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79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손실이 너무도 컸다. 칠성검진이 파괴됐고 금번은 붕괴됐으며, 능천후의 검기 하나도 사라졌다. 두 번째 선위도 잃었고 자신의 육신도 사라졌다.
하지만 얻은 것 역시 적지 않았다. 원신의 막을 제거했고 망월의 뼈 반쪽을 챙겨왔으며, 탐랑의 물건이었던 혼을 빼내는 바위와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 왕관을 손에 넣었다.
득과 실을 따졌을 때 어느 쪽이 더 큰지는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망월과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나마도 원신만 남은 상태라 육신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기에 아직 따라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한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원신을 성라반에 녹여냈고 선위와 망월의 뼈 반쪽을 태우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원신이 녹아든 성라반의 속도는 놀라웠다. 그럼에도 망월과의 거리는 더 벌어지지 않았지만 더 좁혀지지도 않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허나 한제는 자신이 언제까지 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부상까지 입은 터라 한제의 원신은 약간 어두워져갔다.
한제는 어느덧 나천성역 북역을 벗어나 남역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는 동안 한제의 원신은 점점 약해졌다. 다행히도 망월 역시 속도가 약간은 느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나천성역 남역과 북역의 경계에 이르자 망월은 음울하게 포효를 내지르더니 결국 멈춰 섰다.
한제는 희열에 몸서리치며 속도를 더욱 높였다.
한참 뒤, 그는 망월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야 일단 한시름 놓았다. 허나 망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저렇게 강한 망월이 있다니… 서사의 속 망월과는 겉모습만 같을 뿐, 나머지는 전혀 달라. 도대체 저 녀석은 뭐지?”
의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데 저렇게 강한 망월이 어째서 이곳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거지? 설마… 이곳에 저 녀석을 두렵게 하는 존재라도 있단 말인가?”
생각한다고 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한제는 깊게 한숨을 내쉰 후 쓰게 웃었다.
“원신을 가두었던 막에서 벗어난 건 잘된 일이지만 육신을 다시 응집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남의 육신을 빼앗는 편이 빠르긴 하겠지만 거기에는 제한이 많아. 훌륭한 육신을 찾기도 힘들고…”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단은 폐관수련을 할 장소를 찾아 망월의 뼈를 제련하자. 천역주의 속성을 가득 채울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해. 그다음에 육신을 응결시켜야지.”
한편, 망월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망설인 후에야 거대한 몸을 뒤로 물렸다. 기억 속 저 깊은 곳에서 눈앞의 이곳을 넘어가지 말라던 누군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너무도 오래 전의 기억이라 흐릿했지만 당시의 그 위기감만은 또렷했다.
느릿하게 물러나는 망월의 온몸에서 촉수들이 하늘거렸다. 멀찍이서 이 망월을 목격한 몇몇 수련자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면서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달아났다.
망월은 나천성역 북역의 5대 주성 범위 안에서 멈추더니 몸을 천천히 동그랗게 말아 구 형태가 됐다. 거대한 솥을 잡고 있던 수많은 촉수도 느릿느릿 수축해 모두 녀석의 체내로 숨어들었다.
이내 짙은 안개가 체내에서 피어올라 망월을 뒤덮었다. 녀석은 다시 두 번째 형태로 되돌아가 잠들었다. 나천성역 북역의 5대 주성으로부터 상당히 가까운 곳이라 이후 수많은 수련자에게 상당한 골칫거리가 됐지만 녀석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 ★ ★
나천성역 북역의 원시적인 수련성. 이곳은 영기가 짙지 않았고 일반인들도 다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수련성의 북쪽 하늘에서 일곱 빛깔 광채로 번득이는 무언가가 평원에 떨어졌다. 뼈가 산산조각 나고 육신도 무너져 내린 탐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탐랑은 두 눈 가득 광기에 가까운 희열을 번득이며 광소했다.
“크하하! 이게 바로 전화위복인가!”
아무리 살아남았다고는 해도 모든 것을 잃은 자 답지 않은 웃음이었다. 허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천성역에 오기 전, 그의 체내에는 강력한 힘이 담긴 수많은 낙인이 찍혀 있어, 이 낙인을 찍은 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탐랑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대 신의 손가락에 공격당하면서 이 낙인들은 모두 붕괴했고 이제 그의 체내는 오직 천운자의 낙인 하나만이 남게 됐다.
“이제 시간만 충분하다면 원래 수준을 회복시킬 수 있어!”
탐랑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느릿하게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수련성의 일반인들은 그날부터 은근한 악취에 시달렸다. 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악취의 근원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마치 악취가 대지에서 피어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 ★ ★
한제는 나천성역 남역에서 폐허가 된 수련성을 탐색했다. 그의 원신이 어딘가에서 편안한 느낌에 감응했기에 그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런 편안한 느낌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원신의 부상도 호전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 느낌의 근원에 이르렀을 때, 한제의 눈은 기이하게 빛났다.
그곳에는 거대한 자갈층이 있었다. 크기가 서로 다른 수많은 자갈이 기이한 힘으로 한데 모여 천연 장벽을 형성한 상태였다.
한제는 원신을 통해 그 느낌의 근원이 자갈층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성라반에서 원신을 빼낸 뒤 선위에게 무언가를 명했다. 선위는 몸을 훌쩍 날려 거대한 자갈층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선위의 눈앞에 하나의 수련성이 나타났다. 한데 신기하게도 그 수련성의 바깥을 두르고 있는 자갈층 너머서는 아예 이곳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한제도 원신의 감응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찾아낼 수 없었을 터였다.
그곳은 폐허가 된 수련성으로 크기는 염운성의 반에도 못 미쳤다.
한데 이 수련성에서는 전광이 번득이며 흐르고 있었다. 마치 번개로 이루어진 그물에 뒤덮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 수련성은 나천성역 남역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데다가 바깥은 자갈층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듯했다.
뇌옥(雷獄)
선위에게 약간의 신식을 주입해둔 한제는 선위의 눈을 통해 이를 볼 수 있었다. 편안한 느낌은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 느낌을 주는 것은 자갈층 깊은 곳에 있음이 분명했다. 다만 이곳에 존재하는 기이한 힘으로 인해 신식을 통한 탐사는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갈층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실 그 편안한 느낌이 상대적으로 자갈층에서 더 강하게 느껴진 것일 뿐, 이 작은 수련성 자체만으로도 그런 느낌은 분명 있었다.
“별채를 만들기에 좋은 곳이로군.”
한제는 선위를 다시 소환한 후 망월의 뼈를 가지고 곧장 자갈층으로 향했다.
“원신의 감응을 통해 찾은 곳이니 여기라면 원신의 부상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을 거야.”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위를 앞장세워 수련성으로 향했다.
“일단은 여기 머물면서 육신을 응결시킨 뒤 자갈층 안을 살펴야겠군.”
한제는 태고의 뇌룡을 삼킨 뒤로 천둥번개류의 신통력은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천둥번개가 본질적으로 태고에 천도를 대신에 힘을 행사했던 뇌룡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제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원신이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감응했는지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태고의 뇌룡이 부상을 입으면 천둥번개의 위엄이 가득한 곳을 찾아갔을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뇌룡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육신이 붕괴하고 막에서 벗어난 한제의 원신은 마치 한 마리 태고의 뇌룡과 같았다. 한제가 이곳에 감응을 느낀 것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었다.
전광이 흐르는 작은 수련성을 바라보는 한제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짙은 푸른 빛을 발산하고 있는 한제의 원신 안에서는 천둥번개가 흘렀고 일부는 갈라져 나와 망월의 뼈에 스며들었다. 이에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망월의 뼈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때 앞서가던 선위 꼭두각시가 우뚝 멈추더니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했다. 선위에게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는데 전광에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선위는 본래 전광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선위를 제련할 때 한제가 뿜어낸 원신의 기운에도 천둥의 위엄이 어려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전투를 해오면서 천둥번개류의 신통력에 맞닥뜨린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광 앞에서 이렇게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 전광에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건가?”
한제는 경계심을 가지고 전광을 한참이나 살핀 끝에 뭔가를 알아차렸다.
이곳의 전광은 신통술을 통한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천연적으로 형성된, 선천적인 것이었다. 이는 한제의 원신이 가진 천둥번개와 비슷했다.
“그러니 선위가 두려워할 만도 하지.”
선위는 뒤로 물러나 가까운 곳의 커다란 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좌선하며 호흡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몸을 돌려 성라반을 거둔 뒤 망월의 뼈를 가지고 전광이 번득이는 수련성으로 접근했다.
전광은 수련성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진한 전광이 번득였다. 급기야는 보통의 수련자라면 결코 육신이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전광이 짙어졌으나, 한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육신이 있었더라면 이 전광에 다소 제한을 받았을지도 모르나, 원신만 남은 그에게는 오히려 편안하기만 했다.
시야에 들어온 수련성은 그 대지에서도 전광이 흐르고 있어, 안팎이 모두 천둥번개로 뒤덮여 있는 것만 같았다. 말하자면 이곳은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감옥, 뇌옥(雷獄)이었다.
전광에 뒤덮인 곳답게 지면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생명이 살지 않음에도 대지 안쪽에서는 짙은 생기가 흘러나왔다. 한데 또 신기하게도 영기가 충만한 수련성 못지않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이곳에 영기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짙은 전광 때문에 영기가 버텨낼 수 없는 듯했다.
대지 전체는 강렬한 전광으로 뒤덮여 있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가 내려쳤다. 땅에 흡수된 번개는 은빛 뱀처럼 사방으로 흘렀다.
한제의 눈은 더더욱 기이하게 빛났다. 이곳은 그에게 정말이지 완벽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라면 비교적 쉽게 뇌원술을 익힐 수 있겠군.”
한제의 원신이 땅에 착지하자 마치 전광으로 이루어진 연못에 떨어진 듯 지면에서 수많은 전광이 용솟음쳐 원신으로 흘러들었다.
망월의 뼈는 마치 갑자기 거대한 산맥이 생겨나듯 대지를 울리며 바닥에 내려앉았고 이에 수련성 전체가 흔들렸다. 망월의 뼈는 이 뇌광이 흐르는 수련성에 던져진 돌처럼 파문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온 대지로 격렬한 전광의 파문이 퍼져나갔다. 이 전광의 파문은 그전에 흐르던 전광보다 몇 배는 더 짙고 강했다.
콰르릉! 쾅!
여기저기서 거대한 천둥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한제의 원신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직 태고의 뇌력을 완전히 흡수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신에는 뇌룡의 윤곽을 드러내는 얇고 굴곡진 선이 드러난 채였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무릎에 올려둔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간, 대지에 흐르던 전광들이 마치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천둥소리와 같은 요란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수많은 불꽃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하나의 불꽃들은 수련의 첫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천둥의 위엄을 품고 있었다.
한제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전광이 원신으로 흘러들면서 그의 몸을 두른 전광은 점점 짙어졌고 점차 거대하고 둥그런 그물 형태를 이루었다. 동시에 체내에도 전광이 줄기줄기 흐르면서 체내를 한 바퀴 돈 뒤 사라져갔다.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한제는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온 정신을 전광에 집중했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릿하게 사방에 떠올라 한제의 원신으로 흡수됐다.
밖에서 이 수련성을 본다면 전광의 흐름이 약간 빨라졌다는 것 외에는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을 터였다.
선위 꼭두각시는 전광이 흐르는 수련성 밖 자갈층의 어느 거대한 돌 위에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앉아 신식을 펼친 채 한제를 위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청림이 선위 꼭두각시를 만들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충성심이었던 만큼 한제는 안심하고 맡겨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