졌을 터였다. 명무충이 천둥번개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개 속 독성 역시 매우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제가 쏘아 보낸 전광은 그의 원신 안에 섞여 든 태고의 뇌룡으로 인해 생성된 원신의 본능이자 하늘에서 떨어진 진정한 번개였다.
손설산
전광이 한 번 번득이자 안개가 흩어졌고 명무충들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한제가 쏘아 보낸 전광에 어린 위엄을 똑똑히 느낀 것이다. 선천적으로 천둥번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명무충에게 이 전광에 담긴 진정한 천둥번개의 위엄은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그들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광이 흩어져 없어지고 명무충들도 모두 멀리 물러나자 염월을 비롯한 네 사람은 얼른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고 한제가 발휘한 신통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손설산은 질겁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나천성역 사람인만큼 그는 천둥 계열의 신통력이 낯설지 않았다. 나천성역은 뇌의 선계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천둥 계열의 신통력은 이곳에서 가장 큰 위력을 자랑했고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놀란 것은 한제가 발휘한 전광 안에 배어 있던 진정한 천둥번개의 위엄 때문이었다. 그는 대체 어떤 천둥번개 계열의 신통력을 갖춰야 그 신통력에 천둥의 위엄이 깃드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는 어지간한 가문의 가장이나 선조라고 해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명의 염 씨 남녀도 손설산과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염월은 찬 숨을 들이마시면서 번득이는 눈빛으로 한제를 살폈다. 그녀는 영변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이자 염 씨 가문에서의 지위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높았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본 전광의 위엄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염 씨 가문의 9대손입니다. 선배님은 뇌선(雷仙)의 사자이십니까?”
그 말에 손설산은 깜짝 놀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 사람은 분명 뇌선의 사자일 거야! 그런데 뇌선의 사자가 어째서 염운성에 가려는 걸까?’
“뇌선(雷仙)의 사자라⋯⋯.”
한제는 표정에 변화 없이 덤덤하게 네 사람을 훑어보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염월은 간담이 서늘해졌으나,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그녀는 한제가 확실히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발휘한 법술은 뇌선의 사자의 법술과 비슷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또한, 상대의 수준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의심을 부추겼다.
나머지 세 사람, 특히 손설산은 한제에게 매우 예를 갖췄다. 그는 염월의 말에 한제가 뇌선의 사자라 믿는 듯했다.
“염운성에 가신다면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손설산이 재차 공손하게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용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은색 빛 위에 앉아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 뒤를 손설산과 다른 사람들이 따랐다.
허나 곧 한제의 표정이 구겨졌다. 네 사람의 속도가 너무 느려, 이대로는 꼬박 7일은 걸릴 것 같았다.
한제는 성라반의 속도를 늦추고 잠시 그들을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나천성역에서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나천성역에 대해 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염운성 부근에 다른 수련성도 있나?”
한제가 덤덤하게 물었다.
손설산은 은색 용 형태의 성라반을 감탄한 눈으로 힐끔거리며 얼른 답했다.
“있습니다. 염운성은 북역(北域) 5대 주성(主星) 중 하나인 천환성(千幻星)에 속한 수련성인데 그 부근에는 염운성처럼 종속된 수련성이 매우 많지요.”
그는 한제가 왜 이런 것을 묻는지 의아했지만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한편, 한제는 비록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손설산의 대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환성⋯⋯ 천환⋯⋯ 익숙한 이름이군. 류미가 수련했던 것이 천환무정도였지. 설마,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성역이 다르니까. 그나저나 북역이라고 한 걸 보면 나천운성은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모양이군. 지금 이곳도 북역일 거고…’
한제는 나천성역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개념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염월이 끼어들었다.
“생명의 은인인데 아직 함자도 묻지 않았군요. 결례를 범했습니다.”
“허목이다.”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천운자 등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가명을 댈 수밖에 없었다.
“허 씨셨군요.”
염월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허 씨라면 북역 천환성에서 상당한 명망을 떨치는 가문 아닌가? 정말 허가 사람인가? 아니면⋯⋯?’
진즉부터 한제의 정체를 의심해왔던 염월은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으나, 결국 한제의 정체에 대해 별다른 확신은 갖지 못했다.
반면 손설산은 ‘허목’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더욱 공손해졌다.
그때, 염월이 다시 물었다.
“허 선배님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러나 후배가 선배의 출신을 묻는 것은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기에 그녀는 질문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