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
이 엄청난 기세가 몰아치는 것은 순간이었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고리형 파문은 벌써 3백 장 밖까지 이르렀다.
“탁…툭…툭”
바람이란 본디 형태가 없는 존재지만 극의 경계의 위력 아래, 지금은 한 조각 한 조각 푸른색 얼음으로 변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어서 금색 화염 역시 꺼지기도 전에 얼음으로 굳어버렸다. 푸른색 얼음 결정 속에 금색 화염이 깃들어 있어 아직도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무봉골의 법보인 천뇌풍화산도 반쯤 열린 상태로 푸른색의 얼음에 뒤덮였다. 무봉골의 노인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옥색 쌀알의 공격을 받게 되어 득의양양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의 뒤쪽으로는 가장 멀리 달아나 있던 무봉골의 제자마저도 순식간에 얼음 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반경 3백 장 안에 존재하던 생명체들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오산해는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어느덧 존경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합환종은 때맞춰 도망쳤지만 이내 그들 역시 경악한 모습 그대로 멈춰서야 했다. 한제의 서늘한 눈빛이 그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자세로 굳어버린 무봉골 제자들을 바라보던 합환종의 우두머리 여자 수련자는 창백한 얼굴로 영패를 꺼내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제가 물었다.
“영패는 총 몇 개지?”
여자 수련자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총 일곱 개.”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합환종의 영패까지 총 네 개였다. 세 개가 모자랐다.
“역외 전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은 몇 개의 문파에게 주어지지?”
여자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한제의 눈에 다시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덜덜 떨며 얼른 답했다.
“오직 세 개의 문파만 진입할 수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혹시나 한제가 기분 나빠할까 걱정이라도 되었는지 황급히 덧붙였다.
“영패는 총 일곱 개지만 역외 전장으로 통하는 통로가 열릴 때 세 개 이상의 영패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조나라에게 주어진 역외 전장 참여 자격은 사라져.”
한제가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여자 수련자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도우, 난, 남은 세 개의 영패 중 하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 우리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하면 그게 어디에 있는지 말해줄게.”
“말해봐.”
한제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했다.
여자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현도종의 집결지에 있어. 우리는 방금까지 저 자를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신경 쓰지 못했지만 분명 그들에게도 영패가 있을 거야.”
오산해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얼른 쓴웃음을 지었다. 한제의 서늘한 눈빛이 그에게 향했기 때문이었다.
“류미 장로한테.”
오산해는 거짓말을 하려고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한제의 두 눈에 가슴속까지 시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시조 흑천을 마주할 때도 느껴본 적 없던 압박감이었다.
“류미 장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한제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오산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축기 수준인가?”
오산해는 부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 시조님께서 직접 축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
한제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 당시 대산파에서 있었던 일과 부모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다시 마음속 깊은 곳이 아려왔다.
그는 뻗은 손을 쥐어 합환종의 여자와 오산해를 잡아챈 뒤 하늘로 떠올랐다.
“현도종은 어디에 있지?”
오산해는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고 현도종의 집결지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 한제는 두 말 않고 몸을 날렸고 현도종의 집결지에 도착하게 됐다.
★ ★ ★
바닥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는 그만 가봐.”
한제가 여자를 향해 말한 뒤 고개를 돌려 현도종의 집결지를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 여자는 거리를 어느 정도 벌린 뒤에야 비검을 꺼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아났다.
“현도종 사람들을 불러. 내가 원하는 건 영패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니까.”
한제는 평범한 어조로 느릿하게 말했다.
오산해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억지로 웃으며 저물대 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것을 이마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그 옥패를 집어 던지자 옥패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후 땅에 하얀색 빛의 고리가 나타났다. 그 빛의 고리는 점점 더 밝아지더니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거대한 고리형 기둥을 만들어냈다.
그 기둥 안에는 대략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양손의 손가락 끝을 모으고 있었는데 정수리 위에는 채찍 하나가 떠 있었다. 백발 같은 술과 검은 옥 같은 막대로 이루어진 채찍에서는 고리형 파문이 연이어 일며 주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제는 그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번쩍 두 눈을 뜬 여자는 오산해를 보고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하다가 그 뒤에 서 있는 한제를 보고 흠칫 놀랐다. 묘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던 그녀가 오른손을 흔들자 머리 위에 떠올라 있던 채찍이 가볍게 그녀의 손 안으로 떨어졌고 곧이어 그녀를 두르고 있던 빛기둥도 천천히 사라졌다.
약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이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이 사형, 오랜만이군.”
류풍이었다. 신식을 펼친 한제는 그가 벌써 축기에 이르렀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체내의 영기가 안정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 축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제는 그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현도종, 좋아, 가진 영패를 내놔. 당신들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어디에서 온 녀석이 그렇게 기세가 등등해? 감히 현도종의 영패를 탐내다니. 류풍, 저 녀석을 알아?”
현도종의 제자 중 한 노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는 그늘진 얼굴로 한제를 노려보며 냉소했다.
류풍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 사형, 저, 저 자는 이한제라고 이전에 대산파에서.”
마 씨 성을 가진 노인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차게 웃었다.
“대산파의 잔당 주제에 감히 혓바닥을 놀리다니, 썩 꺼져라!”
“쌔앵!”
말을 마친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평지에서 일어난 강력한 바람이 순간 한제를 덮쳤다. 허나 한제는 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몰아쳐 오던 바람은 한제와 50척 정도 다가왔을 때 얼음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툭!툭!트특!”
“퍼억!”
그와 동시에 초록색 빛이 번쩍이더니 마 씨 노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슴팍에 사발 크기만 한 구멍이 뚫린 그의 몸은 즉각 얼음 조각으로 변한 채 숨이 멎어버렸다.
류미
한제는 모종의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체내의 영기가 변한 이후, 마음속에 살기가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통제되지 않는 그 살기에 한제는 반쯤 통제를 포기한 상태였다.
“슈웅!”
녹색 빛을 번쩍이는 비검이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사방을 맴돌았다. 그 날카로운 날은 현도종의 제자들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움직이는 비검이 종종 멈칫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억지로 움직임을 강행했다.
현도종 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류풍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도 가슴속에 스미는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마에 절로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 씨 노인은 축기 중기의 수준임에도 일격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한제는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기만 했다.
허나 류미는 어째서인지 크게 놀라지 않은 듯 한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저물대 안에서 영패를 꺼내 던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만큼은 줄곧 한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영패를 받은 한제는 냉담한 시선으로 류미를 한 번 훑어본 뒤 몸을 훌쩍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참 뒤에야 류미는 시선을 거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제 앞에서 어떤 작용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동굴로 돌아온 뒤 다섯 개의 영패를 꺼낸 채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네 개의 영패를 부숴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개만 저물대에 챙겼다.
그리고 그는 인력술을 이용해 주위의 돌들로 동굴의 입구를 막고 경고용 진을 설치한 뒤 수련을 시작했다. 두 달 뒤의 전쟁을 위해 최대한의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 ★ ★
한제가 부순 네 개와 지니고 있는 하나, 시음종의 제자가 가지고 돌아간 하나를 감안하면 일곱 개의 영패 중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허나 일곱 개의 영패 중 네 개를 부쉈으니 한제는 충분히 역외 전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영패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한제는 두 달 후의 전쟁으로 생각을 옮겼다.
우선은 옥색 쌀알 법보를 준비했다. 표묘종의 노인에게 사용해서 없어진 쌀알을 다시 보충한 한제에게는 총 세 개의 쌀알이 있었다.
그 뒤 저물대를 열어 뒤적여 보았다. 최근에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고 그들로부터 얻어낸 물건이 꽤 많았다.
한나절 동안 주머니를 뒤적이던 한제는 둥그런 구슬 하나를 꺼냈다. 주먹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크기에 매끄러웠고 어떤 무늬도 없었다. 가장자리에만 아주 가는 금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그 구슬을 집어든 한제는 문득 백치가 떠올랐다. 이 구슬은 백치가 그에게 첫 번째로 준 법보였다.
한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녹색 비검을 꺼냈다. 요 며칠간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비검을 다시 정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두 손으로 결인을 한 한제는 몇 갈래의 영력을 뿜어내 비검을 감싼 뒤 저물대를 두드려 꺼낸 조롱박 하나를 손에 쥐었다. 자신의 피로 정복해낸 법보인 이 비검에 대해 들이는 투자는 아깝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조롱박을 연 뒤 대략 3분의 1에 달하는 액체를 주르륵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