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72
선옥들은 모두 흩어져 사라지자 한제는 다시 저물대에서 선옥을 꺼냈고 이 과정을 반복했다.
한제 체내에 선력이 쌓이면서 그의 수준도 계속해서 높아져 갔다.
★ ★ ★
한제가 한창 선기를 흡수하고 있던 그때, 세 갈래의 검광이 우주를 가르며 연맹 성역의 어느 황량한 수련성을 향해 날아갔다.
그중 가장 앞에 선 이는 여인으로 옅은 보라색 면사로 된 옷을 입은 그녀는 소탈해 보이면서도 우아했고 매우 아름다웠다. 옥처럼 하얗고 고운 얼굴은 청아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흑과 백의 구분이 명확했고 담담한 향기가 풍겼다. 그녀의 오른쪽 이마에는 나비 모양의 반짝이는 몇 개의 조각이 일곱 빛깔로 반짝였다.
그녀는 오래 전 건풍의 경지를 삼키고 주작성을 떠난 후 오행성의 천수궁을 배반하고 도망친 자심이었다. 천수궁의 여인들에게 쫓기던 자심을 구한 혈조는 그녀를 자신의 수양딸로 삼았다.
그녀 뒤로는 온몸에서 핏빛을 발산하는 노인 둘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두 눈에 빛이라고는 없는 것을 보아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듯했다. 이들은 혈조가 제련해낸 혈노(血奴)로 둘 모두 문정기 수준이었다.
자심은 두 혈노와 함께 그 작은 수련성으로 접근했다.
“네가 말한 수련성이 이것이냐?”
자심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그녀의 뒤에 있는 혈노 중 한 명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마님.”
자심은 굳은 눈빛으로 작은 수련성을 바라보았다. 세 달 전, 혈노가 이 수련성 안에서 기이한 변고가 발생했다고 보고를 해왔다. 혈조의 세력 범위 안에 있는 수련성 중 하나가 점차 죽어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요령의 땅에서 돌아온 혈조는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연 어딘가로 떠난 상태였다.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심은 잠시 고민하다가 두 혈노와 함께 작은 수련성으로 들어섰다.
이 수련성에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황량한 대지 곳곳에는 균열이 나 있었다.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한데 대지의 균열이 삽시간에 더욱 늘어나더니 저 멀리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보다 더 먼 곳에는 폭이 1천 척에 이르는 강이 있었는데 물이 다 말라 균열만 가득했다.
“4백 년 전에도 황량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최근 수십 년 동안 더욱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었지요!”
혈노 중 하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심은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펼쳐 수련성의 내부를 살피려 했다. 한데 그녀의 신식이 수련성 대지 깊은 곳으로 스며든 순간, 냉랭하고 끔찍한, 하지만 자심에게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꺼져라!”
천둥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한 그 소리에는 엄청난 위엄도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 대지의 균열은 한층 더 많아졌고 하늘도 어두워졌다.
“꺼져라!”
그 목소리는 수많은 메아리를 일으켰다. 그 메아리들이 중첩되자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포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 수련성은 순식간에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렸고 대지는 움푹 파였으며, 하늘에도 균열이 일어 그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목소리를 들은 순간 자심은 핏기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섰고 그녀 뒤의 두 혈노는 비틀거리며 대량의 선혈을 토해냈다.
자심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얼른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
“선배님께서 폐관수련을 하고 계신 곳인지 몰랐습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얼른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심은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가 어째서 그리 낯이 익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로 물러났다. 두 혈노도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세 사람은 최대한 빠르게 그 수련성을 빠져나왔다.
자심은 우주 먼발치에서 여전히 두려둔 눈빛으로 그 수련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혈노를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그 수련성 안에서는 뭔가 붕괴하는 듯한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붕괴된 그 순간…
쾅!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형태 없는 파문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이미 멀리까지 도망치고 있던 자심 일행의 표정이 급변했다.
“혈노, 자폭해!”
자심의 외침에 그녀의 뒤에 있던 두 혈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뒤에서 다가오는 파문을 향해 달려가더니 자폭했다.
그 틈을 타 자심은 저물대에서 붉은 옥패를 하나 꺼냈다. 이는 혈조가 준 것으로 어디에서나 혈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전송 옥패였다. 다만 그 효력을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기에 혈조를 자폭하게 한 것이었다.
한편, 붕괴한 수련성은 엄청난 모래 먼지가 되어 우주로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모든 모래 먼지가 흩어진 후, 반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가 마구 흩날렸고 두 눈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늘했다. 약간 거친 피부 위로 드러난 핏줄과 힘줄은 오래된 문신처럼 명확했다. 미간에서는 네 개의 별 모양 반점이 천천히 회전했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다른 것들보다 더 어둡고 빛이 나지 않았으며 약간 흐릿했다.
사내, 한제의 본체는 수련성이 붕괴하면서 생성된 파문에도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듯 아득히 먼 곳으로 냉랭한 시선을 던졌다.
“이 수련성에는 더 이상 영력이 남지 않았군.”
본체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노쇠한 기운이 천천히 응집되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수련성의 조각들은 그 즉시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흩어져 사라졌다.
“추혼(抽魂)의 신통력도 더 수련해야겠군!”
한제의 본체는 우주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의 강력한 육신은 성라반과 같은 법보가 없어도 우주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성년이 된 고대 신의 기운을 찾지 못한 것이 안타깝군. 그것만 찾았다면 진정한 4성급에 이를 수 있었을 텐데. 주작성에 한 번 다녀와야 하는 건가? 탁삼이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데⋯⋯.”
한제의 본체는 점차 우주 깊은 곳으로 사라져갔고 몇 달 뒤에는 어느 보잘것없는 황량한 수련성 안으로 녹아들어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았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것은 이 수련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뇌광(雷光)의 층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 ★
오래 전 안개가 사라져 이제 거대한 분지가 된 수마해의 깊은 곳. 쇄성란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수마해의 금지 구역이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도 이곳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쇄성란 안, 고대 신의 땅.
이곳의 피바다에서는 수많은 수련자들이 빽빽하게 모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들의 수준은 피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점차 높아졌다. 특히 상고 시대 수련자들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 피바다의 가장 큰 돌기둥 위에는 붉은 머리의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그의 몸에서는 짙은 기운이 풍겨 나왔다. 세상 모든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법한 기운이었다. 남자의 곁에는 잔뜩 녹이 슨 무쇠 검이 꽂혀 있었는데 검 곳곳에는 어두운 갈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있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예리한 손톱으로 지면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다. ‘이한제’라는 세 글자였다.
자세히 살펴본다면 온 돌기둥에 그 이름이 가득 새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한제⋯⋯.”
사내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와 온 피바다로 울려 퍼지자 피바다 안의 모든 수련자가 덜덜 떨었다. 오랜 세월, 그들은 매일 같이 그 이름을 듣고 있었다.
“이한제⋯⋯ 난 곧 이 속박에서 풀려난다.”
얼마 후, 고대 신의 땅으로부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두 눈이 새빨간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죽은 천마산인으로 탁삼이 파견한 사자였다.
천마산인의 두 눈에는 짙은 한이 어려 있었다. 당시 한제가 없었다면 고대 신이 남긴 기억의 유산은 이 천마산인의 것이 되었을 터였다. 육욕마군의 스승인 그는 수천 년간 계획을 세워왔는데 한제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치고 목숨까지 잃었으니 한제에 대한 원한은 탁삼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 않았다.
“뇌의 선계 아래⋯⋯.”
천마산인은 몸을 훌쩍 날려 주작성을 빠져나갔다.
수련의 네 번째 단계는 있을까
주작산 꼭대기.
주은혜의 긴 머리가 하얀 옷자락과 함께 산바람에 휘날렸다. 그녀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상태였다. 뒤에는 소백이 엎드려 있었는데 호랑이의 두 눈에는 따분함과 게으름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은혜의 손에는 이미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저물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아저씨, 그때 아저씨가 남긴 이 저물대, 이제 열 수 있어.”
주은혜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숙여 저물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신식을 집어넣어 그 안을 살폈다.
저물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한 줄기의 흰색 빛이 반짝이다 그녀의 미간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그 빛이 들어온 순간, 은혜는 몸을 바르르 떨다가 손에 쥐고 있던 저물대를 놓아버렸다. 저물대는 바람에 실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쿠오오!”
갑자기 소백이 포효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은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봉인되어 있던 기억 하나가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19년 동안 난 이 아이가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느끼고 또 봐왔어. 이제는 나의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야. 오라버니,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어. 너무 바보 같지? 맨날 실망시키기나 하고⋯⋯.”
한참 뒤, 은혜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무릎을 감싸 안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소백… 아저씨는 내가 아저씨를 찾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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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여전히 미친 듯이 선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선옥들이 부서진 가루가 쌓이고 또 흩어졌다.
문정기 중기에서 후기로 오르는 데는 엄청난 양의 선옥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충분한 선옥이 있었다.
한데 한제는 원신이 변이를 일으킨 뒤 전과는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었다.
벌써 반년이 넘게 선기를 흡수했건만 원신이 채워지는 느낌은 없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또다시 반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