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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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천천히 흘러 10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 선위 꼭두각시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앉아 있었다.
전광이 흐르는 수련성 안, 한제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거대한 번개 공이 나타나 있었다. 하늘의 천둥번개는 끊임없이 이 번개 공에 내리쳤고 번개 공은 그 천둥번개를 흡수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내리친 천둥번개도 자석에 이끌리듯 방향을 틀어 이 번개 공으로 흘러들었다.
번개 공 안에서는 한제의 원신이 끊임없이 제련되고 있었다. 끝없는 천둥번개는 세상에서 가장 효력이 뛰어난 단약처럼 한제의 원신에 계속 흡수되면서 부상을 회복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 공 안에서 한제의 원신이 서서히 두 눈을 떴다. 그가 천둥번개의 위엄이 어린 두 눈을 뜬 순간 고리 형태의 신통력이 퍼져 나갔고 이에 번개 공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고리 형태의 신통력은 한제가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확산을 멈추더니 시간을 거스르듯 빠르게 되돌아와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제의 온몸은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은 것처럼 전광이 흘렀다.
“다른 곳이었다면 몇 배의 시간을 들여야만 원신을 회복시킬 수 있었겠지.”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육신을 회복할 차례다. 보통의 수련자에게 다시 육신을 응결시키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게는 고신결이 있지.”
일전에도 고신결을 이용해 육신을 회복한 경험이 있었다.
“고신결은 줄곧 본체가 수련하고 있지만 고신결의 비술(祕術)을 이용해 육신을 회복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어.”
한제는 손을 뻗어 고대 신 서사의 기억을 통해 알아낸 기이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노련한 기운이 두 손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이 기운에는 한 줄기 천둥의 위엄도 섞여 있었다. 두 손은 대지에 놓였고 입에서는 복잡한 저주가 흘러나왔으며, 두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흘러넘쳤다.
“응결!”
한제의 짧게 외친 순간, 대지에 흐르고 있던 전광은 물이 된 것처럼 천천히 흐르다가 솟아올라 사방에서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마치 대지의 모든 전광이 몰려드는 듯했다. 이 전광들은 빠른 속도로 한제에게 흘러들었지만 원신 깊은 곳에는 흘러들지 못하고 두 손바닥에만 응집됐다.
시간이 지나자 두 손바닥에서 저릿함이 느껴졌다. 육신을 회복한 뒤에나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한제의 표정은 엄숙했고 가늘게 뜬 두 눈에 어린 빛은 태산처럼 굳건했다.
시간이 흐른 후, 그의 두 손은 천둥번개의 힘을 장악해 손짓만으로도 천둥번개를 맘대로 다룰 수 있게 됐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천둥번개를 흡수하자 한제의 두 손이 응결되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전광 너머로 어렴풋이 두 손이 나타났다. 느릿하게 응집된 빛은 차차 손뼈의 형태가 되어갔다. 이 손뼈는 빛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강력한 천둥번개를 발산했다.
시간이 흐르자 대지의 전광은 성난 파도처럼 몰아쳤고 한제의 두 손에서 반짝이는 빛은 극한까지 치달았다가 결국 완벽한 손뼈를 이루어냈다.
지금의 한제는 투명에 가까운 허상으로 두 손은 뼈만 이루어진 상태였다.
한제는 끊임없이 전광을 흡수했고 그의 손뼈에는 점점 많은 빛이 응집되며 서서히 근육을 형성했다.
이어서 한제는 육신의 응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대지의 전광을 완전히 흡수했을 때, 온몸의 골격은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한제는 천천히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하늘의 천둥번개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제에게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팔뚝 굵기의 천둥번개가 떨어지자 붉고 푸른 얇은 선들이 나타나 끊임없이 퍼져나가더니 결국 한제의 온몸을 뒤덮었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수련성 전체를 뒤덮었고 그 순간, 그의 원신이 가진 천둥의 위엄이 수련성의 모든 천둥번개의 지배자가 된 것만 같았다.
“흡수!”
그 한 마디에 신식은 신통력을 발휘했고 수련성 전체가 진동했다. 이어서 무궁무진한 천둥과 번개가 수련성 안쪽에서 뽑혀 나와 한제에게 몰려들었다. 그 기세에 대지에는 균열이 일었고 하늘마저 붕괴할 듯했다.
수련성 밖 자갈층의 선위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형형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수련성의 모든 천둥번개의 힘이 한제에게 응집되면서 조금씩 육신을 이루어갔다. 지금 한제의 전신에 전광이 흐르면서 수련성과 하나로 연결됐다.
천둥번개의 힘에 존재하는 짙은 생기 역시 한제에게 흡수됐다. 이 생기는 한제의 새로운 육신을 이루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됐다.
시간은 착실히 흘러갔다. 육신을 치료한 기간까지 더하면 60여 년이었다.
뇌옥과 같았던 수련성은 이 60년 동안 큰 변화를 맞았다. 전광이 흐릿해지면서 선위도 드나들 수 있었다. 이에 선위는 한제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를 보호했다.
모든 전광과 대량의 생기는 한데 모여 30척 길이의 거대한 고치를 이룬 상태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 고치가 열렸다.
육신을 응결시키다
벌어진 고치 사이로 전라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몸에서는 짙은 전광이 흘렀다.
사내는 바로 한제였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고개를 숙여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지난 60년 동안 흡수한 대량의 천둥번개와 생기로 그는 새로운 육신을 이룬 상태였다. 이 육신에는 천둥번개의 위력이 배어 있었으며, 이 위력은 원신 안의 전광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다.
이제 한제는 원하기만 한다면 육신으로부터 원신을 분리시켜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하늘을 거스르는 듯한 이 소리는 한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번 육신은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듯 내뱉은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저물대에서 하얀 옷을 한 벌 꺼내 몸을 감쌌다. 이후 바닥에 내려와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멀지 않은 곳에 엎드린 용처럼 서 있는 거대한 산맥을 살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혼백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한데 모이더니 세 개의 주요 혼백이 나타났다. 이 수련성의 전광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면 주요 혼백으로 합쳐지기도 전에 천둥번개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러졌을 터였다.
한제는 신식으로 사방을 훑어 안전을 확인하고 주요 혼백들에게 경계를 세운 후, 조용히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에서 연속적으로 파문이 일더니 그 중앙에서 반짝이는 구슬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바로 천역주였다.
한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결인을 그린 후 천역주를 가리켰다. 그러자 천역주는 망월의 뼈로 이루어진 산맥을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망월의 뼈에 비하면 천역주는 티끌처럼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제는 매우 신중하게 일을 진행했다. 천역주는 그가 가장 중시하는 보물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본디 이 나천성역에서 나타났던 것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척이 느껴진다면 곧장 다시 거둘 생각이었다.
또한, 그가 자신의 모든 수준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육신을 응결시킬 때까지 천역주의 금속 속성을 체우는 일을 미뤄둔 것 또한 그런 이유였다.
천역주가 발산하는 빛 아래, 망월의 뼈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망월의 뼈 안에 있던 금염의 광맥은 서서히 금색 실이 되어 천역주에 흡수됐다.
이 과정은 매우 천천히 진행됐는데 그 이유는 한제도 알 수 없었다. 당시 물 속성 때와 비교하면 속성을 하나씩 채워갈수록 흡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다시 한 번 사방을 유심히 살폈고 네 번째 주요 혼백까지 꺼내 수련성 밖에 경계를 세웠다.
★ ★ ★
며칠 뒤, 한제는 한 줄기 신식을 분리해내 저물대 안에서 본래 탐랑의 것이었던 법보들을 꺼냈다.
거대한 바위는 약간 파손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짙은 선력을 발산했다. 게다가 탐랑이 남겨 놓았던 신식의 낙인은 이미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탐랑이 죽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탐랑이 망월의 몸 안에 갇혀 있던 시간 동안 이 바위는 망월의 뼈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한제가 운하성에서 이 바위를 발견했을 때, 신식의 낙인은 이미 망월에 의해 지워진 상태였다.
일전에 탐랑이 이 바위로 산의 혼을 뽑아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제는 바위를 가볍게 문질렀다.
잠시 후, 한제는 손을 우뚝 멈추더니 기이한 눈빛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짙은 선기를 품은 노쇠한 기운이 바위에서 피어오르더니 그의 손을 따라 솟아올라 허공에 안개와 같은 허상의 구체로 응집됐다.
한제는 그 구체를 부드럽게 들어 올리더니 감명 받은 듯 바라보았다.
이 작은 공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또한 그 안에서는 마치 어떤 선인이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선기가 완벽하게 조합되어 있었다.
“이 선산(仙山)의 혼은 당시 탐랑이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약한데도 불구하고 그 힘이 엄청나군. 다만 이 안의 산혼이 불안정한 상태라 잘못하다가는 적에게 해를 입히기는커녕 내가 당하겠어.”
한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산혼이 연기처럼 흐릿하고 손상을 입은 이유는 이 바위가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혼을 뽑아내는 것 자체에는 무리가 없었다.
한제는 다시 손을 내려 바위를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안개로 이루어진 작은 구체가 서서히 사라져 바위 안으로 되돌아갔다.
이어서 한제는 손으로 땅을 짚은 채 뭔가를 명령했다. 그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온 수련성이 진동했고 노련한 기운은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나 한제는 혼을 뽑아 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뽑아 올렸던 노련한 기운이 그대로 흩어져 버린 순간, 엄청난 힘이 전해져오면서 온몸에서 펑펑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큭!”
한제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혈색을 되찾았다.
잠시 그 바위를 바라보던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내게는 상당히 가치가 있는 법보로군. 한데 탐랑은 대체 어디서 이걸 찾아내서 어떻게 제련한 거지?”
한제는 탐랑과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사이였지만 그럼에도 상대에게 내심 감탄했다.
“태고의 뇌룡, 선계의 바위, 고대 신의 솥,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 그리고 그 기이한 왕관⋯⋯ 탐랑의 저물대에는 아직도 많은 법보가 남아 있겠지. 그 자는 정말이지 하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인 모양이군.”
그 법보들 중 하나만 나타나도 엄청난 쟁탈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탐랑이 여태껏 다른 자에게 법보를 빼앗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한제는 선계의 바위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회복시킬 수 있을 거야. 얼마나 많은 원력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한제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바위를 살피다가 저물대에 집어넣었고 이번에는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을 살피기 시작했다.
산수화는 선계의 10대 상급 선보 중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 산수화의 위력은 변화막측한데 정말로 무서운 점은 단순히 산과 강의 신통력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낸 묵적(墨跡)이라고 했다.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된 먹은 검은색이 아니라 암적색 피였다. 그 피야말로 이 산수화의 진정한 신통력의 근본이었다.
산수화를 그리는 데 사용된 피는 천도의 피라는 말도 있었다. 이 그림에 천도도(天道圖)라는 이름이 붙은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허나 형태 없는 천도가 어떻게 피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이 산수화는 진정한 천도도가 아니라 그 탁본이었다.
탐랑은 어떤 신통력으로 그 산수화의 탁본이 병풍에 붙어 있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온갖 고서를 뒤졌으나, 끝내 정확한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