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5
환동은 냉소하며 말했다.
“놓아주면 말해주⋯⋯.”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제는 손을 휘둘러 환동의 몸을 움켜쥐었다. 그는 환동의 정수리에 손을 얹은 뒤 전광을 번득였고 그러자 그의 그림자는 한제의 팔을 따라 환동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수혼술!”
환동의 수준은 문정기 중기였기 때문에 수혼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위의 힘을 빌려야 했다.
한제는 선위의 신식을 통해 환동의 기억을 하나하나 살폈다. 탐색을 진행할수록 환동의 몸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고 두 눈이 툭 불거져 나오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환동의 기억 속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찾아낸 한제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한참 뒤, 한제가 손을 풀자 환동의 육신은 살덩어리로 뭉개졌다. 한제는 말없이 환동의 원신을 존혼번에 집어넣었다.
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염학풍을 비롯한 세 사람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류미⋯⋯.”
한제의 미간이 더욱 깊게 구겨졌다. 주작성에서의 일들이 눈앞을 스쳐가는 듯했다.
“운이 좋았군. 나천성역까지 오게 되다니⋯⋯.”
한제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염학풍을 비롯한 세 사람은 감히 그를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 ★ ★
염운성을 벗어난 한제는 저물대에서 성라반을 꺼내 올라탄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류미와 나는 묵은 인연이 깊지. 만약 주작묘에서처럼 분수도 모르고 날뛴다면 죽여 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환가의 선조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자가 나선다면 선위를 이용해 대적하게 한 뒤 도망쳐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성도의 기록에 따라 운하성으로 향했다.
“천역주의 속성을 가득 채우는 일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 죽여주마!”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더욱 속도를 올렸고 한 달 뒤에는 신식을 통해 저 멀리 떠 있는 운하성을 보게 됐다.
환동이 죽음을 맞는 순간, 환가에서는 이를 알게 됐다. 주성의 최대 수련자 가문인 환가의 족위(族衛)가 살해됐다는 소식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제 막 천환성에 돌아온 환가의 선조는 이 이야기에 분노하여 눈을 번득였다. 허나 당장 염운성으로 가겠다는 가문 사람들을 자제시키더니 환혈법을 시행할 날을 앞당겼다.
“죽은 족위는 환미의 사람이다. 이 일은 그 아이가 직접 해결해야 해!”
선조가 이 일로 환미의 위엄을 높여주려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염운성 밖에 쇄성진(鎖星陣)을 배치하여 환미의 환혈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하라!”
환가 사람들은 곧장 명을 받들었다.
한편, 류미는 환동의 죽음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염운성⋯⋯ 내가 첫 공적을 세울 곳인가. 스승님 말씀대로라면 환혈을 할 때 내게 전승도 해주신다고 하셨지. 본인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추고 2백 년 동안 수련한 결과로 내 수준을 단번에 문정기 후기 절정에 이르게 해주겠다고 하셨어.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이제 내 스스로의 깨달음에 달렸다.”
류미는 누각의 창가에 서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면 한제 그자와 나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겠지. 내가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른 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이제 나에게 그자는 환동처럼 개미 같은 존재에 불과해.”
류미는 빙그레 웃었다.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그 모습에 누각 밖을 순찰하던 호위병들은 넋을 잃었다. 뭔가에 사로잡힌 듯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그들의 눈빛은 환동의 그것과 놀랄 만큼 비슷했다.
폐관수련
‘만환천마도는 세상 만물을 홀리지⋯⋯.’
맑은 바람이 불어와 류미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류미는 섬섬옥수를 들어 비단 같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한데 그때, 갑자기 그녀의 저물대 안에서 파동이 일었다. 원래는 저물대 안에 국한되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파동이었지만 짙은 원망의 기운이 담긴 파동은 저물대의 제한을 뚫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류미는 고개를 숙여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문질렀다. 그러자 파동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깃든 원망의 기운은 여전히 짙었다.
“착하지, 지금은 나올 때가 아니야.”
류미가 조용히 속삭이며 손가락 끝을 깨물더니 그 피를 저물대 안에 넣었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저물대 안에서 확산되던 파동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 안에 깃든 원망의 기운도 제압됐다.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느냐?”
뒤이어 환가 선조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서서히 실체화됐다. 그는 류미의 저물대를 훑어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끔찍이도 악독한 것이니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장 그것을 없애라!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봐야 네 도심을 흐트러뜨릴 뿐이다. 그래서야 어찌 수련의 1단계를 뛰어넘어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르겠느냐!”
환가의 선조가 꾸짖듯 말했다.
류미는 고개를 들고 선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제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 ★ ★
한제는 은룡을 타고 운하성으로 돌진했다. 멀찍이서 본 운하성은 짙은 회색이었고 그 위에는 한 층의 짙은 안개가 깔려 있어 신식으로도 그 안을 살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짙은 안개 안쪽에서는 커다란 포효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마치 누구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이…
어느덧 운하성 앞에 이르른 한제는 짙은 안개를 바라보다가 저물대에서 칠성검진을 꺼냈다. 칠성검진은 곧장 한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성라반을 거둔 한제가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칠성검진의 힘은 마치 송곳처럼 안개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 안개는 너무나 짙었고 끝도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순식간에 안개 속 깊이 파묻혔다.
여전히 안개 너머의 상황은 살필 수 없었고 주위는 온통 뿌연 안개뿐이었다. 그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하강을 계속했을까? 돌연 안개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속도를 높여 마치 한 줄기 유성처럼 튀어나갔다. 그 순간, 한제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대지에는 마치 모든 것을 삼키려는 수많은 입처럼 균열이 가득했다.
짙은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뒤덮고 있었는데 이 기운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사물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운하성 자체에서 생성되는 것이었다. 또한 지면의 균열에서는 곧 썩어버릴 것 같은 촉수가 줄기줄기 뻗어 나와 흔들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묵직한 압박이었다.
“끄아아악!”
“캬아아!”
낮은 신음과 포효가 운하성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대부분은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완전히 폐허가 된 별이로군.’
한제는 말없이 허공을 날아 이동하며 신식을 펼쳐 금염의 광맥을 찾았다. 중간에 발견한, 폐허가 된 성과 도시들을 통해 이곳도 이전에는 매우 번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에서 균열을 뚫고 뻗어 나온 촉수가 폐허가 된 성을 감싼 그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그 촉수들이 일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빠르게 수축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때,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하늘과 땅을 뒤흔들 듯한 포효가 들려왔다. 이어서 붉은 구름이 어둠을 밝히며 미친 듯이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오오!”
그 붉은 구름 위에는 용과 닮은 거대한 마수가 있었는데 몸통 길이만 해도 1만 척에 달했고 머리는 뱀처럼 세모꼴이었으며, 온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털이 나 있었다.
마수가 달려드는 기세에 안개도 빠르게 흩어졌다.
“망월(望月)!”
한제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망월은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중 매우 인상이 깊었던 존재였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곧장 지면의 균열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속에서 망월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다.
‘망월은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고대 신 일족의 체내에만 존재하는 기생 생물로 고신이 살아 있을 때는 그 피를 흡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고신의 체내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 때로는 고신의 법보로 사용되기도 하고 고신이 죽으면 함께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극소수는 고신의 몸 밖으로 뚫고나오기도 한다. 강한 고신의 몸에서 기생할수록 망월 역시 강해지지.’
한제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망월을 살폈다.
‘서사의 체내에 있던 망월은 이미 모두 죽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는 더 이상 망월이 나타날 수 없어! 한데 어째서…? 설마⋯⋯ 이곳이 고신의 유해로 이루어진 별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천성역에서 어떻게 누구도 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수준 높은 수련자라면 망월을 절대 그냥 놓아두지 않았을 텐데…’
점차 멀어지는 망월의 모습을 보며, 한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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