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5
“까닭?”
등화원이 두 손을 흔들자 순간 또 몇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너희 이 씨 가문 중 누군가가 나의 증손주를 죽였다. 난 너희 가문 모두를 죽일 것이다.”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내리치자 땅이 우르릉 흔들렸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현은 이산에게서 벗어나 달려들려고 했지만 이산은 다시 그를 붙들었다. 그는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한 채 소리죽여 말했다.
“어찌되었든 지금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 있어야 복수도 할 수 있지!”
한제의 넷째 작은 아버지가 조용히 답했다.
“당신 증손주라면 또한 신선일 터인데 우리 이 씨 가문 사람 중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몇 백 년간 우리 가문이 배출한 신선은 오직 세 사람.”
말을 잇던 그는 뭔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 중 이산의 아버지가 얼른 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어르신의 증손자를 죽인 그 사람이 혹시 이한제가 아닙니까?”
등화원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한제, 그 녀석의 이름이 이한제였구나!’
그는 상대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쥐었다. 순간 이산의 아버지가 앞으로 끌려 나왔다. 등화원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 이한제라는 자에 대해 말해보도록.”
이산의 아버지는 한제에 관한 일과 그의 부모가 사는 곳까지 전부 소상히 말했다. 그는 속으로 이한제와 그의 가족을 저주했다.
‘이한제, 네 놈 때문에 이런 화가 온 것이더냐? 전부 죽어버려라! 우리 가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네 놈과 네 가족들은 백 번 천 번 죽어 마땅하다.’
등화원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웃으며 두 손을 붙였다가 떼었다. 그러자 그의 양 손 사이에서 번개 덩어리가 나타났다. 그가 그 번개 덩어리를 밀자 고리 형태의 보라색 파문이 넘실거리며 퍼져 나왔다.
“으아악!”
가장 가까이 있던 이산의 아버지는 그 번개 덩어리의 파문이 닿자마자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옷과 함께 재로 변해버렸다. 뒤이어 파문에 닿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재로 변해버렸고 그들의 영혼은 모두 검은색 깃발에 흡수됐다.
이 파문이 한제의 넷째 작은 아버지에게 닿으려던 그 순간, 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한 줄기의 부드러운 하얀색 빛이 별안간 그의 몸을 감싸며 번개 덩어리에서 피어난 파문을 가로 막았다.
등화원은 몸을 돌려 계명을 노려보았으나, 계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우, 그 사람은 남겨두게. 내가 쓸 데가 있으니.”
차게 웃던 등화원은 이산과 이현 두 사람을 가리키며 노인에게 말했다.
“저 두 녀석에게는 손대지 않을 작정이지?”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등화원을 향해 말했다.
“도우, 자네가 만약 저 둘을 죽인다면 난 굳이 막지 않겠지만 흑천 선배가 묻는다면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네.”
등화원은 노인을 한참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콰쾅” 소리와 함께 이 씨 가문의 집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산을 비롯한 남은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한제의 집 쪽을 향해 날아갔다.
이산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보았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머리로 바닥을 찧기 시작했다. 이마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고통이 아닌 분노와 침통함만이 남아 있었다.
이현은 이를 악물고 헛웃음을 내뱉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산은 그런 이현을 안아들고 노인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인 뒤 현도종 쪽을 향해 날아갔다.
노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큰 죄를 지었구나. 이 일이 옳은지 그른지 조차 알 수가 없어. 허나 저 중년 남자는 기세가 범상치가 않으니 살려두기로 하지.”
그는 소매를 휘둘러 한제의 넷째 작은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
★ ★ ★
등화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그의 뒤에 있는 검은색 깃발에는 1백 명이 넘는 이 씨 가문 사람의 영혼들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곳에 봉인된 얼굴들은 모두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끊임없이 신음했다.
“으…으윽…으악!”
마을에 도착한 등화원은 신식을 통해 곧장 이한제의 집을 찾아냈다. 그는 잔혹한 웃음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잠시 후 등화원이 한제의 집에서 나와 오른손으로 깃발을 내리치자 깃발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등화원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뱉어냈다. 피 묻은 깃발은 귀신 소리를 내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 물결이 서서히 잠잠해지더니, 빽빽한 숲에서 달리고 있는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등화원은 잔인하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그 물결을 건드렸다.
★ ★ ★
“으..윽”
한편 한제는 아직도 심장이 쿵쾅댔으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또 다른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기가 뽑혀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리다가 반쯤 주저앉아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상상하기도 형용하기도 어려운 통증이었다.
한제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은 통증에 잠겨가고 있었다.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사람은 모든 방면의 감각이 예민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던 한제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부모님의 자애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뒤이어 그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됐다.
“안 돼!”
한제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표정은 고통에 일그러졌고 온몸은 덜덜 떨렸다.
그의 체내에서 폭주하여 통제할 수 없게 된 음한력이 반경 수십 장 안의 모든 나무와 풀들을 푸른색 결정으로 얼려버렸다. 그리고 이 음한력의 확산은 계속 격렬해졌다.
순간, 한제의 영력 중 ‘극’의 경계가 끝없이 상승했다.
★ ★ ★
상고시대, 극(極), 도(道), 시(始) 세 영력 경계는 단련하고 깨닫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중 극의 경계는 신비로운 면에서 도의 경계만 못했고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의 경계만 못했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영력을 가진 자가 나타나는 것은 큰 재난이었다.
끔찍함의 정도로만 따지자면 도의 경계나 시의 경계는 비교할 바도 못 됐다.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영력을 가진 사람은 냉혹하고 무정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며, 그 후부터 영력의 속성은 철저히 극단을 향해 편향되게 마련이다.
일단 그리되면 극의 경계가 갖는 살상력은 끔찍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같은 급의 수련자라 해도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영력을 가진 자는 무적이었다. 하지만 극의 경계는 단점 역시 명확했다.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영력을 가진 자는 원영기 후기 너머, 즉 화신기로는 접어들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세상에는 규칙을 깨는 자가 있게 마련이니, 상고시대에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영력을 가졌던 한 고수는 그런 제한마저 깨뜨린 존재였다. 그는 3천여 년간 신선계를 왕처럼 종횡무진 무비고 다녔다.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를 원치 않았다. 그 긴 시간 동안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수련자는 셀 수가 없었다.
후대 사람들은 상고시대 신선계의 멸망이 그의 탓이라 여겼다. 만약 그가 그 많은 수련자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상고시대 신선계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난에 그토록 무기력하게 와해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의 경계에서 극단의 영력 속성은 어떤 법술에 대해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만약 상고시대의 그 고수처럼 화신기의 제한을 뛰어넘는 극의 경계 수련자가 나온다면 신선계의 끔찍한 재난이 될 것이다.
이에 상고시대에서는 극의 경계 수련자는 다른 수련자들이 힘을 모아 죽여야 할 존재로 인식됐다.
다행이라면 전설 속의 그 남자 이후로는 원영기를 넘어서는 극의 경계 수련자는 나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3성 수련국 중에서도 그리 특별나지도 않은 조나라 안의 결명곡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이한제라는 이름의 청년이 천천히 극의 경계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한제는 반쯤 엎드려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 반경 수백 장 안의 범위는 모두 얼음 결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가슴에 매달린 석주는 여태 본 적 없던 검은색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등화원은 한제의 가족들 사이의 혈연을 이용해 한제에게 말을 전했다.
“결명곡 밖에서 기다리마. 때에 맞춰 나타나지 않는다면 영혼의 깃발을 부수고 네 가족들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그 무렵 한제를 추격하던 천도문의 세 제자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기이한 얼음 결정이 푸른빛을 내며 땅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얼음 결정으로 뒤덮인 땅 가운데 있는 청년의 몸에서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릴 것만 같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운은 축기 중기 수준을 가진 천도문의 수련자들에게도 두려운 수준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고민 끝에 손을 들어올렸다.
“후퇴한다.”
말을 마친 그가 막 자리를 뜨려하던 그때, 세 사람 중 여자 수련자가 한제의 정수리에 떠 있는 석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형, 저 구슬 뭔가 익숙한데요?”
옆에 있던 다른 남자 한 명도 말했다.
“저, 저건… 시조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구슬입니다.”
순간, 세 제자는 저 구슬을 발견하게 되면 반드시 가져오라던 시조의 말이 떠올라, 곧 자신들이 받게 될 보상을 떠올리며 가슴이 뛰었다. 영변 급의 법보, 소속 문파에 내려지는 화신기 수준의 시체 열 구, 수련국의 등급 상승.
“맞든 아니든 일단 손에 넣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은 결단을 내렸다. 그중 한 명이 작게 읊조렸다.
“문파에 알리기 전에 상황부터 파악해보자. 만약 저것이 정말 시조님께서 말씀하셨던 그것이라 해도 보상이 우리에게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어. 반대로 저게 만약 그 구슬이 아니라면 공연히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문파에 알리기 전에 먼저 저 구슬을 차지하고 그 후에 어떻게 할지 정하자.”
다른 둘도 동의하자 세 사람은 각자의 법보를 꺼내들었다.
그때, 한제가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이미 핏기를 잃고 깊은 물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강렬한 살기가 솟구쳤고 그 꿈틀대는 살기를 따라 체내의 영기도 흐르기 시작했다.
등급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한제는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순간 푸른색 빛이 번득이더니 지면을 가득 뒤덮고 있던 얼음 결정들이 떠올라 번개와 같은 속도로 세 사람을 감쌌다. 어찌나 빨랐던지, 세 사람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석주를 다시 품 안으로 갈무리한 후 세 사람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얼음 결정에 균열이 나타나더니 산산조각 나며 깨져버렸다. 물론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제가 묵묵히 결명곡 안으로 걸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카로운 빛줄기가 하늘을 뚫고 내려오더니, 곧 한제를 쫓던 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두 말 않고 비검을 빼어들었다. 비검은 진동하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비검은 그에게 날아든 순간, 푸른색으로 뒤덮이더니 한 덩어리의 얼음이 되어버렸다.
청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멀리서 본 한제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기습으로 저 자를 죽인 후 그가 가진 것들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