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6
한편, 보합루를 떠난 한제는 청죽각으로 향했다. 크지는 않지만 우아한 멋이 있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나무 선반이 있었고 선반마다 놓인 작은 상자들은 모두 열려 있었다. 각 상자 안에는 각종 법보와 단약 등이 있었다.
점포 안에는 한 청년 문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래된 책에 푹 빠져 있던 그는 한제가 들어오자 책을 내려놓더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 청죽각은 비록 크지는 않지만 웬만한 것들은 다 갖추고 있답니다. 뭘 도와드릴까요?”
화신기 초기 수준의 청년은 보합루와 달리 오만하지 않았다. 그런 살갑고 친절한 모습에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저물대에서 비검을 꺼냈다.
“이 검을 사시겠습니까?”
청년은 비검을 살피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쓰게 웃었다.
“도우, 이 검은⋯⋯ 좋습니다. 혹시 제가 좀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비검을 건네주었다. 청년은 비검은 받아 든 뒤 신식으로 살피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일반적인 검인데… 그런데⋯⋯ 이것은… 헛!”
어느 순간, 청년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고개를 번쩍 든 청년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우, 이 검 안의 신통력은⋯⋯?”
“직접 발휘해보시면 금방 아시겠지요!”
한제가 웃으며 말했다.
청년은 불안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신식으로 검을 살핀 순간, 그는 이 검에 신통력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됐다. 아무리 살펴도 그게 어떤 신통력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느껴지는 위력에 원신마저 격렬하게 진동했다.
청년은 영력을 비검에 불어 넣었다. 그의 영력이 비검에 담긴 신통력의 낙인에 닿자마자 한 줄기의 짙은 검기가 폭발하듯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청년은 마치 이 비검과 하나가 된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청년은 놀랍고도 기쁜 표정이었다. 비검의 신통력은 발휘하기 전이었지만 영력에 이렇게 훌륭하게 섞여드는 것만으로도 이 비검은 중급 법보로 분류될 만했다.
청년은 곧장 신통력을 발휘하는 대신 비검을 통제하여 점포 밖의 거대한 상급 영석을 가리켰다. 비검은 순간 긴 검광이 되어 날아갔고 기척조차 없이 영석을 그대로 뚫고 나갔다가 빛처럼 되돌아왔다.
“좋은 검입니다!”
비검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에는 감탄과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융합성이라면 중급 법보로 분류될 만하고 이런 날카로움이라면 고급 법보로 분류되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검의 속도는 위력과 융합성을 따라오지 못하는군요.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청년은 드디어 비검의 신통력을 활성화시켰다. 순간, 그의 두 눈동자가 등잔만 해졌다.
비검은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무려 1백 척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청년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점포 밖으로 나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검이 돌아왔다. 이제 청년의 눈에 담긴 것은 순수한 충격이었다.
찬 숨을 들이마신 그가 다시 한 번 거대한 영석을 가리키자 비검은 순간이동을 하더니 영석을 뚫고 나왔다.
청년은 입을 쩍 벌리고 비검을 불러들여 손에 쥐었다. 마음에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의 상식으로 비검에는 순간이동의 낙인을 남길 수가 없다. 검이 순간이동으로 인한 마찰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지간히 수준이 높지 않고서야 검에 순간이동의 낙인을 남길 수 없다. 설령 낙인을 남길 정도의 수준이 된다 해도 훌륭한 공법과 특별한 경지를 가지지 못한다면 비검 내에 사라지지 않을 낙인을 남기기란 불가능했다.
이는 한제가 생사윤회의 경지를 가진 덕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 낙인은 계속 생성되고 있기는 해도 평형이 깨진다면 곧장 효력을 잃게 될 터였다.
청년은 점포로 돌아와 말했다.
“이 검 우리가 사겠습니다! 10만 개의 상급 영석이면 어떻겠습니까?”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 청년은 수준이 부족해 그가 발휘한 영력으로는 이 검의 진짜 위력의 1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놓치다
한제의 표정을 본 청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도우, 제가 최대로 쳐드릴 수 있는 가격은 거기에 5만 개의 영석을 더하는 겁니다. 이 검은 최상급 법보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합니다.”
“여기 영변기 수련자는 없습니까?”
대답 대신 돌아온 질문에 청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제 수준이 부족하여 이 비검을 제대로 못 알아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영변기 수준의 선배님이 계시니 그리 원한다면 불러드리지요!”
청년은 저물대에서 옥패를 하나 꺼내더니 입가로 가져가 몇 마디 중얼거린 후 던졌다. 그러자 옥패는 푸른 빛이 되어 가게 안쪽으로 날아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어서 청년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손에 든 비검만 만지작거렸다.
문정기 수준인 한제는 이미 대가의 풍모가 있었기에 눈앞의 청년 같은 수준 낮은 수련자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불편할 법한 상황에서도 편하게 사방의 선반을 채운 법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반면 청년은 의아한 눈길로 한제를 힐끔거렸다. 그가 보기에 상대는 겨우 결단기 후기에 불과했는데 그럼에도 어느 가문의 가주(家主)나 장로 같은 느낌을 풍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푸른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누각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한눈에 청년이 들고 있는 비검을 보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청년은 노인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말했다.
“손묵, 장로님을 뵙습니다.”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답한 뒤 한제를 훑었다.
“이자가 법보의 검사를 요구한 자로군!”
청년은 얼른 그렇다고 답하며 공손하게 그 비검을 건넸다.
한제는 노인이 들어온 순간 주위를 힐끔거리던 시선을 거두었다. 상대의 수준은 영변기 후기에 불과했지만 수많은 위험을 몸소 겪고 많은 경험을 한 듯했다. 그런 자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법이다.
노인은 별다른 말없이 손을 휘둘러 비검을 움켜쥐더니 신식으로 훑었다. 그러더니 내내 덤덤했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장로님, 제가 보기에 이 법보는⋯⋯.”
청년이 막 뭔가 말하려 하는데 그 순간 노인이 눈을 번득였다. 이에 청년은 하려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팅!
노인이 손끝으로 비검을 살짝 튕기자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천상에서 울리는 듯 아름다운 소리였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전보다 더욱 놀란 눈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비검은 순간 번쩍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검은 1천 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직후에 검은 다시 청죽각 안에 나타나 노인 곁을 맴돌았다는 것이다.
비검에서 흘러나온 선기는 날카로운 검기가 됐지만 함부로 발산되거나 쏘아지지는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비검에 줄기줄기 전광이 흐른다는 점이었다.
노인은 숨을 들이마시며 이 전광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펑!
작은 폭발음과 함께 노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그는 한참이나 스스로를 회복시킨 뒤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에 분노는커녕 희색이 만연했다.
청년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야말로 넋을 놓고 말았다.
“선보다⋯⋯ 이⋯⋯ 이건 선보야⋯⋯.”
청년이 중얼거렸다.
“선보가 아니라 준선보다! 이것에는 나이술도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이한 전광도 어려 있지. 그것이야 말로 이 검의 가장 진귀한 부분이야. 만약 전광이 없었다면 이 법보는 일반적인 준선보로 분류됐겠지만 전광 덕분에 범상치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노인은 숨기지 않고 줄줄 털어놓으며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 물건, 자네 가문의 손윗사람이 준 것이겠지. 정말 팔 생각인가?”
“선옥 3천 개에 팔겠습니다!”
한제는 대답 대신 가격을 제시했다.
노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한제를 몇 차례고 쳐다보다가 저물대에서 한 무더기의 선옥을 꺼내주었다. 수많은 선옥에서 발산된 짙은 선력이 청죽각을 가득 채웠다.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그 선옥들을 전부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다른 준선보도 가지고 있나?”
노인의 물음에 한제는 대답 대신 저물대에서 구리거울을 꺼내 건넸다.
거울을 받아 들고 한 번 살핀 순간, 노인의 표정은 전에 없이 크게 변했다. 심지어 비검을 봤을 때보다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전수 효력을 가진 준선보!”
노인의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의 빛이 스쳐갔다.
한제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런 노인을 바라보았다.
죄 없는 자의 선옥을 빼앗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으나, 만약 먼저 자신에게 강도짓을 하려는 자를 상대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라면 죽이고도 남을 명분을 스스로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염운성에서 한제를 막아설 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8백 년간의 수련을 통해 한제에게도 흉계라는 것이 생겨났다. 다만 이 흉계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물었다.
“이것은 얼마에 팔겠는가?”
한제는 덤덤한 말투로 느릿하게 말했다.
“5만 개에 팔겠습니다.”
한제의 말에 노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선옥 5만 개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선옥은 문정기에 이르기 위해 지난 1백 년간 차곡차곡 모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구리거울을 내려다본 노인은 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이 구리거울은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변기 수련자에게 전수 효력을 가진 준선보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 법보라면 영변기 절정의 수련자에게도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리거울의 신통력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전수 효력을 가진 법보라면 그 신통력 또한 결코 약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를 죽이고 법보를 차지할 생각도 해보았으나, 한제의 침착함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이런 법보를 내놓은 것으로 보아 저 청년은 어느 걸출한 가문의 핏줄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노인은 결국 저물대에 5만 개의 선옥을 담아 한제에게 건넸다. 한제는 신식으로 저물대를 살펴 선옥 5만 개를 확인한 후 전수의 봉인을 풀 결인이 담긴 옥패를 노인에게 건넸다.
옥패의 내용을 살피더니 표정이 밝아진 노인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다른 법보가 더 있나?”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물대에서 비녀를 꺼냈다.
“그것도 준선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