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9
“도우는 저자의 적수가 아닙니다.”
청년은 미간을 다시 찌푸리며 옥패를 쥐고 말했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나오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나도 너를 보호할 수 없다!”
한제는 씩 미소를 짓더니 뒤로 물러나 진 밖에 섰다.
청년은 한제 앞을 막아 선 채 보라색 옷의 사내를 향해 외쳤다.
“선배님, 이곳은 우리 손가의 영역입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보라색 옷의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몸에서 풍기던 전의를 순간 흩어버리고는 흥미롭다는 듯 청년을 자세히 살피며 웃었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청년은 잠시 흠칫 놀란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손릉이라 합니다.”
보라색 옷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맡은 책임을 하느라 열심이구나. 훌륭하다! 허나 물러나도 좋다. 내가 찾아온 것은 네 뒤에 있는 자다.”
청년의 표정이 한층 진지하게 변했다.
“선배님, 이곳을 떠난 상태라면 모를까, 저자는 아직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제 소관이기도 합니다.”
보라색 옷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냉랭한 눈으로 청년과 한제를 번갈아 보았다.
손릉은 그의 눈빛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 왔다. 마치 원고 시대의 흉악한 마수를 앞에 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눈빛은 분명 경고였다. 당장 물러나지 않는다면 원고 시대의 마수가 곧장 달려들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손릉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선배님, 저는 저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게다가 저자는 그저 결단기 수련자에 불과합니다, 선배님⋯⋯.”
보라색 옷의 남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다른 사람에게 몇 차례나 제지당하자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한데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한제가 입을 열었다.
“손 도우, 괜찮습니다.”
한제는 손릉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인 후 출구 쪽으로 다가갔다.
손릉이 다급하게 외치며 손에 들고 있던 소리 전달 옥패를 깨부수려 했다.
“돌아와!”
허나 한제는 몸을 돌려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어서 그는 보라색 옷의 남자를 향해 갔다. 그 순간, 돌연 푸른색 안개가 나타나 사방에 확산되면서 손릉의 시야를 차단했다.
한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보라색 옷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상대의 표정 또한 한결같았지만 한제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압력을 느끼게 됐다.
그 압력은 둘 사이의 거리가 열 보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보라색 옷의 사내는 미묘한 표정으로 한제를 살피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한제는 계속해서 한 걸음씩 다가갔다. 보라색 옷의 사내는 상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밟히는 것은 지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사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계속해서 몇 걸음 더…
한제는 연속해서 여덟 걸음을 걸어왔고 그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는 마음속에 무수한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그 천둥번개는 중첩이 되어 결국 체내에 폭풍이 일어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제는 드디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전까지의 걸음이 그간의 위력을 중첩한 것이라면 이 마지막 걸음은 마치 도화선처럼 그렇게 중첩된 위력을 한꺼번에 발휘시켰다.
보라색 옷의 사내는 표정이 크게 변한 얼굴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참 뒤로 물러나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우, 악의를 가지고 찾아온 것은 아닐세.”
한제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사내를 보다가 훌쩍 몸을 날렸다. 보라색 옷의 사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른 뒤따랐다.
푸른 안개가 흩어졌을 때, 손릉의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바위 아래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 선배한테 붙잡혀 갔다면 살아서 돌아오기는 힘들겠지.”
청년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젓더니 두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자신의 도리는 다 한 셈이었다.
한편, 한제는 여유로운 얼굴로 곧장 동쪽 구역의 보합루로 향했다. 그의 곁에 붙어 따라오던 보라색 옷의 사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허 도우, 나는 손석이라 하네. 좀 전의 일에는 분명 악의가 없었다네.”
그는 방금 상대의 수준을 파악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몸에서 풍기는 자신감과 살기였다. 이런 기운을 풍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동급의 수련자를 죽여 본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이었다.
손석은 염운성의 세 문정기 수련자 중 하나이자 손가의 문정기 초기 수준 선조로 바닷속에서의 수련을 마친 뒤 곧장 염운성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경고했을 텐데!”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손석의 수준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전혀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 염운성에서는 자신을 두렵게 할 만한 수련자가 한 명도 없다고 확신했다.
한데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찾아온 것을 보면 손석은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유야 어쨌든 경고를 무시했으니 대가를 치르게 해야만 한다고 한제는 생각했다. 자연히 말투도 거칠고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근 1천 년을 수련해온 자답게 사람들의 의중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자신이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는 자신을 약자로 볼 수도 강자로 볼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약해 보이는 아이는 언제나 놀림거리가 되지만 똑똑한 아이는 스스로를 강해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놀림을 받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일반인이었던 시절 한제의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양상은 나타났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은 동등해질 수 없었다. 내가 약해지면 상대는 강해지고 내가 강해지면 상대가 약해지는 식이었다.
지난 오랜 세월을 통해 한제는 이 진리를 깊이 깨달았다.
손석은 한참 후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허 도우, 이번 일은 내 잘못이네. 부탁할 것이 있어 마음이 급해졌거든.”
한제는 대답 없이 나아가기만 했다.
“허 형, 나를 도와준다면 손가가 전력으로 나서서 허 형의 수련을 돕겠네!”
“자네의 가문이 두 문정기 수련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크게 결심한 듯한 손석의 말에 한제가 덤덤하게 답했다. 그러자 손석의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물론 불가능하네. 허나 허 형이 날 도와준다면 1백 년 후 뇌(雷)의 선계에 갈 자격을 자네에게 넘겨주지!”
한제는 걸음을 우뚝 멈추고 잠시 손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걸었다.
“나천성역의 뇌의 선계가 열릴 때 모든 뇌정(雷鼎)은 뇌선전(雷仙殿)의 통제를 받네. 그래서 우리 나천성역의 사람, 그중에서도 뇌선전에 기록된 가문에 속해 있어야만 뇌의 선계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지.”
문정기에 이른 자들 중 꾀가 깊지 않은 사람은 없다. 더구나 손석은 한 가문의 선조다. 분명 품은 생각과 꾀가 있을 터였다. 아까는 한제의 기세에 눌려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반격을 시작하려 했다. 뇌의 선계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한제의 내력에 대한 의심까지 드러낸 것은 분명 뛰어난 계략이었다.
허나 한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손설산은 어떤가?”
손석 또한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설산은 분명 자질이 뛰어나지. 허나 아직 경험이 부족해. 설산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정말 감사하네.”
두 사람은 웃으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에 대한 손석의 두려움은 더욱 깊어졌다.
‘이자는 내력도 비밀에 싸여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할 수가 없군. 더구나 모습을 바꾼 상태였다는 것도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 동림성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조차 거짓일 수도… 어쨌든 이자는 나보다도 수준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연을 잘 맺어둔다면 해가 되지는 않겠지.’
손석은 미소를 거두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며칠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군.”
한제가 즉답을 피하자 손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더는 보채지 않았다.
손태
손석이 염운성의 풍토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한제는 어느덧 동쪽 구역의 보합루에 이르렀다.
경매가 열리는 날답게 보합루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보합루의 심부름꾼은 영패를 확인하며 사람들을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손석과 한제가 근처에 이르렀을 때, 보합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계명이 얼른 앞으로 나서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3대 자손 손계명, 선조 어르신과 허 선배님을 뵙습니다.”
손석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계명은 한참 전부터 이곳에 나와 있었다. 보합루는 염가의 점포였지만 손계명은 이 성의 손가 책임자인 만큼 아무런 제지 없이 한제와 손석을 직접 안내하여 4층으로 향했다.
한편, 이전에 한제가 보합루에 왔을 때 그를 막아섰던 노 씨 사내는 한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고 그 옆의 손계명을 보고는 더욱 의아해했다. 그는 손석은 잘 알지 못했지만 손계명은 잘 알았다. 그런 손계명이 한껏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한제가 손가의 높은 사람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합루는 총 네 층인데 꼭대기 층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다.
한제와 손석이 안내받은 곳은 좌측 첫 번째 방으로 경매가 진행될 2층의 대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였다.
손계명은 공손히 한쪽에 서서 손석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방 안에 들어선 순간, 한제는 기이한 경계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는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피다가 3층의 한 노인을 포착하고는 흠칫 놀랐다.
‘저 사람은…? 찍힌 낙인이 굉장히 옅어. 심지어는 반 정도가 사라진 것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군.’
“허 형, 이 8품 단약에는 내력이 있어. 이 단약은 원래 우리 염운성의 것이 아니라네. 한 외부 수련자가 중상을 입고 염운성으로 도망쳐 왔을 때 나와 염가의 선조, 그리고 어느 떠돌이 거사(居士)가 동시에 달려들었네. 결국 그 수련자는 염가 선조의 손에 목숨을 잃었지.”
손석의 설명에 그런 비밀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던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손석이 굳이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그가 하려는 부탁과 관련이 있는 듯해 말을 자르지는 않았다.
손석은 한제가 거북해하는 것을 느꼈으나 모르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4년 전의 일이지. 저 단약은 매우 진귀한 것이야. 특히 우리 같은 문정기 수련자에게는 더욱 그렇지. 저 단약은 총 다섯 알인데 나와 떠돌이 거사가 각자 하나씩 얻었고 문정기 중기 수준인 염가의 선조는 세 개를 손에 넣었지.”
한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2층을 내려다보았다. 귀담아 듣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은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단약으로 난 조금 난처해졌다네. 그 수련자의 저물대에서 그가 주성인 천환성 환가 가문의 구성원이라는 영패가 들어 있었던 거지.”
참다 못한 한제는 손석을 빤히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