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7
묵묵히 서 있던 한제는 몸을 돌려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아까처럼 영력을 뿜어낸 뒤 오랜 시간을 들여 마침내 또 하나의 쌀알을 만들어냈다.
별것 아닌 듯해 보이는 쌀알을 바라보던 한제는 신중하게 그것을 챙겼다. 영력을 한참 뿜어내어서 그런지 기운이 없었다. 이 쌀알의 위력은 분명 강했지만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영력이 소모됐다.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음한기가 깃든 이슬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력이 회복되면 다시 쌀알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고 사흘 뒤에는 세 개의 옥색 쌀알을 만들어냈다.
네 번째 쌀알을 만들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왠지 모르게 네 번째 쌀알이 만들어지면 그전에 있던 세 개의 쌀알 중 하나가 흩어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몇 차례나 같은 일을 반복한 끝에 한제는 네 번째 쌀알을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한제는 사흘 동안의 관찰을 통해 이 쌀알의 위력이 분명 굉장히 강하지만 원영기 고수에게는 약간 덜 미쳐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만약 동시에 수십 개의 쌀알을 던진다면 승산이 있겠지만 네 번째 쌀알은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한제는 여러 개의 쌀알을 하나로 뭉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위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세 개를 하나로 만들어 버렸으니 쌀알도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변의 돌들로 간단한 진을 만들었다. 그 후 누군가의 저물대에서 빼앗은 방어 옥패를 몇 개 꺼내 놓았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정신을 집중해 두 개의 쌀알을 천천히 하나로 뭉쳤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황이 위험해지면 곧장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다행히도 두 개의 쌀알이 천천히 하나로 뭉쳐졌다. 그리고 두 개의 쌀알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두 개의 쌀알은 소리 소문 없이 하나로 융합됐다. 겉으로 보기에 쌀알의 색이 조금 짙어졌다는 점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또 다른 쌀알 하나를 꺼내 그것도 함께 융합시켰다. 두 쌀알이 마주친 순간, 옥색의 빛이 번쩍였다.
한제는 약간 굳은 얼굴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의 몸이 짙은 푸른색 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진 그 순간, 옥색 빛의 고리가 반경 1천 장 안의 범위를 꽁꽁 얼려 버렸다.
1천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빛의 고리가 미친 범위 밖에 있었음에도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본 한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아하니 쌀알은 최대 두 개 까지만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세 번의 순간이동 기회 중 한 번을 사용해버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제는 생각했다.
‘그 동굴로는 돌아갈 수 없겠군.’
한제는 쓰게 웃으며 다시 낭떠러지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동굴을 만들었다.
한제의 생각은 옳았다. 쌀알은 두 개까지만 합칠 수 있었고 그렇게 합쳐진 쌀알은 하나로 인식됐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더욱 짙은 쌀알 두 개와 좀 옅은 쌀알 하나였다.
여기서 하나를 더 만들어내면 하나는 사라질 것이기에 아쉽게도 두 개를 하나로 합친 쌀알은 두 개까지밖에 만들 수 없었다.
★ ★ ★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결명곡의 봉인이 열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참 동안 호흡을 한 뒤, 두 눈을 번쩍 뜨고 초록색 검을 토해냈다. 초록빛의 비검은 웅 소리를 내며 한제의 앞에 떠올랐다. 한제가 손을 뻗자 비검은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비검을 쓰다듬으면 뼛속까지 시릴 듯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녹색 비검은 그와 피로 이어진 물건이었다. 한제 체내에 깃든 영기의 변화는 비검에도 극의 경계에 해당하는 속성을 부여했다.
변이된 영력으로 다시 비검을 정복하려던 그때 한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신식으로 주변을 훑어본 그는 동굴 밖에 1백 줄기가 넘는 빛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추격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한제가 서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자인가?”
★ ★ ★
동굴 밖으로 나간 한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섯 조로 나뉜 백 명 이상의 사람이 한 청년을 중간에 두고 있었다. 그때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 중 한 중년 남자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오산해 사형, 자격 영패는 현도종에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 많이 챙겨서 뭐하시려는 겁니까? 그냥 넘기시면 더는 곤란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어 무봉골의 제자 중 한 청년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산해, 영패를 내놔. 그러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일 것이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은 이전에 대산파에서 본 적이 있던 오산해였다.
아직 응기 수준에 불과한 그가 현도종을 대표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결명곡에 올 수 있는 조건에 상한선은 있으나 하한선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응기 수준의 제자를 이곳에 보내려 하지 않지만 말이다. 오산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거짓 법보 환약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손도 굉장히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완을 높이 산 흑천은 오산해도 결명곡에 가는 사람들에 포함시켰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 법보도 주었다. 하지만 이 법보는 사용할수록 천천히 그 효과를 잃어갔다.
오산해는 동문들의 엄호 아래 여러 전투에 참가했고 제법 많은 물건을 훔쳤다. 그중에는 전장 정리 자격을 상징하는 영패가 세 개나 있었다.
게다가 현도종의 영패까지 더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영패는 총 네 개였다.
영패를 잃은 문파는 당연히 그를 미친 듯이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영패를 되찾기 위해 이전까지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러왔던 그들이었다.
오산해는 기척을 숨길 수 있는 법보로 많은 물건을 훔쳤으나, 다섯 번째 영패를 훔치려던 때에 법보가 효력을 완전히 잃는 바람에 발각되고 말았다.
다행히 현도종의 동료들이 때맞춰 구해준 덕분에 간신히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가 영패를 훔치려 했다는 사실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영패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즉각 그를 쫓아 현도종의 집결지로 모여들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오산해는 일찍이 파두었던 굴을 통해 도망쳐 나왔으나, 막 빠져나오던 때에 발각되어 황급히 도주한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뒤를 살짝 돌아본 오산해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수백 명이 자신을 미친 듯이 쫓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중 몇몇은 축기에 이른 실력자였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오산해는 두 말 않고 저물대에서 세 개의 영패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방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영패를 잃은 세 문파에서 몇 사람이 나와 그 영패를 집어가려했다. 하지만 다른 문파 사람들이 그들을 저지하고 나서면서 자신들끼리 다투기 시작했다.
한제는 먼발치에서 바닥에 놓인 세 개의 영패를 바라보다가 몸을 훌쩍 날려 다가갔다.
누군가가 곧장 그를 막아섰으나 상대가 미처 법보를 꺼내기도 전에 한제는 인력술로 그를 잡아채 먼 곳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한제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때, 바닥에 놓인 영패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자들이 한제를 발견했다. 그중 적지 않은 수가 결명곡 안에서 한제를 봤던 터라 화들짝 놀라며 분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제에 대해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그의 진가를 본 적은 없던 수련자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허나 한제가 눈을 번득이자 녹색 비검이 나타나서 잠시 멈추었다가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빛을 번쩍였다. 빛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한 명의 수련자가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적
극의 경계에 이른 그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뛰어난 법보를 가진 자들도 별수 없었다. 극의 경계에 이른 수련자에게는 몸에 흐르는 영력 자체가 가장 훌륭한 법보였다.
다섯 걸음. 한제는 딱 다섯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비검 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한제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멀찍이 달아나 이곳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감히 앞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한제는 오산해 앞에 멈춰 섰다. 오산해는 너무나 놀라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세 개의 영패가 둥실 떠올라 한제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세 개의 영패를 모두 저물대에 넣고 사방을 훑어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영패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바닥에 납죽 엎드려 있던 오산해는 뭔가 익숙한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고개를 살짝 들어보았다. 순간 그의 머리가 웅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이한제!”
한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오산해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몰아치고 있는 세찬 파도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한제의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 크게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 몇 년 만에 상대는 가볍게 축기 수준의 수련자들을 죽일 정도의 실력이 됐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좀 전에 한제가 보여준 실력에 머뭇거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와중에 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용기를 내 물었다.
“도우, 혹시 자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한제가 덤덤하게 답했다.
“축기.”
그 사람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저물대를 두드린 그는 영패 하나를 꺼내 내던진 뒤 크게 외쳤다.
“표묘종은 역외 전장에 나갈 자격을 포기한다. 결명곡의 진이 열리는 날 나와 내 동문들은 이곳을 떠나겠다.”
말을 마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서남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이어 세 개의 문파가 앞으로 나와 모든 제자들의 저물대를 열어 영패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후 떠나갔다.
합환종은 마지막까지 영패를 가지고 있던 문파였다. 그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여자 수련자는 주저하며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문파인 무봉골을 바라보았다.
무봉골의 우두머리는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그 노인의 두 눈에서 발하는 빛은 형형했으며 그 수준은 거의 결단기에 이른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앞으로 외부와 단절한 채 몇 년만 더 수련하면 곧 결단기에 진입할 것 같았다.
그는 한제를 응시한 채 냉소하며 말했다.
“젊은이, 내가 모든 영패를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줘 고맙군. 그 영패를 모두 내려놓고 물러가게.”
합환종의 우두머리 제자가 구겼던 미간을 풀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과 귓속말을 몇 마디 주고받더니, 동문들과 함께 모두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그들을 한 번 훑어보다가 무봉골 늙은이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뒤 두 말 않고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옥색의 쌀알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노인의 얼굴에 무시하는 듯한 경멸의 표정이 떠올랐다. 방금 한제는 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깔끔하게 죽였지만 그쯤이야 자신도 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한제는 자신의 진짜 수준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봐야 축기 후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는 무봉골의 귀한 보물 중 하나인 천뇌풍화산(天雷風火傘)을 가진 자신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상대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쌀알 같은 것을 꺼내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물러나서 이 늙은이가 어떻게 녀석을 해치우는지 잘 보도록 해라.”
동문들에게 말을 마친 그가 손을 휘젓자 작은 우산이 뱅그르르 돌며 그의 손 안에 나타났다. 작은 우산에는 여러 개의 금색 화염이 그려져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무봉골의 다른 제자들은 노인이 꺼내든 우산을 보자 묘하게 표정이 바뀌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십여 장을 물러나기도 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멍한 표정의 오산해를 잡아채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인력술로 옥색 쌀알을 노인에게 날렸다.
“슝!”
노인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우산을 두드렸다. 순간 우산이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금색 빛을 쏘아냈다. 미친 듯한 바람이 몰아치며 우산을 감쌌다. 이어서 우산에 그려진 금색 화염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우산에서 나와 사방을 불태웠다.
그 순간 옥색 쌀알이 우산을 감싼 바람에 부딪혔다. 그 뒤를 이어 몰아친 금색 화염에 옥색 쌀알이 휩싸였다.
이어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바람과 화염 속에서 옥색 빛이 밝아지더니 사방으로 쏘아졌다. 눈부신 빛이 정점에 달하던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남색의 고리형 파문이 일어나더니 성난 파도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펑! 펑! 슈…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