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74
한제는 신식으로 저물대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저물대 안에 들어 있는 승선과는 환가에서 받은 것과 거의 비슷한 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제가 원하는 양에 비해서는 적었다.
“고맙군!”
한제는 천규자를 향해 포권을 한 뒤 뇌수의 머리를 두드렸다. 뇌수는 낮게 포효하며 순식간에 멀리 사라졌다.
한편, 천규자는 멀어져 가는 한제를 바라보면서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결단을 내렸어야 했던 것인가…?’
한편, 승선과의 양은 한제가 원하는 양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천환성은 지난 1백 년 동안 급격한 변화가 일어 허가는 이미 이주해 나간 상태였다.
한제는 이후로도 몇 달 동안 뇌선전 사자를 사칭하며 나천성역 북역을 돌아다녔다.
시간이 흐르면서 뇌선전의 사자가 승선과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뇌선전의 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몇몇 수련자 가문 사이에서만 비밀 정보처럼 전달되는 수준이었다.
수많은 수련자 가문들은 평생 뇌선전의 사자를 볼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에 모두 한제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환대했다. 모든 가문에서는 순순히 승선과를 내주었고 작은 가문에서는 제발 자신들을 종속시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제는 이런 부탁을 거부했다. 지금 그가 하려는 일과 큰 관계도 없었고 만약 자신에게 종속시켰다가 후에 자신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그 가문들까지 엉뚱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의 행보를 통해 한제는 점차 승선과의 용도와 뇌선전의 사자에게 수련자 가문이 종속되려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한제는 처음 자신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승선과가 모인 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뇌의 선계에 들어갈 때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반년 뒤, 한제는 뇌수에 올라탄 채 운하성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별빛 사이로 뇌수를 타고 질주하자 귓가에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에 성공한다면 천역주의 금속 속성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날 주인으로 인식할 테지. 주인을 인식한 천역주가 어떤 신통력을 발휘할지 궁금하군.”
한제는 들뜨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존혼번을 꺼내 당시 요령의 땅에서 도망치는 데 능했던 노인의 혼백을 불러냈다. 그가 도망칠 때 쓴 신통술을 익혀두기 위해서였다. 그 신통술들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그간 너무 많은 일이 끊임없이 터지는 바람에 아직 연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보름 뒤, 운하성의 짙은 안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안개는 심지어 당시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짙어진 상태였다.
뇌수는 전광을 번득이면서 안개를 뚫고 들어갔다. 한제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어디선가 기이한 마수의 포효가 음울하게 울렸다.
뇌수가 뿜어내는 전광에 짙은 안개는 끊임없이 와해되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칠성검진을 꺼내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길을 냈다.
이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기 때문에 한제는 운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이동했다. 또한 뇌수가 큰 소리를 내거나 천둥번개의 신통력을 강하게 쓰지 못하게 저지했다.
칠성검진이 뚫어주는 길을 따라 한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한데 묵묵히 마음속으로 거리를 계산하며 내려가던 그때, 한제는 돌연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뇌수는 먼저 그 위기를 알아차렸는지 한제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우뚝 멈추더니 방향을 틀어 재빨리 날아갔다.
한 가닥의 길고 가는 촉수가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방금 전까지 한제가 있었던 곳을 스쳐 지나갔다. 촉수는 잠시 근처를 휘적거리다 이내 되돌아갔다. 하지만 되돌아가던 중 칠성검진을 발견하고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끌고 가버렸다. 촉수에는 엄청난 신통력이 깃들어 있어, 칠성검진은 촉수에 닿은 순간 한제의 통제를 벗어났다.
한제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전에 와본 경험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방금 전에는 정말로 위험했다.
“저 촉수, 어딘가 익숙한데⋯⋯.”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잠시 후 찬 숨을 들이켰다.
“망월의 세 번째 형태와 비슷해!”
망월의 세 가지 형태 중 세 번째는 공격 상태로 전신의 촉수를 끝도 없이 뻗어 공격을 해온다. 만약 이 형태의 망월을 맞닥뜨린다면 곧장 도망쳐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는 1천 척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빽빽하고 짙은 안개를 바라보면서 망설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왔을 때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첫 번째 형태였고 다른 한 마리는 잠든 상태였지. 한데 어째서 형태에 변화가 생긴 걸까? 그리고 방금 그 촉수는 어느 망월의 것이었을까?”
한제는 여기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밀어붙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이내 결심한 듯 눈을 번득이며 손으로 뇌수의 머리를 두드렸다. 뇌수도 운하성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번에는 포효를 내지르지 않고 곧장 안개를 가르며 달려들었다.
짙은 안개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신식을 펼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게 되었다. 허나 한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찬 숨을 들이마셨다.
대지는 이전에 그가 이곳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이전에는 지면에 흔들거리는 식물이 뻗어 나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식물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길이가 1만 척(尺)에 달할 정도로 긴 촉수가 가닥가닥 솟아 있었다. 촉수는 암적색이었고 기이한 힘을 발산하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경계심이 발동했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신중하게 사방을 훑어보다가 약간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길이가 1만 척이라는 것은 이 망월이 세 번째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깨어난 상태는 아니라는 뜻. 한데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망월이 깨어날 리가 없는데 지난 1백 년 안에 누군가가 이곳에 왔단 말인가!”
한제의 고민은 계속됐다.
“허나 누군가가 왔다고 해도 망월을 자극시켜 세 번째 상태에 이르게 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군.”
바닥에 내려 선 한제는 고개를 돌려 뇌수를 바라보며 마치 사람을 대하듯 말했다.
“이곳은 위험해. 너도 알겠지. 저물대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더 위험해질 거야.”
뇌수는 큰 머리를 흔들면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고는 촉수들 사이로 천천히 이동했다. 이 촉수들은 하나하나가 끔찍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어서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한데 저 앞의 촉수 하나가 돌연 흔들리더니 번개처럼 구부러지면서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헛!”
거대한 힘이 훅 끼쳐오자 한제는 헛숨을 삼켰다.
촉수가 다가오며 일으킨 바람이 한제의 머리카락을 뒤로 흩날렸고 뺨을 할퀴었다. 칼로 에는 듯 매서운 바람이었다.
시종일관 경계하면서 촉수의 뿌리 부분을 관찰하고 있던 한제는 촉수가 달려들기 바로 전에 그 촉수 뿌리 부분의 색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그는 순간이동을 했다. 촉수는 한제의 잔영을 꿰뚫고는 느릿하게 수축하여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허공에 나타난 한제는 지면 가득한 촉수들을 바라보며 경계심을 높였다.
“망월에게 승선과를 먹이려면 이 녀석의 약점 가까이로 다가가야 하는데… 저 촉수들이 문제로군.”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대량의 승선과를 꺼낸 후 결연한 표정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제련!”
펑! 펑!
맑고 청아한 소리가 이어지며 한제 주위의 승선과들이 전부 터져나가면서 붉은 과즙이 흘러나왔다. 이 과즙은 빠른 속도로 모여 한 방울로 합쳐졌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원신의 기운을 한 움큼 토해냈다. 그 원신의 기운이 떨어지자 과즙이 끓어오르며 붉은 연기를 피워 올렸다.
한제는 붉은 연기를 움켜쥐고는 곧장 지면의 촉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촉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연기는 촉수들을 향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짙은 붉은 연기에는 승선과의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기체 형태라 모든 촉수에 쉽게 흡수되었다. 그러자 연기가 미치는 범위 안에 있던 수십 개의 촉수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렸다. 색깔도 암적색에서 선홍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제는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촉수 사이를 오갔다. 이제 촉수들은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제는 한시름 놓고 바닥에 착지했다.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속에는 약간의 자극만 줘도 망월의 온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점이 뿌리에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저물대에서 신중하게 승선과를 꺼낸 한제는 또다시 수많은 승선과를 하나로 합쳐 한 방울의 붉은 액체로 제련해 봉인을 건 뒤 각 촉수의 뿌리에 스며들게 했다.
한제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이어가면서 신식을 펼쳤다.
1천 척까지 퍼진 붉은 연기는 빠른 속도로 흩어지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한제는 마지막 촉수의 뿌리에 승선과의 과즙을 스며들게 한 후 곧장 날아올랐다.
그가 날아오른 그 순간, 붉은 연기가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자 촉수의 색은 선홍색에서 다시 암적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촉수 안에서 혹들이 속속 솟아오르더니 위에서 아래로 퍼져 나갔고 지면을 따라 사라졌다.
한제는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망월이 승선과의 독소를 배출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불쾌한 눈으로 촉수들과 한제를 번갈아보던 뇌수가 몸에서 전광을 번득이며 돌연 지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르릉!
거대한 천둥소리가 온 운하성에 퍼져나갔다.
한제는 맹렬히 몸을 돌리며 외쳤다.
“위험해! 돌아와!”
바로 그때, 대지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살짝 진동했다. 지면의 촉수들은 더 이상 하늘거리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소리와 함께 뇌수를 향해 뻗어 나왔다.
뇌수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온몸으로 전광을 번득였고 그 전광은 하나하나의 촉수를 따라 대지로 전해졌다. 하지만 곧 촉수에서 기이한 힘이 발휘되면서 모든 촉수가 붉은 빛을 발했다. 마치 온 운하성이 붉은색으로 물든 것만 같았다.
더욱 빨라진 촉수들은 마치 머리카락처럼 사방을 뒤덮으며 눈 깜짝할 사이 뇌수를 꽁꽁 감쌌다.
“캬오오!”
뇌수가 포효하며 발버둥 쳤으나 촉수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뇌수의 어떤 신통력도 그 촉수들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탐랑의 보물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촉수에 뒤얽혀 있는 뇌수를 바라보았다. 뇌수는 갈수록 거세게 포효했고 이에 촉수들은 더욱 강하게 녀석을 옭아맸다. 뇌수의 눈에는 차츰 두려움의 빛이 들어찼다.
“소리 내지 마!”
한제는 신식을 통해 뇌수에게 말을 전했다. 세 번째 형태의 망월은 소리에 매우 민감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한제는 냉랭한 얼굴로 저물대 안에서 빠르게 승선과를 꺼냈다.
한편, 운하성 내부의 넓은 동굴 안에는 비쩍 마른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거대한 솥에 들어가 있었다. 팔뚝 굵기의 촉수들이 솥을 완전히 감싼 채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마치 뭔가를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의 어두운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사방의 동굴 벽이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붉은 연기가 동굴 벽 안으로부터 분출되었다. 안개에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고 줄기줄기 전광이 번득였다.
이 노인은 탐랑이었다. 그리고 그가 있는 이곳은 한제가 봤다면 단박에 알아차렸을 망월의 배설물들을 흡수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