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8
류미의 눈에 무정한 빛이 드리우더니 그녀는 가볍게 혀를 차며 고운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가락 끝이 향한 순간, 장심뢰는 흩어져 사라졌다.
“원신을 태울 거라면 나머지도 몽땅 태워주지.”
류미의 조용한 목소리에 염학풍 뒤에 있던 조전문의 눈빛은 더욱 멍해졌고 심지어는 광기까지 드러냈다. 그는 이미 완전히 혼란한 상태에 접어든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류미뿐이었다.
그는 곧장 앞으로 나서 염학풍의 앞을 막아서더니 원신을 순간적으로 태웠다. 원신뿐만 아니라 그의 육신까지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너도!”
류미의 시선이 이번에는 손석에게 닿았다.
막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정시킨 손석은 류미의 눈빛이 닿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더니 조전문과 마찬가지로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러더니 그 또한 원신과 육신을 태워 얻은 강력한 힘으로 염학풍을 공격했다.
“허허! 자네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무척 슬프구나!”
염학풍은 헛웃음을 터뜨렸으나 조전문과 손석은 그 말도 알아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신통력을 발휘했다.
콰르릉! 쾅!
연이은 거대한 소리와 번득이는 법술에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조전문과 손석은 육신이 빠르게 흩어지면서 수준이 치솟았고 그 힘을 이용해 염학풍을 죽이려 들었다.
이를 지켜보며 류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혼자 몸으로 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를 위해 싸워줄 자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만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만환천마도였다. 환가의 선조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류미를 환가로 들이고 환혈법까지 사용한 것도 만환천마도를 익힌 채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얼마나 강력할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염운성이 진동했고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염학풍은 좌절했고 결국 자신의 육신까지 태워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려 했다. 육신과 원신을 동시에 태운 덕분에 그의 수준은 미친 듯이 상승했고 경지의 깨달음 없이도 문정기 후기에 이르렀다.
“네년을 저승길의 동무로 삼아주겠다!”
수준은 빠르게 상승했지만 경지가 따라주지 못해 진정한 문정기 후기와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막강했다.
염학풍의 몸은 타오르면서 빠르게 흩어져갔다. 그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가 합장을 하자 눈부신 금빛이 손바닥에서 맴돌았다. 신통력을 발휘하지 않고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원신의 원기를 발휘할 생각이었다.
금빛이 된 원기는 그의 손바닥을 따라 맹렬하게 뻗어나가더니 10만 척 길이의 예리한 검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들었다.
이 무렵, 손석과 조전문의 육신은 이미 거의 흩어져 버려 이제 몸은 반쯤밖에 남지 않았고 나머지는 허공으로 녹아든 상태였다. 그들은 전보다 더욱 광기 어린 눈빛으로 결국 자폭을 선택했다.
쾅!
쾅!
문정기 수준 수련자가 원신과 육신까지 불태워가며 행한 자폭은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고 그 충격은 온 염운성으로 퍼져 나갔다.
하늘은 무너져 내릴 듯했고 대지가 출렁였으며, 바다는 1천 척까지 솟아올라 육지를 집어삼켰다. 염운성 내부의 영맥들 또한 일제히 폭발했다. 마치 염운성 자체가 분노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원신과 육신이 흩어져버린 손석과 조전문은 깨어나지 못했다.
염학풍은 그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버텨내긴 했으나, 자폭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염학풍의 온몸은 피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류미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악독한 것! 어찌 일반인들과 염운성까지 끌어들이느냐!”
류미는 대답 없이 슬며시 웃었다.
염학풍의 눈빛은 점차 절망과 슬픔으로 물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대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던 염운성은 지금 곳곳이 폐허가 된 상태였다. 만약 자신마저 자폭한다면 염운성 전체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릴 터였다.
“이곳은… 나의 집이다. 이 염학풍이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염운성을 보호하는 것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류미를 노려보았다.
“이 염학풍의 모든 수준을 걸고 저주하건대, 너는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또한 환동을 죽인 허목이라는 자 역시 너와 함께 죽도록 저주하리라!”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그러자 타오르던 원신과 육신이 곧장 무너져 내렸고 점차 흩어져 사라지더니 먼지가 되어 대지로 떨어졌다.
류미는 마치 세상 어떤 일도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냉랭한 눈길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몸을 움직여 아래쪽으로 돌진했다.
“염가와 조가 손가를 모두 멸족하라는 것이 선조의 요구였지. 한데 허목이라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류미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신식을 넓게 펼치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흥미롭군. 손가의 그 수련자 분신이 있었어. 그렇다면 나머지 둘도 분신이 있을 터.”
손석의 분신은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기에 자세히 탐색하지 않았다면 류미 역시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한편, 염운성 남쪽 끝 어느 성의 민가에서는 한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손석과 똑같은 얼굴로 씁쓸하게 웃었다.
4년 전, 세 사람은 큰 화가 염운성에 미칠 것임을 알게 된 순간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분신을 만들어냈다. 특수한 공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터라 분신은 매우 약했다. 그저 한 번의 목숨을 더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염학풍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남몰래 분신을 만들었고 2년 전 염가의 사람과 함께 염운성을 떠났다. 조전문은 분신을 만들어낼 수 없어서 대신 다른 수단을 쓰기로 했지만 그 다른 수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석의 분신은 수준이 결단기에 불과해 우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사실 이전에 한제를 찾아가 부탁하려던 것도 분신에 관한 일이었으나,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거절당했던 것이다.
류미는 나이술로 이동해 염운성 남쪽 끝에 이르렀다. 한데 그때, 돌연 그녀가 지금까지의 냉랭한 모습과는 달리 흠칫 놀라더니 하늘 한쪽을 노려보았다.
“이 기운은⋯⋯?”
우주에서는 은빛이 염운성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사실 한제는 세 사람이 준 선옥에 꽤나 마음을 쓰고 있었다.
한제는 염운성 밖을 두른 금제를 확인한 후 눈빛이 굳어지더니 성라반에서 일어섰다.
“내가 떠났을 때만 해도 금제는 없었는데…”
금제에 통달한 한제조차 이 금제는 금방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풀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한제는 성라반으로 금제를 뚫고 들어가더니 곧장 염운성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류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인데⋯⋯?”
몸을 훌쩍 날려 염운성에 진입한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염운성에 이르기 전부터 그는 곳곳이 폐허가 되었다는 것과 선력의 파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방금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리는 흔적이었다.
한제의 신식은 이미 염운성 남쪽 구역에 있는 류미에게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한제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염운성의 남쪽 끝, 류미로부터 1천 척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그를 본 류미의 눈빛은 더욱 기이하게 변했다. 그녀는 한제가 염운성에 접근한 순간부터 상대에게서 아주 드물지만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허나 분명 낯선 사람이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 순간, 한제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나까지 죽일 생각이라면 곧장 떠나겠네.”
사실 그는 염운성에 도착하자마자 류미가 왜 남쪽 끝에 있는지 의심의 들었다. 이에 신식으로 온 염운성을 살폈고 그 결과 남쪽 끝 지하 깊은 곳에서 손석의 분신을 발견하고는 앞뒤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이 분신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으니 굳이 나서서 환가에 강력하게 맞설 필요는 없었다. 그저 선옥에 대한 약간의 성의만 보일 생각이었다.
한편, 그는 문정기 후기 절정에 달한 류미의 수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류미의 수준이 어떻게 저렇게 상승했단 말인가!’
한제는 그녀를 다시 한 번 훑어본 후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냈다.
‘몸에 선력도 맴돌고 있군.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주입된 선력이야. 환가의 선조가 관여한 모양이군. 덕분에 수준은 높아졌지만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수준이 아닌 만큼 수준에 걸맞는 위력까지는 발휘하지 못할 거야.’
“우리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
한참이나 한제를 살피던 류미가 조용히 물었다.
“그럴 리가!”
한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류미는 그런 한제를 빤히 바라보다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손석이나 조전문과 달리 한제의 반응은 덤덤했다. 사실 한제는 류미의 그런 미소가 너무나 싫었다. 주작성에서도 그랬다.
“됐네,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으니 곧장 떠나야겠군!”
한제가 싸늘하게 대꾸하고는 몸을 돌렸다. 세 사람이 먼저 분신에 대해 숨긴 이상 그도 더는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한데 그때, 류미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뇌까렸다.
“네 수준이 그 정도까지 이르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 나조차도 꿰뚫어 볼 수가 없다니. 이한제, 내가 정말 네 정체를 모를 거라 생각한 건가!”
한제는 우뚝 멈춰서더니 서서히 몸을 돌렸다. 류미를 마주보는 그의 눈빛 역시 싸늘했다.
“알아봐주다니, 영광이군. 허나 주작성의 질긴 악연을 계속해서 끌고 올 생각이라면 너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
사실 냉담한 겉모습과 달리 류미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나천성역에서 한제를 맞닥뜨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제의 수준은 그녀가 확인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상태였다.
만환천마도(萬幻天魔道)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 순간 스쳐가며 류미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
“너 외에는 누구도 그토록 차가운 눈빛을 보일 수 없지. 모습은 바꾸었지만 그 눈빛은 바꾸지 못했구나. 네가 모습을 바꾼 것은 내게 정체를 들키기 싫었기 때문인가?”
한제는 대답 대신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다. 꺼져.”
류미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에 드리웠던 복잡한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다시 냉랭한 빛이 맴돌았다. 허나 그녀의 입에서는 그 눈빛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어떤 법보나 신통력을 쓴다 해도 마찬가지야.”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적멸지의 바람이 흘러나와 검은 빛이 되더니 곧장 류미에게 달려들었다.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적멸지의 바람이 눈 깜짝할 사이 코앞까지 들이닥쳤으나 류미는 여유로웠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들어 결인을 그렸고 그러자 빛의 장막 하나가 생겨나 적멸지의 바람과 충돌하며 전광을 번득였다. 동시에 류미가 만들어낸 빛의 장막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