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55
이를 본 한제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차올랐지만 산마는 냉소했다.
“겨우 화선술(化仙術)따위를 부리다니. 고요 일족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 혈통의 신통술따위로 나를 막겠다는 것이냐?”
한제의 눈빛에 어린 검은 연기가 더욱 짙어졌다. 산마는 한제의 몸을 조종하여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고마!”
그 짧은 외침에 한제의 오른손이 마염으로 뒤덮이더니 수십 척의 거대한 마혼의 손으로 바뀌었다.
한제의 입에서 산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와라, 수련성의 영혼!”
그 순간, 천환성이 진동하더니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이 땅에서부터 서서히 솟아올랐다. 산마에 의해 이 천환성의 영혼이 그대로 뽑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네가 이 수련성의 영력 전부를 사용하겠다면 나는 이 수련성의 영혼을 쓸 것이다. 잘 지켜보아라! 크하하하!”
산마의 웃음소리에 환가 자손들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한편, 한제는 산마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음에도 뽑혀 나온 수련성의 영혼을 쥔 순간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혼을 뽑아내는 신통력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요령의 땅에서 탐랑이 법보를 통해 산의 혼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한제는 그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일반적인 수련자가 부릴 수 있는 신통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산마는 한제의 몸을 통제해 천환성의 혼을 뽑아내고 있었다. 당시의 탐랑보다 1천 배, 1만 배는 더 강한 기세였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 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에도 저마다 혼이 깃들어 있다. 그 혼은 흐릿하여 형태를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보통 사람도 거대한 산봉우리를 볼 때면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는데 그게 바로 산의 혼 때문이다.
짙고 노련한 기운이 천환성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까마득하게 오랜 세월 발효되어 만들어진 듯한 이 노련한 기운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오랜 세월 응집된 세상 모든 것을 수용할 뿐이었다.
산마는 한제의 몸을 통제하여 아래로 뻗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천환성의 혼이 풍기는 기운은 곧장 한제의 손바닥에 응집되어 눈 깜짝할 사이 한 덩이의 회색 안개가 되었다. 이 안개는 노련한 기운이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격렬하게 압축되었고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쾅! 쾅!
한제는 천환성이 생기를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푸른 풀들은 말라버렸고 강물도 사라졌으며, 산봉우리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산마는 잔인하게 웃으며 주먹을 움켜쥔 채 선인의 허상을 향해 돌진했다. 산마의 손에 쥐어진 천환성의 혼도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이동했다.
순간, 한제는 마치 천환성의 혼에 녹아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일격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천환성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선인의 허상도 앞으로 달려 나오면서 천환성의 영력을 전환한 선력을 내던졌다.
두 힘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충돌했다.
쾅! 쾅! 쾅!
격렬한 굉음이 천지를 흔들었다. 천환성의 영맥은 순간 3할 이상 말라버렸고 폭발의 기운은 대지를 진동시키며 사방으로 격렬하게 확산됐다.
거대한 충격에 환가 사람들은 체내의 영력과 선력으로 죽을힘을 다해 버티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자칫하면 폭발 기세에 몸이 무너져 내릴 터였다.
그때, 하늘에 떠 있던 선인의 허상이 돌연 붕괴해 연기로 흩어졌다. 연기 속에서는 다시 옥패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위에 균열이 일더니 한 줄기 하얀 빛이 흘러나와 빛의 장막을 이루며 반경 10리를 뒤덮었다. 그리고 옥패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흡수
환무정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복택 옥패가 깨지게 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방어 신통력이 발휘되지만 그 위력은 위기의 순간 잠깐의 숨 돌릴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 시간 안에 적에게 투항할지, 자결을 할지, 또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산마는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오른손에 응집되어 있던 천환성의 혼은 사라져버렸고 노련한 기운은 다시 대지로 녹아들었다.
이는 한제에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다. 그의 수준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전투였기 때문이다. 선인의 허상과 산마의 혼은 모두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제 입장에서 그 둘의 전투는 굳게 닫힌 문 너머의 존재였다. 그러니 이번 경험을 통해 다른 차원의 전투를 미리 경험해본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의 두 번째 단계의 힘인가? 이들에 비하면 탐랑이나 환무정, 천규자는 두 번째 단계의 걸음을 뗀 존재에 불과해. 수련의 두 번째 단계는 실로 무시무시한 수준이구나!’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전투에서 산마가 발휘한 신통력은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한제의 체내에서 발휘되었기에 한제는 또렷하게 체내의 선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수련성의 혼을 뽑았을 때 주위의 기운이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수련의 두 번째 단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신통력과 비교한다면 내 선위 꼭두각시는 아무것도 아니군. 전투에서 수련성 하나를 완전히 무너뜨리다니, 고대 신끼리의 전투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지 않은가!’
환가 사람들에게도 좀 전의 전투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듯한 충격이었다. 허나 한제와 비교한다면 그들의 깨달음이나 감상은 한참 떨어졌다.
산마는 선력으로 이루어진 빛의 장막을 보더니 차게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단순한 일격이었으나 이 주먹이 품은 마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콰르릉!
빛의 장막에 파문이 일었다.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이를 지켜보던 환무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선조 어르신, 류미를 내보내십시오!”
환봉신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는 문정기 수련자일 뿐이었지만 그의 법보와 신통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산마가 나타난 뒤부터는 선조의 수준이 떨어지기 전이었다 해도 상대할 수 없었을 정도의 위력과 기세를 보였다.
환무정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환봉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둔 뒤 어두운 얼굴로 곁에 있는 류미를 바라보았다.
“류미⋯⋯.”
환무정은 망설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류미가 고개를 들더니 환무정을 마주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더니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제가 나간다면 반드시 죽게 될 겁니다.”
쾅!
다시 산마의 일격을 받아낸 선력의 장막에는 균열이 더욱 많아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산마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환무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류미를 내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나, 산마를 막아낼 재간도 없었다. 천가는 한 발 물러났고 허가는 돕기로 했으나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 역시 물러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모든 상황은 오롯이 환무정의 어깨에 걸린 셈이었다.
그는 서늘한 눈으로 류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류미, 네가 나가면 죽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네 경지를 내게 넘겨 나의 무상천마도(無相天魔道)를 완성할 수 있게 해다오. 그러면 저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류미를 제자로 거둔 목적이 바로 이 만환천마도였다.
환가의 조상이었던 선인은 두 개의 신통력을 남겼는데 그것은 각각 천마도(天魔道)와 천상도(天相道)였다. 무상천마도는 환가의 조상인 선인이 선계가 무너져 내리기 전 명상을 하던 중 역외 천마와 뒤얽혔다가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선인은 경지를 수련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것을 하나의 깨달음으로 남겨두었다.
환가의 후손들은 선계가 무너져 보호해줄 사람을 잃은 후 이 무상천마도에 기대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명성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환무정은 언젠가 류미를 그대로 삼켜 자신의 역량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수준을 낮추면서까지 그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한 것도 다 이를 위해서였다.
게다가 류미는 수준을 억지로 끌어올렸기에 최대한으로 수준을 높여봐야 음양이의의 경지가 한계였다. 그러니 류미는 환무정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언젠가 삼켜버릴 때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낮았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류미의 수준이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르러 진정한 천마도로 탈변하려 하는 그 순간에 삼켜 흡수하기만 하면 환가의 진정한 경지인 무상천마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은 갑자기 나타난 한제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류미를 내어주느니 지금 당장 류미를 삼켜버리고 약간의 무상천마도라도 손에 넣는 편이 나을 터였다. 앞으로 열심히 수련하여 깨달음을 더한다면 무상천마도를 완벽히 깨우칠 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류미를 향한 환무정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류미의 눈빛은 덤덤했다.
똑똑한 그녀는 일찍이 연맹성역에 있을 때부터 환무정의 속셈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에 가족 외에 평생 적으로 돌아서지 않을 관계란 없다는 것도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호의적으로 군다면 그럴 만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특히 환무정이 스스로의 수준을 낮춰가면서 자신의 수준을 높여 주었을 때, 환무정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다만 환무정은 너무나도 강해 그녀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두 가지 약속만 해주십시오.”
류미가 조용히 말했다.
“말해봐라!”
고개를 들어 선력으로 이루어진 빛의 장막을 올려다본 환무정이 빠르게 말했다. 만약 류미가 만환천마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안정시킨 뒤였다면 환무정도 망설일 것 없이 곧장 그녀를 흡수해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류미는 만환천마도를 완벽하게 익힌 상태도 아니었고 그녀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흡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첫 번째 조건은 이한제 저자를 반드시 죽여 달라는 것입니다.”
류미는 복잡한 감정과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빛의 장막 너머에 있는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를 향한 그녀의 한은 마음 깊이 뿌리내린 상태였다. 이 한은 때로는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옅어지기도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힌, 수백 년 전 대산파에서 봤던 그 소년의 모습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모완을 대할 때 보이는 한제의 다정한 모습이었다.
주작묘에서의 일 역시 그녀의 원한에 불을 지폈다. 특히 주작성을 떠난 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류미의 한은 더욱 짙고 깊어졌다.
하지만 천환무정도를 수련했던 그녀는 대체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평상시의 대부분은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 이런 복잡함은 자신의 아이를 볼 때면 더욱 짙어졌다.
“좋다.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하도록 하마!”
환무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두 번째 조건은⋯⋯ 만약 이한제를 죽이지 못하신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 저물대를 저자에게 주십시오!”
류미는 품에서 저물대 하나를 꺼냈다. 그 저물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환무정은 미간을 살짝 구겼지만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산마는 선력의 장막에 연거푸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선력의 장막에는 파문이 마구 일었고 셀 수 없는 균열이 생겨났다.
산마는 더욱 크게 웃으며 외쳤다.
“크하하하! 부서져라!”
쨍!
마치 거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환가의 선인이 남긴 마지막 보호막이 깨져버렸다.
산마는 곧장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마기가 확산되어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이 마기 속에서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은 류미와 그 뒤에서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을 류미의 정수리에 얹은 환무정을 볼 수 있었다. 선조의 몸에서는 기이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
산마가 흠칫 놀란 순간, 환무정이 두 눈을 번쩍 떴다. 한 줄기 회색 빛이 어린 눈을 번득이던 그는 갑자기 위로 솟아올랐다. 그의 몸은 마치 연기가 된 것처럼 흐릿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린 녀석이 수련한 신통력치고는 훌륭하구나! 우리 고마 일족의 변화까지 흉내 내다니!”
산마는 정신을 집중하여 환가의 노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한편, 한제의 눈빛은 류미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의 눈은 굳게 감겨진 상태였고 생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났다.
연기처럼 떠올라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환무정은 짙은 회색빛을 번득이는 눈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내 신통력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