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3
깊은 숨을 들이마신 환동은 더욱 이글거리는 눈빛을 번득였다. 류미를 본 순간부터 그는 온몸과 마음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염운성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자는 염가의 선조로 저와 같은 문정기 중기 수준입니다. 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반항하지는 못하겠지요. 이번 여정에서 아가씨의 명망을 더럽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류미는 살짝 웃었다. 환동은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혀 더욱 더 이글거리는 눈빛을 번득였다. 그 눈빛에는 매혹된 듯한 느낌도 있었다.
인과의 순환
손가의 성으로 돌아온 한제는 곧장 처소로 향하지 않고 길을 거닐며 경지의 깨달음에 대해 고민했다. 생사윤회의 경지는 이미 원신과 하나로 융합된 상태였으며 자신의 원신에도 생사윤회의 깨달음이 깃들어 있었다.
“삶과 죽음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지만⋯⋯ 확신을 할 수가 없구나. 인과의 도는 너무나 커. 문정기에 이르기 전 난 깨달은 도로 황천을 만들어냈지만⋯⋯ 이 황천도는 삶과 죽음 중 죽음의 표현일 뿐이지.”
주위에 왁자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제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삶의 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고민을 하던 한제는 바위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청년을 본 순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선량한 여인이지. 저런 수련자는 수련계 전체를 통틀어도 많지 않아.”
청년은 한제의 시선을 느낀 듯 눈을 떴다. 한제는 본 순간 흠칫 놀란 청년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어렸다.
“너⋯⋯ 너 그 선배님께 붙잡혀 가지 않았느냐?”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몇 가지 물어보더니 곧장 놓아주시더군요.”
청년은 의아한 눈으로 한제를 훑어보더니 더는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었다. 상대가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물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들어가 수련이나 해라. 네 수준을 보니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저번에 해준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하거라.”
청년은 진지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지런함으로 부족한 자질을 채워야 해!”
고개를 끄덕인 한제가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도 열심히 노력하여 수련하신다면 언젠가 화신기에 이르실 수 있을 겁니다.”
“화신기⋯⋯.”
청년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집안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무리 열심히 해도 천도의 깨달음이 없다면 원영을 원신으로 만들 수 없다더군. 난 평생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르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야.”
한제는 빙그레 웃었다. 그의 얼굴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지금의 마음가짐을 유지하신다면 반드시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청년은 한제가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좋아, 만약 내가 화신기에 이르게 된다면 오늘 네가 해준 이 예언을 떠올리게 될 거다. 자 이제 돌아가서 수련하도록 해.”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바위 아래의 청년은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까⋯⋯?”
방으로 돌아온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체내의 선력이 충분한 상태라 더 이상은 선기를 흡수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환가 사람의 저물대를 꺼냈다. 그 안에는 옷가지와 여러 물건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중 한제의 관심을 끈 것은 8품 단약과 두 개의 법보, 그리고 하나의 옥패와 영패였다.
두 개의 법보에는 어떤 신식의 낙인도 찍혀 있지 않았다. 염가 선조와 그 떠돌이 거사는 감히 이 법보에 자신들의 신식을 남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중 하나는 검은색 빗으로 총 19개의 살이 있었고 짙은 피비린내를 풍겼다. 손에 쥐자마자 흉악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공격용 준선보로군! 위에는 진도 배치되어 있어. 범상치 않은 물건이야.”
한제는 손가락으로 빗살을 살짝 건드리고는 다른 법보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금속성의 부싯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자금색이었다. 손에 쥐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부싯돌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빛이 폭발할 듯이 번득였다.
두 부싯돌을 맞부딪치자 수많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불꽃이 나타나 순식간에 열기를 퍼트렸다.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법보구나!”
법보 대부분은 수련자들이 만들지만 소수는 천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했다. 이런 법보는 매우 드물어, 심지어는 전수 효과가 있는 법보보다도 적었다.
한제도 고대 신 서사의 기억을 통해서나 이런 유형의 법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고대 신 입장에서 이런 법보는 법보가 아니라 연기(煉器)의 재료일 뿐이었다.
이 부싯돌은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연기 재료 중 하나로 금속 속성의 물질이라 성질이 강력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신기한 신통력까지 깃들어 있어 맞부딪칠 때 불꽃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불꽃은 일종의 금화(金火)로 당시 요령의 땅의 천요군 총관이 보였던 태양의 빛과 비슷한 신묘함을 가졌다. 이것은 법보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한 위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안타깝군, 흠집이 너무 많고 포함된 금속 속성도 너무 적어. 그렇지 않았다면 꽤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준선보였을 텐데… 좀 더 컸다면 하급 선보에 비견할 만했을 테고…”
한제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이 부싯돌은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 제련을 한다면 10분의 1도 안 되는 크기로 줄어들 터였다.
부싯돌을 챙겨 넣은 한제는 영패를 집어 들고 신식으로 살폈다. 그러자 영패에서 눈부신 빛이 발산됐고 세 차례 변화를 일으키더니 이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건 환가 가족이라는 신분증인 모양이군.”
언뜻 보기에 신비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신분증 같아 보이는 영패였다. 신식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살펴봐도 그랬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선위!”
한제의 부름에 그림자가 쭉 늘어나더니 그의 팔을 타고 영패까지 흘러들었다. 한제는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른 선위의 수준으로 영패를 파악했다.
잠시 후, 두 눈을 뜬 한제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신통술이 배어 있군. 명혼(命魂)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니 환가에서도 이미 이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어.”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영패를 내려놓고 옥패를 집어 들었다. 옥패에도 역시 신식은 걸려 있지 않았고 주인이 죽기 전에 남긴 약간의 원한만 어려 있었다. 아마도 그를 죽인 세 사람이 두려움 때문에 옥패를 살피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원한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한제는 신식으로 옥패를 살폈다. 그러자 옥패에 어려 있던 원한은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그가 신식을 집어넣은 순간, 옥패에서는 무형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이 파동이 방에서 빠져나가려는 순간, 한제는 눈에서 전광을 쏘아 보냈다.
파지직!
전광에 적중당한 정보 전송용 파동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옥패에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살폈고 한참 뒤에야 신식을 거두더니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한 천환무정도! 천환성의 환가였군. 그랬던 거야.”
옥패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환가의 신통력을 수련하는 방법이었다. 다만 그 방법에는 특수한 금제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이 봐서는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금제는 환가의 혈통이어야만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한제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옥패의 주인이 기록해놓은 정보였다.
운하성(雲霞星)에서 금속 속성 부싯돌의 광맥 한 줄기를 찾고 한 쌍을 취했다⋯⋯
한제는 옥패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한 줄기 금속 속성을 띤 부싯돌의 광맥⋯⋯. 광맥이라⋯⋯. 중상을 입고 쫓기면서 염운성까지 도망쳐 온 이유가 있었군. 역시 그를 죽인 세 사람은 이 옥패를 보지 못했군. 이 내용을 봤다면 나를 끌어들이기보다는 자신들이 그 광맥을 차지하려 혈안이 됐겠지.”
한제의 눈이 기묘하게 번득였다.
“금속 속성의 부싯돌 광맥이라면 천역주의 금속 속성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터! 사도환은 그 속성을 다 채우면 천역주가 주인을 알아볼 거라고 했지. 과연 천역주 본연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아무튼 이 정보는 최대한 새어나가지 않게 하겠지만 혹시 새어나가게 된다면… 나를 방해하려는 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한제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득였다.
“그나저나 운하성은 도대체 어디지?”
한제는 곧장 신식을 펼쳐 손석을 찾아냈다.
손가 저택에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하던 손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귓가에 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천성역의 성도(星圖) 중 알고 있는 것 전부를 옥패로 전달하도록.”
손석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성도를 탁본한 뒤 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옥패는 이내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어느덧 열흘이 흘렀다.
한제는 손석에게서 받은 옥패를 통해 성도를 살핀 결과 운하성이 염운성으로부터 꽤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한 번 오가려면 몇 개월은 걸릴 듯했다.
옥패에 덧붙인 손석의 설명에 따르면 운하성은 폐허가 된 수련성으로 온통 죽은 수련자들이 내뿜는 독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지난 열흘을 한제는 이 옥패에 새겨진 성도를 자세히 연구하고 자신의 법보를 정리하는 데 보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방을 나서 곧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만 리 밖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곧장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바로 그때, 염가의 노인과 떠돌이 거사, 그리고 손석이 나타났다.
염가의 선조는 어두운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허 도우, 떠나려는 겐가?”
떠돌이 거사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손석은 곁에서 쓰게 웃고 있었다. 성도를 보내달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한제가 정말 떠나려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제는 세 사람을 둘러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약속을 어기거나 번복하는 사람이 아닐세. 아마도 몇 개월, 길어야 1년 안에 돌아올 거야.”
한제의 해명에 염가의 선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