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78
“안 돼!”
절망한 탐랑은 날카롭게 외치며 혀끝을 깨물어 거대한 솥을 향해 피를 뿜어냈다. 탐랑의 피를 흡수한 솥은 약하게 진동하더니 고리 형태의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은 한제를 가장 가까이서 쫓고 있던 작은 망월과 탐랑의 자리를 바꾸었다.
“이한제, 멈춰라!”
탐랑은 창백한 얼굴로 다시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내더니 한제를 가리키며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진즉 탐랑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던 한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오른손을 뒤쪽으로 뻗어 휘둘렀다. 그러자 아직 체내에 남아 있던 폭풍과도 같은 선력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정신술!
탐랑은 또 한 번 거대한 솥의 신통력으로 한제와 위치를 바꾸려 했지만 그 순간 정신술이 발휘되면서 우뚝 멈춰 섰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던 망월이 기이한 눈빛으로 거대한 솥을 바라보았다.
망월은 그 솥을 보자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망월이 아직 잠들어 있었을 당시 탐랑을 죽이지 않고 배설과 흡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보내버렸던 것도 저 솥 때문이다. 그곳은 배설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지만 흡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으니 그 솥을 흡수하려 한 것이다.
탐랑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망월은 주저하지 않고 탐랑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한제는 그 틈을 타 더욱 빠르게 질주했다.
한편, 다시 망월 안의 균열 가장자리에 이른 탐랑은 이를 갈며 포효했다.
“이한제!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탐랑은 이를 악물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거대한 솥에 찍었다. 한 줄기의 하얀 빛이 그의 미간에서 나타나 거대한 솥에 떨어졌다.
“내 수명을 희생시켜서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만다!”
탐랑은 잔뜩 분노하여 외쳤다. 그 순간, 거대한 솥은 탐랑의 수명을 흡수하면서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점점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때, 망월이 거칠게 포효했다.
“크오오오!”
그 포효는 천둥처럼 울렸고 한제는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는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선위 꼭두각시 역시 부르르 떨었고 몸에서 번득이던 금빛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두 눈에 깃든 빛 역시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한제에 비하면 부상은 가벼웠다.
그 순간, 탐랑이 부풀어 오른 거대한 솥과 함께 솟아올랐다. 솥이 계속해서 커지면서 망월의 입도 점점 크게 벌어졌다.
“안타깝지만 이 솥을 포기해야겠군.”
탐랑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망월이 거대한 솥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그러더니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촉수를 뻗었다. 촉수는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탐랑과 솥을 휘감았다.
“이런 빌어먹을!”
탐랑은 어두워진 얼굴로 저물대에서 병풍 한 짝을 꺼내더니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병풍에 그려진 산수의 힘이 우주에서 나타났다. 마치 이 우주에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산과 강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도망치던 한제 역시 신식을 통해 이를 포착하고는 성라반의 속도를 늦춘 채 이 거대한 병풍을 바라보았다.
“산수화…”
한제의 두 눈에 보기 드문 탐욕의 빛이 어렸다. 예전에도 본 적 있는 병풍이었다. 탐랑은 당시 ‘진정한 산수화를 찾지는 못했지만 산수화의 탁본이 붙은 병풍을 발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망월의 두 눈에서 기이한 문양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한제는 그 문양이 고대 신의 언어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문양이 번득이는 와중에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손가락 하나가 망월의 앞에서 나타났다. 거친 피부로 뒤덮인 손가락에서는 사람을 홀릴 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허상에 불과하지만 실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손가락을 보며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심장은 두방망이질 쳤다.
“망월의 분노는 고대 신의 손짓과 같다더니…”
마침내 그 구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탐랑 역시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당시 운선 부부에게 붙잡혔을 때도 이토록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허상으로 나타난 거대한 손가락은 천도를 나타내는 듯 이 세상을 대신하여 하나의 도를 이룬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허나 이는 보통의 수련자가 느끼는 도와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 몇 배는 더 컸고 심지어 탐랑은 자신의 도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다.
탐랑은 본래 음의의 수준에 이른 수련자였는데 식견만큼은 그보다 훨씬 뛰어났고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과도 두루두루 연을 맺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저 거대한 손가락에 매우 두려운 도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다.
손가락은 어떤 파란도 일으키지 않고 덤덤하게, 마치 일반적인 손처럼 그저 앞쪽을 가리킬 뿐이었지만 한제의 동공은 빠르게 졸아들었다. 그는 심지어 원신이 곧장 튀어나가 그 손짓을 따를 것만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그 손가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던 탐랑이 받은 느낌은 한제보다 1백 배는 더 강렬했다.
손가락이 뻗어지는 사이 탐랑은 뒤로 물러나 병풍에 그려진 산수화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강이 다시 나타나 빠른 속도로 휙 스쳐갔다. 하지만 고대 신의 손가락은 영원한 존재처럼 그 강을 지긋이 눌렀다.
쩌적! 쩌저적!
병풍에 균열이 일더니 우주를 수놓았던 산과 강은 곧장 사라졌고 탐랑은 원신의 정혈을 토해내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는 사이에도 연거푸 선혈을 토해내는 것으로 보아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허나 고대 신의 손가락은 여전히 탐랑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제는 허공에 나타난 균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는 산수화 병풍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고대 신의 손가락은 탐랑을 쫓고 있다. 그렇다면…?’
결단을 내린 한제는 망월의 뼈를 선위에게 건넨 뒤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려 한 줄기 잔영을 그리며 순간이동을 해 눈 깜짝할 사이 산수화 병풍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벗어나다
한편, 탐랑은 한제가 자신의 보물을 탐하건 말건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미친 듯이 도망치느라 여력이 없었다.
그때, 고대 신의 손가락이 잠시 멈칫하더니 한제를 향해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그 모습을 본 한제는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그는 곧장 오른손에 온몸의 선력을 응집시킨 후 앞으로 뻗었다.
“정(定)!”
그 순간 허공에 우뚝 멈춘 것은 고대 신의 손가락이 아니라 탐랑이었다. 탐랑의 몸이 멈칫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거대한 손가락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 틈을 타 한제는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을 저물대 안에 쑤셔 넣은 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선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편, 얼굴이 하얗게 질린 탐랑은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뜬 채 속으로 한제를 저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고대 신의 손가락은 여전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한제. 내 기필코 네놈의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탐랑은 재빨리 저물대에서 금빛이 번득이는 왕관을 꺼냈다. 다섯 개의 거대한 구슬이 박혀 있는 그것은 마치 황제의 왕관처럼 화려했고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다섯 종류의 빛 고리에 뒤덮여 있었다.
탐랑은 왕관을 머리에 썼다. 그 순간, 눈부신 금빛이 번득이더니 탐랑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자 그의 위로 보일 듯 말 듯한 거대한 허상이 드리웠다. 그 용포를 입고 있는 그 허상으로부터 엄청난 위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존선(尊仙)의 제관(帝冠)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난 일반인 세상의 제왕 9999명을 죽여 그들의 혼을 이 안에 섞어 넣었다. 자 너 같은 짐승이 과연 이것에 대항할 수 있는지 보자!”
그때, 고대 신의 손가락이 허상으로 뒤덮인 탐랑의 몸을 꾹 눌렀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대 신의 손가락은 탐랑의 몸을 눌렀다가 뒤로 물러났다.
한편, 탐랑의 얼굴은 전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고 온몸에 드리웠던 금빛 도 무너져 내렸다. 그의 몸에서는 일곱 빛깔 광채가 번득였고 마치 가라앉듯 유성처럼 곧장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그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이 아득한 우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9999개 제왕의 혼 또한 순간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고 왕관도 툭 떨어져 저 먼 곳으로 날아갔다. 허나 그 왕관에는 균열 하나 남지 않았다.
여전히 맹렬한 속도로 도망치며 이 모든 것을 살핀 한제는 방금 본 장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탐랑을 처리한 고대 신의 손가락은 이제 그의 뒤쪽에 나타나 있었다.
찰나의 순간, 익숙한 고대 신의 기운이 온 세상을 뒤덮었고 고대 신의 손가락은 한제를 덮쳐들었다.
“크윽!”
손가락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닥쳐오면서 한제는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이 위기의 순간,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선위 꼭두각시의 몸에서 무언가를 뽑아냈다. 살육의 기운이 선위의 체내에서 줄기줄기 튀어나왔다.
1백만 개에 달하는 살육의 기운은 하나하나 생의 낙인을 이루었고 이 낙인들은 고대 신의 손가락에 대항했다.
허나 고대 신의 손가락 앞에 생의 낙인은 마치 약한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모든 것은 그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무너져 내렸다.
허나 한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선위와 함께 뒤로 물러난 그는 저물대에서 두 번째 선위를 불러냈다.
뇌도자 선위는 고대 신의 손가락이 닿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면서 빠른 속도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고대 신의 손가락은 어느새 한제로부터 7척 정도 거리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고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크아아!”
고대 신의 손가락이 다가온 순간, 한제는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며 능천후의 검기 한 줄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고대 신의 손가락은 잠시 움찔 멈추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제는 거대한 압박감에 가슴에서부터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이 통증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그 순간 한제의 육신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피와 살이었다. 다음으로는 뼈와 골수가 흩어져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허나 고대 신의 손가락은 한제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거하려는 듯 그의 육신에 이어 원신까지 압박했다.
그 순간, 한제가 반 마리의 뇌룡을 삼킨 뒤 생겨난, 원신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게 했던 막이 파괴됐다. 동시에 한제의 원신은 짙은 전광을 번득였고 태고의 뇌룡이 나타났다.
“캬오오!”
태고의 뇌룡은 고대 신의 손가락을 향해 포효했다. 그러자 수많은 번개 공이 사방에서 나타나 고대 신의 손가락을 미친 듯이 공격했다. 이에 고대 신의 손가락의 기세가 잠시 누그러졌다.
그 틈을 타, 태고의 뇌룡이 된 한제의 원신은 육신이 붕괴되기 전 품고 있던 저물대와 선위, 망월의 뼈 반쪽을 가지고 육신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피해가 크다. 득과 실 중 과연 어느 쪽이 클 것인지…’
한제의 원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그때, 그는 저 멀리 둥둥 떠 있는 탐랑의 왕관을 발견했다.
한제는 신식을 뻗어 왕관을 잡아챈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한편, 그 무렵 고대 신의 손가락은 느릿하게 흩어졌고 거대한 망월은 먼 곳으로 달아나고 있는 한제와 촉수에 얽혀 있는 거대한 솥 하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거대한 몸을 움직여 다시 한제를 뒤쫓기 시작했다.
‘망할! 언제까지 쫓아오려는 것이냐!’
한제는 속으로 욕을 해댔다.
허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에는 너무 무모했다. 탐랑이 나타난 것도 그가 망월을 자극해 깨운 것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