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는 이산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문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보고 물었다.
“네가 이도냐?”
이산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대답했다.
“예, 산 도련님. 제가 바로 이도입니다.”
이산은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도 이한제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알려줬지? 뭐라고 했나?”
이도는 덜덜 떨며 순순히 대답했다.
“지, 집사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한제 도련님은 아마 돌아올 면목이 없을 거라고요. 산 도련님의 자격을 감히 빼앗으려 했다고…”
이산은 한참이나 말없이 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녀석에게는 문파를 떠날 용기라도 있었지만 나는.”
이도는 흠칫 놀랐다. 그때 집 안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기골이 장대한 그 청년은 당당한 모습으로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서는 이산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산, 오랜만이야.”
이산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현, 3년 만에 보는군. 아주 많이 변했는걸.”
이현의 얼굴에 슬픈 빛이 걸렸다. 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지키고 있던 이도와 그의 여동생은 그 옆에 서서 숨소리조차 죽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제의 소식은?”
이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산파를 떠난 후로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어.”
이산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야? 현도종에서도 그 정도의 자질이면 분명 적지 않은 선배들이 귀하게 여겼을 텐데.”
이현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주 긴 이야기지. 난 지금 응기 11단계야. 작년에 있었던 시합에서 운 좋게 승리를 거둬 뒷산으로 들어가 수련을 하면서 응기 11단계로 진입했지.”
이산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그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뜨거웠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뒤이어 거대한 거울이 기척 없이 공중에 나타나더니 거울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신선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음산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로부터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산과 이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산은 얼른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현도종의 이산입니다. 두 선배님을 뵙습니다.”
신선과 같은 느낌을 풍기는 노인, 계명이 흠칫 놀라며 이산을 향해 말했다.
“현도종? 증거는 있나?”
좋지 못한 예감에 이산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는 저물대 안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옥패를 꺼내들었다. 노인은 그것을 가로채 자세히 들여다본 뒤 이번에는 이현을 향해 물었다.
“너도 마찬가지냐?”
눈치가 빠른 이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등화원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펑 소리와 함께 이도와 여동생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며 두 갈래의 노란색 연기가 두 사람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등화원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깃발이 허공에 떠올라서는 그 두 갈래의 노란색 빛을 흡수했다. 이어 깃발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두 개의 얼굴이 나타났다. 방금 죽은 이도와 여동생이었다.
“오늘 이곳의 씨를 말려버릴 것이다.”
날카롭게 외친 등화원은 이현과 이산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 무렵, 한제는 결명곡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살기를 가득 풍기며 그를 뒤쫓고 있었다.
한데 그때, 한제의 가슴이 뜨끔 아파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송곳에 찔리는 듯한 통증이었다. 육신이 아닌 영혼이 상하는 고통이었다.
알 수 없는 공포와 다급함이 그의 마음을 옥죄었다. 여태 느껴본 적 없던 느낌이었다. 폐부를 찢는 듯한 통증에 온몸의 피가 순간 쭉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걸음을 더욱 빨리한 한제는 서늘한 안광을 번득이며 방향을 틀어 시음종의 집결지로 날아갔다. 네 개의 무지개가 빠른 속도로 결명곡 상공을 갈랐다.
★ ★ ★
이산과 이현은 두려움과 무력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꼼짝도 못하고 눈만 뜬 채 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도와 그의 여동생이 단숨에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선의 풍모를 지닌 노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아예 시선을 거두었다.
등화원은 잔혹하게 웃으며 대문 안으로 들어선 뒤 두 손을 모았다가 떼며 보라색 고리형 파문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팡!팡!”
집을 감싼 빛의 파문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망가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이어 등화원은 걸음을 옮겨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으아악! 으윽”
방에서는 비명이 연이어 울려 퍼지더니 여러 갈래의 노란색 연기가 피어올라 작은 깃발 안에 흡수됐다. 등화원은 거침없이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또 한 차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현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반항하고 싶었지만 말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으으악…..으악…..”
순식간에 모든 하인이 몰살됐다. 등화원의 얼굴은 더욱 잔혹해져갔다. 이 무렵 이 씨 가문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집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집 전체가 보라색의 빛에 감싸여 있어 나갈 방도가 없었다.
“아…악 살려…줘,,,”
방 밖에서는 비참하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미지의 공포에 모든 이 씨 가문 사람들은 덜덜 떨기만 했다.
등화원이 중얼거렸다.
“력아, 그 자가 널 죽였으니, 난 그 자의 모든 가족을 죽여 복수하겠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다음 방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생생히 지켜본 이현은 미친 듯이 몸을 떨면서도 어떻게든 상대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걸음을 떼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뿐이었다.
“안 돼!”
등화원이 냉정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흔들자 그 방은 기척도 없이 재로 변해버렸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안에 있던 남녀 한 쌍이 모습을 드러났다. 그들은 한제의 셋째 작은아버지와 숙모로 이현의 부모이기도 했다.
등화원이 오른손을 꽉 쥐자 이현의 아버지가 곧장 하늘로 붕 떠올랐다. 두 손으로 목을 감싼 그의 얼굴이 눈 깜짝할 새에 새빨개졌다.
“크…큭…으…윽”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조금의 숨이라도 들이키려는 듯 입을 벌렸다.
새빨갛게 충혈 된 이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이산이 막아섰다. 이산은 이현을 꽉 붙든 채 낮게 중얼거렸다.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마. 상대는 원영기 고수야.”
등화원은 냉정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거두었다.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현의 아버지는 머리가 피 안개를 일으키며 터져버렸다. 남은 그의 몸뚱이만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영혼은 즉시 분리되어 검은 깃발에 흡수됐다.
“안 돼!”
강도 (3)
“커..컥”
이현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리고 멍하니 아버지의 시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째서, 어째서?”
등화원은 다시 오른손을 쥐었다. 그러자 이현의 어머니 역시 머리가 터져 나갔다.
“펑!”
이현은 몸을 부르르 떨며 또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그는 어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주체할 수 없는 듯 눈물을 흘리며 등화원을 노려봤다.
“어째서!”
등화원은 그늘진 얼굴로 소매를 흔들었다. 이 씨 가문의 집 전체를 감싸고 있던 보라색 빛이 반짝이더니 이내 집을 전부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40명 정도로 모두 이 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잔뜩 겁에 질려 있었으며, 여자들 중에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등화원은 잔인하게 웃으며 한 사람을 들어올렸다. 그 사람은 한제 아버지의 셋째 숙부로 현재 이 씨 가문에서 항렬이 가장 높은 노인이었다.
“펑..펑.”
“으악! 으으악!”
한 명씩 차례로 등화원에 의해 영혼이 뽑혀 비참한 죽음을 맞는 모습을 이현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붙잡고 있는 이산의 손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산은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볼 엄두도 안 나는 듯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두 눈 역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훌쩍이는 가운데 일찍이 재야에서 생활을 한 덕분에 일반 사람들보다 담이 몇 배는 더 강한 한제의 넷째 작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는 혈혈단신이었다. 며느리는 1년 전 병으로 죽었고 아들은 몇 년 전 강호의 문파에 수련을 하러 떠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크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우리 이 씨 가문이 대체 당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는 것이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당신네들의 눈에 개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개미라고 해도 우리에게 이러는 까닭이 대체 뭔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