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7
노인은 실망한 듯 혀를 차더니 몸을 돌려 청죽각 안으로 사라졌다.
한제는 청죽각에서 몇몇 재료를 구입한 뒤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를 맞았던 청년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제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청죽각을 나선 한제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자신에게 신식을 고정한 채 쫓아오는 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놀아볼까?’
한제는 피식 웃더니 방향을 틀어 빠르게 성문을 빠져나간 후 비검 하나를 꺼내 곧장 날아갔다. 힘을 조절하여 결단기 수준에 걸맞은 속도로 수천 리를 날아가자 저 앞에 돌연 안개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그 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한 손으로 변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한제는 다시금 피식 웃더니 눈에서 한 줄기 전광을 내뿜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선력이 뿜어져 나왔다.
콰르릉!
한제에게 다가오던 그 거대한 손은 천둥소리와 함께 흩어져버렸다. 심지어 안개도 미친 듯한 기세에 휩쓸렸고 그 안에서 비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악! 네… 네놈! 결단기 수준이 아니었구나!”
검은 안개가 뿔뿔이 흩어지더니 그 안에서 비쩍 마른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움큼 선혈을 토해낸 그의 몸에는 전광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신통력을 발휘하려는 듯했다.
덤덤하게 이를 바라보던 한제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중년 남자를 추격했다. 상대의 수준은 원영기 중기에 불과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게 저자를 죽이고도 남을 터였다.
한편, 중년 남자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손짓 한 번으로 자신의 원영을 흩어버릴 정도의 힘을 본 이상, 살고 싶다면 최대한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깟 영석 몇 개 때문에 저런 자를 건드렸다니…’
상대가 자신을 추격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수천 리를 단숨에 뛰어넘은 중년 남자는 그대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창백하게 질린 그의 원영은 반 정도 흩어진 상태였고 초조한 마음에 또 한 번 선혈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남자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이를 악문 채 성의 중앙에 있는 손가 저택으로 향했다.
그 무렵,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흩어지는 원영을 붙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사… 살려줘!”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부어 외친 중년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지더니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때, 하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떨어져 내리는 중년 남자의 몸을 잡아챈 그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러더니 저물대에서 대량의 단약을 꺼내 그것을 전부 중년 사내의 입에 쏟아부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수련자가 손가 저택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감히 우리 손가 사람을 해치다니, 겁도 없군!”
손가 저택에서 날아오른 사람들 중 누군가가 비검을 빼어들며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가볍게 소매를 휘둘렀고 그러자 그로부터 1천 척 안의 범위에 있는 모든 손가 사람들을 전부 밀쳐 냈다.
“다들 물러가라!”
안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세 명의 노인이 날아올랐다. 그중 한 사람은 한제와 거래를 했던 손 장로였다.
그때, 노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붉은 얼굴의 노인이 싸늘하게 물었다.
“어떤 녀석이기에 우리 손가에 와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냐? 후환이 두렵지 않느냐?”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손 장로를 가리키며 툭 내뱉었다.
“저자 때문에 왔다!”
그러자 손 장로가 이를 갈며 외쳤다.
“우리의 거래는 이미 끝나지 않았느냐! 번복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고개를 저은 한제는 정신을 잃고 추락한 중년 사내를 가리키며 웃었다.
“거래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저자가 나를 쫓더군. 나는 저자에게 쫓기다가 이곳에 이른 것뿐이야.”
그 말에 손 장로는 코웃음을 쳤고 곁에 있는 두 노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이미 일의 전후를 파악했다. 손 장로가 저자의 물건을 탐내 사람을 시켜 뒤쫓게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어쨌든 손 장로는 가문의 장로였기에 두 노인은 그를 보호해야 했다.
붉은 얼굴의 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헛소리 마라! 네놈이 누구든 상관없다. 일단 물러가라. 네놈의 생사는 네 가문의 연장자를 만나 논하겠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렸다. 그러자 벼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위압감이 손가의 저택에 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손가 사람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영력을 이용해 그 위압감에 대항했다. 그들이 저항을 멈추는 순간, 저택은 곧장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헛소리라고?”
한제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게!”
그때, 저택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곧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나타나자 사방을 가득 메운 위압감도 조금은 흩어졌다.
방금 나타난 노인의 수준은 영변기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약간의 깨달음만 더 얻는다면 곧장 문정기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어째서인지 한제는 그 노인을 본 순간 문정기의 기운을 느꼈다. 이는 노인이 수준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몸에 문정기 수준 수련자의 신식이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남장 여자
“이번 일은 우리 손가의 잘못이야. 도우에게는 미안하게 됐네.”
검은 옷의 노인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손 장로를 비롯한 세 노인은 흠칫 놀랐다가 곧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강탈하려던 자들이 고작 미안하게 됐다면 끝인가?”
“물론 그럴 리가 있겠는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보게.”
한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불쑥 내뱉었다.
“선옥 20만 개!”
그 말에 검은 옷의 노인은 표정이 살짝 변했으나,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허나 여기는 손가의 지사에 불과해 선옥 20만 개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걸세. 사흘의 말미를 줄 수 있겠나?”
한제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노인을 훑어보았다. 허나 그가 살피고 있는 것은 노인이 아니라 그 몸에 둘러진 문정기 수준의 신식이었다.
한제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가 저 멀리 사라진 후에야 검은 옷의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몸에 드리웠던 문정기 수준의 신식을 흩었다. 그리고는 손 장로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때, 붉은 얼굴의 노인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선옥 20만 개는 본가 입장에서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검은 옷의 노인은 냉랭한 눈으로 말했다.
“방금 본가의 선조 어르신께서 내 몸에 임하시어 제안을 받아들이라 명하셨다. 20만 개가 아니라 40만 개라도 주라고 하셨단 말씀이야! 또한 오늘의 일에는 함구령을 내리셨으니 입단속 철저히 하고 다시는 저자의 화를 돋우지 말도록 해!”
한편, 같은 시각, 염운성 동쪽 구역의 광활한 바닷속 깊은 곳에서는 장발의 남자 하나가 반라의 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는데 두 눈이 마치 밝은 등불처럼 어두운 바닷속을 밝혔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본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그 문정기 수련자인가? 허나 그의 수준은 볼 수가 없었는데⋯⋯ 그자의 몸에서는 나를 속박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절대로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다. 허나 이는 그자와 인연을 맺을 수도 있는 기회다! 마지막 눈빛은 경고였겠지. 다시는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내게 알린 거야.’
사내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훌쩍 날려 바닷가를 떠났다.
한제는 염운성에서 조용히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안심하고 수련할 수 있을 테고 최대한 일찍 연맹성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조용히 지내겠다는 것이 무조건 화를 참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일에 개의치 않고 어떤 일에도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이런 태도가 곧 압박이 되어 염운성의 최강자라 해도 한제를 건들지 못하게 될 터였다. 한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결과였다.
그는 느긋한 걸음으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바위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청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온종일 그곳에 앉아 꽤나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제를 본 그 청년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면서 꾸짖듯 외쳤다.
“이봐 너!”
청년의 갑작스런 부름에 한제는 걸음을 멈추었다.
“수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나? 내 알려주지. 수련자는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해!”
청년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넌 자질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근면성실하게 수련한다면 언젠가 대성할 날이 올 것이다. 난 이곳에서 수많은 외부 수련자를 지켜봤다. 그 동안 화신기에 이른 수련자 역시 적지 않았지. 그런 수련자들은 방 안에 틀어박혀 수련에만 매진했다. 너처럼 이른 새벽부터 나가 돌아다니지 않았어! 자질이 부족하면 더 노력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원영기에도 이르지 못할 거야!”
청년의 따끔한 꾸짖음에 한제는 흠칫 놀라더니 쓰게 웃었다.
청년은 한제의 그런 모습을 반성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눈빛 가득했던 경멸의 빛이 조금 사라졌고 약간은 누그러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너를 깔보는 게 아니다. 수련계에서는 일단 스스로를 존중해야만 다른 사람들도 존중해주는 법이야. 이곳의 영기는 성 밖보다 더 짙으니 다른 일에는 신경 끄고 수십 년간 폐관수련을 한다면 원영기에 이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너도 너희 가문 안에서 나처럼 몇몇 권리와 직무를 얻게 되겠지.”
한제는 코를 만지작거렸다. 기분이 묘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한없이 약했던 시절 그가 만난 자들은 모두 교활하고 이기적이었다. 누구도 저 청년과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춘 후로는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살육의 기운에 누구도 자신에게 설교 같은 것을 하지 못했다. 스승으로 모셨던 둔천은 오랜 인연을 쌓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다.
이런 이유로 진심을 담은 교훈을 말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한제는 꽤나 감격했다.
“예, 새겨듣겠습니다.”
한제의 대답에 청년의 표정은 더욱 온화해졌지만 여전히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수련을 하다가 의문점이 생긴다면 내게 물어라. 중요한 것은 자질이 아니야. 수련을 게을리하는 것이 문제야. 수련이라는 것 자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니 마음을 느슨하게 먹어서는 안 되며 몸은 더욱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게을러서야 어찌 하늘을 거스르겠느냐? 들어가서 얼른 수련을 하게나.”
만약 한제를 아는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입을 쩍 벌리고 말았을 터였다.
한제는 쓰게 웃으며 다시 처소로 향했다. 마지막에 힐끗 고개를 돌려 다시 청년의 뒷모습을 봤는데 청년은 마른 편이라 입고 있는 품이 넉넉한 옷과 어딘가 맞지 않아보였다.
그때, 맑은 바람이 불어와 청년의 머리카락을 살짝 흩날렸다. 청년은 무의식적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러던 청년은 시선을 느낀 듯 몸을 살짝 틀어 한제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